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경(1944― )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0년대 초반 ST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등단하였다. 1974년 제3회 ST 그룹전에서 〈신문: 1974. 6. 1 이후〉를 발표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하여 신문, 사진 등의 매체와 일상적 행위들로 구성된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여왔다. 작품 활동 외에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성능경의 작업은 크게 초기의 실험적 이벤트와 현실 풍자적 발언, 1990년대 이후의 과장된 일상 행위로 나눠 볼 수 있다. ST 그룹에 참여한 초반에는 동료들과 함께 신체를 이용하는 논리적 이벤트를 하기도 했지만 초기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은 ‘신문’ 퍼포먼스로, 신문의 특정 기사를 낭독하고 오려내는 행위를 한 뒤 남은 면을 전시하거나 신문 한 장을 동일한 크기의 조각으로 자른 다음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언론에 대한 통제와 검열이 팽배했던 유신 치하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 이러한 사회비판적 태도는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의 얼굴에서 눈 부분만 테이프로 가려 전시함으로써 신문사진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 〈특정인과 관련 없음〉(1977)이나 〈현장〉(1985) 등으로 이어졌다. 한편 단색화 일색인 미술계와 미술의 고급화에 반발하는 제도 비판적 의미로 제5회 〈에꼴 드 서울〉의 도록을 잘라 전시하기도 했다. 이후 〈S씨의 자손들〉, 〈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 〈S씨의 반평생〉 등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전시장이라는 공적 공간으로 끌어들이거나, 우산, 부채, 면도기, 훌라후프, 새총 등 다양한 소도구들이 담긴 가방을 들고 거리로 나가 마치 장터의 보따리장수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관객과의 인터랙션을 시도하는 등 행위의 콜라주와 즉흥적 변주를 실험하였다. 성능경의 작업들은 과감한 사회풍자의 메시지와 해학적인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물기로 선구적인 실험미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