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
2018.06.26~2018.08.15
무료
영상, 설치, 회화, 사진
기획
송상희, 에르칸 오즈겐, 임흥순, 장서영, 조은지, 홍순명, 히와 케이
33
서울시립미술관
송가현 02-2124-8946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전시 《보이스리스 –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억압되고 배제된 존재를 조명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영역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예술이 지닌 사회적 함의와 가능성을 고민해보는 전시다.
오늘날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탈각된 채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는 포스트식민주의 개념은 적어도 서구와 비서구, 혹은 제1세계와 3세계에서 매우 다른 의미를 지닌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자 집단적 상흔으로서 식민주의는 현재에도 억압과 착취를 위한 지배 행위 및 이념으로서 형태를 바꿔가며 지속되고 있다. 그에 대항하는 실천적 담론이자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일련의 정신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는 포스트식민주의는 이 전시에서 현실의 구체적 정황을 참조하는 유동적이고 탄력적인 틀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 전시는 포스트식민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복합적인 맥락에 대한 인지와 그에 따른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억압의 상황에 처해있는 목소리 없는 존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른바 하위주체라고 불리는 이들은 다수와 소수, 혹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라는 단순한 이중적 구분에 포섭되지 않으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배제된 존재들이다. 많은 동시대 작가들이 이러한 존재들의 삶을 다시 읽어내고 이들 스스로 발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예술작업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이 전시는 하위주체에 대한 탐구에 천착해 온 일곱 명의 현대미술작가를 초청하고, 이들의 작품세계를 통해서 배제된 자들의 여정을 따라 세상을 다시 읽어내는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전시에 초청된 개별 작품들은 특수한 시공간적 상황 하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인 사건, 혹은 서사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이야기다. 일곱 명의 작가가 사회의 보이지 않는 현실을 담아내고 또 펼처 보이는 가운데 생성되는 작은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것은 지역적 정체성과 경험적 특수성을 넘어 반복적으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공통된 경험이자 현실에 대한 예술적 통찰이다. 그러므로 전시는 또한 공통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려는 시도다. 전시의 서사는 이라크 쿠르디스탄 출신 작가 히와 케이(Hiwa K)가 들려주는 한 난민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서 혹은 자신의 행적이 기록된 화면을 재구성함으로써 개별 사건 이면에 작동하고 있는 체제와 이념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시위 현장의 하모니카 소리를 담은 영상은 예술적 수행과 역사쓰기 사이에서 지금의 예술이 발화해야 할 저항의 논리를 설파한다. 배제되고 억압된 역사의 기억을 몸에 새겨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임흥순의 작품,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현실을 강렬한 시각언어로 담아내는 터키 작가 에르칸 오즈겐(Erkan Ozgen)의 작품 역시 초월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예술적 실천의 가능성을 찾으며, 현실의 조건들을 재사유하는 실천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연대를 구축하는 주체의 정치성을 요청한다. 장서영이 그려내는 비가시적 존재에 대한 단상 속에는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시간성에 의해서 조직화됨을 전제하고 그러한 시간성이 체계와의 관계 속에서 재정립되는 현상이 담겨있다. 반복과 순환의 메커니즘 속에서 개별적 신체의 경험이 드러내는 멜랑콜리적 상상력은 제도화된 권력에 의해 배제된 자(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귀환하는 이중적 구조를 작동시킨다. 이 구조 안에서 배제된 자(것)들은 재현될 수 없는 방식으로 귀환하며 배제한 자들의 결핍을 드러낸다. 의미가 탈구되어버린 빈 공간을 드러내고 타자에게 말을 거는 조은지의 작품은 지식에 의해 성찰되지 않는 틈을 이야기한다. 윤리적 행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홍순명의 작품은 응답하는 능력과 타자에 대한 책임이 동일하게 분절되며 공가능성의 풍경이 가져다주는 존재의 열림을 획득한다. 조은지의 영상 혹은 홍순명의 회화 속에는 봉합되거나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도래할 것으로 남아서 이질적인 풍경이 된다. 현재와 과거, 빛과 어둠이 중첩되는 가운데 송상희의 작품에 타자에 대한 예술적 성찰과 환대의 (불)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그렇게 우리에게 낯설고도 친밀한 각각의 이미지들은 미학적 성취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 사이에서 진동하고 서로 공명하며 켜켜이 접혀 공통의 이야기를 이룬다.
《보이스리스 -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은 예술이 지닌 사회적 함의와 가능성을 고민해보는 전시다. 동시대의 삶이 처한 특정 상황 속에서 전쟁, 난민, 여성, 죽음 등의 문제를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예술적 은유를 통해 풀어내는 각각의 작품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체득하고 빚어내는 작가적 태도와 재현의 윤리를 설파함으로써, 예술이 지닌 가치와 한계를 질문하고 있다.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혹은 '예술적 실천의 논리에서 파생되는 윤리적 재현의 문제를 어떻게 짊어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 전시는 결국 재현할 수 없는 것의 재현이라는 예술적 역능으로부터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미학적 기획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기획의도는 전시가 열리기 한 달 전인 5월 26일, 서울시립미술관과 현대미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동명의 학술대회를 통해 공유된 바 있다. 안소현, 이나라, 곽영빈의 연구논문 발표와 전시 초청작가 임흥순의 프리젠테이션으로 진행됐던 이 사전학술대회에서 하위주체를 예술의 주제로 다룬다는 것의 모순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현실에 접속하고 개입하는 예술의 논리에 관한 논쟁적 해석들이 제기되었으며, 그와 관련한 미학화, 역사화의 시점이 공통의 과제로 인지되었다. 타인의 고통이 실체화되지 않고 피상에 머물 때 그것의 재현은 시각적 유미주의로 빠져버릴 수 있다는 아이러니, 그것을 관객이 단지 감각적으로 전유하게 되어버리는 상황, 그렇게 재난이 예술의 주제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 자체가 이 전시의 태생적 부조리함인 동시에 스스로를 구성해 나가는 중요한 참조점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삶의 조건과 예술의 재현(불)가능성에 대한 상호참조적 이해 속에서 결국 전시가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언어로 불러내는 타자의 목소리다. 타자에 대한 공감의 형성으로부터 환대의 공간이 발생할 수 있으며, 주체의 복원이 가능해진다. 관람객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세계를 읽고 해석하는 예술적 관점들을 수용하는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이 드러내는 시각에 동참하며 스스로 자신의 역설적 위치를 자문해 보는 계기이자 주체성을 재고하는 기회를 맞게 되기 바란다.
전시의 제목 '보이스리스'는 세상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부제목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은 넓은 의미에서 전시와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일본 작가 나나카와 카난의 연작단편소설 제목을 인용했다. 이 전시는 배제된 자들이 귀환하는 곳에서 완전한 자유가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과 재현할 수 없는 것의 재현으로서 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각각의 긍정에 기초하고 있다. 배제된 존재와 자유에 관계에 대한 이러한 기획의도를 전시의 부제목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한글)과 '배제된 자들의 귀환'(영문)에 각각 담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모두가 만나고 경험하는 미술관입니다. 서울 근현대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정동 한가운데 위치한 서소문본관은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시, 교육, 스크리닝, 워크숍, 공연,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더불어 SeMA Cafe+, 예술 서점, 로비 공간, 그리고 야외 조각 공원이 모두에게 다양한 미술 체험에 이르는 길을 제공합니다.(전경사진: ⓒ Kim Yong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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