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백남준기념관 1층 전시실
2020.08.04~2020.12.31
무료
영상
기타
백남준, 쉬빙, 호 추 니엔
3점
주최 서울시립미술관, 주관 백남준 미술관, 초청 기획 서진석
강세윤 02-2124-8826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
혁신적인 기술 발전은 우리 사회와 경제, 문화를 변화시키며 인류의 진화를 이끌고 있다. 기술 발전의 압력에서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신기술 매체가 출현할 때마다 예술은 상호 영향을 주며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다. 19세기,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의 사진술, 뤼미에르(Lumiere, Louis Jean)의 영화, 존 베어드(John Baird)의 기계식 텔레비전, 최초의 컴퓨터 벨(Bell)사의 마크1(Mark1), 코닥(Kodak)사의 디지털 카메라 등 기술 발전과 함께 사진, 영화, 비디오아트, 디지털아트, 웹아트, 인터액티브아트 등 새로운 예술 장르가 열렸다. 기술 발전이 낳은 새로운 예술은 형식의 확장뿐 아니라 작품과 작가, 대중 간의 관계와 의미 혹은 정의마저 진화시켰음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였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은 테크놀로지를 가장 먼저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선구자 중 한사람이었다. 이미 60년대에 다양성(diversity), 융합성(convergence), 전지구성(global network)으로 대변되는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예견한 백남준은 인간, 자연, 기술을 하나의 합일론적 관점으로 융합시킴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동양 사상과 철학을 기반으로 한 그의 작업은 60년대 이원론적 사고가 지배했던 서구의 모더니즘의 한계를 넘어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백남준은 항상 변화하는 비결정성의 세상 만물을 합일론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예술을 우연성, 불확정성, 상보성의 속성으로 다시 융합, 확장하였고 또한 다양한 예술 장르를 비롯하여 예술과 삶, 작가와 대중 간의 경계까지 허무는 합일론적 사상을 예술로 포용했다.
백남준은 1965년 소니(Sony)사의 신제품인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portable video camera)를 사용해 비디오 작품을 제작하였고, 바로 몇 시간 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 오 고고(Café au Go Go)에서 그 비디오를 상영함으로써 최초의 비디오 아티스트가 되었다. 특히 1969년에 일본의 공학자 슈야 아베(Shuya Abe)와 함께 최초의 비디오 신세사이저인 <백-아베 신세사이저 Paik Abe Synthesizer> 1969년도에 제작한다. 이 기계는 다양한 외부 영상들을 소스로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색상과 형상을 조절할 수 있는 영상편집 기계이다. 이후 1970년 보스턴의 WGBH 방송국에서 방영된 <비디오 코뮨 Video Commune>과 1977년 뉴욕의 WNET에서 방영된 <미디어 셔틀 – 뉴욕/모스크바 Media Shuttle – New York/Moscow> 등의 영상을 제작하는데 사용하였고 이후에도 이 기계를 활용하여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많은 비디오 작품들을 제작한다.
비디오 콜라주(Video Collage)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1973년 ‘지구의 환희’라는 뜻의 <글로벌 그루브 Global Groove>를 제작한다. 28분 30초 분량으로 구성된 이 비디오 작업의 초입부에서 미국의 유명 방송 프로듀서인 러셀 코너(Russell Corner)는 “지구상에 있는 어떤 텔레비젼 방송국에라도 연결을 시킬 수가 있다면 이것은 미래의 비디오 지형을 미리 볼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맨하탄의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두꺼운 TV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해설을 한다. 이후 샬롯 무어먼(Charlotte Mooreman)의 <TV첼로> 퍼포먼스, 일본의 펩시콜라 광고, 북을 치는 나바조 인디언, 아프리카 흑인의 복싱 장면, 리처드 닉슨의 모습 등 엄청나게 많은 양의 영상 이미지들이 빠른 속도로 교차되며 과거 영상(영화, 방송)의 모든 기본 구성 요소를 허물어버린다. 이렇게 속도성 있게 콜라주된 영상들은 서로 상호 연동과 충돌을 반복하며 그 당시 관객들이 감당할 수 없는 확장적인 감응을 요구하였다.
