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파리 1대학(팡테옹 소르본) 조형예술과 석사 졸업
린츠 예술대학 실험 조형예술과 포스트 디플롬
스트라스부르 고등 장식 미술학교 순수미술과 학사·석사 졸업
개인전
2019 《모음_Moeum》, SeMA 창고, 서울
2018 《자라나는 드로잉》, 더 빌리지 프로젝트, 서울
2017 《탑, 씨, 꽃꽂이》,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4 《Scene #. Sudong》, 청주 상당구 대성로 122번길 47, 청주
협업 및 2인전
2019 《디어 드로잉》, 드로잉룸, 서울
2018 《미세한 기울임: 씨-음》 ×권병준, 청주시립 대청호미술관, 청주
주요 단체전
2018 《장래희망》, 파운드윌 아트 소사이어티, 서울
2017 《걷는 미래》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이질동구(??同?)―하이난 단저우 국제비엔날레》, 동파 국제비엔날레 전시관, 단저우, 중국
2016 《아시아 아트 하이웨이》,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봉봉 브릿지》, 봉봉 방앗간 & 콘크리트 플랫폼, 강릉
《도큐먼트 10년의 흔적, 10년의 미래》,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Hybrid_새로운 시각》,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정원 유람기》,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청주
기금
2019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2018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전시지원 프로그램
레지던시
2020-21 인천아트플랫폼
2016-17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www.jiwonyang.org
모음
SeMA 창고
2019.7.5. - 2019.7.24.
안소연
미술비평가
마침, 천장에서 숭고한 빛이 쏟아져 내리면서 네 벽이 가두고 있는 무명의 형상들을 부둥켜안으며 어떤 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온다. ‘여기를 봐, 여기 뭔가 있어!’ 나는 빛에 닿지 않으려고, 그렇게 함으로써 빛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무거운 몸을 가장자리에 붙여 주위를 걷는다. 걸으면서 몸으로부터 조금 가벼워진 시선은, 빛이 머무르는 데를 천천히 훑으며 허공에 덮인 땅을 관찰한다. 그 감각이 제 몸을 잊을 때쯤 무명의 형상들이 하나둘 시야 안에 등장하면, 거기에는, 어떤 흐름을 직조하는 시간이 생기고 공간이 생겨난다. 경험은, 형상을 때마침 시공에 존재하도록 하는 이 (공백의) 경험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 경험에서 자각되는 우연한 발견에 의해, 무명의 형상들은 찰나의 사건을 일으키며 이미지로 각인된다. 빛 때문이다. 빛이 이끈 (몸으로부터 벗어난 몸으로부터의) 어떤 시선 때문이다. 빛과 시선에 맞닿은 형상들은, 말 혹은 글 혹은 그림 혹은 조각 혹은 사물의 육체로 건져 올려지곤 한다. 그건, 밤의 어둠에 닿아 다시 사라지게 될 환영일지도 모른다. 예기치 못한 어떤 망상들이, 이토록 공허한 (빛의) 공간에 두꺼운 그림자와 시선의 흔적을 남긴다. 양지원의 《모음 MOEUM 》(2019)에는, 이러한 경험의 가능성들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검푸른 시트지로 넓게 구획해 놓은 임의의 바닥 면에 페인트와 분필, 오일 파스텔을 이용하여 어떤 형상을 그려놓았다. 방금, 내가 선택한 이 “그리다”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쓰다”와 “지우다”를 암묵적으로 포괄한다. 대부분 파란색 선으로 된 이 형상들은 그림과 문자 혹은 어떤 (의도된) 표시와 (의도치 않은) 흔적 사이를 오가며 지속적인 시각적 환기를 유도한다. 게다가 어디서 나타났고 또 어떻게 사라질지 모를 (죽은) 나무토막들이 바닥에 낮게 엎드려 서성이는 게 아닌가. 허공, 허공에는 빛과 소리가 서로 회전하면서 어느 순간 소멸되었다가 다시 증폭되어 공간의 경계를 끊임없이 조정한다. 이는, 처음부터 공허와 혼돈으로 끝없이 회귀하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이 시각적 “궁핍함의 형태”는 어떤 철학자가 말했던 ‘잠재력’의 경험을 일깨운다. 말하자면, 끝내 “아무것도 되지 않을”, 다만, 분명히 그 자체인 스스로의 존재를 (누군가에게) 맞닥뜨리게 할 잠재력에 대한 거다. 아감벤 (Giorgio Agamben)이 설명한 이 ‘잠재력’에 대해 혹은 그것의 형태에 대해 조심스럽게 상상하면서, 나는 수없이 환영을 일으키는 이 시공(時空)을 더듬거리며 다시 살핀다. 조금 더 상상의 힘을 부추기자. 감각이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감각을 공간 (안)의 잠재된 형태와 대면시키는 《모음》은, 그간의 그의 작업에 내재되어 있던 언어에 대한 경험을 다른 (다수의) 사건에 끌어들인다. 특히 《씨-음 C-Eum》(2018, 청주시립 대청호미술관)에 이은 이번 전시는, 계속되는 쓰기(문자)와 그리기(이미지)의 경험적 관계를 탐색한다. 그것에 대한 (사유의) 추상적 경험을 (몸의) 감각적 경험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그는 공간, 즉 “비어있는 장소”를 하나의 지지체로 삼는다. 사건이 일어나는, 경험에 대한 매개물인 셈이다. 예컨대, 《모음》과 《씨-음》에서 전시공간으로서의 비어있는 장소는 어떤 몸들의 방문을 내내 기다린다. 그 공간과 어떤 몸의 (필연적인 우연한) 만남이 일으키게 될 경험은,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사건들에서 벗어난 예측할 수 없는 감각적 예외들을 탄생시킨다. 몸의 감각은, 걷고 관찰하며 경험을 끌어모아 잠재되어 있는 것들을 현전케 한다.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를 자각하며, 새로운 존재의 방식을 생성시킨다. 오래전, 〈작업을 위한 행동〉(2016)에서 양지원은 “walk”, “observe”, “collect”라는 세 개의 단어를 세로로 나란히 배열해 손으로 써놓은 단조로운 텍스트를 하나 완성했다. 그때 나는 그것에 대해 “작가 스스로가 자신에게 알리는 일종의 선언문” 같음을 말한 적이 있는데, 이제 그 말들이 공간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있는 내게 되돌아와 내 몸에서 어떤 가능성을 살피게 한다. 이제, 그 텍스트 속에 배열된 검은색의 단어들은 비언어적 경험을 수행하는 익명의 몸에 대해 조망한다.
