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채집
한병길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장용근 작가는 도시를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신진작가이다. 그의 작품 경향은 2004년부터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바로 “도시채집” 이란 시리즈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2003년 대구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일어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청년시절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12량의 전동차가 불에 탔고 192명이 사망하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참사였다. 작가는 그 참사를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지하철사고를 소재로 다루게 되었다. 물론 지하철 화재 참사 이전에도 1995년 10대 뉴스로 선정된 바 있으며 101명이 사망하고 건물 346채와 자동차 150대가 파손된 대구 가스폭발 사고 역시 작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건설공사 중에 도시가스배관에서 가스가 누출되어 폭발한 것으로, 사고현장은 작가가 거주한 아파트에서 불과 1㎞ 남짓 떨어진 거리였다. 기술문명이 발달하고 있는 현대에서, IT강국 대한민국에서, 대도시 대구에서, 윤리와 이성의 준수가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는 이 사회에서, 인간의 실수에 의해 어처구니없는 참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큰 사건들이 작가의 작품 활동 경향에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도시에서 성장하고 많은 것을 경험한 작가는 자연스럽게 도시에 관한 작업을 하게 되었다. 건물, 상가들에 현수막이 무질서하게 걸린 것을 보고, 작가는 처음에 “도시채집”을 하려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다보니 지하철 참사를 다룬 현수막들이 작가의 눈에 들어오게 되어, 도시의 현상을 이것저것 촬영하게 되었다〈지하철사고(2003)〉. 교통사고 현장의 도로 표기를 소재로 다룬〈로드킬〉도 이와 비슷한 방식의 작품이다. 모텔 주차장 앞에서 모텔로 출입하는 차들을 은폐시켜주는〈가리개〉를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욕망을 감추려는 장치로서의 차단막을 드러냈다. 이 작품을 촬영하는 도중에 가리개를 헤치고 차가 나와 당황해 한 적도 있고, 때로는 사진촬영을 이유로 하여 모텔 주인과 다투는 일까지 있었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된 것 같지만, 작가가 느끼기에는 시각적으로 불편한 점들이 있었다. 그의 작품 〈간판(2004)〉에서 원색적인 색재가 보는 이의 눈을 불편하게 한다.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개입되어 살기 불편한 공간으로 변질된 것이다.
작가의 작업방식은 예를 들어 간판 한 컷, 한 컷을 촬영한 뒤 포토샵에서 수십, 수백 컷의 사진을 편집해 짜맞추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꼴라주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작업은 한 장의 사진보다는 여러 장의 사진을 이용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일상적으로 찍는 사진작품과는 다르게 여러 장을 모아봤을 때 작품의 느낌이 달랐다.
동해의 일출을 멋지게 찍은 사진, 늦가을 들녘의 붉게 물든 풍경을 찍은 사진도 아름답고 의미가 있겠지만 조금 다른 느낌으로, 또 다른 사진작품의 창작을 고민하며 오랜 시간을 공들여 작업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활동이 나날이 관람객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