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관내
2012.06.15~2012.06.24
무료
난지입주작가
강이연, 김미란, 이재형, 장우진, 조현아, 조현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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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비다
대도시의 지하철과 광장, 대형 몰과 같이 사람들이 몰려있는 공공장소에서는 사람들 간의 거리두기와 경계 짓기에 의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성됨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도시의 빠른 박자 속에서 공공장소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은 낭비적일 뿐 아니라 애당초 불가능하다. 시골마을에서야 모르는 이와 마주쳐도 의례히 눈인사를 건네고 담소를 나눌 수 있겠으나 하루에도 수천 명의 낯선 이들과 마주치는 도시 소시민들에게 있어서는 방어막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전략이다. 무수히 많을 상호작용에서 올 피로를 방지할 수 있는, 어찌 보면 거의 유일한 방법은 모든 낯선 이들을 배경으로 취급하는 것, 즉 사람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공간에 있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려, 그리고 서로의 일을 의식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관대함에서가 아닌 귀찮음과 피곤함에 어지간한 일에는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는 곳일수록, 이러한 장벽은 더 굳건하기 마련이다. 벽 쌓기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도시 환경 속의 소시민에게 있어 대체적으로 굉장히 유익한 전략이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선택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어막은 애당초 우리 마음 속 심리적인 장벽일 뿐, 실제로 우리가 항상 남들과 부대끼고 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장벽은 수시로 깨어지고 침범 당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서로 부딪히거나 발을 밟기도 하고, 전화벨이나 통화소리, 발품상인이나 전도활동의 소음에 신경이 분산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스스로 이러한 결계를 깨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예컨대 평소에는 신경에 거슬릴, 버스나 지하철에서의 낯선 사람의 요란한 착신벨이 마침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곡인 경우엔 얼굴이 찌푸려지기보다 살짝 미소가 지어지며 벨소리가 조금 더 울렸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혹은 옆 사람이 보고 있는 책이나 잡지를 무심코 곁눈질하니 너무나도 재미있어 몰래 보다 페이지가 먼저 넘어감에 아쉬운 마음을 못 표현하기도 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산 없이 서 있는 이에게 우산을 함께 쓰자고 권하는 것조차도 오히려 불편해 할까 주저하는 도시라서, 낯선 사이에 잠시나마 경계를 풀고 교감하고 싶은 순간들, 혹은 교감하게 되는 순간들은 그만큼 소중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전시 공간 안의 작업들 역시 필연적으로 서로 부대끼고 상호작용을 한다. 특히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는 기획전 형태의 그룹전시에서는 더욱 이러한 부대낌, 작품 간의 시각적인 충돌이나 상호간섭이 눈에 띄기가 쉽다. 한편에 틀어져 있는 영상작업의 소리가 공간 전체에 퍼지기도 하고 어두워야 하는 공간에는 옆의 조명이 새어 들어오곤 한다. 천장에서부터 길게 드리워진 거대 설치물은 공간을 점령하고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러한 충돌과 침범을 해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역시나 각각의 작업이 자기만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실재로 전시장을 보게 되면, 작업들은 정해진 공간 안에서 다른 작품들과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작업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벽, 즉 일종의 셀(cell)이 형성되고 하나의 셀은 하나의 작품만을 위한 베타적인 공간으로 존재하게 된다. 혹여 “배타적”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러한 셀의 존재가 부정적으로 비추어질까 덧붙이자면 이러한 배타적 셀은 관람객이 각각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그룹 전시의 공간적 한계 내에서 최적화된 감상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공간의 나눔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시 관람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경험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때로는, 전시장에서의 이러한 장벽을 허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들이 각자의 셀(cell)을 가지고 병치되어 있는 형태 대신 이러한 셀을 없애고, 작업들 간의 부대낌을 전시의 중심축으로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기획된 <<부비다>>전은 말하자면,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순간들에 대한, 그리고 혹여 오갈 수도 있는 대화와 교감에 대한 전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의 작품 간 물리적, 심리적 경계를 허무는 것이 전시의 주요 목표인 만큼 그러기 위해선 작가들이 먼저 심리적 경계를 허물어야 함은 물론이다.
<<부비다>>전에서는 따라서 어떻게 해야 다른 작가들의 서로 다른 작품들이 서로 섞여들어 한 덩이로 어우러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개개의 작품들이 어떻게 돋보이도록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우선한다. 강이연, 김미란, 이재형, 장우진, 조현아, 조현익 이 여섯 작가들의 제각각인 작업들을 중첩시켜 보여주면서도 서로 잘 조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업에서 눈을 떼고 남의 작업을 들여다볼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작품들은 서로를 곁눈질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담소를 나눈다. 오브제와 조명, 그림자와 소리는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큰 작품처럼 기능한다. 말하자면 작품들끼리 팔베개를 하고 누워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듯한 그림에 해당할 것이다. 그 결과는 어쩌면 다소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하나하나의 작업을 감상하는데 있어서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새 생명의 탄생이 세포간의 상호 침범과 혼합을 전제하듯, 이러한 작품들간의 상호 침범도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잉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에서 본다면 때로는 경계의 흩트림과 그리고 이어지는 약간의 혼란도 나쁘지 않다.
부대행사
개막행사 2012. 06. 15(금) 오후5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미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지원 공간입니다.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하늘공원 사이에 있는 침출수 처리장을 개조하였으며, 서울 중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25개의 작업실, 연구실, 원형 전시실과 야외 작업장에서는 국내외의 역량 있는 작가와 연구자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합니다. (전경사진: ⓒ Kim YongKwan)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변화하는 시각예술 환경에서 창·제작 공간으로서 협업과 과정 중심의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력 있는 작가 및 연구자를 육성하고자 입주를 지원합니다. 또한, 입주 작가와 기획자를 대상으로 협약을 통해 해외 기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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