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2017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 졸업
2010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졸업
2005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 독어독문학과 문학사 졸업
개인전
2019 《사로잡힌 돌》, SeMA 창고, 서울
2012 《Six Fingers》, KT&G 상상마당 갤러리, 서울
주요 단체전
2019 《서재의 유령들》, SeMA 창고, 서울
《모던로즈》,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기울어진 숨》, 탈역우정국, 서울
2018 《섬과 바람의 서사》, 예술공간 이아, 제주
《번역할 수 없는 말(들)》, 의외의조합, 서울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세실극장, 서울
2017 《여덟 작품, 작가 소장》, 시청각, 서울
《가족보고서》, 경기도미술관, 안산
2016 《사적인 광장》, 우민아트센터, 청주
《복행술》, 케이크 갤러리, 서울
2014 《청춘과 잉여》, 커먼센터, 서울
2013 《러닝머신》, 백남준 아트센터, 용인
《아직 모르는 집》, 아트스페이스 풀, 서울
《다시-쓰기》, 두산 갤러리, 서울
2011 《셀 수 없는 모음》, 상상마당 갤러리, 서울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스페이스99, 서울
2010 《언어놀이》, 성곡미술관, 서울
《God save the mona lisa》, 플랜트 갤러리, 서울
기금
2019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2018 제주문화예술재단 아트리치 지원사업 선정
2012 KT&G 상상마당 시각예술자유제안 선정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사업 선정
레지던시
2019 우도창작스튜디오
2018 예술공간 이아
2017 프로젝토 아세 피랄, 아르헨티나
소장
부산현대미술관
impossiblestory.net
사로잡힌 돌
SeMA 창고
2019.6.7. - 2019.6.26.
권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나는 이 글에서 김영글의 돌 이야기에 몇 가지 유의미한 사변을 추가해보고자 한다. 김영글은 이번 전시에서 방대한 ‘돌 이미지’ 수집을 중심으로 동서고금을 가로질러 돌과 관련한 문화 · 예술사적 자취를 훑으며 사적 감상과 미술 비평을 아우르는 풍부한 서사를 구축하였다. 이 글이 여기에 더할 수 있는 역할이 남아 있다면, ‘돌’을 둘러싼 갖가지 사유와 스토리텔링1을 주도한 미술 작가 김영글과 김영글에게 사로잡힌 ‘돌’로 투영 가능한 미술(품)의 유물론적 미덕을 상기해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서 유물론적 미덕이라고 함은 단순히 물질적 조건에서의 미술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라고 가정하는 것, 미술이 아닌 특정한 주제를 지시 refer함으로서 미술이 되는 것, 미술을 제시 present하거나 기록하지 않고, 그래서 미술이 더는 현존하거나 가시적이지 않은 채, 오히려 부재하거나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미술을 말하게 되는 미술의 자기 역학적인 법칙과 유사하게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사고의 과정은 따라서 전통적인 범주에서 미술인 것과 미술이 아닌 것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변증법적인 논리 안에서 미술을 인지하게 만드는 하나의 현대 미술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상이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 미술,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방식에서 창조적인 활동의 결과나 산물이 아닌, 활동 자체가 미술인 미술 실천과 미술 생각은 어떤 면에서 삶과 일치하는 행위이자 수행적인 미술이다. 미술적 결과보다는 미술을 고민하는 과정과 고민의 주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 행위나 행위의 과정이 미술 전시장에서 나타날 때는 미술적 사고의 수단을 통해 미술을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동시대 미술가의 특권처럼 여겨진다. 흔히 말하듯 무에서 유(의 형태)를 창조하는 순수 예술 fine art이 아닌, 현실의 사물들을 건설하고 구성하는 이미지와 사유의 집합체를 통한 탐색만으로 미술이 되니 말이다.
