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2014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포스트 디플롬 수료, 프랑스
2013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졸업, 프랑스
개인전
2018 《정신적 태도》, 갤러리조선, 서울
2017 《소셜 픽션》,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갤러리, 안산
2016 《Night's Monologue》, 갤러리 파리 오리종, 파리
2015 《Monopoly》,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파리
2014 《Mise en scene》, 갤러리 유럽, 파리
2인전
2017 《Travaux publics》, 갤러리 크루스 파리, 파리
단체전
2018 《밤을 잊은 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8 《흑백의 시간》, 소다미술관, 화성
2018 《Beautiful Bridge 3》, 시테 데 자르, 파리
2017 《괄호 안에 제시하다》,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7 《Revez! #2》, 콜렉시옹 랑베르, 아비뇽
2017 《경기아트프리즘2017》, 경기도미술관, 안산
2017 《표류하는 무의식》,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6 《Asia now》, 립 파빌리온, 파리
2016 《Micro/Salon》, 르 벵두, 니스
2016 《Drawing room 016》, 라 파나세, 몽펠리에
2016 《샤를페로에게 현대미술을 묻다》, 피노키오뮤지엄 도도갤러리, 파주
2016 《CRAC 15eme Biennale d'Arts Actuels de Champigny Sur Marne》, 살 장모흘레, 샴피니 슈흐 마른
2016 《100 Dessins》, 국경 없는 예술 공간, 파리
2016 《La nouvelle chose》, 국경 없는 예술 공간, 파리
2015 《ca ira mieux demain》, 갤러리 ALB, 파리
2015 《아름다운 다리2》,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14 《40×30》, 갤러리 ALB, 파리
2014 《Possibles d'un monde fragmente》, 팔레 데 보자르, 파리
2014 《Butterfly from the kaleidoscope》, 펠리니 갤러리, 베를린
2013 《Prix Art School》, 59리볼리, 파리
2013 《Hasard d'ensemble》, 아노네 현대미술그룹, 아노네
2012 《Poissy Talents》, 포아시 예술센터, 포아시
2012 《Prix de Dessin Pierre David-Weill》, 아카데미 데 보자르, 파리
2012 《Chic Dessin》, 아뜰리에 리실리유, 파리
2011 《Parcours d’artistes》, 오 파세렐, 퐁토콩보
2011 《Safety glasses required in this area》, 국경 없는 예술 공간, 파리
2010 《Interstices》, 르 필 루즈, 루베
프로젝트
2017 《조각모음》, 경기창작센터 아트프로젝트, 안산
수상
2014 정헌메세나 청년작가상
2013 프리 아트스쿨 뎃셍 부문 3등 수상, 프랑스
기금 및 레지던시
2018-9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18 2018 SeMA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2017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외부전시 선정작가, 프랑스
2017 소마드로잉센터 아카이브 등록
2017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
2015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정기전시 선정작가, 프랑스
작품소장
2017 경기도미술관
2014 정헌재단
물건을 닮은 인간, 인간을 닮은 물건
김시습 (큐레이터)
기초적이고 단순한 몇 가지 형태의 다양한 변주와 반복. 갤러리 조선에서 열린 허우중의 개인전 《정신적 태도》전에 대한 첫인상이다. 전시작은 모두 흰색 유화 물감으로 칠해진 바탕 위에 서너 가지 모양의 연필선 모듈을 여러 형태로 변주하여 구성된 그림이다. 화면의 크기와 모양 또한 변주된다. 200호 캔버스에 그려진 커다란 그림이 있는가 하면, 15호 남짓의 그림을 여러 개 모아 하나의 작품과 같이 한 벽면을 채우기도 한다.
《정신적 태도》에 전시된 그림들은 외관상 그의 기존 작품들과 절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로 프랑스 유학시절에 제작한 그의 기존 회화는 대비가 강한 흑백의 만화적 형식과 지난 두 보수정권 아래에 나타난 사회적 이슈와의 연관성을 특징으로 한다. (사회적 이슈가 강하게 두드러지기 보다는 은유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작업 환경의 변화 때문일까? 아니면 정권교체 때문일까?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이와 같은 두 가지 특징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대신 수수께끼와도 같은 추상적인 형상들만이 남았다.
