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 전시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3층 전시실
2024.12.19~2025.03.30
무료
매일 오후 1시
기획
후원: 에르메스 코리아,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협찬: 올레드 삼성전자, 삼화페인트공업(주), (주)엣나인필름, INA
박가희 02-2124-8942
안내 데스크 02-2124-8868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그는 그에게 배웠다. 배웠다. 그에 의해 가르침을
전시의 경험은 다양합니다. 저는 종종 이를 울고 있는 타인의 모습을 봤을 때의 경험에 비유하곤 합니다. 타인이 웃는 모습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우는 모습은 그렇지 않기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타인이 우는 모습을 목격할 때, 그의 삶이 나의 삶과는 다르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전시 역시 일상 혹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다르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합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타인(창작자)의 생각과 시선으로 만들어진 세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에 나의 몸과 생각의 축을 들여놓음으로써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각자의 세계를 조망하고, 조정하고, 다시 세울 수도 있습니다. 전시는 우리의 사고와 앎에 관여하는 주요한 매체이고, 그 경험은 저마다 다릅니다. 이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이릿 로고프는 이러한 속성을 빗대어 전시를 “앎의 사건”이 일어나는 장이라 말했습니다.
동시대 한국 작가를 조명하는 연례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그러한 ‘앎의 사건’이 일어나고, 확산되고, 실천되는 현장의 목격자이자 행위자로 관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전시의 중심에는 2017년부터 작가가 천착해 온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이 있습니다. 〈표해록〉은 20세기 초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서사를 경계, 전통, 기록, 소유와 유통 등 여러 논제들로 확장합니다. 작가는 많은 초기 이민자들의 삶이 근대와 식민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미국의 일반적인 역사 서술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작가는 기존 서술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쫓으며 경계 안팎의 서사를 엮어 앎을 둘러싼 문제를 다방면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지식의 체계가 개인의 사고와 시선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탐구합니다.
이때 ‘하와이’는 구체적인 지리적 장소이자 개념이 됩니다. 대규모 농장 산업이 성행한 19세기 중반부터 많은 해외 노동자들이 하와이로 유입되었고, 자본의 흐름과 이민법의 변화에 따라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이 차례차례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1902년 대한제국의 여권을 들고 인천항을 출발하여 1903년 하와이에 도착한 120여 명의 한인들이 공식적으로 기록된 첫 이주민이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많은 한국인이 하와이를 거쳐 미국 본토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하와이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쟁을 피해 온 난민, 1898년 미국에 강제로 합병되어 땅(‘āina)을 잃은 하와이인 등 여러 표류하는 삶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와이는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떠도는 다양한 삶과 문화가 혼재하는 구체적인 장소인 동시에,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여기에 작용하는 힘들의 역학을 살펴볼 수 있는 개념적인 장소가 됩니다. 즉, 하와이는 하나의 은유로서, 기존의 지식 체계를 의심하는 일, 다른 체계의 앎을 교차시키는 일, 새로운 앎의 구조를 세우는 일을 수행해보기 위해 선택된 장소입니다. 전시는 지식이 형성되고 보급되는 방식과 역사로 기록된 것들 밖에 머물렀던 흔적들을 함께 펼쳐 보이며, 하와이를 통해 이를 복합적으로 사고하기를 제안합니다.
