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규 (1981)
개인전
2017 《낮보다 환한》, 스페이스캔, 서울
2016 《수영장 끝에 대서양》, 경기도미술관, 안산
2012 《작계:알레고리》, 아트라운지디방, 서울
2010 《풍경의구호》, 갤러리킹, 서울
2008 《Level 1》, 갤러리소소, 파주
주요 단체전
2017 《생생화화 : something new》,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고양
2017 《드로잉라이프》, 구리아트홀, 구리
2017 《도시관찰일지》, 시흥시 찾아가는 이동미술관, 시흥
2016 《오늘도 좋은 하루》, 굿모닝하우스, 수원
2016 《보물섬》,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6 《깜빡거리는 새틀라이트》,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6 《감각적 현실》, 서울시청 시민청, 서울
2016 《철든게이머》, 봉봉방앗간&콘크리트플렛폼, 강릉
2016 《듀얼채널픽션》, 갤러리175, 서울
2016 《낭만적나침반》,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5 《무심》, 소마미술관, 서울
2015 《표정과 몸짓》, 소마미술관, 서울
2015 《작은재주들》, 가나아트스페이스, 서울
2015 《Art Wall Space》, 가나아트스페이스, 서울
2014 《Side, Hidden Track》, 갤러리소소, 파주
2014 《여덟개의 제안서》, 갤러리소소, 파주
2014 《오늘의 살롱》, 커먼센터, 서울
2012 《밥은 먹고 다니냐?》, 대안공간 도어, 서울
2011 《인천양조주식회사》, 스페이스빔, 인천
2010 《40×40×40×40》, 솜씨(Cottonseed), 서울
2010 《사사로운 일상》, 갤러리온, 서울
2010 《문지방》, ART+LOUNGE DIBANG 디방, 서울
2009 《안전제일》, 대안공간 충정각, 서울
2009 《DMZ》, 한데우물창작촌, 수원
2009 《인물 징후》, 갤러리킹, 서울
2008 《서울드로잉클럽전》, 아트카페사다리, 서울
2008 《THE chART》,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8 《희망구멍론》, 갤러리175, 서울
2008 《Everyday Is Not the Same》, 갤러리175, 서울
2008 《Everyday Is Not the Same》, 비즈아트, 상해, 중국
2007 《Into Drawing 3》, 소마미술관, 서울
2007 《경계없는 지평》, 한국예술종합학교 K-Art’s 갤러리, 서울
2007 《야릇한환대》, 일민미술관, 서울
2007 《전시장 그리고 전시장》, GM 대우자동차 종로 영업소, 서울
2007 《견완애》, Cafe VW, 서울
2007 《드로잉 오픈-엔드》, 한국예술종합학교 K-Art’s 갤러리, 서울
2007 《드로잉 변주》, 갤러리175, 서울
2006 《Save The Earth with Sakun》, Sakun Shop, 서울
2005 《Please, Save the Earth》, 미술원 B104 갤러리, 서울
2004 《문자와 형상》, 갤러리 꽃, 서울
프로젝트
2017 《Drawing XXX》, 비속어매입공고, 인천아트플렛폼, 인천
2013 《I LOVE SEOUL》, 창작드로잉,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07 《태평4별마을버스》, 태평동88번 마을버스, 성남문화재단, 성남
기금 및 선정
2017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
2017 경기문화재단 경기유망작가(신진) 창작지원 선정
2016 경기문화재단 신진작가 작품 공모 선정
2016 경기도미술관-경기창작센터 퀀텀점프 공모 선정
200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신진예술가 부분 선정
2007 소마드로잉센터 <Into Drawing> 공모 선정
2006 소마드로잉센터 아카이브 등록 선정
레지던시
2018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
2016-17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
Song Mingyu (1981)
Solo Exhibitions
2017 Brighter than the Day, Space Can, Seoul
2016 The Atlantic at the edge of a swimming pool, Gyeonggi Meseum of Modern Art, Ansan
2012 Operation Plan:Allegory, Art+Lounge Dibang, Seoul
2010 Slogan of Scene, Gallery King, Seoul
2008 Level 1, Gallery SoSo, Paju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17 Something New, Goyang Aramnuri Arts Center, Goyang
2017 Drawing Life, Guri Arts Hall, Guri
2017 City Observation Log, The Traveling Museum of Siheung ART CANBUS, Siheung
2016 Good Morning, Have A Nice Day!, Good Morning House, Suwon
2016 Treasure Island, Gyeonggi Creation Center, Ansan
2016 Blinking satellite, Gyeonggi Creation Center, Ansan
2016 Sensible Reality, Seoul Citizens Hall, Seoul
2016 Mature gamer, Bonbonbangagan & Alternative space concrete platform, Gangneung
2016 Dual channel fiction, Gallery 175, Seoul
