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예술가의 연구’ 시리즈 《미완의 식물지―이소요》, 《꽃 시계―안나 리들러》는 미술사·자연사·생물학·지리학·인공지능 등 다양한 학술 및 기술 영역을 넘나드는 독창적 방식으로 정교하게 축조된 예술가들의 연구에 기반한 창작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작가들은 연구를 단순한 창작의 보조적 요소로 다루지 않고, 긴밀히 맞물린 하나의 축으로서 연구와 창작이 함께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연구-창작의 축은, 타 분야와 예술을 연결 짓는 작업이 가져오는 또 다른 축인 예술-학술, 예술-기술의 축과 교차한다.
《미완의 식물지―이소요》는 예술과 과학 지식을 매개하고, 예술과 학술을 융합하는 창작을 지속해 온 이소요의 연구기반 예술을, <『조선식물도설 유독식물편』 , 주석>으로 선보인다. 직접 관찰과 채집을 통해 한반도 식물을 집대성하려던 도봉섭과 심학진이 남긴 『조선식물도설 유독식물편(朝鮮植物圖說 有毒植物編)』은 한반도 식물지(植物誌) 편찬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었고, 당대와 후대의 여러 연구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미완의 지식이다. 이소요는 예술가의 연구로 동참하여 이 책에 담긴 식물지식 전파와 이동, 그리고 책 밖에 실재하는 식생대 형성을 수년간 탐구해왔고, 채집한 식물과 연구자료를 보존물과 드로잉으로 가공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구현하여 시각적 주석을 덧붙인다. 이를 통해 문헌 분석과 현장 조사를 수행하며 지식의 생성과 흐름을 탐구하는 이소요의 연구기반 예술이 촘촘히 드러난다.
《꽃 시계―안나 리들러》는 기술·자연·예술이 교차하는 비판적 시각과 감각적 아름다움의 접점을 탐색하며, 인공지능 데이터 세트를 활용한 창작이라는 새로운 예술 실천으로 주목받는 안나 리들러의 연구기반 창작 세계를 조명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18세기 생물학자 칼 린네의 ‘꽃의 시계’ 개념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24시간 혹은 1년이라는 인간이 구축한 시간의 흐름을 하루 중 특정 시각에 피고 지는 꽃들의 생리적 리듬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인간 외 존재가 시간을 인식하고 유지하는 방식인 ‘비인간적 시간성’과 인간의 시계 시간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 연작은,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을 모색하며 디지털 시대의 자연성과 인간성, 감각과 인식의 의미를 재고하는 예술가이자 연구자로서 안나 리들러의 면모를 펼쳐 보인다.
지식과 시간이라는 인간이 만든 체계에 대한 두 예술가의 탐구는 식생대, 개화 리듬 등의 자연 질서에 관한 연구와 맞물리며 예술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서울시립미술관 2025년 전시 의제인 ‘행성’을 인간과 함께 이 지구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식물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관한 서로 다른 연구기반 예술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가 인간 중심의 ‘지구적 사유’에서 물러나, 지구 행성을 이루는 다양한 존재들의 공생 가능성을 상상하는 ‘행성적 감각’을 일깨우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