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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연도 1972
  • 재료/기법 종이에 목판화
  • 작품규격 70×50cm
  • 액자규격 74.5×53.5×5.5cm
  • 관리번호 2023-022
  • 전시상태 비전시
작품설명
<황소>(1972)는 한운성의 초기 목판화 작품이다. 황소의 생동감과 강렬함을 큰 면과 역동적 자세로 구조화하고, 나무결을 살려 생기를 더했다. 한운성은 목판 과정에서 양·음과 선·면을 치밀하게 배치해 대상을 간결하게 드러냈다. 작가는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추상과 구상 작업을 병행했으며, 특히 유화 매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구상적인 스케치들을 판화로 제작했다. 주로 말, 소, 호랑이처럼 형태와 동세가 다이내믹한 소재들을 조형적 실험의 대상으로 다루었다. 작가 스스로 “대학원까지의 6년 과정에서 쌓인 에스키스가 수백 장이 넘었는데 도저히 유화로는 표현이 걸맞지 않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고민은 미국 유학에서의 판화 전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곳에서 습득한 다양한 판법을 통해 표현 방법과 조형적 가능성을 한층 확장했다.
 
한운성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형상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는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사물들을 화면 가득히 확대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시대의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작업을 주로 선보여왔다. 그의 작품 소재들은 시대적 상황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초기 추상 형상에서 시작해 일상 모티프로 전환되는 소재들은 약 3~4년 주기로 변화하며, 동시대 사회에 대한 작가의 냉철한 인식을 드러낸다. 또한 동일한 소재에 대해서도 판화와 회화, 아날로그와 디지털 매체의 경계와 융합에 대한 조형적 실험을 지속하며 이미지와 재현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이어왔다. 한운성의 초기 작품세계는 대학 및 대학원 재학 시절 형성된 문제의식을 바탕에 두고 있으며 다양한 형식을 탐구하는 조형적 실험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 동·서양 철학에 심취하였으며 서구 인본주의와 실존주의 담론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창작 행위와 연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당시 화단에서 지배적이었던 앵포르멜 경향의 표현적 추상 작업과 기하학적 추상을 동시에 회화 작업으로 실험하는 한편, 전위적인 매체로 여겨지던 판화에 관심을 두고 목판 작업을 시도했다. 1973년 미국 유학은 한운성 작품세계 변화와 확장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석판과 동판 프레스기를 비롯해서 판화 기자재를 타일러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면서 동판화, 석판화, 세리그래프 등의 다양한 판법을 구체적으로 익혔으며, 리얼리즘 세미나와 작품 비평 등 체계적인 미술 이론 수업을 접하게 되었다. 또한 그때 유행한 포토리얼리즘과 팝아트와 같은 새로운 사조가 미국 사회의 동향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이러한 경험은 시대적 현실을 객관적인 자세로 반영하려는 작가 정신을 북돋웠고 추상 위주였던 한운성의 작업에 양식적 변화를 촉발했다. 1975년 귀국 판화전에서 선보인 <욕심 많은 거인>을 비롯한 초기 대표작들은 바로 이러한 경험의 산물이었다. 이처럼 이 시기 한운성은 추상적 작업과 구상적 작업을 동시에 전개하며 시대적 현실을 냉철하게 포착하는 독자적 양식을 구축하게 된다.

한운성(1946― )은 197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2년 동 대학원 졸업 후, 1975년 미국 템플대학교 타일러 미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8년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 문교부 해외파견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99년 금호미술관 개인전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동아미술제, 서울국제소형판화전,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등에서 수상하였다. 한운성은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1970년대 한국 화단에서 극사실적인 구상 회화로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사물들을 화면 가득 확대하여 그리는 그의 작업은, 작가의 말을 빌면 “구체적인 물질의 세계에서 현대의 리얼리티를 잡아내려는 충동”으로 설명된다. 버려진 콜라 캔을 그린 〈욕심 많은 거인〉, 가로수를 받치는 지지대인 〈받침목〉, 고장 나 천으로 싸놓은 신호등을 그린 〈눈먼 신호등〉 등 3―4년을 주기로 바뀌는 소재들은 현대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은유하는 것으로, 작가는 이를 통해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실존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