김영글의 〈사로잡힌 돌〉전시는, 아니 김영글의 미술적 스토리텔링은 이 전시에서 멸종한 생물 우표 콜렉션으로 만든 콜라주 작업 〈Unposted Letters〉부터 시작한다. 우표는 사전에 우편 요금을 지급한 증표로서 편지를 부치기 위한 통신수단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시대, 역사, 문화, 주제에 따른 이미지 기록을 작은 종이에 담아 보관하는 일종의 ‘예술품’이다. 〈Unposted Letters〉를 구성하는 두 개의 액자에는 양쯔강 돌고래, 큰 나무늘보 여우원숭이, 테즈매니아 늑대, 검치 호랑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멸종한 동물들이 한 페이지에 모인 콜라주 이미지와 이들을 부르는 이름 목록이 담겨 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라진 생명체들이 한자리에 모인 허구의 이미지는 어떤 면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읽거나 기억하기도 힘든 흔치 않은 이름과 사라진 연도의 표기는 지구 생명에 대한 기념비로도 읽힌다. 하지만 이 사적 수집과 기억에 대한 기록물은 오히려 진지한 농담에 가까운 어조로 전시의 서문을 열어준다. 이어서 배치된 한 장의 사진은 옥빛 파도가 넘실거리는 어느 바닷가 풍경이다. 바위 끝에서 파도를 내려다본 시점을 담고 있는데, 〈우화〉라는 이 사진의 제목은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 세계가 신비로우면서 비현실적인 시점의 설정을 두고 당신을 속여보겠노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이렇게 우리는 바닷속 용왕님을 만나러 가듯 김영글이 제시하는 〈사로잡힌 돌〉이라는 허구의 세계로 진입한다.
큰 직사각형 형태의 전시장에는 김영글이 모은 각종 돌 이미지가 골판지 박스의 한 면씩에 붙어 층층이 쌓여 있다. ‘돌 탐구’라 이름 붙여진 이 이미지 집합체를 살펴보면 직사각형 전시장 한 면마다 각각 ‘얼굴들’, ‘보시기에 좋았더라’, ‘터무니와 어처구니와 짊어진 자들’, 그리고 ‘불충분한 역사’라는 네 개의 챕터로 나누어 구성됨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챕터 ‘얼굴들’은 제주도 돌하르방, 자유의 여신상,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스핑크스, 불상, 예수상, 성모마리아 상, 멕시코의 올메카 두상 등 길고 긴 인류 역사에서 기억되고, 이야기되고, 만들어지는 얼굴들 이미지 모음이다. 두 번째 챕터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르네상스 군상 회화와 동자승 석물에서 시작해서 각종 돌탑, 남근석과 여근석 등의 이미지 모음이다. 마치 ‘성인물-우화’ 제목을 연상시키는 부제는 ‘얼굴들’에서 언뜻 비친 ‘성현 hierophany’의 반대항에 둔,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의 집합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돌멩이를 쌓아 만든 돌탑을 통해 무엇인가를 염원하고 바라는 마음,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자 하는 마음처럼, 두 번째 챕터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성 profane과 속 sacred의 이중적 구조를 내심 생각해보고, 또 속을 통해 성을 다시 생각해보게도 된다. 세 번째 챕터는 ‘터무니와 어처구니와 짊어진 자들’ 이라는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터무니’와 ‘어처구니’는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주로 ‘없다’라는 동사와 합쳐져서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 허탈해짐을 표현한다. 이 단어들의 어원을 찾아보면 맷돌을 돌리는 나무막대로 된 손잡이를 ‘어처구니’라 부르고, 집이나 건축물을 세운 자리를 뜻하는 터에 관한 무늬나 흔적을 ‘터무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이는 맷돌을 돌릴 수가 없고, 터무니가 없이는 집이나 건축물이 있었던 정황을 알 길이 없으니, 있을 땐 당연하지만 없으면 말이 안 되는 이치나 논리가 바로 이 두 단어인 것이다. 그리고 없을 수 없고 당연해야만 하는 무엇을 ‘짊어진 자들’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삶 그 자체로 연결된다. 마지막 챕터 ‘불충분한 역사’에서는 돌에 새겨진 생명과 표현의 흔적이나 돌 자체로 나타나는 존재 증명의 본질을 되묻는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석기 시대 사냥을 위한 돌 연장, 돌에 새겨진 이집트 상형문자, 담벼락 그림, 아르헨티나의 동굴 암각화, 우주에서 본 지구, 인류 최초의 달 착륙까지 일련의 이미지들은 역사의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인류와 인류 존재의 신비로움을 들춰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을 지렛대 삼아, 미술 혹은 미술적 삶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주제화하는 김영글의 우화를 완성하는 건 전시장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책 〈사로잡힌 돌〉이다. 전시장에 펼쳐진 이미지와 이미지를 이어붙이며 예술 자체에 대한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징검다리는 그녀의 유려한 말재주로부터 나온다. 이쯤 되면 김영글에게 사로잡힌 게 돌인지 각종 돌을 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김영글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게 글을 쓰는 미술 작가로 알려져 왔다. 