2016 Romantic Compass, Gyeonggi Creation Center, Ansan
2015 SOMA DRAWING_Mindful Mindless, SOMA Museum, Seoul
2015 Expressions and Gestures, SOMA Museum, Seoul
2015 Small talent, Gana Art Space, Seoul
2015 Art Wall Space, Gana Art Space, Seoul
2014 Side, Hidden Track, Gallery SoSo, Paju
2014 Eight of the Proposal, Gallery SoSo, Paju
2014 Today’s Salon, Common Center, Seoul
2012 Do you eat rice?, Open Space Door, Seoul
2011 inchon brewing company, Spacebeam, Incheon
2010 40×40×40×40, Cottonseed, Seoul
2010 Personal life, Galleryon, Seoul
2010 Threshold, ART+LOUNGE DIBANG, Seoul
2009 Safety First, CHUNG GEONG GAK, Seoul
2009 DMZ, Handea Well gallery, Suwon
2009 Potrait Sign, Gallery King, Seoul
2008 Seoul Drawing Club, Art Cafe Sadari, Seoul
2008 THE chART, Gana Art Center, Seoul
2008 The Hole Theory of Hope, Gallery 175, Seoul
2008 Everyday Is Not the Same, Gallery 175, Seoul
2008 Everyday Is Not the Same, Bizart, Shanghai
2007 Into Drawing 3, SOMA Museum, Seoul
2007 Borderless Horizon, Gallery at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 Seoul
2007 Odd Welcome, Ilmin Museum of Art, Seoul
2007 Same the Another Place, GM Daewoo Automobile Shop, Seoul
2007 Looking the Cherished Thing, Cafe VW, Seoul
2007 Drawing Open-Ends, Gallery at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 Seoul
2007 Drawing Variation, Gallery 175, Seoul
2006 SAVE THE EARTH with SAKUN, SAKUN Gallery Shop, Seoul
2005 Please Save the Earth, 105 Gallery, Seoul
2004 Letter and Image, Gallery Cott, Seoul
Projects
2017 Drawing XXX, Slang Market Project, Incheon Art Platform, Incheon
2013 I LOVE SEOUL, Buk Seoul Museum of Art, Seoul
2007 Taepyungdong 88.Bus Project, Sungnam Culture Foundation, Sungnam
Awards & Fellowship
2017 Emerging Artists & Curators Supporting Program, Seoul Museum of Art, Seoul
2017 Grant for Emerging Artists, Gyeonggi Cultural Foundation, Suwon
2016 Grant for Emerging Artists,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Ansan
2016 Selected Artist for Quantumjump, Gyeonggi Creation Center, Ansan
2008 Grant for Emerging Artists, Arts Council Korea, Seoul
2007 Selected Artist for Into Drawing, SOMA Drawing Center, Seoul
2006 Archive Registration, SOMA Drawing Center, Seoul
Residencies
2018 MMCA Artists of Residency Goyang, Goyang
2016 Gyeonggi Creation Center, Ansan
컴퓨터 그래픽의 야금술적 리듬과 생명서판으로서의 매체감각, 송민규 작가
김남수 (안무비평)
#1. “포스가 함께 하기를. May the Force be with you."
#2. “비유기적 생명이라는 경탄할 만한 관념은 야금술의 발명품이자 직관이다. 어떠한 유기적 표현도 포함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생명으로 충만해 있다.” (빌헬름 보링거)
재즈의 임프로비제이션
송민규 작가와의 대화 속에서 즐거운 것은 영화 <스타워즈>를 둘러싼 오타쿠적 이야기이다. 프리퀄 시리즈까지 잔뜩 나와서 창궐하는 바람에 이 SF 시리즈는 기억 속에서 난맥을 이루지만, 송민규 작가는 정연하게 이 복잡한 크로놀로지를 질서 잡는다. 영웅신화적 내러티브에서 그리스 비극까지 이어지는 이 미국식 신화에는 기묘하게도 송민규 작가의 작업과 최근 변화를 이해하는 단초가 있다. 가령, 시작은 이런 것이다. 드로이드 군단이 거대한 우주선에서 대지로 착착 내려앉는 끝없는 장면이라든가 클론 군단이 드로이드 군단보다는 훨씬 더 무질서하지만 역시나 질서정연하게 군진을 이루는 장면이 파시즘적 숨막힘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 같은 ‘파레노’(편집증자)들에게는 이 숨막히는 장면의 매력은 그야말로 숨막히는 주이상스이다. 지난해까지 송민규 작가와의 대화는 이 파시즘 미학의 우주적 스펙터클을 확인하는 선상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 그는 ‘스키조’(분열증자)로 변신해버렸다. 어찌된 일인가.
