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제3의 눈을 통해 보다.

박이선 서울시립미술관큐레이터

권남득의 작업은 전쟁을 겪은 사물들이 그 흔적을 통해 깨어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어린시절 티비에 등장하는 이산가족상봉의 눈물어린 조우와 작가의 부모님이 겪은 (손발이 축축하게 젖을 만큼) 두려운, 아니 두렵다 못해 처참한 전쟁터의 기억들이 뇌리에 충격적으로 남았다고 한다. 막연히 전쟁은 무섭고 싫은 것, 싸움의 동기조차 이해 할 수 없는 어른들의 잔인한 전쟁이야기가 어린 작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 왔다. 사물은 그 역할을 다하는 시기가 지나면 당시 아무리 유용했더라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전쟁이 끝난 후 그럴싸한 답안을 내놓지도 못하는 세상에게 작가는 그러한 잘못된 과거를 잊지 말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마음을 담아서 잠자고 있는 전쟁의 단상들을 깨워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 이러한 바람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되는 전시장은 흡사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만나게 되는 1960년대 실제로 사용되던 카메라로 인해 실제 과거 사건과 현재의 상황, 개인적인 기억과 현실 간을 넘나들게 된다. 그 카메라는 전쟁을 기록하던 기록자의 눈 일수도, 작가의 눈을 통한 작품의 재해석일수도, 또는 개인적인 기억들을 떠올리며 한발 떨어져 보고 있는 감상자 개인의 눈일 수도 있다. 카메라 밖으로 무겁게 자리 잡은 필름은 덩어리로 표현되며 기억을 술술 풀어내기 보다는 차가운 금속성을 내포하고 날카로운 단면으로 마무리되며 슬픈 기억들을 조각낸다.
그가 사용하는 전쟁에 관한 미디어는 매우 복합적이다. 실제 카메라 뿐 아니라 프라모델, 영상장치, 고철로 만들어진 전쟁에 쓰였던 무기들...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 볼수록 전쟁에 대한 깊은 슬픔이 관람자의 마음까지 깊이 전달된다. 고철로 만들어진 미처 다 조립되지 않은 총, 그러나 뽑혀있는 콘센트를 꼽는 순간 어디로 난사될지 모를 초조함을 느끼며 총구가 향한 곳을 바라보게 된다. 그 곳에는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편지들이 수취인불명의 상태로 쌓여 장벽을 이루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을 향한 마음을 담은 절절한 사연들이 애달파 기다리는 누군가의 손에 닿지도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 의미 없어진 편지들은 장벽을 이루고도 남을 만큼 그 수가 많다. 설득력 있는 관계설정으로 인해 관람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 상황에 빠져든다. 듣고 싶어도 들리지 않는,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슴이 쓰라림을 느끼게 된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보이는 좁은 칸막이 안에 반복적으로 상영되는 영상, 어둠 속에 묻혀져가는 편지들이 부딪히는 소리 밑에 누군가의 흐느낌이 깔려 있는 것처럼 들린다. 군인병정 프라모델 뒤로 끊임없이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들을 반영하는 실시간 송출 영상은 전쟁의 아픔을 재구성한 작품이었다면 관람자는 작가의 의도대로 치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녹 쓴 고철의 구리색으로 대변되는 왼쪽 방에 비해 한결 밝은 느낌이 든다. 더 이상 쓸모없게 된 남과 북을 나누는 가시철망이 본래의 역할과는 180도 달리 얌전히 똬리를 틀고 그 몸에 꽃을 담고 있는 사진이 눈에 띈다. 비단 가시철망뿐이 아니다. 한때는 포탄을 쏘아 세상과 사람을 망가뜨리던 탱크조차 포탄대신 꽃 폭탄을 쏘아 대고 있다. 수술실에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쓰는 수술조명으로 환하게 비추며 꽃들이 한군데로 모아져 분수처럼 뿜어져 있는 상태이다. 또한 앞으로의 바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세상을 살며 상처 받은바(전쟁이라는 상황으로 대변되고 있다.)를 조금이라도 다독여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의 발현이다. 치유의 방에 오기까지 암울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면 작가는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고 다시 세상으로 발을 내어 딛기 바로 직전에 관람하게 되는 이 공간에서 사람을 짓밟는 포탄이 아닌 꽃을 피워내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어둡고 슬픈 전쟁에 관한 단상만을 찬찬히 풀어내는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작품을 훑어보면 남자아이들의 로망인 총, 오토바이, 군인병정, 카메라 등 장난감들의 집합체 인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토이스토리의 해프닝을 보는 듯하다. 어둡기 만한 전쟁을 진지한 작가의 특유의 유머(기질)로 무거운 소재를 대하는 관람자의 마음을 보듬어준다.

묵직한 고철덩어리를 이용한 작업과 어두운 과거를 끄집어내는 소재선택과 더불어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센서를 이용한 실시간 송출 아이템 등의 첨단 미디어는 그의 진지한 과거행위에 대한 성찰, 작업에 대한 진지한 면모와 더불어 보는 이에게 뜻밖의 재미까지 선사하고 있다. 또한 관계설정을 통해 이미 전시장에 있는 관람객이 작품에 상황에 동화되지만 cctv나 센서 등을 이용해 누군가가 다가와 줘야 작품이 움직이고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관람자와의 자발적 참여까지도 고려한 동선설계가 참신하다. 작가의 의도를 따르다 보면 어느새 진정한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진다. 한 때는 사람을 해치고 세상을 파괴했던, 이제는 녹 쓸고 아무 기능 할 수 없는 고철과 전쟁이라는 차갑다 못해 몸서리 처지는 소재들을 통해 작가는 감정이 녹아 들어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어 세상에 호소하고 있다. 아픔을 딛고 행복해 지라고...


권남득의 작업은 전쟁을 겪은 사물들이 그 흔적을 통해 깨어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티비에 등장하는 이산가족상봉의 눈물어린 조우와 작가의 부모님이 겪은 (손발이 축축하게 젖을 만큼) 두려운, 아니 두렵다 못해 처참한 전쟁터의 기억들이 뇌리에 충격적으로 남았고 작가는 군복무를 하다 몸을 다쳐 의병 전역을 하게 되었다. 군대를 전역하기 전 부상으로 병상에 누워 바라보던 용도 폐기된 탱크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잠자고 있는 전쟁의 단상들을 깨워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 1960년대 실제로 사용되던 카메라로 인해 실제 과거 사건과 현재의 상황, 개인적인 기억과 현실 간을 넘나들게 된다. 그 카메라는 전쟁을 기록하던 기록자의 눈 일수도, 작가의 눈을 통한 작품의 재해석일수도, 또는 개인적인 기억들을 떠올리며 한발 떨어져 보고 있는 감상자 개인의 눈일 수도 있다.
그가 사용하는 전쟁에 관한 미디어는 매우 복합적이다. 실제 카메라 뿐 아니라 프라모델, 영상장치, 고철로 만들어진 전쟁에 쓰였던 무기들...
고철로 만들어진 미처 다 조립되지 않은 총, 그러나 뽑혀있는 콘센트를 꼽는 순간 어디로 난사될지 모를 초조함.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편지들이 수취인불명의 상태로 쌓여 장벽. 한때는 포탄을 쏘아 세상과 사람을 망가뜨리던 탱크조차 포탄대신 꽃 폭탄을 쏘아 대고 있다. 사람을 짓밟는 포탄이 아닌 꽃을 피워내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