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관내
2016.06.30~2016.07.10
무료
설치, 영상, 사진 등
난지입주작가
권용주, 도로시엠윤, 성유삼, 염지혜, 허태원,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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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구체적인 명사 없이 형용사로만 이뤄진 전시 <부끄럽고, 사소한>은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품사이자 그 자체로는 그 무엇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형용사의 성격과 비슷하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그 무엇’에 도달하기까지 행해지는 수많은 고민과 질문, 수행과정은 마치 적절한 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형용사를 나열하며 중얼거리는 것과도 유사하다. 이번 전시는 완벽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으로서 역할을 하는 게 아닌, 두꺼운 표피를 깨고자 하는 작가의 내부로부터 울리는 파동의 기록이자 하나의 통과의례로서 작동한다.
여기서 부끄러움은 shy(부끄러운, 수줍은)만이 아니라 shameful(부끄러운, 수치스러운)도 포함되어 있다. 완성되지 않은 날것을 드러낼 때 겪게 되는 멋쩍은 부끄러움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부끄럽게 느끼게 하는 외부 환경도 내포한다. 개인의 치부나 과정, 날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안겨주는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래밍은 작가의 성장 과정에 끊임없이 주입된다. 또한, 과도하게 완성된 문장을 읊도록 요청하는 사회 시스템은 작가로 하여금 완결된 그 무엇을 만들어내길 강요하기도 한다. 결코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소한 생각의 과정을 전면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 <부끄럽고, 사소한> 전시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여기서 어떤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욱 관심이 있을 것이고, 다른 작가는 통시적 관점에서 작품이 흘러온 역사를 되짚어 보는 과정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권용주는 근 8년간 지속해온 작업의 초석이자 기록물인 드로잉과 노트를 선보인다. 그것들은 허세와 오류가 가득한 문장이나 단어, 부끄러운 표현들이 거침없이 끄적여진 것이지만, 한편 생생한 날것의 에너지가 가득한 응축물이다.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부끄럽고 사소한 흔적들을 되짚어 보면서 스스로에게는 작가로서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관객에게는 작가의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한다.
첨예하게 분리된 경계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작업하는 도로시 엠 윤은 ‘Honey’라는 제목의 디지털 콜라주 작업을 선보인다. 모자이크 유리로 덮여 불명확하게 보이는 디지털 이미지는 작품을 읽어내는 데 중요한 부분들이 컷아웃 되어 있으며, 이러한 이중의 흐릿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유추하도록 한다.
성유삼은 아주 오래전 작업에서부터 최근 작업까지 다양한 작업물을 스튜디오처럼 꾸며진 전시 공간에서 보여준다. 과거 작업 중에는 아직 대중에게 선보인 적 없는 작업과 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했던 다수의 드로잉이 포함된다. 이번 전시에서 과거의 작업이 현재 작업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또한 어떻게 작업이 변해봤는지 그 과정을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현재의 작업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며 새로운 과정을 만들어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평소 특정 장소에 관심이 많았던 염지혜는 2010년에 제작하였지만 실패했다고 간주하여 전시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자체 판단한 ‘지구 터널 프로젝트’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한 ‘언타이틀드(Untitled)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이 두 작품을 통해 기획이나 과제라는 의미 외에도 돌출과 투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고찰과 작업에서 완벽한 의미 전달이 가능한지를 실험한다.
허태원은 작업제작과정을 통해 실존을 느끼고 싶어 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바람을 담은 ‘무제’(손금페인팅, 2014)와 무기력하고 무능한 날들의 기록을 통해 개인의 삶을 드러내는 ‘빨래’(2008-현재)를 선보인다. 작업에서 개인의 서사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고 쑥스러운 것이라고 교육받은 작가는, (본선심사에서 탈락하고 전시제안이 거절된), 어쩌면 본인에게만 의미 있을 수도 있는 개인적인 작업을 쿨하지 않게 보여준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삶의 의미와 그 무게감을 표현하는 ‘깊이에의 강요’ 작품을 지속하고 있는 홍승희는 그 깊이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주름을 사용한다. 연출된 공간 속에서 고유한 의미가 부여된 주름들은 강압적으로 뺏긴 물질의 중력을 직관적인 사고로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 보여질 드로잉 연작은 완성된 작품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수행물이자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담아내는 기록물로서 작가의 개인적인 감각과 시선이 스며들어 있다.
지난 몇 달간 6명의 참여작가는 각자의 그 무엇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났고, 그 와중에 사소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쏟아내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러는 동안 몇몇 작가는 그 무엇의 궤도에 올랐고, 다른 몇몇은 아직도 그 무엇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현재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부끄럽고, 사소한> 전시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혹은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해 명확한 그림을 그려볼 수는 없지만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돌연 기획자의 역할을 자처할 때 겪게 되는 불확실성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전시가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신화(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담아내는 플랫폼이 되리라는 것이다. (권용주, 성유삼, 염지혜)
부대행사
개막식 : 2016. 6. 30.(목) 오후 5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미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지원 공간입니다.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하늘공원 사이에 있는 침출수 처리장을 개조하였으며, 서울 중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25개의 작업실, 연구실, 원형 전시실과 야외 작업장에서는 국내외의 역량 있는 작가와 연구자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합니다. (전경사진: ⓒ Kim YongKwan)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변화하는 시각예술 환경에서 창·제작 공간으로서 협업과 과정 중심의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력 있는 작가 및 연구자를 육성하고자 입주를 지원합니다. 또한, 입주 작가와 기획자를 대상으로 협약을 통해 해외 기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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