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2019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대학원 졸업
2009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졸업
개인전
2019 남한 앙상블 , SeMA 창고, 서울
2018 형태는 형태를 따른다 , 스튜디오148, 서울
주요 단체전
2019 《번외편: A-side-B》, 금천예술공장, 서울
2018 《잠시, 신 이었던 것들-제12회 태화강 국제설치미술제》, 태화강국가정원, 울산
2017 《Just DO IT Yourself》, 갤러리175, 서울
《00의 기억》, 신한 갤러리 역삼, 서울
2016 《을지로 휘트니스 센터》, 세운청계상가, 서울
《What is art》,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고양
2015 《2015 풀이 선다》, 아트스페이스 풀, 서울
2014 《팔로우-미(八路友美)》, 북서울미술관, 서울
《Heavy Habit》,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전시실, 서울
《우문현답》, 갤러리 쿤스트독, 서울
2013 《누락된 기록》, 복합문화공간 에무, 서울
《2013 창원아시아미술제》, 성산아트홀, 창원
기금
2020 페리지갤러리 페리지 팀프로젝트
2019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2017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
레지던시
2019 금천예술공장
2016-17 고양레지던시
2013-14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소장
서울시립미술관
남한 앙상블
SeMA 창고
2019.8.2. - 2019.8.21.
권혁규
독립 큐레이터
사물의 인지는 그것을 주변과 분리시키면서, 그러니까 대상의 존재 범위를 명확히 구분 지으며 이뤄지곤 한다. 그리고 그 분리는 사물의 기능과 개념을 몇 가지로 한정하고 고정시키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사물을 특정 양식으로 규정하는 이 응시는 오히려 대상의 존재론적 본질을 분명히 밝히고 더 넓은 세계와의 관계를 열어놓는 행위로 독해되기도 한다. 사물은 독립된 객체로 인지되더라도 결코 특정 시간과 공간, 사회 문화의 현재적 삶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세계와의 관계 안에서 언제나 다른 기능과 개념을 가설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기능과 개념, 약속된 언어와 사고체계로 연결 지어지지 않는 존재의 잠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리와 관리를 통한 대상의 인지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폐쇄성을 내재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사물의 인지는 기존의 범례와 양식을 인정함과 동시에 재구성하는 역행을 실천하며 진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 듯 보인다. 나비의 날개는 꼭 날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조개껍질은 그 안의 내용물과 아무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기존 체계에서 결여된 외양과 기능을 끊임없이 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대상은 늘 그대로 존재할지라도.
최태훈의 작업은 위에 설명한 두 세계, 즉 주변 대상을 분리와 관리의 문법으로 인지하기와 대상을 기존 맥락에서 탈각시켜 가소적 대상으로 설정하기를 횡단하며 진행된다. 작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온전히 기능하지 않는 청소도구들, 임의로 재구성된 DIY 가구의 유닛들, 색칠공부 연습장처럼 전유된 명화 등은 마치 공중에 튕겨져 회전하며 앞뒷면을 스쳐 보이는 동전처럼 특정 대상의 상반된 인지를 동시에 드러낸다. 사물의 본질을 고찰하며 익숙한 맥락을 얼핏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혹은 그렇게 보이기로 의도된 조각물로 재구성하며 ‘어디서 본 듯하지만 처음 보는 것 (작가노트 중)’과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최태훈의 작업은 하나의 대상으로부터 촉발 가능한 서로 다른 인지의 간극을 순환하는 이동성을 가설하며 양식화된 사물의 인지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미술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먼저 최근 진행된 두 개의 개인전 〈형태는 형태를 따른다〉(2018)와 〈남한 앙상블〉(2019)은 동시대 환경 속에서 마치 데이터처럼 무한 증식하는 사물을 경유해 제품과 작품, 일상과 예술의 관계를, 또 그 분리의 습성을 고찰해보려는 시도로 이해해볼 수 있다. 루이스 설리번이 모더니즘 건축의 지배적 법칙으로 설명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를 변주한 전시 제목, 〈형태는 형태를 따른다〉에서 유추할 수 있듯, 전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DIY 가구들의 개별 유닛들을 기능이 아닌 형태로만 인지하려 한다. 작가는 오직 외양만이 대상의 본질을 발견하는 곳이라는 다소 황당한 주장과 함께 유닛의 형태를 미적 대상으로 간주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모두 제목에 ‘구성’이란 단어를 포함시키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보편적이고 통일된 불변의 방법론을 고안하려 한 몬드리안의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구조를 천명하려 한 이전 미술의 시도와 원하는 대로 만들라는 DIY 개념을 작업에 합류시키며 새로운 창조도 참조도 아닌, 또 온전한 제품도 작품도 아닌 그 모든 것이 성립 불가능한 보편적이고 단조로운 조각 작품을 제시한다. 심지어 전시에 포함된 대부분의 구성물들은 결코 형상가치로만 감상될 수 없는 익숙한 사물들로 전시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구성 방식과 과정을 추리하는 일종의 게임을 실행하기도 한다. 그렇게 전시의 작품들은 스스로 지시하는 모든 것에서 의도적으로 미끄러지며 본래 자리를 잃어버린 양식의 집합체, 구성물처럼 존재한다.