“반복이 지겨워졌어요, 이제는 그냥 노래하고 싶어요.” 그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강렬하게 자신의 충동이 째지한 리듬과 예측할 수 없는 마주침으로 점철되는 쪽으로 흘러가기를 염원하는 듯했다. ‘스키조’는 언제나 길 없는 평평한 대지 위에 두 갈래 길을 만들고, 그 두 갈래 길을 모두 평행하게 가보는 사람이다. 송민규 작가는 마치 드로이드 군단과 클론 군단이 오버랩으로 같은 우주선에서 타투인 행성에 착착 하차하듯이, 또는 다른 시간대의 그 군단들이 시간적 혼선[out of joint]을 빚듯이 그냥 ‘중첩’되는 것이다. 그는 이 ‘중첩’을 자신의 수많은 판넬로 구성된 회화매체 위에 이미지를 담는 물체이자 회화적 이미지로, 이 두 측면 사이의 상호작용과 긴장감을 엮는다. ‘중첩’이란 본래 ‘파레노’에게는 원치 않았던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별들의 운행질서,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적 x축, y축, 좌표계 그리고 착실하게 물리법칙을 지키는 뉴턴의 우주에서 이미지는 각각 섞이지 않고 반짝이는 별들의 신비로운 빛처럼 독자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반복이 지겨워졌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자, 우리는 송민규 작가가 영화 <스타워즈>에서 플라톤적 미학 세계로부터 이탈하는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를 어떻게 반죽하고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기 이전에 그의 실존에 일어난 변화를 먼저 물끄러미 들여다보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월드는 어찌 보면 매우 현란한 이미지 범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가의 말에 조금은 귀를 기울여야 알게 되는” 이미지의 비의가 충만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된 그노시스의 서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노시스는 시각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보다 깊은 시선에서 구성되는 비의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송민규 작가의 고뇌와 충동은 이 그노시스의 초월 감각을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로 접근하고 실험하면서 그 음악적 공명과 고차원적 놀이가 어떻게 출현할 수 있는가 하는 지점에서 맺혀 있는 듯싶다. 우리는 이 작가가 시각매체를 통해 시각적 저 너머까지 섬광처럼 유도되는 비유기적 생명성의 징후를 함께 느껴보아야 한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숭고미학’이며, 시각예술적 조건을 새롭게 툭툭 건드리는 타입의 ‘숭고미학’이다. 조금은 놀 줄 아는 ‘숭고미학’이라고 할까.
중첩의 의미
영화 <스타워즈>의 어느 시리즈에서 로봇 장군이 등장한다. “미래, 제다이가 없는 미래를 얻으려는 것이다! The future. A future where there are no Jedi!”(그리버스 장군) 이 장군은 “충성심도 신념도 없는, 프로그램만 있는 군대일 뿐이지. 그렇게 힘만 과시해서 대체 뭘 얻겠다는 건가?”라는 제다이 기사 오비완의 비아냥에 위의 대사를 읊는다. 이 격조와 품위를 가진 장군이 결투를 위해 망토를 벗었을 때, 나타나는 것은 4개의 팔이었다. 각각 4개의 광선검을 휘두르며 오비완을 위협하는데, 놀라운 것은 1개의 광선검을 가진 오비완이 차례차례 그 팔들을 잘라나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리버스 장군이 모차르트라면, 오비완은 슈톡하우젠이다.