백남준은 이 작업에서 자신이 직접 촬영한 영상 이외에도 타인이 촬영한 영상들을 활용하여 이미지 채집과 이미지 붙이기를 반복하며 콜라주(collage) 방식의 비디오 작업을 제작한다. 콜라주는 풀로 붙인다는 뜻으로 1912-13년경부터 브라크(Braque)와 피카소(Picasso) 같은 입체파 화가들이 그들의 유화 작업에 신문지나 악보 등의 대중매체 인쇄물을 구석에 붙이며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라 부르게 된 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이러한 포토 콜라주 기법은 사회 참여적 작업을 하는 다다이즘 작가들에게 매우 유용한 예술적 기법으로 활용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들에 사용된 영상 편집방식을 ‘비디오 콜라주’라 불렀다. 하지만 기존의 콜라주의 개념과는 다르게 백남준의 ‘비디오 콜라주’ 작업들은 매우 다른 차별성과 독창성을 가진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전통적 콜라주 기법이 부(副)의 이미지들이 모여 하나의 주(主)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식이라면 백남준의 비디오 콜라주 작업은 주(主)들이 모여 또 다른 확장된 주(主)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백남준은 평면성이나 입체성 안의 콜라주에서 나아가 시간성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 예술에서 새로운 ‘비디오 콜라주’의 미학을 창출한다. 그는 기존의 영상예술(영화, 방송)의 기초 구조인 프레임(frame), 샷(short), 에디팅(editing), 신(scene), 시퀀스(sequence), 내러티브(narrative), 플롯(plot) 등의 구성 요소들을 완전히 해체시켜버리며 역사적 선례와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상 콘텍스트를 만들어낸다. <글로벌 그루브 Global Groove> 작품 안에 보이는 다양한 비디오 클립들은 하나하나 나름의 의미와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 비디오 클립들은 교차 나열되고 내러티브와 플롯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나의 이야기 때론 분리된 이야기들로 전개된다. 즉 백남준의 ‘비디오 콜라주’ 영상 작업들은 내러티브 없이 콜라주된 각 신(scene)의 무작위 나열 영상이기도하고 아니기도 한 양가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때론 각각의 신(scene)이 서로 상호적 연결성을 가지며 은유적 내러티브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하면 비디오 몽타주 형식의 <글로벌 그루브 Global Groove>작업은 28분짜리의 한 작품이나 14분짜리 2편의 작품 혹은 7분짜리 4편의 작업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미국의 영화감독 브루스 코너(Bruce Conner)는 1976년 크로스로드(Crossroads)를 발표한다. 37분 러닝 타임의 35mm 실험영화인 이 작품은 미군이 비키니섬에서 수행한 핵실험을 담은 영상화면(footage)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이 작품은 700대 이상의 카메라와 500명 이상의 카메라 감독을 활용하여 미군이 촬영했던 기록 영상물들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이 영상물들을 수집하고 재편집하여 원경의 핵실험 장면을 콜라주 방식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타인의 영상물들을 재구성하여 또 다른 문맥의 작업을 창조하지만 백남준과는 다르게 매우 느린 시간성의 화면변환과 함께 내러티브를 보다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크로스로드(Crossroads)는 영화계에서 ‘파운드 푸티지’ 기법 혹은 장르를 이야기할 때 선도적인 예로 불리는 작품이다. ‘발견된 화면’이라는 뜻의 ‘파운드 푸티지’는 마치 실재하는 기록 영상을 누군가 발견해 사실을 가장하며 대중에게 공개하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이다. 필름이나 비디오 등 영상 예술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파운드 푸티지’는 ‘모큐멘터리’의 일종으로 타인에 의해 촬영된 미 편집의 영상물들을 발견, 재구성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기존의 영상들을 콜라주하여 만든 모든 영상물들을 일컫기도 한다. 즉 동시대 영화계에서 하나의 주요 장르로 자리 잡은 ‘파운드 푸티지’는 자신이 직접 촬영하지 않은 영상물들을 수집하여 콜라주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영상작품들을 모두 포용하여 지칭하고 있다.
사실 백남준의 예술 활동이 정상에 오른 80년대의 위성 비디오 시리즈 <굿모닝 미스터 오웰 Good Morning Mr. Orwell>, 1984, <바이바이 키플링 Bye Bye Kipling>, 1986, <세계와 손잡고 Hand in hand>, 1988 들은 백남준의 비디오 콜라주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이 시리즈 작업들은 전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한 한 작품으로 백남준이 직접 촬영한 영상은 거의 없다. 모든 영상은 수백 대의 다른 카메라들로부터 채집된 영상들이다. 영화감독이었던 브루스 코너(Bruce Conner)나 더글라스 고든(Douglas Gordon)이 만든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작업들은 영화적 문맥 내에서 수직, 선형적 내러티브와 직접적인 주제 전달에 치중했다면 백남준의 비디오 콜라주는 수평, 방사적 플롯과 간접적 주제 전달을 더 중시여겼다.
