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은
권영우 화백의 기증작품 70점과 소장작품 5점, 작가소장 1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점에서 선별하여 권영우 기증 작품전인 <권영우, 종이에 담은 삶>展을 개최한다.
권영우 화백은 1926년생으로 서울대학 미술과가 개설되고 여기에서 처음으로 수학한 우리나라 해방 후 1세대 작가들 중 한 명이다. 해방 후 1세대 작가들로는
박노수,
서세옥,
장운상, 박세원 등이 있으며, 남정 박노수 화백 또한 2005년도에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여 기증 작품전을 개최한 바 있다.
권영우 화백은 전통과 혈통의 순수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동양화단에서 동양화도 아니고 서양화도 아닌 독자적인 행보를 걸어 화단의 이단아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의 초기작품 중 <
바닷가의 환상>(1958)은 동양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초현실주의 화풍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작품은 58년 국전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종군화가로 일하면서 그렸던 <
검문소>(1950)와 전쟁의 잔해를 풍경으로 그린 <폭격이 있은 후>(1957)은 일견 평범해 보이나 시각설정이 안에서 밖으로 되어 있어 구성에 있어 독특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종이의 추상화가로 불리는 그는 1960년대 후반이나 1970년대 초반에 와서 종이를 중심 매체로 하는 추상회화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추상회화를 하는 초기부터 동양화의 전통적 화필인 먹과 붓을 버리고 화선지만을 채택해 화선지를 화판에 콜라주하는 구성적 방식의 추상화를 제작하였다. 이는 그린다는 방법에서 탈피하여 만든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화판에 발린 여러 겹의 젖은 한지 위에 칼질을 가하거나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구멍을 만드는 작품을 제작하여 작품에 질감과 입체적 느낌을 부여하였고 1980년대 중반을 지나서는 칼자국을 넣은 한지 위에 색채를 가하여 발묵을 실험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로 오면서 권영우 화백은 부채,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 낚시 바늘, 실, 패트병, 막걸리 병, 종이연, 번호판 등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버려진 사물들을 취하여 화판에 부착하고 그 위를 한지로 덮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 시기 이후 그의 작품에는 자신의 주변에서 취해진 일상적 오브제를 사용하여 삶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시선을 작품에 투영하였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소탈한 일면이 더욱 발현되며 마치 마티스가 말년에 종이로 오려붙이기 작업을 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리드미컬하게 표현했듯이 권영우 화백도 화선지를 마대화판 위에 오리거나 찢어 붙이기를 하면서 세계에 대한 그의 담백한 애정을 표현한다.
이번에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된 작품은 총 70점으로 여기에는 초기 작품 2점과 막걸리 병을 소재로 하는 설치 작품 2점이 포함되어 있다. <권영우, 종이에 담은 삶>展은 이러한 그의 뜻 깊은 기증에 대한 보답의 마음으로 기획된 전시이며 또한 이러한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 수준 높은 기증문화가 자리 잡히는데 유익한 기여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마련된 전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