그리버스 장군이 휘두르는 광선검(들)의 궤적은 고전음악의 라이트모티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송민규 작가가 말하는 ‘반복’의 전형적 곡선, 예측가능한 곡선에 해당할 것이다. 송민규 작가의 작업 속에서 이 광선검(들)의 궤적은 1) 괘[掛] 2) 궤[軌] 라는 두 개의 한자와 관련지어지는 듯싶다. 이 작가는 ‘괘도’라는 것과 ‘궤도’라는 것을 의식하는 그래픽 이미지의 점, 선, 면, 유체에 방점을 찍는다. 거기에는 우주의 가장 순수한 생명 에너지인 ‘포스’[force]가 있을까. 본래 <스타워즈>의 기원에서 유래되는 ‘포스’는 동아시아의 기[氣]라고 할 수 있다. 이 기[氣]를 로봇은 쇤베르크 이전의 규칙적인 하모니 타입으로서 광선검의 그래픽 이미지를 무수히 그려대는가 하면, 제다이의 기사는 그 이후의 무조성적인 음들의 나열처럼 ‘이탈한 궤도’로서 광선검의 그래픽 이미지를 뿌려댄다고 볼 수 있다. 송민규 작가는 자신의 작품 <어둠의 속도>에서 이 광선검(들)이 두 개의 타입으로 ‘중첩’되는 시지각적이며 음향적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계주의적 명랑성과 생동감이 있는가 하면, 주관성의 무한 가능성을 꿈꾸는 일탈이 번뜩이는 우발성과 경이로움도 있다. 무리수적인 분할로서의 반점들과 곡선들 그리고 아나모픽한 형상들. 이제 나는 이 광선검(들)이 결투하는 밤하늘의 격전장, 시인 블레이크가 느닷없이 읊었던 선과 악이 부딪히는 공중장소를 연상하지 않고는 송민규 작가의 작품에 깃든 ‘포스’ 즉 기[氣]를 그 생명성의 징후 그대로 느껴보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중첩’되고 있는 이미지의 정체는 정확히 무엇인가. 송민규 작가는 이 이미지들의 구체적 출처를 환히 밝히는 것, 하이데거적 밝힘을 거부하기도 하고 동시에 약간은 힌트를 던져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 보여짐과 보여지지 않음이라는 이중적 작동에는 필시 컴퓨터 그래픽이 테크놀로지 기반으로부터 시각예술의 장으로 전격적 유출을 감행할 때, 반드시 필요한 그 무엇이 있으리라. 가령, 밝히지 않는 방식으로 밝히거나 이미 밝히기도 했으나 왠지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은 아닌 것. 밝힌다는 것이 곧 숨긴다는 의미도 되는 것. 이런 작동에서 아이러니는 고유한 속성이며, 송민규 작가가 자신이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마치 ‘이동 대장장이 Nomadic Blacksmith’의 일로 여기듯 그 작업은 ‘중첩’을 통해서 금속성의 쨍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3. “운석과 천연 금속의 변화, 원광석과 금속의 함유량의 변화, 합금들의 변화, 금속에 가해지는 공정들의 변화, 특정한 조작을 가능하게 해주는 성질 또는 특정한 조작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성질들의 변화.”(앙리 리메의 서신 중에서)
송민규 작가는 금속으로 작업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자신의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를 깡깡 담금질하고 불림한다. 이러한 야장의 테크놀로지는 금속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 광물적인 원소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는 논리에서 가능하다. 특히 그의 이미지즘은 물질과 이미지 전체를 이끌고 합금시키는 야금술적 울림으로 발생한다. 그가 ‘중첩’시키기 이전에 그 이미지들은 “어둠의 속도”라는 장소이자 영토 개념으로 표현된 작품 속에서 1) 어둠 속을 뚫고 지나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2) 밤하늘을 나는 흰 새의 비행 3) 리아스식 해안이 가진 들쑥날쑥하고 무한한 프랙털 무늬 4) 생명수의 난데없는 상징처럼 유체 운동 중인 정액[sperm] 5) 상승하는 바람의 난류 6) 동굴 속의 벽화에서 발견되는 기하학적 문양 7) 시공간이 아인슈타인의 교리문답을 따라 확 꼬부라지고 휜 왜상 8) 방정식으로 표현될 수 없는 구름 9) 끊어진 시간을 포함한 영화 필름 10) 식물들의 이미지 등등 각양각색의 자연물을 연상할 수 있다. 송민규 작가는 자신의 작업 과정에서 마치 거푸집을 깨듯이 이 자연물이라는 출처를 끊고 독자적이며 고유한 이미지로 변조하고 배치한다. 여기서 변조란 연속적인 이미지를 위해서 거푸집을 깨는 것이다. 배치는 이미지(들)의 물질적 흐름을 그 내재적 힘의 법칙으로 다스리는 작업이다. 얼핏 연상되는 구체성의 세계라면, 송민규 작가가 ‘시스템’이라는, 마치 ‘죽음의 위성’ 같은 악의 결집체가 표방하는 이미지가 되겠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계열과 트랙의 이미지들이 딱히 구체적인 기호로 읽히기보다 추상적 기호이자 생명적 기호로 읽히기를 원하는 듯싶다. 보다는 우리 내부의 신경 시스템에서 ‘시냅스’라는 빈 지역에서 일어나는 섬광의 무늬가 거대한 공간에 외화되는 듯한 상응성[correspondence]의 느낌도 강하다. 무엇이든 이 구체성을 벗고 추상적 고도를 찾아서 자기의 차원을 찾아가는 매체라고 할까. 그런 시각매체로서 이 매트릭스 판넬은 그 에너지적 조건과 위상학적 조건을 버무리는 작업을 통해 비유기적인 생명 리듬을 발생시킨다. 나는 이를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기계가 함께 연합한 ‘생명의 서판’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제안한다.
