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라 ; 부족한 존재를 통해 실체를 보다’
최 관 호(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유리는 오늘날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매우 단단하고 아름다운 광택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필요에 따라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만들 수 있으며, 착색ㆍ성형도 비교적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료의 가공에 고온(高溫)을 필요로 하고, 용해할 때 약간의 불순물이나 기포(氣泡)가 혼입되면 그 투명성을 잃게 된다. 또한 온도의 급격한 변화나 충격에 약하고 깨지기 쉬운 결점도 있다. 유리는 이렇듯 많은 정성을 요구하며 그 물성자체가 매우 까다롭고 섬세하게 다루어지는 매체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유리는 완벽한 결과만이 그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는 대상으로서 오래전부터 고귀함과 순수함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다.

심소라는 이러한 완벽성을 추구하는 유리의 물성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천착해 왔다. 그가 처음 선보인 유리조형 작품은 2002년 첫 개인전의 'Glass House' 라는 주제 전시를 통해서이다. 부정형의 유리벽돌을 수공으로 다량 만들고 이것을 이용해 보건소라는 특정장소에 유리벽(glass wall)과 유리성(glass castle), 유리집(glass house) 등의 설치작품을 전시한바 있다. 이 전시에서는 현실 속에 이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구조물들을 개입시켜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허물고 두 세계가 결합된 제3세계의 새로운 공간 창출을 제시하려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이후 이듬해에 연이어 ‘Glass Room' 이라는 주제 전시를 열어 전시장에 구체적인 형상의 유리조형물들을 설치하여 실제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이 전시에서는 일일이 다듬어진 정형화된 유리블록을 쌓고 조립하여 테이블과 의자 등 'Glass House'에서 보여준 이상세계의 구조물과는 대조적으로 일상생활 속의 현실을 대변하는 대상물들을 제시하였다. 이 전시는 유리조형물 하나하나 그 자체의 물성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닌 그 부속물이 되는 하나의 단위적 매스(mass)가 유기적으로 조합되어 새로운 대상을 생성하고 다시 그 대상이 언제든 해체되어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심소라의 이번 전시는 과거 전시에서 보여준 유리조형 작품과는 성향이 좀 다른 확장된 개념의 작업형태를 보여준다. 어쩌면 과거 작업방식의 연장선상에서 같은 맥락의 당연한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그는 유리의 물성 연구와 함께 다양한 기법을 통해 그것의 존재 가치를 상대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근자에 그는 깨진 유리, 깍은 유리, 흠집이간 유리, 이물질이 들아간 유리, 모래알 같은 미세입자의 유리 등 본래의 정체성이 흔들려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소외된 유리파편들에 관심을 갖는다. 다시 말해 불안전한 존재 가치에 대해 그 자체로써의 온전함을 찾으려는데 주목한다.

유리라는 재료는 투명성이라는 물성적 특성과 완벽성이 요구되는 물질이다. 섬세하고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며 여기에 기다림이라는 장인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침내 순수함와 완벽이라는 찬사가 나올 때 비로소 본연의 정체성을 찾는다. 또한 유리라는 물성에 하자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불순하고 위험한 존재이며 그 가치와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심소라는 이러한 불완전한 요소에 조형예술이라는 마법을 걸어 그 자체로서의 생명력과 존재가치를 부여한다. 심소라는 불완전한 유리파편들을 자신의 예술세계로 개입시켜 그것을 길들이려한다.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그것의 본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려는 것이다.