올을 풀어내다(parfiler*)
전시는 작가가 생각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일에서 출발했습니다. 김성환 작가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1896년부터 1907년에 관한 레슨(이하 ‘레슨’)”(2018–)을 찾을 수 있는데, 이곳에서 지난 몇 년간 작가가 〈표해록〉을 작업하며 수집한 연구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자료들은 프로젝트 초반에 작가가 수행한 여정과 하와이에서의 삶에 기반합니다. 작가는 직접 차를 몰아 미국 서부를 이동하며 초기 한인 이주민들이 정착했던 곳들에 방문했습니다. 과거의 흔적들을 보고, 듣고, 수집하고, 이들의 삶을 더듬어 보기도 했습니다. 2020년에는 하와이로 기반을 옮겨 연구 대상 안에 작가 자신 스스로를 이동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작가의 생각과 경험은 열한 개의 세분화된 레슨으로 분류되어 홈페이지에 옮겨졌습니다. 레슨은 작가가 수집하고 촬영한 이미지와 텍스트, 작가가 읽은 책의 구절과 영화의 부분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뜻 평범한 리서치의 결과물처럼 보이나, 이들은 수집한 정보를 모아놓은 것이라기보다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상에 접근하는 방법을 다룹니다. 엉켜있는 대상에서 올을 풀어 문제를 이끌어내고 그 문제에 관해 계속 생각하며 제 스스로 배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레슨 2 〈살아남은 순간들〉은 18세기 이래 일본에서 시대를 거듭해 재생산되는 이야기 〈주신구라〉의 한 장면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보여줍니다. 이와 함께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변화를 거듭해 온 광화문의 모습을 담은 기록물, 영화 속 불타는 장면 등을 한데 엮어 역사 속에서 무엇이 살아남았고 무엇이 사라졌는지 보여줍니다. 이 대상들을 보며, 남겨진 것들의 공통성 속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레슨〉은 〈표해록〉을 만들기 위해 수집한 배경지식이나 정보의 저장소가 아니라, 〈표해록〉을 통해 작가가 구체적으로 현실의 무엇을 조명하고 문제화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의 앎의 체계와 대상을 보는 관점을 살펴보는 단서가 됩니다.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하와이로 삶의 기반을 옮겨 목격하고 알아간 작가의 경험이 관객 여러분의 ‘앎의 사건’으로 전이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직접 몸을 움직여 경험하지 않으면 감각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전시는 전시된 정보와 몸이 맺는 관계를 강조하며, 다양한 감각을 통해 ‘앎’을 형성하도록 전시장 안에 펼쳐낸 활성화된 〈레슨〉과도 같습니다. 작가가 그랬듯 다방향으로 펼쳐진 앎의 축을 따라 복잡하게 뒤엉킨 시공의 직물을 한올 한올 풀어내듯 주제에 접근합니다.
전시는 하와이를 다시 보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제도와 앎의 문제를 다루는 〈표해록〉에 하와이가 왜 주요한 배경이 되었는지 살펴봅니다. 이때, 은유로서의 번역을 비롯해 인용, 발췌, 병치, 모사, 변형, 재구성 등 편집의 기술은 작가의 주요한 실천적 방법인 동시에 앎의 형성과 확산을 다루는 이 전시를 관통하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먼저 전시의 제목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를 환기해 봅니다. 설명이 없으면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제목은 의도적으로 매개어 없이 하와이어와 한국어 표음만을 병치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접속되지 않아 해석의 지연을 일으키고, 되려 중층적인 의미가 생성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합니다. 작가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은유를 통해 양자 간의 비슷한 점을 강조하는 방법도 있다. 두 개의 문화를 상호-비유를 통해 병치하는 것이 발굴이나 번역보다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한 문화가 다른 문화의 은유일 수도 있고, 그 역 또한 같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상을 사고하는 방법이며, 전시는 특정한 역사에 대한 탐구가 아닌 이를 통해 대상(역사)을 보는 방법을 다루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크게 세 개의 방을 따라 전시는 펼쳐집니다. 근대와 식민의 역사를 드러내는 이주 서사에서 시작하여, 그 대상(역사)이 다뤄진 방식과 이를 둘러싼 앎의 형성과 소유, 그리고 유통에 대한 문제들이 방을 따라 구체화됩니다.
Room 1에서 하와이는 드류 브로데릭이 기획한 전시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를 발췌, 재구성한 파트와 〈몸 컴플렉스〉(2024)로 구체화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다수의 인물들과 이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언뜻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미지와 글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하와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하와이를 중심으로 다방향으로 다른 지역, 시간, 문화, 역사적 사건, 인물 등을 엮어, 복합적이고 다양한 관점이 중첩된 공간 하와이를 드러냅니다. 작가에 의해 새롭게 조명된 장소이자 개념으로서의 하와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얼핏 무관해 보이는 국경(혹은 체계) 밖에서 일어난 사건과 삶이 실상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천천히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속한 앎의 경계를 넘어 복잡한 관계 속에서 현상과 대상을 사고하기를 제안합니다.