허공을 가로질러 빛과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물질에 더욱 가까운 파란색의 형상들이 흩어져 있다. 물질의 질감과 촉감과 무게와 같은 것들이 다만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듯, 무엇을 나타내기보다는 당장 그것이 무엇인가에 몰입하게 한다. 쓰기와 그리기 혹은 어떤 흔적들이 나타내는 형상에 대한 지각에 앞서, 파란색 물질이 놓인 자리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허공 속에 있는 존재 자체에 대한 인식은, 무엇을 “위함”도 무언가를 “향함”도 쉽게 함의하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제 형태를 다수의 감각에 각인시킨다. 아감벤의 사유에 따라, 아무 근거 없는 이 공허함 속에서 수많은 몸 중의 나는 어떠한 (언어적) 상실들과 대면할 수 있을까. 재현될 수 없는 잠재된 것들로만 정의되는 그런 형상들 말이다. 양지원은, 그것을 쓰기-그리기 혹은 문자-이미지로 병치 시켜 그사이의 경계를 골똘히 경험케 하는 ‘잠재력’에 대해 환기시킨다. 어쩌면 그사이의 누락된 자리에 존재하는 형상들에 일시적인 빛과 시선을 나란히 투과 시켜 누가 됐든 그것의 예외적인 “얼굴”을 보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움라우트 오(O), 나는 빛이 반쯤 지나가는 곳에서 희미하게 지워진 그것을 본 것 같다. 하필이면 허공을 향한 스피커에서 때마침 쏟아져 나온 불완전한 소리 중 하나와 겹쳐서, 나는 O의 환영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오-오- 누군가의 몸통에서 만들어진 모음(vowel)과 혹은 휘파람이나 파열음 같은 것들이 한데 섞여 내는 소리가, 다시 누군가에게 이미지들의 연쇄와 언어의 이름을 순서 없이 감지하게 함으로써 혼돈스러운 잔해 속에서 가능한 존재들을 경험토록 이끈다. O의 형상은 《씨-음》에서부터 하나의 문자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이미지를 충족시키는 (이중의) 존재로 작업에 등장했다. 빈 공간에 반복되어 그려진 O의 형상과 그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인식의 가능성을 끝없이 변환시키는 소리의 자극들은, 일제히 새로운 방문자의 감각에 의해 매개되고 경험되는 (다뤄질 수 없었던) 예외적인 존재들의 가능성을 갱신시킨다. 《모음》에서, 양지원은 일련의 행위의 과정 중간에 초대받은 방문자의 몸이 (예외적으로) 경험하게 될 감각적인 차원을 적극적으로 다룬다. 빛과 시선, 목소리와 언어, 쓰기와 그리기, 그리고 나와 너의 연결을 예외의 공간에서 성취하기 위해 시도한다.
그리고, 어디서 봤을까. 커다란 동그라미, 속이 비어 있는 원형의 윤곽선, 실체를 알 수 없는 추상적인 형태가 함의하는 공백을…. 〈JWY.D.001.19〉(2019)와 〈JWY.D.002.19〉(2019)가 드러내는 인상은, 오래 전, 수집한 돌멩이의 윤곽을 흰 벽에 탑처럼 쌓아올려 그렸던 그것을 다시 내게 떠올려주었다. 하나 더, 그냥 돌 하나를 본떠서 그린 드로잉을 크게 확대해 다수의 윤곽선으로 벽에 옮겨 놓은 그 형태가 생각났다. 양지원의 《탑, 씨, 꽃꽂이 Tower, Seed, Floral arrangement》(2017)에서, 일련의 윤곽선은 특정한 사물의 형태와 그 공백 안에 잠재되어 있는 추상적인 의미의 가능성을 살피며 경험적 존재에 대한 사유를 한껏 심화시켰다. 씨앗-돌-모음으로 이어져온 “형태”에 대한 사유는 그것의 명확한 “재현”을 벗어나 그 내부에 잠재된 예외적 존재로서의 “나타남”에 깊이 닿아있다. 그는, 갑자기 빛이 들어와 어떤 것을 영원한 것으로 명명하려는 현실의 충동을 도리어 공허와 혼돈 속에 몰아넣고 그것이 조명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촉구한다. 빛이 있으라, 또 밤이 되리니.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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