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미술관 개관 그리고 첫 전시 <한국현대작가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이 남현동에 위치한 구 벨기에 영사관을 리모델링하여 남서울미술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구 벨기에 영사관(국가사적 254호, 1977년 지정)은 대한제국(1897~1910) 주재 벨기에 영사관 건물로 이중화의『경성기략(京城記略)』에 따르면 벨기에의 전권위원(全權委員) 레온 방카르(Leon Vincart)가 1902년 회현동에 부지를 마련, 영사관 건축을 착수하였다고 한다.
영사관 건물의 설계는 일본인 고다마(小玉)가 맡고 시공은 일본시공회사 인 호쿠리쿠토목공사(北陸土木公社)가 맡아 1903년에 착공, 1905년에 준공하였다.
1919년 벨기에영사관이 충무로로 이전하면서 이 건물은 일본 요코하마(橫濱)생명보험회사의 사옥으로 쓰이다가 다시 일본 해군성(海軍省) 무관부 관저로 이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해군헌병대로 사용되다가 1970년에 상업은행에 불하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도심재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그 자리에 고층건물을 짓기로 함에 따라 1981년 11월부터 약 9개월에 걸쳐 현재의 장소인 남현동으로 이전·복원되었다.
당시 근대 건축의 이전·복원은 국내 최초의 일로 기술적 어려움이 따랐으나 문화재관리국 전문위원들의 고증과 자문을 비롯하여 각 부분을 모사한 모형들을 활용하여 구 벨기에 대사관은 원형 그대로 재현될 수 있었다.
이전·복원 후에 한동안 상업은행 사료관으로 사용되었는데 이후 은행이 합병되면서 현재는 우리은행의 소유가 되었다.
구 벨기에 영사관은 한동안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지 않다가 우리은행 측이 미술관으로의 활용을 제안하면서 서울시 문화과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그 타당성을 검토하여 이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 구 벨기에 영사관은 경희궁 미술관에 이어 서울시립미술관의 또 하나의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명칭은 공모를 통해 서울의 남쪽에 위치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의미의 ‘남서울미술관’으로 결정되었다.
구 벨기에 영사관은 국가사적이므로 최소한의 공사만이 가능했기에 본래 있던 방들을 그대로 살려 1층에는 5개의 전시실을, 2층에는 6개의 전시실을 만들었다. 본관이 널찍한 전시공간을 자랑한다면 남서울미술관은 아기자기한 전시공간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정원 중앙에서 바라본 구 벨기에 영사관은 돌출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몸채 좌우로는 정면보다 물러선 곳에 로지아(loggia)를 두었다. 현관 및 1층 로지아의 기둥은 투스칸 양식(Tuscan order)이고 2층 로지아는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이다. 전체적으로 화강암과
붉은 벽돌을 적절히 사용, 단아한 고전주의 양식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구 벨기에 영사관은 기존의 양식건물을 성공적으로 이전·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고전주의적 의장 수법이 우수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이처럼 사료적인 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미술관이라는 문화공간으로 선보이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남서울미술관 개관을 기념하는 첫 전시 <한국현대작가초대전>은 그간 미술계에서 뚜렷한 자기 세계를 구축해 온 원로 및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전시부문은 한국화, 양화, 조각 세 부문으로 총 출품작품은 101점인데, 각각은 초대 작가들의 대표적인 작품에 속한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은 아름답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은 가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들여 보존해온 건축물과 수많은 시간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일구어진 작품들의 첫 만남은 그 의미가 깊다. 잠시 잊혀졌던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첫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잠시 한 여름 무더위에서 벗어나 사색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첫 전시를 시작으로 남서울미술관이 이 지역에 탄탄히 뿌리 내려 지역 주민들을 비롯하여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 누구나 예술의 향기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빠른 시간 내에 결실을 맺어 미술관을 오픈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아름다운 문화공간을 제공해주신 우리은행 측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