〈형태는 형태를 따른다〉가 동시대 사물의 위상을 DIY 가구와 미술의 관계로 변주한다면 〈남한 앙상블〉은 그 위상의 허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전시의 맥락에서
이야기한다. 전시는 시뮬레이션된 공간에 가상으로 가구를 배치해볼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이케아 플레이스’ 의 (비)경험을 실제 세계로 끌어온다. 작가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자신만의 쇼룸을 만들고 이런저런 가구들을 옮겨온다. 그리고 온라인이 제공하는 정보만으로 쇼룸 속 가구의 레플리카를 만들어 현대미술처럼 전시한다. 비현재의 복제품이 삼차원의 현실 세계 - 전시장에 가지런히 모셔지는 것이다. 심지어 작가는 전시 전에 관객에게 공개되지는 않는 전시의 미니어처를 만들며 실제 전시와 작품을 복제품의 복제로 만들어 버린다. 전시는 얼핏 칼 안드레와 로버트 모리스의 미니멀리즘 조각과 추상표현주의 페인팅을 지시하는 듯하지만, 또 클래스 올댄버그가 〈Bedroom Ensemble〉에서 드러낸 기능주의의 환영과 남북한의 사회정치적 현안을 떠올리게 하지만 결국에는 조각도 그림도 가구도 아닌 현실을 대신하는 증강현실에서 삐져나온 가짜 조각이자 가짜 경험의 찰나적 복제품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형태는 형태를 따른다〉처럼 쉽게 유추 가능한 사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비켜가는 〈남한 앙상블〉은 사물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전시의 맥락으로 재구성하며 동시대 인지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동시대 사물의 속성을 전유해 사회적 현상을 포개놓는 시도는 최태훈의 이전 작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끝없는 아침〉(2015-2016)은 아침형 인간을 권장하는 자기개발서 속 지침들을 참고로 제작된 주거환경과 그것을 경험하는 어느 개인의 아침을 보여준다. 영상은 아침 6시가 되면 자비 없이 접히는 침대와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를 비춘다. 억지로 몸을 일으킨 주인공은 알람시계 과녁에 총을 쏘고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 액자를 뒤집어 침대 위에 가시방석처럼 올려놓는다. 다시 눕지 못하는 환경에서 주인공은 정확한 시간에 정해진 양의 물을 마시고 양치질을 하며 허락된 패턴으로 스트레칭을 한다. 억지 아침형 인간과 주변 장치 환경을 한 장면에 플레이하며 작위적이고 모순적인 장치와 자기개발서 속 지시사항들을 병치시키는 것이다. 〈Multitasking Device〉(2013-2014)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건축, 공예,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 가능한 형식처럼 여겨지는 ― 역시 몬드리안의 구성시리즈를 떠올리는 ― 색과 구조의 멀티테스킹 장치가 거실에 놓여있다. 그리고 작가의 아버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LP 판의 음악을 들으며 이 멀티태스킹 장치로 운동을
하고 신문을 읽는다. 그 밖에도 업무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는 등 비효율적인 가짜 멀티태스킹을 이어간다. 미술의 레퍼런스, 디자인의 기능성, 조각의 비/기념비성 등 복수의 (multi) 과업(task)을 경유한 작업은 결국 그 어떤 것도 훌륭히 지원하지 못함을 선택하며 실패를 연출한다. 이 밖에도 갖가지 청소도구로 만든, 타틀린의 〈제3 인터내셔널 기념비〉를 상기시키는 〈All in one-indoor cleaners〉(2012), 앤디워홀의 〈Do It Yourself〉를 전유해 신화가 된 예술과 일상이 된 예술을 함께 스케치하는 〈손 쉬운 그림〉(2016) 등을 통해 최태훈의 작업이 줄곧 일상과 예술, 작품과 제품, 미술과 장치, 조형성과 기능성, 개인의 욕구와 사회적 요구 사이를 오가며 사물을 맥락과 조건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해왔음을 알 수 있다.
사물에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전제되어 있다. 마치 우리 언어가 일주일은 7일이고 월요일 다음은 화요일이라고, 또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그 아래라고 자연스럽게 정리해버리는 것처럼 사물의 체계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현재를 인식하게 한다. 작가는 이 같은 사물의 일반적 인지를 미술의 형식, 사회적 현상 등과 뒤섞으며 원래의 궤도에서 벗어난 장난 같은 논리를 창안한다. 그 과정에서 사물의 기능은 시각성의 개념으로 대체되고 미술은 그 자체로 사물의 비기능성을 지시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또 사물의 변주는 관련 현상의 본질을 지시하기도 한다. 최태훈의 작업은 사물을 구성하는 기존 맥락의 훼손을 구조화하며 그 사물과 관계 맺고 있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미술의 면면을 감지한다. 그리고 이는 불상용의 관계를 맺는 앞뒷면이 하나의 존재를 만드는 동전처럼 사물의 메커니즘을 인정하며 재구성하는 역설을 내재한다. 그렇게 사물에 덧씌워진 강박을 포착하고 그 강박의 한계와 가능성, 인정과 부정, 안주와 탈주 사이를 왕래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어디서 본 듯하지만 처음 보는, 새롭지 않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미술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
(대표번호)
02–2124–8800
, 02–120
(직원찾기) 직원 및 연락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