참여예술로서 오픈소스
송민규 작가의 말에 따르면, 1977년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가 나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시리즈의 오타쿠들은 조지 루카스와 모종의 소통과 그 소통으로 인한 시행착오적 개방과 조정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스타워즈> 최고의 ‘모에’ 요소로 지목되는 광선검은 백미에 해당한다. 이 광선검은 제다이의 기사와 마치 모체처럼 ‘태어난 비유기적 생명체’ 역할을 하며, 그런 스토리가 강화되면서 마침내 제다이로 입문한 어린 기사는 수련과 편력의 여행 중에 동굴 속으로 들어가 기기묘묘한 과정을 거쳐 광선검을 합성해내게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샤먼이자 대장장이로서 제다이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는 것. 이 서브텍스트는 놀랍게도 팬들이 창작해낸 것이었고, 조지 루카스는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송민규 작가가 ‘중첩’이라는 현상을 빚어내는 기술적 기반 역시 아까 말한 것처럼 ‘이동 대장장이’의 위상에서 존립 가능하다. 그가 사용하는 그래픽 이미지는 ‘비트맵 bitmap’이 아니라 ‘벡터 vector’이다. 이 ‘벡터’는 ‘비트맵’과 달리 이미지의 확대나 축소시에 윤곽의 왜곡과 굴절 현상이 없다. 이미지 요소 하나하나는 수학의 방정식으로 이루어져 독자적이며, 그 방정식들의 켜켜이 쌓인 산물이 ‘벡터’ 스타일 이미지이다.
달리 보면, 안토니오니의 영화 <욕망 Blow-up>이 보여주듯이 이미지의 주변부가 연속적인 벽돌 무늬로 불연속화되는 ‘비트맵’은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의 한계를 알려주는 그래픽이다. 즉 ‘비트맵’은 라이프니츠의 적분이 가동되는 유한한 가장자리를 포함하고 있다. 반면, ‘벡터’는 이미지 개별마다 수학의 방정식이 개입하여 무한한 가장자리를 내포하고 있다. 송민규 작가가 이 ‘비트맵’과 ‘벡터’의 차이를 예민하게 의식하면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이미지의 물체이자 회화적 이미지로 이해하는 것은 음미해볼 만하다. 그는 마치 다마스커스의 검처럼 저절로 검이 울려서 기하학적 문양들의 생명적 징후가 나타나는 것과 비근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미지즘을 다룬다. 야금술의 주름공학이 엄청나다고 해도 일본도의 경우와 다르다. 일본도가 물리적 간극의 이미지라면, 다마스커스의 검은 정신적 밀도의 이미지이다. 이렇듯 송민규 작가는 그래픽 이미지를 마치 금속적인 역량과 그 역량에 따르는 흐름으로 다룬다. 마치 백남준이 초기 텔레비전 내부의 회로에 불을 피우듯이 변조한 것처럼. 주사선들의 교직을 불과 같은 플라즈마의 너울너울거리는 타입으로 연출한 것처럼. 다시 말해서 여기서 변조라는 것은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변주되도록, 아니 반복적인 곡선 순환에서 벗어나도록 거푸집을 바꾸는 것이다. 가령, 텔레비전을 풀무의 불로 바꾸고, 컴퓨터 그래픽을 대장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송민규 작가는 이 바꾸는 행위를 가리켜서 “반복을 그만두고 노래하고 싶었다”라고 원초적 욕망의 언어로 표현한다. 그는 자신이 다뤄온 이 평평한 판 위의 시각매체가 스스로 그 자체를 창조적으로 배반하도록 즉흥적인 충동의 법칙을 따르고자 한다고 술회한다. 그는 재즈의 임프로비제이션을 손의 무의식이 가는 대로 맡기고, 그동안 ‘파레노’로서 이미지의 피타고라스적 정수 질서를 지켰던 것에 크게 회의를 표한다. 그는 ‘스키조’로서 그래픽 이미지들의 자유롭고 비예측적인 중첩에서 음악적 힌트와 돌파구를 찾는다.