변주와 반복이라는 주제와 《정신적 태도》라는 제목이 일견 작품 제작의 과정을 일종의 수행으로 여기면서 관객에게 명상의 태도를 요청했던 단색화 화가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그림들에는 이와 정반대되는 태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 글의 서두에 제시하는 나의 결론이다. 누군가에게는 미완성으로 여겨질지도 모를 그림 속 경쾌한 선들의 조합을 보고 무거운 명상의 태도를 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이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림 속 이 단순한 모듈들은 작가의 내면보다는 그의 기존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사물의 형태로부터 차용된 것이다. 그리하여 방점은 화가나 관객보다는 오히려 그림과 재료 쪽에 찍혀 있다.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그가 말하는 “정신적 태도”란 화가나 관객의 것이기보다는 그림의 것인 것 같다.
기존 작품과 이번 전시작의 연속성을 검토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결론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위에서 언급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 인간의 물질성에 대한 탐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단색화와 정반대되는 태도란 이런 것이다. 그림을 통한 인간 의식의 고양이 아닌 그 반대, 그러니까 인간의 그림과 같음을 허우중의 작품은 폭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가설과 함께, 이번 전시의 작품을 그의 기존작과 함께 나란히 세워 그 표면을 조심스레 더듬어보려 한다.
물건을 닮은 인간
허우중의 그림에서는 물건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가 흔히 비인간적이라 부르는 사람이거나 비인간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구화되거나 물상화(物象化)되었으며, 어떤 때는 반인륜적인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사람으로 그려져 있지만, 물건들의 질서를 따르는 사람인 것이다. 일례로 그의 그림 속에 꽤나 잦은 빈도로 등장하는 사람 중에 하얀 복면을 쓴 사람들이 있다. KKK단을 연상시키는 이들은 그림 속에서 주로 반인륜적인 행위를 지시하거나 거기에 가담하고 있는 주체로 그려진다. <No Suicide>(2013)에서 이들은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그들이 빠져있는 우물 주위로 둑을 쌓고 있다. <Invisible>(2013)에는 한손에 패스트푸드점의 음료를 든 채 전쟁을 지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인륜적 폭력의 주체가 아니라면 허우중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들은 대부분 얼굴이 생략되거나 지워진 채로 그려진다. <Blind>(2013)와 같은 그의 초기작 드로잉에 자주 나타나는 말풍선으로 얼굴이 가려진 획일화된 군중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Invisible>(2015)에서처럼 불은 껐지만 눈앞의 인명을 구하지 못한 듯 망연자실한 포즈의 소방관이 등장하는가하면, <Frogman>(2014)에는 물속에 잠겨 아무도 없는 건물 속을 헤매듯 수영하는 잠수부들의 모습이 나타나 세월호 참사의 민간 잠수사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보다 근작들에서 사람은 차라리 물건이 되어버렸다. <사람>(2016)에서 흙을 한 삽 뜬 채 서 있는 것은 바닥의 받침에 발목이 파묻혀 있는 것으로 보아 제목과 달리 진짜 사람이 아닌 사람의 모습을 한 플라스틱 모형인 듯하다. <포템킨 풍경>(2016)에는 합판이나 의자 등 목재 가공물들이 등장하지만, 이것을 만든 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그 대신에 톱질을 하고 있는 사람 모양의 조각만이 나타난다. <Plaster>(2016)나 <조각모음>(2017) 등에 나타나는 토르소 조각상들은 20세기 초반 비슷한 대상들에 매료되었던 모더니스트들을 떠오르게 한다.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잃어버린 채 그저 한갓된 돌이 되어 있는 도시 속의 고대 조각상들로부터 그들은 아름다움과 함께 때때로 그들이 속해 있는 도시의 미래를 보기도 했다.
