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우(1926-2013)는 195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고 1957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중앙대학교 교수로 교편을 잡았으나 1978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11년간 파리 화단에서 활동하였으며, 1990년 귀국 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66년 신세계화랑(서울), 1990년 《파리 10년의 결산전》(호암갤러리, 서울), 1998년 《올해의 작가 권영우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7년 《권영우, 종이에 담은 삶》(서울 시립미술관, 서울) 등 총 22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72년 《한국현대미전》(도쿄, 일본/호놀룰루, 미국), 1975년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전》(도쿄화랑, 도쿄, 일본)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1958-1959년 제7-8회 국전 문교부 장관상, 1960년 제9회 국전 특선, 1974년 제24회 국전 초대작가상, 199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3년 제9회 허백련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국전 심사위원장,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권영우는 서울대학교에 미술과가 개설되고 처음 수학한 해방 후 제1세대에 속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50-61년 작품은 주로 주변의 소재를 토대로 그 이미지를 변형하여 표현함으로써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 시기 권영우는 일상적인 소재를 단순한 선으로 표현하고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이후 1962-77년 시기 작품은 구상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추상으로 나아가면서 종이의 물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화선지를 몇 겹씩 겹쳐 바르고 그 위에 뚫기, 밀기, 긁기, 찢기 등의 행위를 통해 전통 매체인 화선지를 사용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파리 시기인 1978-89년부터는 화면을 찢거나 뚫는 작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했으며 그 위에 먹이나 과슈를 칠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종이에 먹이나 과슈가 번지면서 드러나는 우연성에 집중했다. 1990년 이후 작품들은 앞 시기의 작업을 보다 발전시키면서 오브제를 사용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숟가락, 부채, 못 등 일상적인 오브제 위에 흰색 한지를 덮어 평면 속에 반 입체적인 화면을 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