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홍익대학교 회화과 학사, 한국
시카고예술대학 페인팅&드로잉 전공 석사, 미국
프로젝트
2012-2013 <그림벗 프로젝트>, 창전동, 서울
2011-2012 <여기에 꽃을 심어도 될까요?>, 상수동, 창전동, 서울 / 대흥동, 대전
2011 <금천공동정원>, 독산동 일대, 서울
개인전
2013 한 쌍의 페인팅, 갤러리팩토리, 서울
2011 금천공동정원, 금천예술공장, 서울
2011 여기에 꽃을 심어도 될까요?, 선유도, 서울
단체전
2013 Social Art,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13 삼일야화:오픈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3 What’s on,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3 Residency, Now, 송원아트센터, 서울
2013 아티스트 포트폴리오 아카이브 라운지, 사비나미술관, 서울
2012 원도심을 리뷰하다,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대전
2012 동네미술, 경기도 미술관, 경기도 안산
2012 프로젝트 대전 2012: 에네르기,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및 대흥동, 대전
2012 34회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11 Ilhyun Travel Grant 2011, 일현미술관, 강원도 양양
2010 Identity·Healing·Society·Sex,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10 소통과 교감, 포스코갤러리, 포항
"쓸모 없는 아름다움의 쓸모에 대해 골몰하기
여경환(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세상에 던지는 썰렁한 농담
알.아.서.잘.그.리.자.
12년 전, 미술대학을 졸업하던 졸업전시회에서 그가 내놓은 건 오직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이미지와 문구로 이루어진 <알아서 잘 그리자(Paint at own Risk)>(2001)라는 포스터였단다. 정말 단순한 색상과 레이아웃으로 이루어진 8절 크기의 포스터였다. 그리고 그는 100호, 200호짜리 캔버스가 즐비하던 전시장과 학교 곳곳에서 “art guard”라고 쓰인 완장을 두르고 마치 검열을 하듯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를 하고, 회화과 작업실에는 ‘알아서 잘 그리자’의 문구와 포스터를 뒤섞여 붙여놓았다. 물론 아들의 졸업전시를 보기 위해 부산에서 상경한 부모님은 말할 수 없는 실망을 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 ‘포스터 작품’이 시트커팅으로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일정한 지면 위에 효과적 표현을 통해 강한 인상으로 원하는 내용을 전하는 대중전달매체”라는 포스터의 정의에 딱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시트 커팅으로 만든 포스터는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시트지 자체나 커팅 과정은 대량생산의 매커니즘에 속할지라도 커팅된 시트를 붙이는 과정은 굉장히 수작업이 요하는 일이다. 굉장히 포스터에 적합한 척 보여주지만 대중전달매체라는 포스터 고유의 목적을 살짝 비틀어버리는 전략이다. 우리는 미술대학에서 무엇을 배웠고, 도대체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가는 어디에 있으며,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으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구구절절한 자문과 오답과 회의와 번민을 거쳐 도달한 ‘알아서 잘 그리자’ 처럼, 알 듯 모를 듯 던지는 썰렁한 농담 같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허태원의 작업은 알아서 잘 그려지고 있을까. 잘 그리고 있기는커녕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회화적 스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집요하고 정교하게, 그의 아버지 말대로라면 “예술성이 없는 (혹은 없어 보이는) 그림”을 줄곧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회화에 마음이 있을까
허태원의 작업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일명 ‘꽃심기 프로젝트’로 알려진 두 개의 커뮤니티 프로젝트 <여기에 꽃을 심어도 될까요?>와 <금천공동정원>에서였다. 그가 꽃을 심게 된 계기는 일일 드라마처럼 사소했다. 매일 오가던 길가에 썩은 흙더미와 말라비틀어지는 식물들이 담긴 화분들이 너무 안쓰러워 그저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은 그 쓰레기처럼 방치된 화분들의 주인들이었다. 한때 꽃을 피웠겠지만 그 잔해만 남아있던 화분과는 달리, 한때 주인이었을 이는 여전히 화분의 주인이었다. 낯선 사람이 다가가자 버려진 것들에도 주인이 호출되었다. 그리고 그와 그들과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의논해서, 함께 꽃을 심어가는 과정 속에서 예술도 시작되었다.
허태원의 말대로라면 커뮤니티 아트가 뭔지도 모르던 그가 갑자기 커뮤니티 아트 작가로 분류되었다. 커뮤니티 아트라는 이름으로 많은 지원금이 쏟아졌고, 그 지원금을 수령한 작가들은 커뮤니티 아트 작가로 분류되는 식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갤러리나 공사립미술관뿐만 아니라 지자체(혹은 산하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유휴공간을 활용한 각종 창작 레지던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커뮤니티 아트가 요청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대안적 영역으로서 공공미술이 다양한 갈래로 발전해 1980년대 이후 뉴장르 공공미술에 이르렀고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이 커뮤니티 아트지만, 한국미술계에서 불기 시작한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지지는 좀 더 행정적인 보상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공공미술의 범주에는 공유되는 지점이다.) 뭔가 근접하기 어려운 철학적 담론이나 날카로운 사회적 발언이 담긴 위대한 예술보다는 그저 내 삶과 내가 살아가는 동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소박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공 기관에서 일반 시민들의 세금으로 특정 작가들에 대한 지원을 한 것에 대해 행정적인 당위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커뮤니티 기반의 작업들이 보다 활발하게 지원된 점은 부정할 수는 없다.