심소라의 유리조형 작업은 크게 4가지 작업 방식으로 나뉜다. 설치(Installation), 회화(Painting), 조각(Sculpture), 공예(Craft)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표현방식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설치작품 <입자를 통해 공간을 보다>라는 명제의 이 작품은 유리가루를 와이어에 접합시켜 그 구조물을 세워 벽을 만들고 그사이로 관람객이 이동하며 미세한 유리 입자를 통해 공간을 들여다보는 설치 작품이다. 결코 투명하지도, 불투명하지도 않은 이 구조물을 통해 현실 너머 이상의 새로운 세계, 혹은 거대한 구조물의 중심을 여행하는 듯한 이질적인 공간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그의 유리회화 <크랙을 통해 심장을 보다>라는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판유리 원형을 철저한 계획 하에 의도적으로 조각을 내고 그 파편을 다시 새로운 원판 위에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형상을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유리를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그 경계면에 나타나는 선적인 요소, 즉 유리파편의 외곽 테두리 크랙 부분을 활용하여 교묘히 결합시키고 구체적인 형상을 드로잉 함으로써 회화적인 느낌을 준다. 더욱이 이작품은 여러 겹의 판유리 레이어를 구성하고 있고, 조명에 의한 크랙의 그림자가 드로잉 효과를 극대화시킴으로써 회회적 요소를 더욱 가미시키고 있다. 이 작품을 작가적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완전함에서 해체된 불완전한 파편들을 통해 그것 자체로써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의 원형 복원이 아닌 현재상태, 즉 그 자체의 온전함을 본다’라는 의미에서 작가적 개념이 성립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각작품 <유리를 깨서 조각상을 만든다>라는 이 작품은 깨진 유리 파편을 재생하여 높은 온도에서 액체화시킨 후 주물로 떠낸 조각품이다. 이작품은 완전한 입체물이 아닌 인물의 앞면은 입체로, 뒤면은 평면으로 제작된 조형물이다. 또한 설치방식이 다소 특이하다. 작품의 평면인 뒷면을 정면으로 해서 작품을 설치하고, 투명한 유리의 성질을 감안하여 조명을 뒤에서 비춰 앞으로 빛이 투과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원래 정면이었던 얼굴이 평면에서 입체화 되어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 평면에서의 입체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각 작품은 조소과 출신의 심소라에게는 유리라는 매체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기법 면에서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유리가 갖고 있는 물성에 주목하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여성의 섬세함과 고도의 집중력,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인내와 엄격한 제작 과정의 장인정신이 요구될 뿐이다. 또한 그의 조각 작품은 완벽함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제작과정에서 이물질이나 기포의 개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리를 매체로 선택하긴 하였으나 전통적이 유리공예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작가적 의지로 해석된다. 그의 작품은 하나의 유리조형물 그 자체로써 존재한다.

또 다른 조각 작품은 유리를 잘게 부수고 그것들을 용해시켜 주물을 통해 하나의 유리 고체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것을 특정 형상만을 남긴 체 외곽부분을 조각하여 조금씩 유리를 깎아 나간다. 여기에서는 전통적인 조각방식을 따르고 있다. 다만 유리는 돌과, 나무, 금속 등의 소재와 다르게 불규칙하고 비정형 형태로 깨지기 쉬운 민감한 성질을 갖고 있는 터라 여성특유의 섬세함이 그의 작업을 뒷받침 한다. 또한 이작품은 주물기법과 조각기법을 혼용하여 제작함으로써 일반 조각 작품들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반면 그의 공예작품 <접시를 벽에 걸다>라는 이 작품은 전통적인 유리공예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작품의 주제는 ‘그림을 닦아서 유리 접시로 쓰고, 유리접시를 닦아서 그림으로 걸다’라는 것이다. 즉 때에 따라 생활 공예품이 되기도 하고 벽에 걸면 유리회화 작품이 되기도 하는 양면성의 기능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마의 온도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확연하게 달라짐으로 작가의 의도적인 개입여부가 그 형태를 좌우하게 된다. 이작품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실용적인 공예작품 다른 작품들과 상대적인 차이를 보인다.

심소라는 유리조형 작업에 있어 어느 특정한 기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적절한 기법을 사용할 뿐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항상 이중성을 지향한다. 조각적이면서도 회화적이고, 회화적이면서도 조각적인, 즉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조형감각을 선보인다. 이렇듯 그가 유리 작품을 통해 장르를 넘나들며 제시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하나씩 해석해 나가는 것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일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이 오늘날 미술계가 심소라를 주목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앞으로의 그의 작업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