〈모나미 153 연대기〉(2010)는 저렴한 국민 볼펜 모나미 153 볼펜의 출시 이후부터 최종 단종 때까지 일생을 엮은 책으로 60-80년대 권위주의와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이미지를 축으로 ‘모나미’ 가 태어나고 살아가던 시대의 풍경이 연민과 유머의 언어로 조작 manipulate 된다. 또 다른 책 작업 〈벽〉(2011)은 벽, 나무, 새, 장마비, 커다란 괄호, 비서가 빌려온 책, 벼룩들, 황금술사, 돌멩이, 항아리, 도공, 보따리장수, 유리창, 새, 그리고 나무로 이어지며 사물, 사람, 상황을 쫓는 텍스트가 흰 종이를 채우고 또 비우는 장면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특정 서사가 중요하기보다는 말이 말을 쫓아가는 시청각적 행렬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장이 제시하는 시공간으로 훌쩍 들어가 어떤 언어유희의 고리를 타고 넘실거리게 된다. 가장 최근에 소개했던 〈해마 찾기〉(2016)는 영상 작업인데, ‘해마’로 은유되는 인류의 잊혀진 역사와 기억의 속성에 관한 단상이 이미지와 소리로 나열되는 일종의 비디오 에세이다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관을 칭하기도 하고 바다 생물을 말하기도 한다. ‘해마’의 각종 도상, 역사 기록 사진, 작가 개인의 사적인 이미지가 병치되면서, 결국 집단적인 기억으로서의 언어가 망각되는 현상을 드러낸다.
일련의 작업이 말해주듯이 작가 김영글의 세계에서는 ‘책’과 ‘글’이 주요 매개체로서 특정 서사를 구축하고 이 서사를 관통하며 우리의 관념에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제시하는 각종 이미지는 서사를 작동시키는 트리거 역할인데, 이 트리거의 역할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미지를 인식하는 우리의 고정 관념을 흔들고 이미지가 지닌 기호와 의미에 의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김영글은 그가 전하는 말과 함께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이미지를 새롭게 보게 하고, 그럼으로써 알 수 없는 서사의 세계로 나도 모르게 편입되는 철저하게 조작된 인식의 구조를 지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언뜻 구전동화처럼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김영글의 스토리텔링은 사실 ‘거짓부렁’에 불과하다. 좋은 픽션은 그 거짓말 뒤에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의 거짓 이야기를 듣고 보는 우리의 역할은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심상을 받아들이고 이미 알고 있는 이미지나 언어가 어느새 다른 기호로 작동하는 것을 새롭게 보고 인식하면 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창고’라는 임의의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골판지 박스로 만든 임시 사진 프레임 위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돌 이미지를 빼곡히 담아 공간을 둘러싼다. 그리고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같은 골판지 박스로 만든 좀 허약한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으며, 여기에서 우리는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이면서 동시에 아티스트 북 임무를 수행하는 책 〈사로잡힌 돌〉을 읽게 된다.
이 책에서는 미술품으로서 돌을 사유하는 데 직접적인 레퍼런스가 되는 박찬경, 김범, 양혜규와 같은 선배 작가들과 관련한 작업이 언급된다. 7장 ‘꿈 꾸는 돌’에서 김범의 〈꿈에 사람이 되어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 나무〉(1998) 와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2010)은 소위 미술의 ‘말장난’을 통해 화자, 감상자, 그리고 목격자가 상호 교란되는 시점의 복합성은 물론, 인류의 오만함을 꼬집는 ‘인류세 문제’ 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김영글의 주요 방법의 하나인 물체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과 말이 지시하는 바가 어긋나면서 인식 체계를 흔드는 미술적 방법의 레퍼런스라고 해석된다. 11장 ‘한 쌍의 뒷모습’에서 박찬경의 〈민학_바위맨〉(2010) 이미지는 독일 낭만주의 가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가 교차 편집되어 동서양에서 약 200여 년의 시간을 차이로 인간이 거대한 자연에 호기롭게 맞서고자 하는 희비극의 어떤 뒷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여러 예술가상이 있는데, 그중에서 이 바위맨의 사진은 자연으로의 회귀나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이념적 낭만주의자로서의 예술가를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양복을 입고 바위산을 오르며 민족이라는 관념의 증거를 찾고자 했던 이 바위맨은 복합적인 시공간과 상황에 놓여있는 ‘지역작가’로서 레퍼런스가 될 수 있겠다. 21장 ‘둥근 것들’에서 소개하는 양혜규의 〈전환하는 삼인자〉(2008)은 지구본, 구슬, 다면체 종이접기 오브제 등 둥근 형태를 한 오브제들이 차례로 순환하는 이미지의 전개를 본 김영글은 지질연대의 전환을 떠올린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다면체를 통해 ‘공간’이라는 관념적 개념이 XYZ라는 임의의 3차원 유클리드 공간으로 접수되기도 하고, 다시 불규칙한 입체물 돌멩이로 이어지기도 하는 김영글의 사적 해석과 사유의 지평으로 이어진다.
