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승 _ 미미에게 진심인 남자

이철승은 사회부적응의 성향을 띠되 강한 취향을 가진 폐쇄적인 집단에 주목한다. 그는 개체와 집단의 사고 시스템 안으로 치밀하게 파고드는 문화산업의 화려함에 중독된 채 음지로 내몰린 이들의 심리를 형상화한다.

1980년대 일본에서 폭발적으로 나타난 양상 중 하나가 바로 애니메이션, 만화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문화에 열광하는 집착적인 팬덤, ‘오타쿠’이다. 매체의 거대화와 함께 성장한 특수한 팬 층을 일컫는 이 단어는 일본과의 전면적인 교류 및 한국 문화산업의 발전과 맞물려 자주 언급되며 우리에게도 익숙한데, 실상 이에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어감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서 이러한 특성을 지닌 인물들은 타인의 유별을 경계하는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경계와 멸시의 대상이 된다.
이철승이 만들어낸 인물들은 일종의 그룹으로 묶여도 무방할 것 같아 보인다. 아마도 비슷한 외양과 행동이 주는 느낌 때문인데, 추함을 목표로 하여 만화의 캐릭터처럼 과장된 외관은 움츠러들기보다는 자신의 못남을 의식하지 않는 뻔뻔함을 보인다. 이는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의 부재일 수도 자신의 세계에 몰입한 채 현실감을 잃어버린 상태일 수도 있다. 이철승은 국적과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기반을 확보해온 일본 대중문화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세대의 감성을 지닌 한 개인으로서, 단지 대중문화가 젊은 세대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뿐 아니라 나아가 자신이 속한 세대가 공유하는 현대인의 심리 상태를 포착한다.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국제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다양한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었고 현대미술에까지 영향을 주며 아시아 특유의 포스트 팝 아트가 형성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철승은 특정 국가의 문화현상에 국한된 소재만을 다루고 있기 보다는 오타쿠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실은 만성화된 현대병의 징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청년기를 지나 성년기에 접어들며 정리되어야 할 자아가 사회의 기대, 개인의 역량 및 의지의 부조화로 인해 방황하며 의존대상으로의 대중문화와 균형이 상실된 상호작용을 맺은 결과를 자신의 인물들에 담아낸다.
이철승이 주목한 집착적 마니아 집단은 내면의 불안정한 자존감과 박탈감을 달래줄 대체물을 외부에서 찾는다. <미미에게 진심인 남자>를 보면 인물은 가슴팍에는 미미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그녀의 미니어처 피규어를 주머니에 넣고 있다. 미미가 그의 마음을 아는지 심지어 그녀가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인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미미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생생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런 그녀에게 그가 줄 것은 끝없는 진심뿐이다. <남자라면 바이크!>에서 청년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바이크는 그의 남성성을 본인에게 재확인시켜주는 상징이다. 결핍된 자아들의 일방통행의 감정상태는 현실과의 단절과 심리적인 공허를 초래하고 종국엔 내면의 균열로 치닫는다.
이철승은 완전성이 결여된 채 깨져버린 자아를 분절된 신체로 형상화한다. 내면의 균열상태를 극단으로 끌어가 외면의 파편화까지 이어가는 것이다. <웰컴투마이월드>를 보면 건담이나, 세일러복 소녀 등 다양한 기존 애니메이션 캐릭터 피규어들은 분해되어 그 몸통에 작가가 만든 인간의 머리가 덧붙여진다. <일상의 당혹>, <물아일체>, <14-B90806E> 등의 작업에는 눈이나 입 등 신체의 일부가 전체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존재하거나 혹은 기계와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존재로 변형된다. 로봇과 인간, 여성과 남성이 뒤섞이고 접붙여져 탄생한 괴기한 종은 다문화의 혼성 안에서 나타난 창조물이며 가상과 현실의 틈 안에서 표류하는 자아들이다.

작가는 과장된 모습의 인물상을 통해 그림자 속에서 자란 문화사생아에 대한 사회의 외면, 본인들의 결여를 지각하지 못하고 개의치도 않는 소외된 자들의 무모함과 당당함, 그리고 나아가 마치 못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과 닮은 자신의 애정을 모두 드러낸다. 그 결과 그들의 추(醜)에는 혐오와 역겨움보다는 다소의 연민과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기묘함, 더불어 외면하려 해도 시선을 잡아 끄는 강한 존재감이 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미미에게 진심인 남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