인간이 비인간적인 역설적인 세계 속에서 물건들은 제 나름의 세계를 이루어 존재한다. 그는 최근 <관념의 탑>(2017) 연작에서 물건들이 연출하는 어떤 부조리한 세계를 회화를 통해 묘사했던 적이 있다. 구, 삼각뿔 등의 입체도형을 비롯하여, 널빤지, 돌, 나뭇가지, 솔방울 등의 사물들이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모습으로 위태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균형이라 말했지만, 사실 불균형이라는 말이 우리의 눈에 비친 사태를 보다 잘 설명하는 것 같다. 구조물의 버팀목이 되는 맨 아래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대부분 둥근 형태의 사물이다. 설령 매우 놀라운 우연에 의해 이 구조물이 스러지지 않고 한 순간 서게 되었다 할지라도, 이때의 균형은 ‘찰나적’ 균형에 불과하다. 이 구조물의 균형은 오직 화면 안에서만, 즉 그림 속 물건의 세계 내부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정신적 태도》전은 이처럼 이전 작품들을 통해 허우중이 구축해 놓은 물건들의 세계 위에서 벌어진다. 여기서 그는 그 세계 속으로 한층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속 형상은 위에서 언급한 <관념의 탑> 연작을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작품들은 흰색의 유화 물감과 서너 가지 모양의 선, 그러니까 반원 모양의 곡선과 직선, 그리고 그것을 변형한 몇 가지 단순한 모양의 선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그의 이전 작품이 구축하고 있는 형상을 흉내 낸다. 기존의 작업에 나오는 것이 물건들의 부조리한 탑이었다면, 이번 전시에 세워진 것은 회화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선을 쌓아 만든 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닮은 물건
그림의 기초적인 단위를 구조화한 허우중의 그림과 함께 ‘그림’이라는 말의 의미에 관해 생각한다. 넓은 의미에서 이 말은 미적 생산물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과정을 지칭하기도 한다.1 요즘말로 ‘큰 그림’이 이면의 숨겨진 계획이나 계략을 뜻하는 것이 가까운 사례일 것이다. ‘get the picture’라는 영어 표현이 전모를 이해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 또한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2 이런 점에서 물건들의 탑이나 회화적 모듈의 탑과 같이 가장 물질적인 대상과 그 질서를 그린 그림에 대한 제목이 각각 ‘관념의 탑’과 ‘정신적 태도’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정신적인 것의 물질성을 강조하는 허우중의 그림은 이미지가 실재를 초과하는 오늘날과 같은 ‘세계상(世界像)의 시대’에 인간성과 관련하여 하나의 진일보한 입장을 제시한다. 세계가 아예 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현대의 본질을 특징짓는다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유명한 명제는 인터넷과 SNS의 등장 이후에 나날이 근거를 더해가며 진리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3 이러한 시대에 소외를 느끼는 자들은 잃어버린 인간성의 복원과 관련하여 너무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이는 대안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가장 징후적인 것이다. 이를 대신하여 하이데거가 제시한 해법은 시(詩)였다. 다소 추상적이긴 해도 철학적 길잡이로선 충분하다. 이미지를 대리보충하는 인간성 찾기를 멈추고 이미지의 세계 내부에서 현재의 폐쇄회로를 개방할 새로운 틀을 개발하라.
전시작들 사이에서 나는 한 가지 흥미로운 형상을 발견한다. 얼굴의 형상 말이다. <처음과 끝>의 중앙 좌측에 있는 형상처럼 익살스런 만화 캐릭터의 모습이 눈에 띄는가하면, <권태의 필요> 속 형상은 눈이 부은 피에로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의 저울과 너의 저울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에는 큐비즘이나 미래주의 회화가 재현했을 법한 반측면의 얼굴상이 보이는 듯하다. 허우중이 그린 인간이 점점 더 물건에 가까워지는 것과 반대로 물건의 세계에 그가 한 걸음 들어가자 그 물건들이 인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무엇에 관한 우화일까? 여기에 나는 한 가지 주석을 달아보기로 한다. 이것을 물건들의 세계 속에 침잠한 인간이 꾸게 된 백일몽의 형상이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허우중은 회화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의 영역을 찾는 대신에 현재의 회화 내부에 깊숙이 침투하여 그것이 제공하는 공상에 내기를 건다.
1Douglas Crimp, “Pictures,” October, 8, (1979), 75.
2W. J. 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미지의 삶과 사랑』, 김전유경 옮김 (서울: 그린비, 2010), 5쪽.
3마르틴 하이데거, 『세계상의 시대』, 최상욱 옮김 (서울: 서광사, 1995), 43-44쪽.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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