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21일까지 온라인,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합니다.
음성 안내
작품 설명
<탑의 그림자>는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인기작품 가운데 하나인 <수영장>의 구조를 발전시킨 것으로 석가탑의 또 다른 이름인 ‘무영탑’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신작입니다. 무영탑은 말 그대로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는 의미입니다. 설화에서 석공 아사달은 석가탑 건설에 동원되어 아내 아사녀를 떠나게 되고, 탑이 완성되면 연못에 탑 그림자가 비칠 것이라 믿고 기다리던 아내는, 끝내 그림자가 생기지 않자 그리움에 못 이겨 연못으로 몸을 던집니다. 그림자라는 반영 이미지는 빛과 반영하는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곧 사라질 이미지입니다. 때문에 그림자는 반영하는 대상의 실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지요. 그럼에도 그림자가 탑의 완성의 증거라 믿고 기다리다 끝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목숨을 끊은 석공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반영된 이미지, 우리의 시선이 투영되어 드러난 세계를 온전한 실재라 믿어버리곤 합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이야기 속의 반영 이미지를 실제 물리적 공간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이러한 우리의 불완전한 인식의 투영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동시에 전시장 2층에서 수면을 내려보았을 때와 작품 안에서 수면을 올려다볼 때 관람객이 경험하게 되는 시선의 교차를 통해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일렁이는 물결 아래의 사람들은 마치 넘어갈 수 없었던 경계를 넘어선 것 같은 묘한 해방감과 함께 물속에 갇힌 듯한 두려움, 그리고 수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른 관람객들의 시선을 느끼며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일행과 함께 전시를 보러 오신 관람객께서는 각각 작품 안에서, 또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작품을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이처럼 수면을 기준으로 상하 대칭을 이룬 두 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탑의 그림자>에서는 무엇이 실재고 환영인지, 무엇이 주체고 객체인지 경계가 무의미해지며, 대상과 그림자 그 어느 것에도 우선 순위 없이 모든 게 동등한 가치로 존재합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보스 사이즈 나우 가 명확히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레안드로 에를리치에게 더욱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2019년이 <수영장> 작품을 선보인 지 20주년이 되는 해로서, 기존의 수영장 작품을 새롭게 발전시킨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