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생광(1904-1985, 호 내고乃古)은 1920년 일본 교토의 다찌가와 미술학원에서 전통 일본화를 공부하고, 1923년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현 교토예술대학)에서 신일본화를 배웠다. 해방 이전까지 일본에서 활동하였고, 1947년 귀국해 백양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했으며, 한국전쟁기에는 고향인 진주에서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1932년 첫 번째 개인전(도쿄, 일본) 이후 1977년 진화랑(서울), 1981년 백상기념관(서울), 1984년 문예진흥원(서울), 1985년 《르 살롱(Le Salon)》(그랑팔레, Grand Palais, 파리, 프랑스)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80년 《한국현대미술: 1950년대 동양화》(덕수궁미술관, 서울), 1985년 《’85서울미술대전》(덕수궁미술관, 서울)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사후 1998년 《거장의 향기: 박생광》(가나아트센터, 서울), 2004년 《박생광 탄생 100주년》(이영미술관, 경기) 등의 회고전이 열렸다. 1968-75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강사로 재직했다. 1963년 경상남도문화상, 1981년 제7회 중앙문화대상을 수상했다.
박생광은 근대기 일본 화단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한국 화단 활동 초기에는 ‘왜색’ 등을 이유로 다소 소외된 측면이 있으나, 말년인 1980년대 한국 전통 모티프와 강렬한 색채를 적극 활용한 대작들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면서 한국 채색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조선미전 출품작들을 중심으로 한 1930년대의 초기작들에서는 사생적이고 향토적인 동양화를 선보였으며, 일본 유학기에는 초현실주의적 작품으로 1938년 자유미술가협회의 공모전에서 입선하는 등 전위적 경향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1950년대부터는 간헐적으로 탈, 기와, 단청 등을 소재로 한 추상 작업을 발표했고, 1970년대를 거치면서 <민속>, <무속> 등의 제목으로 제사, 사당, 무녀 등을 다루며 전통성이 가미된 조형 양식을 확립해 나갔다. 박생광의 작품세계는 동양과 서양, 한국과 일본, 개인과 민족이라는 이항 대립적 개념들이 교차하는 장이며, 전통적 상징체계와 작가만의 형식적 요소가 시각적으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