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국내외 30대 유망 작가들로 꾸며진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작가들로만 꾸민 이유는 이들이야말로 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극적으로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유년기 시절에 고성장을 경험했고 1990년대 외국문물의 적극적인 유입을 경험했으며 2000년대 정보사회에서 의식이 내면화되었다. 해외 유학 및 여행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글로벌 감각을 소유한 세대이자 예술이 사회에 마땅히 헌납해야 할 의무와 상업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는 세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모인 24명의 한국 작가들은 글로벌 감각을 유지하되 언제나 한국적 미술의 특성을 발현시키려는 노력을 간과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즉 자기가 처한 환경과 사회적 정황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풀려고 하는 작가들이다. 따라서 자기 인생 백년 꿈의 근원인 이들의 예술은 우리의 사회의 자화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백년몽원’이란 한 개인의 생애기간인 100년과 꿈과 이상에 대한 한국적 토속어인 ‘몽원(夢源, 몽유도원도에서 파생)’이 함께 만나 완성된 합성어이다. 동시에 지나간 서구의 100년과 한국의 100년을 반성하자는 의미와 다가올 미래의 100년의 비전을 제시해보자는 뉘앙스를 지니는 말로써 김기라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고르카 모하메드는 지난 100년의 모더니즘 회화를 반성적으로 사유하는 작가이며,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강한 반발을 지니는 스페인 화가이다. 윱 오버툼 역시 영미 위주의 현재 미술 분위기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제시하는 화가이며, 윌 볼튼 역시 영국의 역사의 흥망성쇠를 음악적 긴장감으로 묘사하는 시각적 음악가이다. 요 오카다는 ‘불타는 집(화택, 火宅)’이라는 불교적 가르침을 회화에 반영함으로써 동양적 가치관을 전면에 내세운다. 독일 작가 발두어 부르비츠는 인간사를 원숭이의 역사와 동일시하는 희화화의 방법으로 그간의 독일 문명사에 대한 비판의 시론을 제공한다. 롭 제임슨 역시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소외된 비주류로서의 자신의 실존에 대해 끈질기게 고찰하는 캐나다의 신예작가이다.
강승희의 병풍 그림은 철저한 한국적 사유이며 권순관 역시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의 패러독스를 사진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박은영은 한국의 도시문명의 기괴함에 대해 설치미술로 표현하며 안두진은 한국적 색채로 정치적 권력을 표현하거나 세상의 비밀을 표현한다. 오윤석 역시 서구미술에서는 보기 드문 주술적 세계를 탐험하는 뜻 깊은 작가이다. 유비호 역시 한국적 후기 자본주의의 정황에 대해 극적으로 묘사하는 미디어 작가이다. 유승호는 한글 글자를 모아 산수화의 실루엣을 연출하는 화법으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원호는 인류의 지식의 담론에 대해 비판적 사유를 개진한다. 이창훈은 우리 시대의 욕망에 대해 독특한 영상을 제시해준다. 장종완은 종교가 말하는 유토피아의 허무성에 대해 꼬집으며 장재록은 산업주의 문명에 대해 해부한다. 정재욱은 깨지기 쉬운 석고로 공간의 환영을 구축하면서 인간사의 허무함을 말한다. 차동훈은 구글과 유튜브로 상징되는 현대 정보사회의 가능과 한계를 기발한 독자성으로 타진하며 한경우 역시 임의로 설치된 가상의 대상으로부터 실시간 카메라를 이용해 회화적 영상의 아름다움을 추출해내는 마법을 보여준다.
이번 백년몽원은 따라서 ‘저항적 비평주의’를 지향하는 작가들을 엄선했으며 보수적 상업주의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상업이 모든 가치를 주도하는 시대에 작가주의나 작가의 의식이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알리려는 시론(試論)이다. 또한 서울이라는 공간이 다가올 미래에 1940년대 파리나 1960년대 뉴욕, 1990년대 런던, 2000년대 라이프치히처럼 미술의 담론의 장이 되길 기원하는 전시이다.
부대행사
관람포인트
진정한 글로벌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 의식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진정한 글로벌리즘이란 자본이 예술 문화 등을 독식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된 주체들이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며 경험한 감수성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얻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모인 작가들은 자기가 처한 환경과 철저하게 교화하면서 독창적 자기 예술을 창출했다. 모두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