Room 2는 앎이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작품을 통해 ‘몸과 정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작가는 이곳에 상주하면서 전시장에 놓인 영상의 파편과 소리, 자료 등 다양한 요소들을 변주하며 작품을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이곳은 전시장이자 작가의 편집실 혹은 스튜디오가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서 드러냅니다. 이와 같은 변화하는 전시의 문법은 앎의 축을 지속적으로 이동시키며 관객들이 새로운 ‘앎의 사건’을 목격하기를 제안합니다. 동시에 작가는 이 공간에 들어선 관객들의 움직임과 반응을 관찰하며 대화를 나누듯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관객들은 완성된 장면의 감상자에서, 한 개인(작가)의 사유가 앎(작품)으로 형성되는 과정의 목격자인 동시에 창작 과정에 개입하는 행위자가 됩니다. 앎을 생성하고 확산하는 매체로서 전시의 속성과 그 과정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Room 2는 전시의 구조적 실험을 통해 유동하는 앎의 속성을 은유하고, 역사라는 지식이 형성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몸과 정보의 관계를 극대화하는 전시의 문법은 앎의 축을 이동했을 때(몸을 움직였을 때) 비로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앎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Room 3에서는 2007년 제작한 영상 작품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을 방화와 광화문에 관한 이미지, 영화의 장면 등을 추가하여 새롭게 재구성한 설치 작품으로 선보입니다. 전시장을 아우르는 설치 작품은 크게 1937년, 2007년, 2024년을 기준으로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들을 보여줍니다. 기록된 것과 시차 속 변화한 현실을 끊임없이 오가도록 설계된 전시장은 시간(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변형과 소멸을 전시와 영화와 같은 매체들이 지닌 기록과 왜곡의 양면성을 통해 말합니다. 과거에 완결된 작품을 지금으로 가져와 활성화하는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모사와 변형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식에 지속적으로 질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작가에게 ‘작품’은 대상에 관한 고정된 사유의 결과가 아닌, 변화하는 대상에 다가서는 시선이자 사유의 방법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합니다.
목격은 지식 교환의 한 방식이다
지난여름 하와이에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일부지만 〈표해록〉에 등장하는 장소에 방문하고, 작업과 관련된 이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몸을 이동하여 실재를 마주하는 경험은 기록으로서 혹은 작가의 작업으로서 마주했던 대상들을 제 스스로의 경험과 포개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줬습니다. 잘못 접어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희’라는 이름의 건물이 세워진 곳이 바로 초기 한인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했던 지역이었음을 뒤늦게 알았을 때, 방금 지나친 길이 필리아모오의 연작 속에 등장하는 개발지역임을 알았을 때, 작가를 통해 알게 된 시공과 서사들이 밀려 들어와 다른 풍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과 인물들, 그들의 삶을 더듬어볼 수 있었던 이 여정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본 것들이 제 것으로 살아나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무엇보다 전환적인 계기가 된 것은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5의 일환으로 마련된 마누라니 아루리 마이어의 기조 강연이었습니다. 하와이의 중요한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그는 트리엔날레의 주제인 “알로하 노(ALOHA NŌ)”를 자신의 경험을 빌려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했습니다. 알로하를 모든 가치의 근원이라 주장하며 지식의 탈식민적 전환을 말하는 그는 서구 철학이나 과학에서 세계는 인간이 관장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세계는 제 스스로 조직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목격이란 더욱 높은 빈도의 지식 교환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문장이 제게 준 가장 큰 깨달음은 목격이라는 행위를 사고하는 방식입니다. 제게 목격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수동적인 경험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목격은 그 자체로 지식을 교환하는 행위가 됩니다. 나아가 목격은 한 개인의 경험에서 끝나지 않고 타인과 공유되는 능동적인 경험이며, 하나하나가 모여 공동의 앎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줬습니다.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역시 이와 같은 능동적인 ‘목격’의 경험을 통해 앎의 논제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작가의 질문과 여정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몇 차례의 변형과 편집을 통해 여러분 앞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 교환과 변화를 거듭할 예정입니다. 석화하지 않고 부유하기를 거듭하는 지대 위에서 작가의 여정과 시선을 따라 기획자에게로, 그리고 또 여러분에게로 목격의 연쇄가 이어지기를, 그 속에서 우리의 앎에 작용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이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성찰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레슨〉의 ‘의도(intent)’ 페이지에 등장하는 롤랑 바르트의 『중립』의 구절에서 가져왔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모두가 만나고 경험하는 미술관입니다. 서울 근현대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정동 한가운데 위치한 서소문본관은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시, 교육, 스크리닝, 워크숍, 공연,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더불어 SeMA Cafe+, 예술 서점, 로비 공간, 그리고 야외 조각 공원이 모두에게 다양한 미술 체험에 이르는 길을 제공합니다.(전경사진: ⓒ Kim Yong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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