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 던져진 이방인의 드라마 김우임(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숲으로 둘러싸인 수영장 속에 사람이 누워있다. 박현두가 꾸준히 작업해온 첫 번째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미스테리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미스테리한 소설처럼 구체적으로 어딘지 알 수 없는 장소 속에 작가 자신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떤 사건 이후의 현장을 기록한 것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작가가 경험한 이방인으로서의 유학시절 경험을 사진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작품에는 뭔가 황량해 보이는 풍경에 놓인 바비큐 그릴위에 축 늘어져 있는 인물이 있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은 작가 자신으로, 작가가 유학생활에서 느낀 고립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작가는 자신이 퍼포먼스를 직접 행하며 다소 직접적인 어법으로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현대인들의 고립감으로 표출해왔다. 이같은 작업은 공간과 인물의 조합과 연출을 통해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첫 번째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작가자신)은 모두 무기력한 자세로 누워있거나 쓰러져있다. 낯선 상황에서 현실에 편입되지 못한 무기력함과 이방인으로서의 무기력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마치 죽음에 이를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으로 드러나며 극적인 상황을 연상시킨다.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타인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박현두의 사진 속 인물은 모두 사회에서 고립된 타자로 존재한 사람들이다. 거대한 사회시스템 속에서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누구나 고립감을 느낀다. 나쓰메 소세키가 말했듯 현대 사회는 고립된 인간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았고 문명은 우리를 고립시켜 왔다. 작가는 연출과 같은 요소의 사진적 행위를 통해 ‘고립감’을 시각화한다. 두 번째 시리즈는 시각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주변인물의 사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등장인물의 이루지 못한 꿈, 그들이 처한 답답한 현실을 듣고 그를 세트장이라는 장소와 연관시키는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더욱 연결시켜 보여주게 된다. 그럼에도 사진 상에서 인물은 매우 작게 드러나 세트장이라는 거대 공간에 압도되어있다. 세트장 역시 현실세계라기 보다는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고 연출되는 방송이라는 비현실적 세계의 일종이다. 이같은 실제와 허구,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지대 어디쯤에 위치한 방송세트에서 현실의 인물이 등장하며 이를 묘하게 대비시킨다. 출연자들이 없는 세트는 방송 중에 보았던 세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띠며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허구 같은 요소들을 병치시키되, 그것을 첫 번째 시리즈만큼 극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첫 번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극적인 요소들, 연출된 상황들 보다는 기능을 다하고 사라질 운명에 처한 거대한 세트장의 장소성과 그곳에 아주 미미한 존재로 서있는 사람이 대비되는 것이다. 또한 출연자가 사라진 빈자리와 사진 속의 평범한 인물 사이의 간극이 거대한 세트와 등장인물의 역학관계로 드러난다. 이 대비는 거대 시스템,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 아주 미약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우리 개인들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방청객들과 출연자들이 빠져나간 세트에는 빈 의자들이 가득 차 있다. 여기에 조명들은 불을 밝히고 있고, 평범한 사진 속 인물은 큰 연관관계가 있거나 무대를 장악할만한 카리스마와 존재감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실처럼 보이게 하는 속성을 가진 ‘방송국-미디어’와 좌절당하거나 고립된 사연을 가진 평볌한 인물의 대비는 뭔가 공감가는 구석이 있다. 더 현실감 있게 보여지길 원하고, 그보다 더 극적인 긴장감을 가져오기 위해 드라마적 장치를 덧붙이는 방송시스템에서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 현장은 왠지 모를 쓸쓸함이 감돈다. 욕망을 자극하며 현실로 인식한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과 오히려 좌절된 욕망을 안고 있었던 인물을 분장시키는 아이러니는 어떻게든 현실 속에 적응하며 이 땅에 발붙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의, 이같은 욕망이 다양한 사회 구조와 타인과의 관계, 자본주의 사회 등에 좌절되고 굴절되는 순간이 얽혀 만드는 하나의 드라마와 같다. 가장 최근에 선보였으며 현재 진행 중인 세 번째 연작은 더 큰 스케일의 연출로 확장된다. 암벽등반 하는 행위를 또 다른 버전의 이방인의 삶으로 풀어낸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의지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암벽을 등반하는 행위는 ‘극복’하고 ‘도전’하는 행위이다. 이들은 등반전문가로 보이기보다는 각자의 직업과 계층에 따른 일상적인 복장과 소지품을 들고 힘겹게 암벽을 등반하고 있다. 이를테면 직장인, 요구르트 판매원 등이 그들로, 인공암벽을 오르고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 볼 것은 이 암벽은 진짜 암벽이 아닌 가짜로 만들어진 인공암벽이라는 점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지대에 놓인 텅 빈 방송 세트와, 진짜 암벽이라는 현실로 나아가기 위해 연습용으로 만들어진 인공암벽이라는 비현실 세계의 등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현실과 비현실의 대비와 극복의 관계를 작가는 이처럼 방송 세트와 인공암벽과 같은 장소성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에서 찜질방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울의 강남 한복판에 랜드 마크로 자리 잡은 고층 빌딩을 오르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다른 작품에서는 두 개의 건물에서 각 한명의 회사원처럼 보이는 양복을 입은 남성이 줄에 몸을 의지한 체 위태롭게 건물을 오르고 있다. 이전 시리즈에서 소극적으로 소외되고 현실 속에 적응하지 못한 체 맴돌기만 하던 이방인으로서의 모습은 현실 속으로 들어가 극복하려는 모습, 그것도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상징하는 고층빌딩을 외줄을 타며 아찔하게 오르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 세 번째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위를 살펴보면 점차 죽음을 연상시키는 무기력한 행위에서 텅 빈 방송 시스템 속에서 타인이 되어보고자 하는 인물들, 마지막으로 암벽이나 거대한 빌딩을 등반하며 무언가 거대한 시스템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인물들로 변이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쯤에서 ‘Good bye Stranger’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이방인으로서의 존재와 작별을 고하고 싶었던 작가는 이제 적극적으로 더 거대한 현실 속에 뛰어들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최근 작업 중 한국에 체류 중인 원어민 교사들을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로 등장시키는 작업을 살펴보면 이런 이방인들을 치료하고 싶어 하는 의지도 얼핏 엿보이는 듯하다. 문제에 개입하고 싶은 작가의 의지가 또 다른 시리즈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연출방식은 극적인 감정선에서 스펙터클하며 도전적인 방법으로 이어져나간다. 점차 규모가 커지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같은 작가의 작업 방식 그 자체가 이방인으로서의 경험과 그 생경함과 불편함, 어색함을 털어버리려는 끊임없는 시도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야기, 연출, 사진의 요소를 버무리며 삶의 모순과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암초처럼 튀어나오는 돌발 상황의 연속인 인생 속에서 사회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면 금방 낙오되고 고립되어 버리는 현실을 재치 있는 드라마로 풀어내며 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