쉐어드 무빙이미지(Shared Moving image)
중국의 현대미술작가 쉬빙(Xu Bing)은 2017년 <잠자리의 눈 Dragonfly Eyes>을 발표한다. 이 작품에는 촬영감독이나 배우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중국 대륙전역에 있는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물들을 모아서 모호한 내러티브가 존재하는 80분짜리 영화를 제작했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하루 평균 300번 정도 감시 카메라에 찍히며 살아가고 있고 이 감시 카메라를 세상만물을 꿰뚫어 보는 ‘눈’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이 작품은 칭팅이라는 젊은 여자 주인공이 절을 떠나 세속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관찰한다. 한 남성과 사랑에 빠지고 그 남성은 그녀를 위해 위법을 저지르고 그들은 헤어지고... 이러한 내용의 스토리는 중국 전역에서 수집된 감시 카메라의 실제 영상물로만 가지고 이루어진다.
과거 필름, 비디오, 애니메이션 등 분절된 영상 장르들은 공감각, 통감각, 다감각으로 진화되고 있는 디지털 원주민(native)들의 새로운 감각체계와 함께 무빙이미지란 확장된 장르로 통합되고 있다. <잠자리의 눈 Dragonfly Eyes>은 동시대 영상작업들이 작은 이미지들이 수집되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파운드 푸티지’에서 나아가 주체성 있는 이미지들이 모여 공유되면서 또 다른 확장적 스토리를 만드는 ‘쉐어드 무빙이미지’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심지어 인간이 아닌 기계(AI)가 촬영한 영상물들도 ‘쉐어드 무빙이미지’의 주체적 영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픽션(fiction)과 논픽션(non-fiction), 실제와 허상 사이를 넘나든다.
싱가포르 작가 호 추 니엔(Ho Tzu Nyen)은 2017년 멀티채널의 영상작업 <동남아시아 비평 사전 볼륨2: G for Ghost (Writer)>를 선보였다. 이 작업은 On-Going의 과정적 영상작품으로 “동남아시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답변을 찾기 위해서 26개 알파벳에서 뽑아낸 26개의 키워드를 인터넷 바다에 띄워 동남아시아와 관련된 5천여 개가 넘는 영상을 잡아내고 이를 실시간으로 무작위 편집하는 자동 편집 알고리즘 시스템을 사용했다. 즉 이 작품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인터넷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무수히 많은 영상 제작자들과 공유하며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백남준이 이미 60년대 시도하였던 부(副)를 모아 주(主)를 만드는 것이 아닌 주를 모아 또 다른 확장적 주(主)를 만드는 ‘비디오 콜라주’의 의미와 그 쾌를 같이한다.
마무리
백남준은 전지구와 네트워크하여 자신과 타자들을 연결시켰고 테크놀로지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연결 수단이 아닌 하나의 연결 주체로까지 인식하였다. 60년대 말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그는‘ 비디오 콜라주’라는 형식과 개념을 제시하였고 이는 ‘파운드 푸티지’를 지나 21세기 디지털 시대 ‘쉐어드 무빙이미지’까지 연장되며 공유된다.
그의 작업이 이처럼 세대를 관통하며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동양의 사상과 철학을 기반으로 비디오 아트를 구현하고자 하였던 작업 세계를 들 수 있다. 서구 이원론적 사고의 한계를 벗어난 백남준은 항상 변화하는 비결정성의 세상 만물을 조화론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예술을 우연성, 불확정성, 상보성의 속성으로 수평적으로 연대하고 융합하였다. 동시대의 ‘쉐어드 무빙이미지’ 또한 이러한 속성을 기반으로 한다. ‘비디오 콜라주’와 ‘쉐어드 무빙이미지’는 비록 반세기의 시간적 간극을 가지고 있지만 그 미학적 이미지의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작가 백남준의 천재성을 상기하게 된다.(서진석)
백남준기념관은 세계적인 현대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공간입니다.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성장기를 보낸 집터에 조성된 이곳은 1960년에 지어진 단층 한옥의 원형을 보전하여 유년 시절 백남준의 세계를 그려보게 합니다. 인근 지역주민들이 운영하는 '백남준 카페'는 방문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합니다.(전경사진: ⓒ Kim Yong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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