허태원에게 쏟아진 것은 꽃심기 프로젝트의 진정성에 대한 질문 세례였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허태원의 이전 작업은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의 경계에서 과연 무엇이 예술일 수 있는가를 묻는 여전히 미학적인 차원의 작업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게시판에 벽보가 뜯겨진 자국들에서 아름다운 콜라주를 발견하고(<발견된 콜라주>2005), 기둥의 틈을 메운 페인트칠과 그것에서 발견한 추상화를 병치시키기도 하며(<한 쌍의 페인팅>2005), 거리 곳곳에 지워지고 버려지다 남겨진 갖가지 페인트 흔적들(시리즈), 그리고 심지어 팔레트의 물감자국들까지(2008~현재) 수집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태원의 작업은 어떻게 하면 ‘알아서 잘 그릴 것인가’의 문제, 회화라는 매체로 구현하는 예술의 방식에 대한 질문들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미 회화라는 매체성 자체, 2차원적 평면(flatness)의 극단까지 탐색 끝에 회화의 죽음을 이끌어낸 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회화라는 예술의 무성하게 번식하는 허무 앞에 젊은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선택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세상에 악을 써대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거나, 자기에게 맞지도 않는 옷이지만 ‘대세’일 것 같아서 기회를 포착하려는 허위를 피해가면서,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모든 것을 체념하거나 의미 없는 냉소를 내뿜지도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발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예술적인 방식이란 무엇일까. 비단 허태원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하고 있을 고민이다.
무용한 아름다움, 삶에의 접속
허태원의 세 가지 작업을 좀 더 살펴보자. 첫 번째는 반짝이는 실로 카모플로쥬(camouflage/위장) 무늬를 수놓은 군복의 설치작업을 통해 군복(전쟁의 알레고리)이 가진 위장(이라는 쓸모)을 폐기시키는 반짝거리는 실이 지닌 아름다움(예술의 알레고리)의 쓸모/혹은 쓸모 없음을 담은 작업 이다. 두 번째는 허공에 스프레이(spray paint)를 이용해 그림을 뿌리는 행위(spray painting)를 통해 만들어지는 작업인 )(2005)으로 2차원의 평면성을 극복하고자 삶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그림의 즉시성 조차 허공에 뿌려지는 스프레이처럼 증발해버리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세 번째는 작가의 삶 속에서 주고 받은 선물들의 리본을 모아서 각각의 리본을 기록하고 프레이밍함으로써 한 개인의 삶에 대한 풍경이자 기억의 기록들을 편집한 (2008~현재) 작업이다.
군복이라는 설치, 스프레이를 뿌리는 행위의 퍼포먼스, 리본이라는 사물의 수집이라는 일관성을 찾기 힘든 작업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은 그 비일관성 자체와 사진이라는 아카이브로 남겨졌다는 것, 그림이라는 것의 겉과 속을 찾아 헤매는 집요함, 그리고 아름다움의 쓸모/쓸모없음에 대한 공통된 관심이었다. 한마디로 허태원의 작업은 자신의 작업을 위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치 않은 작업이었다. 예술이란 것이 갖는 무의미한 의미를 탐색했던 작가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진짜 관계들과의 접촉이었다.
2013년을 살아가야 할 예술가는 예술이 테크네의 영역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거쳐 획득한 자기지시성을 갖춘 모더니즘 예술이 계보를 세움과 동시에 무너진 것을 인지한 예술가이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뒤상적인 반미학의 흐름 역시 이미 취해진 제스처, 제도화된 아방가르드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반성 뒤에 오는 예술가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예술이 도달한 것은 사실 아름다움의 쓸모 없음이라는 아이러니에게 매혹 당한 예술가다.(어쩌면 인생의 유한함과 아름다움의 덧없음에 대한 바니타스 정물화가 그토록 많이 그려졌던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선험적 절망들로 둘러싸였던 조로한 청년에게 찾아온 진짜 절망, 운명적 사랑이나 시한부 선언처럼 피할 수 없는 진짜 희열, 진짜 고통의 순간들 말이다.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 아름다움의 쓸모와 쓸모없음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이 삶과 접속하게 되는 지점 말이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고, 관심을 나누고, 함께 정원을 만들어가던 허태원은 커뮤니티와의 실제적인 관계의 접촉으로 인해 이젠 더 이상 예술의 쓸모에 대해 골몰하는 일에서 벗어났을까. 각기 다른 삶들이 연결된 커뮤니티(공동체)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이 과연 투명한 답을 안겨 주었을까. 그는 꽃심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리는 <가화만사성>(2012) 프로젝트나 미술동호회에게 그림을 가르쳐주면서 각자의 미관을 세우는 것을 돕는 <그림벗 프로젝트>(2012~현재)을 진행하면서 나도 지속하고 있다. 허태원의 작업은 여전히 연약하고, 종잡을 수 없다. 자신의 작품이 예술의 세계를 벗어나 진짜 삶의 세계에 이르면 아무런 기능도, 그 어떤 쓸모도 없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자각하는 작가는 “두 세계 사이에서 나는 불안하고 무기력하다”고 털어놓는다.
끊임없이 원점에서 생각하기
현대미술 작가라면 응당 자신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조형적 일관성, 한 가지 주제의 몰입, 깊이 있는 확장을 추구해야 한다. 현대미술이란 이미 훤히 다 알고 있는 게임의 법칙을 누가 먼저 센스있게 참조하고, 영민하게 비틀어서, 자기만의 언어로 제시하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허태원의 작업은 그 게임의 법칙에 동참하는 대신, 그 게임의 법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변하는 세상 속에 변하지 않는 무엇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며, 쓸모 있는 것으로 이미 넘쳐 흐르는 세상 속에 쓸모 없는 것을 찾기 위한 부질없음이라는 것을 우린 모두 알고 있다. 허태원이 선택한 전략은 그저 자신이 머물러있는 회의의 언저리에 머무르며 골몰히 몰두하며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그것이 예술과 비예술 사이에서든, 예술과 삶과의 사이에서든, 알아서 잘 그려 보자고, 말이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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