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관내
2012.08.30~2012.09.09
무료
현대미술
난지입주작가
김덕영, 김용관, 이재형, 차혜림, 최종하, 한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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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about 은 교차로 중앙에 있는 원형의 교통섬을 따라 회전하여 이동하도록 만든 평면교차로를 의미한다. 이 시스템은 회전하는 차가 우선이라는 간단한 규칙 외에 운전자에 대한 양보와 배려를 전제하고 강제적인 신호의 체계없이 자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무조건 한바퀴를 빙 돌아가야 하기에 비효율적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운전을 하다 실수로 길을 잃어도 라운드어바웃에 들어와 돌며 어디로 갈지를 고심하면 된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수조 원형을 그대로 활용한 두 개의 원형 갤러리를 두고 작가들은 라운드어바웃을 떠올렸으며 우리는 이 라운드어바웃을 따라 우회해가는 과정, 지연과 유보의 잠정적 단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했다.
●일례로, 전시의 설명을 우회하는 소설 하나를 소개할까한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는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한 남자의 지독한 질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화자가 등장하지 않은 채 일체의 심리적 묘사와 감정은 배제하고 집요한 관찰을 통한 시각적 기술로만 이루어짐으로써 서사 중심의 스토리 구조를 일탈한다. 심지어 그 극도의 객관적 묘사는 조금씩 변주되며 반복된다. 영상 언어에 가까운 그의 소설은 카메라가 감지하는 움직임을 따라오도록 독자에게 종용하다가 독자가 길을 잃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커다란 구멍과 마주하게 하며 당황하게 한다. 철저하게 객관적이라 여겼던 화자의 시선은 질투에 침잠해 있는 자기 자신까지 잃어버릴 정도의 거대한 질투 자체였음을, 시선 안에 현존하던 모든 사물들의 변화와 모양은 지극히 주관적인 카메라가 현실의 좌표에서 떼어 구멍 속으로 던져 버린 클로즈업된 현실이었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느슨한 구조는 화자가 긴 우회를 거쳐, 어떻게 그 소설 자체가 되는지 침묵하면서 보여준다. 이렇게 침묵 속에서 말하는 방식, 에둘러 가는 길은 목적지 없는 여행의 목적 자체이며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다가가 말을 거는 방식과 흡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구름을 그려가면서 달을 완성하는 동양화의 기법처럼 주변이라는 물감을 겹겹이 쌓아 만들어가는 결코 비어있지 않은 여백의 공간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 낯선 공간으로 호명하는 하나의 빈 교통섬이 있다.
이 섬의 밖을 돌면서 눈을 멀게 할 정도의 강렬한 빛을 만나거나 존재하지 않은 기억의 편린을 상기시키는 아련하지만 알 수 없는 노래 가사가 들려올지 모른다. 쉼표를 남기며, 스쳐가는 것들, 우연적인 것, 침묵된 것, 잠재된 것들과 조우해 가면서 여행자는 길을 잃어갈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라운드어바웃에서 목적지는 끝도없이 유보되어 중심에서 멀어져 가고 늘임표를 연주하며 리듬을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돌아오는 일상의 끝에 서서 이제 한바퀴를 돌며 행선지를 정비할 차례이다.
길을 잃을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다음은 또다시 회전하여 돌아오는 푸른 말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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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원형공간에서 하나의 물체는 굉장히 그 공간을 어렵게 만든다. 난지갤러리에서 한쪽 벽면에 튀어나온 에어컨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에어컨을 가리는 작업을 통해 눈에 거슬리는 요소를 제거한다. 하지만 원형공간은 결과적으로 그 형태를 잃게 되었다.
김용관
●시침은 정육각형, 분침은 정사각형, 초침은 정삼각형, 받침대는 정십이각형으로 이루어진 시계다. (실제 시간보다는 빠르게 흐르도록 설정되었다.) 각각의 도형은 6가지의 색으로 면이 분할되어 있으며, 시간에 따라 수시로 모습을 바꿔가며 회전한다. 회전을 통해 총 1728가지의 색면의 패턴을 만든다.
이재형
●격자의 매트릭스 구조로 이루어진 현대사회는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며 픽셀들 간의 관계성에 새로운 의미들을 생성하게 된다. 도시와 자연, 디지털과 아날로그 등의 이중적인 공간들의 경계는 사회적인 구조들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틈으로서 만들어진다. 매트릭스 구조를 구부리는 행위는 수직 수평의 정형화된 공간의 비틀림이 만들어내는 틈들에 감성을 채워 넣는 것이다.
최종하
●바퀴가 굴러다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러면 안 된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바퀴는 없어져야 한다. 바퀴를 대체할 어떤 것이 필요하다. 다리가 바퀴를 대신할 수 있을까. 바퀴를 대신할 무엇인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차혜림의 페인팅과 오브제 작업들은 동시대 미디어의 수많은 정보들을 발견, 맵핑하고 재해석하여 이중 삼중의 레이어를 통한 비선형적이고 문학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제시되는 방식으로 보여진다. 또한, 동시대의 거대한 정보들을 레퍼런스로 활용하여 열린 구조의 방식으로 엮어낸 전시 공간 자체는 이접과 분절, 접합과 횡단을 통하여 읽고 쓰기의 또다른 방식으로 전환된다.
작가 스스로의 감각과 상상력, 창발로서의 생성에 대한 모색과 조립자로서의 작가의 역할은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동시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회화 안에서의 다층적 장치와 작가만의 스토리텔링, 여러 변수와 가능성을 내포한 긍정의 실마리들은 현재의 삶을 가능성과 잠재성의 영역으로 이끄는 매개자로서 기능하게 된다.
●모든것은 항상 변화하며 고정되어 있지 않다. 비교 없이는 사물이나 현상 자체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불가능 하다. 절대적으로 길고 짧음, 크고 작음, 가볍고 무거움 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해석되어질 뿐이다. 인간은 모르는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비교, 분석을 통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틀 안에 놓아야 안심한다.
부대행사
개막행사 2012. 08. 30(화) 오후5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미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지원 공간입니다.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하늘공원 사이에 있는 침출수 처리장을 개조하였으며, 서울 중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25개의 작업실, 연구실, 원형 전시실과 야외 작업장에서는 국내외의 역량 있는 작가와 연구자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합니다. (전경사진: ⓒ Kim YongKwan)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변화하는 시각예술 환경에서 창·제작 공간으로서 협업과 과정 중심의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력 있는 작가 및 연구자를 육성하고자 입주를 지원합니다. 또한, 입주 작가와 기획자를 대상으로 협약을 통해 해외 기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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