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미지가 들려주는 존재의 생생한 울림

장민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언뜻 보면 작품 설치가 완료된 전시장이라기보다 작품 제작을 위한 아이디어 사진들을 붙여놓은 작업실처럼 보인다. 액자 없는 사진들이 전시장 벽면 여기저기 자유롭게 붙여져 있고, 전시장 바닥 한쪽 편에는 커다란 잎사귀 형태의 종이들이 자연스럽게 널브러졌다. 층계를 따라 올라가면 창가 옆의 햇볕이 드는 위치에 동일한 크기의 크리스털 육면체 몇 개가 나란히 놓여있고, 그 옆에 몇몇 단어들이 쓰여 있는 종이 뭉치가 덩그러니 관람객을 기다릴 뿐이다. 이 자체만 보면 친절한 전시장 구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관람객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작품 하나하나를 수수께끼 풀듯이 세심하게 집중해야 한다. 이 문제를 모두 풀게 되면 최승훈+박선민이 이렇게 불친절하게 작품들을 배치한 이유와 더불어 이들의 관심 영역이 어디인지 알게 된다. 관람객들은 사진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 작품 주제와 그 구현 방식의 문제, 그리고 미적인 것과 현대미술의 가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미술에 관한 여러 문제를 성찰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전시는 일반 전시와 달리 특별한 메시지를 추구하지 않는다. 사진이나 특정한 오브제를 통해 그 존재에 대한 미묘한 느낌을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요구할 뿐이다. 작가들은 대비되는 두 사진 이미지를 비교하거나, 크기를 확대하거나 혹은 이미지를 변형함으로써 자신들이 실제 대상에서 느낀 특별한 경험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만약 개별적인 경험의 차이로 인해 그 공유가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작품에 대한 타인들의 다양한 반응에 주목하여 자신들의 색깔을 분명히 의식하려고 하고 있다. 작가들은 특정 존재자에서 느낀 자신들의 특별한 경험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가장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들은 이 경험을 강화하기 위해 작품들의 배열 방식에 대해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예컨대 작가들은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그 자체로 고립된 경험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진 작품에서 액자를 배제했고, 대비되는 쌍을 나란히 배열함으로써 사진 이미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좌대 없이 오브제를 전시장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아둠으로써 오브제의 물성에 강하게 반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언뜻 산만하게 보이는 작품 배치는 작가들이 의도하는 바를 관람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의도하는 생생한 느낌을 제시할 목적으로 관람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시장을 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승훈+박선민은 재현의 문제, 그 중에서도 사진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긴장감을 다루고 있다. 사진은 본래 실제 대상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표명하는 매체이다. 이것은 실제 존재하는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만든다. 실제 대상을 일정 정도 확대하여 보여주는 것은 그 이미지에 대해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의 실제 대상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사진을 다양한 형태로 오려낸다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사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물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두 방식이 결합하면서 사진의 이미지와 사진 자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존재 자체에 대한 신선한 느낌과 더불어 사진 매체에 대한 독특한 물성을 동시에 경험하게 함으로써 마치 새로운 존재자를 경험하는 듯한 효과를 우리에게 준다. 한 예를 본다면, 작가들은 실제 사이프러스 잎을 촬영하고 이것을 크게 확대하여 출력한 후, 원래 잎사귀의 형태로 잘라내어 자연스럽게 배열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확대 사진 이미지가 주는 실제 사이프러스의 싱싱함과 더불어 오려진 프린트 종이의 물성이 결합되면서 실제 나뭇잎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을 준다. 실재와 이미지 사이의 긴장감은 동일한 크기로 배열된 크리스털 육면체와 그것을 찍은 사진 이미지 사이의 비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타일 바닥에 놓인 크리스털 육면체를 찍은 사진은 크리스털이 주는 촉감적인 물성을 잘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다. 이 이미지에 대한 경험은 나중에 보게 될 실제 크리스털 육면체의 경험을 세련화 시켜준다. 다시 말하면 이 경험은 실제 크리스털 육면체만을 보았을 때는 미처 의식하지 못할 수 있는, 실제 크리스털의 미묘한 느낌을 강화시켜 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작가들은 두 개의 다른 이미지의 비교를 통해 그 대상의 존재감을 강화시켜 나가는 전략을 취한다. 큰 것과 작은 것의 비교, 하나와 여러 개의 비교, 그리고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들의 비교를 통해, 사진 이미지를 특정 시각에서 바라보게끔 유도하고 있다. 재현 이미지는 그 자체의 힘뿐만 아니라 외부의 조건에 의해 존재감을 획득한다는 것을 여러 가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미학이라는 학문은 독특하고 가치 있는 경험이 따로 있고 이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최승훈+박민선도 이러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세상 속에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특별한 경험이 있고, 이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하고 있다. 작가들은 세상을 향해 민감한 더듬이를 작동시킴으로써 보통 사람이 놓치기 쉬운 특별한 경험을 찾아내어, 이것을 고정시킬 수 있는 여러 실험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들은 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차이를 섬세하게 이미지로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를 위해 실제와 이미지, 혹은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은 무엇이든지 미술이 되는 시대이다. 무엇이든지 매체로 삼을 수 있고, 어떠한 표현 방식이라도 허용된다. 오늘날 미술은 무엇을 목표로 하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목표가 제대로 구현되었는지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어떤 대상이 미술이 된다면, 그것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이고 왜 이러한 표현 방식을 사용했는지 질문할 뿐이다. 최승훈+박민선의 작품은 의도하는 것이 없다. 이들의 작품에는 주장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스토리텔링이 없다. 다만 사진 이미지이든 오브제이든 주의 깊게 작품에 집중하여,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특별한 경험을 즐기라고 요구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작품들이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여느 동시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그 표현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예리한 촉수로 세심하게 찾아낸 일상의 의미 있는 경험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간 결산이 이번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