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과 미술연구 / SeMA 소장품
땅에는 천의 여성이, 2004, 김인순
  • 제작연도 2004
  • 재료/기법 캔버스에 아크릴릭
  • 작품규격 199×250cm
  • 액자규격 -
  • 관리번호 2020-0169
  • 전시상태 전시중
작품설명
김인순은 여성미술을 개척하고 사회 변화를 지향하는 행동주의 미술의 초석을 다진 작가다. 1980년대 초반 실천문학과 리얼리즘 미학에 영향받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김인순은 ‘여성 해방’과 정치, 사회 변혁 운동을 실현해 나가는 실천적인 여성미술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사회적 생산의 주체이자 생명을 생산하는 주체로서 여성의 힘에 주목해온 김인순은 1990년대 중반부터 여성의 모성 능력과 거대한 자궁으로서 ‘어머니 대지’의 원형적인 생명 창조력 사이의 유사성에 이끌렸다. 그로부터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을 더욱 강화한 본질주의적 여성미학을 발전시켰다. 이 무렵 시작된 <뿌리>와 <생명> 시리즈는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여성의 잠재적 능력을 ‘나무’ ‘뿌리’와 ‘대지’에 비유해 보여주었다. 김인순은 “뿌리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이고, 여성의 역사이다”라며 여성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뿌리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의미가 부각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뿌리와 여성을 동일시하였다. 서울 화실에서 대지와 나무를 관념적으로 그리고 있음을 답답하게 느낀 김인순은 1997년 양평으로 이주해 자연 변화 속에서 살아 있는 나무와 뿌리를 직접 관찰하면서 작품에 담았다. 김인순의 <뿌리> 연작은 굵은 뿌리에 연결된 무수한 실뿌리에서 역경을 딛고 생명의 리듬과 순환을 이뤄내는 긍정적 힘을 보여준다. 대지, 나무, 뿌리, 자궁의 모티브가 점진적으로 합일 단계에 이르며 김인순은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여성의 역동적인 힘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였다. 초기 <뿌리> 시리즈가 뿌리와 여성 생명력의 강한 일체감에 집중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메마른 환경에서도 영양분을 찾아내는 실뿌리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강인하고 끈질긴 인간의 생명력을 덧붙이고 있다.
 
<땅에는 천의 여성이>(2004)는 수북이 쌓인 마른 낙엽 위에 다양한 여성상이 등장하고, 그 사이로 작은 야생화와 풀들이 움튼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생명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관매도 할머니 상을 중심으로 왼쪽 방향으로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해방춤을 추었던 무용가 이애주(1947-2021), 어머니 노동자 홍순애 씨, 탈춤과 맘마미아의 춤추는 인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그동안 김인순의 작품에서 주요하게 등장해 강인한 생명력과 건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김인순은 이들의 모습을 땅 위에 중첩함으로써, 수많은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 터가 되어 메마른 땅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트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04년 ‘땅·물·살-중심의 동요’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16회 《조국의 산하전》(공평아트센터, 서울)에 출품되었다. 중심을 동요하게 하는 주변 존재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 이 전시에서 김인순은 중심의 바깥에 위치하지만 생명을 생산하는 강인한 힘을 지닌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땅과 함께 제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척박했던 대지는 여성들이 가진 생명력으로 회복한 듯, ‘뿌리’ 시리즈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2005년 이후 김인순은 물기를 머금은 야생화와 초록빛 생명이 약동하는 숲속 대지를 그린 작품을 주로 보여준다.

김인순은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해 1962년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미술과를 졸업했다. 1982년 작업을 재개해 1984년 첫 개인전을 열며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1985년 시월모임을 결성했다. 이후 여성미술연구회 대표, 그림패 둥지 대표, 노동미술위원회 위원장,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 민족미술인협회 공동회장을 역임하면서 민중미술 계열의 미술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문화위원,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이사, 여성문화예술기획 이사를 역임하며 여성단체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84년 첫 개인전 《김인순전》(관훈미술관, 서울)을 시작으로 1995년 《여성·인간·예술정신》(복합문화공간 21세기, 서울), 2005년 《느린 걸음으로》(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17년 《김인순 초대전》(지앤갤러리, 울산) 등 7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86년 《40대 22인전》(그림마당 민, 서울), 제2회 시월모임 《반에서 하나로》(그림마당 민, 서울), 1987-1994년 《여성과 현실》 연례전(그림마당 민, 서울), 1989년 《89통일염원미술전》(그림마당 민, 서울), 1991년 《한국의 여성미술: 그 변속의 양상전》(한원갤러리, 서울), 1992년 《이동미술관: 우리들의 만남》(그림마당 민, 서울, 현대자동차 사업장, 울산 등 순회), 1993년 《코리아 통일미술전 コリア統一美術展》(도쿄 센트럴미술관, 오사카 현대미술센터, 일본), 1994년 《민중미술 15년: 1980-199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97년 《97광주통일미술제》(국립5·18민주묘지, 광주), 1999년 제1회 《99여성미술제: 팥쥐들의 행진》(예술의전당, 서울),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광주비엔날레전시관, 광주), 2008년 《언니가 돌아왔다》(경기도미술관, 안산), 2019년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등 12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3년 예술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1997년부터 경기도 양평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