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
2025.03.04~2025.06.08
무료
매일 오후 3시에 운영 (전시 개막일, 월요일 휴관일 제외)
회화
기획
강명희
125점
박지수 02-2124-8943
안내 데스크 02-2124-8868
《강명희-방문》은 오랜 시간 대면한 자연의 풍광 속 본질에 천착하고 존재와 자연과의 관계를 화면에 담아내며 독자적인 회화 영역을 구축한 강명희(1947- )의 60여 년에 걸친 화업과 주요 작품들을 망라하여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1972년 한국을 떠나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한 작가의 회화에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영향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색채와 감성이 묻어납니다. ‘방문’은 작가의 작품명에서 빌려 온 전시 제목으로 한곳에 완전히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작업한 작가의 유목적 태도와 일시적 만남에서 비롯된 예술적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은 충만한 빛과 색으로 가득한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매우 구체적인 자연의 요소에서 출발하며 긴 시간의 단련을 통한 사색과 ‘비워내기’라는 반복적 행위의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명희는 몽골의 고비사막,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홍콩, 중국, 대만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태초의 풍경을 찾아 자연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했습니다. 평면 위에서 흔들리고 부딪히며 쌓아 올려진 붓 터치와 파편들은 자연의 움직임을 닮았습니다. 일견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화면은 세계 혹은 자연과의 치열한 대화의 산물이며 오랜 시간에 걸친 무수한 붓질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연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이 시기에 땅의 역사와 기억, 파괴와 죽음, 생성과 소멸을 함축한 그의 회화는 거듭된 수행과 정화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화면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강명희의 대형 회화 앞에서 관객은 작가가 재해석한 자연을 만나고 마치 경계 없는 자연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작가는 2007년 고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거주하며 다채로운 자연의 풍광을 담은 추상적 회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업적 완숙기로 접어든 강명희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 냅니다. 현대문명과 첨단 기술의 반대편에 선 그의 작품은 강력한 생명과 재탄생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예술의 힘으로 우리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고 어루만집니다. 《강명희-방문》은 연대기적 구성을 따르기보다는 작가의 시공간적 경험과 의식의 흐름을 바탕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섹션 제목이 모두 작품명에서 비롯된 이번 전시는 제주를 중심으로 한 최근의 작업을 선보이는 ‘1. 서광동리에 살면서’와 프랑스에서의 작업과 해외 각지를 여행하며 그린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2. 방문’, 그리고 현재 작업의 출발점이자 작품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는 초기작을 소개하는 ‘3. 비원 秘苑’ 파트로 구성되었습니다.
1. 서광동리에 살면서
‘서광동리에 살면서’에서는 강명희가 2007년부터 제주도에 거주하며 제작한 비교적 최근의 작업과 제주를 중심으로 한 작가의 일상과 연결되는 회화를 소개합니다. 작가는 제주에서 여러 곳의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으며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작업실을 바꾸기도 하는데 ‘서광동리’는 작가가 약 10년간 사용하던 작업실이 있었던 지역입니다. 그는 제주에 살면서도 일시적으로 해외에 머무르며 작업하는 삶을 이어왔으며 이 파트에서는 제주에 자리 잡은 18여 년간의 삶과 예술을 함축적으로 선보입니다. 작업실에서 본 실내외 풍경과 정물을 비롯하여 한라산, 황우치 해안, 대평 바다, 산방산, 안덕계곡 등 제주의 구체적 지역과 장소에서 비롯된 회화가 전시됩니다. 작가는 한 장소를 반복적으로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시간이 축적된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땅 위에서 자행되는 파괴와 상처, 자연의 위기에 대한 사유와 애도, 자연을 매개로 한 소통 등을 폭넓게 다룹니다.
2. 방문
‘방문’에서는 작가의 프랑스 생활과 해외 각지를 방문했던 여행에서 비롯된 작업을 선보입니다. 프랑스에 거주하던 시기 강명희는 1994년 몽골과 칠레 여행을 시작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 거의 반년마다 여행을 떠났고 몽골 고비 사막을 여덟 번 다녀왔을 정도로 열성적이었습니다. 작가는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등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장소로 홀연히 떠나 눈앞에서 본 생생한 풍광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프랑스 파리와 투렌(Touraine)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제작된 작품들은 당시 작가의 일상과 정서를 담담하게 반영합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투렌 작업실에서는 그곳의 정원과 땅을 소재로 한 <북원>, <중정>, <방문> 시리즈가 시작되었습니다. <방문>은 작업실 뒤 정원에 날아든 한 마리 꿩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평범한 일상의 찰나를 영적이고 예술적인 순간으로 치환합니다. 프랑스와 제주에서 그린 <시리아> 시리즈는 우리에게 먼 땅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죽음을 상기시키며 거대한 폭력에 작품으로 맞서고자 하는 예술가의 시도를 보여 줍니다. 강명희는 2000년대부터 중국에서 많은 시인들과 교류하며 회화와 시를 연결하여 선보이는 전시를 통해 예술 세계를 더욱 확장하였습니다.
3. 비원 秘苑
1960-80년대에 제작된 작가의 초기작들은 최근작에 비해 구상적 성격이 짙고 삶과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화하거나 서술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1972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그린 초기 작품에는 당시 한국의 상황과 작가의 기억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 중반에 제작된 <개발도상국> 시리즈는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과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난 작품입니다. 이후 그의 작업은 점차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경향으로 변화합니다. 또한 초기작들은 작가의 전체 작업 세계를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지는 않았으나 창덕궁 후원을 소재로 한 <비원>은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자연에 대한 지속된 관심을 보여주며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오가는 특징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은 작가의 예술 여정에 있어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모두가 만나고 경험하는 미술관입니다. 서울 근현대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정동 한가운데 위치한 서소문본관은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시, 교육, 스크리닝, 워크숍, 공연,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더불어 SeMA Cafe+, 예술 서점, 로비 공간, 그리고 야외 조각 공원이 모두에게 다양한 미술 체험에 이르는 길을 제공합니다.(전경사진: ⓒ Kim Yong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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