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벙커 B1 전시실
2018.05.03~2018.07.01
무료
없음
조각, 사진, 설치, 영상 등
기획
김천수, 아오노 후미아키, 윤지영, 에피 앤 아미르, 쑨 쉰, 카데르 아티아, 크리스 쉔, 표민홍
26점
서울시립미술관
이지민 02-2124-8942
SeMA 벙커는 2018년 첫 번째 기획전으로 <관객행동요령>전을 선보인다. 본 전시는 벙커를 독재의 잔재와 전쟁의 상처로 인식하는 역사적 접근을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 동시대 예술의 언어로 벙커의 차별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관람객에게 새로운 예술 접근 경험 기회를 선보이기 위해 기획되었다.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공사 당시 벙커가 발견된 이래로 정황과 추측에 맞닿아 구축되어온 여러 가지 정책으로 인해 대중은 ‘엄폐호’와 같은 개념의 보편적인 인식을 익숙하게 여긴다. 하지만 <관객행동요령>전은 벙커의 실존적 개념에 집중하며 하나의 지하건축 유토피아로 SeMA 벙커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로부터 형성되는 벙커의 유의미성에 집중하면서 궁극적 존재론을 확립하고자 벙커를 ‘지하’의 특성에 국한하여 건축, 고고학, 문학, 환경계획학, 심리학 등의 분야가 융합된 시선으로 바라봤다. 네안데르탈인 화석과 트로이 유적의 발굴은 땅을 파는 행위를 지적 탐구의 전형으로 해석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 지하를 진리의 발견과 연결 짓는다. 또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발생 시 모든 원인과 결과를 땅 속에 묻어버리는 것은 지하가 인류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인데, 덕분에 지하 구조가 이 시대가 직면한 생태계 파괴와 환경문제의 총아로 떠올랐다. 릴레함메르(Lilehammer) 동계 올림픽 당시 요빅 아이스하키 경기장이 지하로 설계되어 건축된 사례가 그 근거다. 지하건축이 전면 등장한 것은 건설 산업의 진보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계기가 되었고 상상과 진리를 넘어 새로운 물질세계의 자원으로 해석되며 근대 의식 측면에서 정당성을 확보해 왔다. 선택 받은 자들만이 도피할 수 있는 은밀한 공간으로 읽혀지던 벙커는 이처럼 꽤나 건설적인 배경을 타고났다.
철학적으로도 벙커는 병참의 기지나 군사전쟁의 도구로 해석되지만, SeMA 벙커는 다르다. 여의도 버스환승센터에 위치한 벙커는 17년도에 이르러 문화?예술 향유의 거점이 되면서 설계 당시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이들을 지하로 끌어 내리고 있는데, 이 지점에 SeMA 벙커가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하세계 담론이 있다. 엮일 수 없는 존재와 관념을 지하건축으로 밀어 넣어 관찰자 각자의 시선을 전복시킴으로써 비판적 거리를 없애 벙커를 ‘초공간’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고립된 관람객은 다양한 작품을 마주하며 스스로의 변증법적 사고를 거쳐 각자의 지하 유토피아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전시제목 <관객행동요령>은 SeMA 벙커에서 화재 발생 시 대피와 소화의 절차를 지시하고 안내하는 ‘국민행동요령’에서 왔다. 매뉴얼화된 대피 방식을 따라야만 하는 국민과 전시의 완성을 점철해나갈 관객을 명확하게 분리해야 한다는 의지와 더불어, 제시된 전시의 좌표를 따라가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행동요령을 소개하는 전시라는 역설적 의미를 담고 있다. <관객행동요령>전은 우리의 역사와 사회를 앎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색다른 예술적 접근법을 선언한다. 이 문지방을 넘어 SeMA 벙커를 찾는 관람객 모두가 각자의 예술 언어를 확보할 기회를 가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