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짓 훈륜 88725>(1988)에서 ‘얼레짓’이란 연실을 감는 ‘얼레’와 ‘얼레빗’ 그리고 행위 명사 ‘짓’을 결합한 단어이다. 1970년대 <균열> 시리즈에서 강조되던 물질적인 우연성과 대비되는 신체의 반복에 의한 적극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작업이다. 1980년대 초기의 <얼레짓> 시리즈에서 작가는 아크릴 물감과 먹을 이용하여 촘촘한 빗질 같은 선으로 면을 구축하듯 쌓아올리며 전면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반복적인 붓질은 여러 겹의 층을 형성하며, 꽉 짜인 그물망 같이 얽히고설킨 단단한 표면을 구축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얼레짓> 시리즈는 마치 한 폭의 문인화처럼 빈 여백과 무심한 듯 경쾌하게 흘러내리는 자유로운 선의 흐름으로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데 이 작품은 이 시기의 특성을 보여준다.
윤명로(1936- )는 196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했다. 1970년 뉴욕 프랫 그래픽센터(New York Pratt Graphic Center)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1977년 견지갤러리(서울), 1984년 아트코아갤러리(로스앤젤레스, 미국), 1991년 호암미술관(서울), 1992년 선재미술관(경주), 2001년 조현화랑(부산), 2002년 갤러리 가나 보브루(파리, 프랑스), 2005년 가나아트센터(서울), 2010년 중국미술관(북경, 중국), 2013년 《윤명로: 정신의 흔적》(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7년 《윤명로, 그때와 지금》(인사이트센터, 서울)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59년 제8회 국전 특선, 1990년 제7회 서울 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 2002년 가와기다린메이 평론가상(일본), 옥조근정훈장, 2007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2009년 대한민국보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199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및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명로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어려움을 겪은 세대이지만 어려서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고 그림 기를 좋아했다.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해 대학 3학년 때 국전에서 특선하여 화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국전의 수상 등급에 따라 작품을 서열화하는 미술계의 풍토에 문제제기를 하고 반(反)국전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작품세계의 변화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추상회화에 매진해왔다. 1960년대 앵포르멜 회화와 1970년대 단색조 <균열> 시리즈를 통해 형식실험을 시도했으며, 인간과 사회구조의 붕괴와 혼동을 갈라짐과 터짐의 물리적인 현상으로 은유했다. 전통적 미감의 현대적 표현 가능성을 제시한 1980년대 <얼레짓> 시리즈와 격정적인 필치의 1990년대 <익명의 땅> 시리즈를 통해 넘치는 창작 에너지를 분출했다. 2000년대에 선보인 <겸재예찬> 시리즈는 여유와 명상, 운필의 충만한 기운으로 무심의 경지에 이른 자유로운 추상회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