위 목록에 나는 한 작가를 더해보고자 한다. 이 작가는 ‘돌’과는 상관이 없겠으나 ‘말’과는 상관이 많다. 존 스미스 John Smith는 영국의 전위 예술가이자 실험영화가로 〈껌을 씹는 소녀 The Girl Chewing Gum〉(1976) 같은 작품에서 동부 런던의 일상을 배경으로 영화 자체의 질료적 관점으로 회귀하는 실험성을 보여준다. 16mm 필름으로 촬영된 이 작품은 영상이 기록한 장면들을 쭉 펼쳐 보이는 와중에 작가라는 존재가 우연히 드러나면서 관객의 존재가 동시에
개입되는 상황을 만든다. 단순히 말하면 일상적인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던 영상에서 어느 순간 이 필름의 촬영자(작가) 존재가 갑자기 음성으로 들어오게 된다. 영상이 전하는 이미지 서사에 집중하던 관객은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풍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상 제작 과정이나 창작의 논리를 확장하여 의미 전달의 기호로서 이미지와 단어가 가지는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의 의미가 된다. 우리가 보면서 믿게 되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 조작이라는 메시지가 작품의 전부다. 김영글의 〈사로잡힌 돌〉은 존 스미스의 영상처럼 한 장씩 넘겨 읽고 보다 보면, 마치 창세기에 대지의 뼈가 돌이라고 명시된 것만 같고, 우리가 그동안 보고 믿었던 돌에 대한 관념들이 책에 펼쳐진 돌 이미지에 새겨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한다. 우리가 그동안 돌을 보던 방식에 여러 다른 접근점을 제공하는 그의 언어는 단순한 텍스트 언어를 넘어서 언어와 인지가 새롭게 작동하는 방식까지를 아우르는 언어를 생산한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는 건 독자이면서 관객인 우리가 이 작품이 제공하는 의미의 소비자가 되어 그가 제시하는 예술 제작 과정에 자연스럽게 편입되면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우리가 응대할 수 있는 감각의 지점은 아마도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한 미술가의 조작방식과 생명력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미술을 제시하지 않고, 대신에 ‘돌’이라는 전혀 특별하지 않으면서 사실은 물질적으로 매우 본질적인 이 사물에 대한 기록을 모으고 이야기할 뿐인 김영글의 미술 생산 방식은 결국 미술에 대한 낭만적인 믿음과 시선을
전제로 한다. 보리스 그로이스 Boris Groys가 말했듯이, 기록은 대상의 존재를 역사 속에 기입하고 이 존재에 삶을 부여하며, 대상이 ‘본래’ 살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공적인 것인지와 무관하게, 그 대상에게 삶 자체를 부여해준다. 살아있는 것과 인공적인 것의 차이는 전적으로 서사적인 narrative 차이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서사를 통해 대상은 족보와 기원을 부여받고, 새로운 생명과 삶을 얻는다. 〈사로잡힌 돌〉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만들어진 인류의 보편적인 바람과 표현 양식을 따라 풍부한 사유의 여정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돌과 돌의 이미지들은, 김영글의 서사 안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해석과 기호를 가지게 되고, 의미의 확장과 전유를 이루어낸다. 앞서 말했듯 픽션이 결국엔 거짓말인 것처럼, 그의 서사 역시 애초에 밝힌 것처럼 우화, 즉 거짓이지만, 이것이 목적하는 바는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정직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치가 부여될 수 있고 부여되어야 하는 기표를 둘러싼 물음은 가치 위계나 위치 자체가 의미 있는 질서 안에서만 유효성을 갖는다. 미술의 의미, 진정성, 새로움, 해석 등 기의를 둘러싼 물음은 기표의 질서가 작동할 때만 제기될 수 있다. 김영글은 미술이라는 기표를 조작하며 미술이라는 기의를 정직하게 되묻는다, 미술을 믿을 수 있을지를 묻는 것 같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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