<어둠의 속도>란 제목의 최근 작품은 송민규 작가의 고뇌와 열정이 응결된 결정체이다. 가로 12개 x 세로 3개의 매트릭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직선이 원을 살해하듯”(시인 이상) 주어진 반복과 완성의 궤적을 끊어내고 다소는 “컴퓨터가 아니라 사하라 사막을 두뇌 속에 집어넣어라”(들뢰즈)라는 태생적 자기모순과 자기극복을 저지르고 있다고 보여진다. 컴퓨터라는 ‘태생적 디지털’이 불이라는 플라즈마 상태의 은택을 입어 금속의 기하학적 무늬를 잉태하고 출산시키듯이 말이다. ‘이동 대장장이’는 일렁이는 불 앞에서 ‘스키조’이며, 소프트웨어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기 몸에 흡수되는 불길의 에너지로 인해 스스로 금속이 되는 타입이다. 송민규 작가의 실존을 이야기하면서 이 글을 이어온 이유이기도 하며, 유목적 야금술로서 ‘숭고미학’을 치열하게 지향하는 작가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혁명적인 것은 금속성의 쨍한 울림 속에서 들려오는 그 무엇인가이다. 작가의 계속되는 근본적 태도 변화 그 자체이며, 급기야 그의 ‘스키조’적인 즉흥이 가져다주는 경험의 예술이자 “개념적 두뇌 예술”(백남준) 자체이다.
#4. 어떻게 단풍나무가 방안에 자랄 수 있는가?/
구름과 안개에서 강과 산이 솟아 나온다.
_류탄
(번역: 박은아)
Artist Song Mingyu, Metallurgic Rhythm of Computer Graphics and Sense of Medium as Testimony to Life
NamSoo Kim (Choreography Critic)
#1. “May the Force be with you.”
#2. “The prodigious idea of Nonorganic Life is the invention, the intuition of metallurgy. Although it does not embrace any organic expression, it is completely full of life.” (Wilhelm Worringer)
Improvisation of Jazz
What I enjoy in conversations with artist Song Mingyu are the otaku-like talks of Star Wars. While the SF series is disarrayed in memory amidst proliferation of even its prequel episodes, the artist puts the complex chronology in clear order. Oddly enough, it is in this American mythology, a monomyth extended to Greek tragedy, that lies a clue for understanding Song’s works and recent changes. For instance, the start goes like this. The infinite scene of the droid army landing on the ground from their grand space shuttle, or the scene of the clone army not as methodically as the droid army but nonetheless systematically gathering, is expressed in a manner of fascist suffocation. For ‘parano(ids)’ like us, the essence of this breathtaking scene is its literally breathtaking jouissance. Until last year, conversations with Song lay within the context of confirming the cosmic spectacle of this fascist aesthetic. But this year, he has transformed into a ‘schizo(phrenic)’. How did this happen.
“I grew tired of repetition. Now I want to just sing.” Very humbly and strongly, he seemed to wish for his impulses to develop into a series of jazzy rhythms and unforeseeable encounters. A schizophrenic is someone who would always create two-forked paths on a road-less flat land, and someone who would try out each of the two paths in the same parallel manner. As if the droid army and the clone army landed on planet Tatooine in overlap, disembarking from the same space shuttle, or as if the armies of different time frames are temporally out of joint, Song simply ‘overlaps’. Song employs such overlaps as the painterly image and object that embrace images on the painting medium constructed with numerous panels, weaving a mechanism of exchange and tension between the two aspects. This ‘overlap’ is something that the ‘parano’ had not wanted. In Pythagoras’ operation system of stars, in Descartes’ world of analytical geometry with its x and y axes, and in Newton’s cosmos faithful to its law of physics, images stand as independent beings, as if a mysterious glow of the stars that do not mingle with one another. But “I grew tired of repetition”, the artist says.
What has happened. Now, before we look into how Song kneads and places the computer graphic images that break away from the Platonic world of aesthetics in Star Wars, we should first try to observe the changes that took place within his own existence. This is because while his world of computer graphic images may seem like a fancy concoction of images, is in fact an esoteric world of images “that can be recognized only if you listen to what the artist has to say”. I would like to call this the gnosis tablet inscribed with computer graphics. Gnosis is the esoteric knowledge that cannot be discerned visually, constructed at the end of deeper perspectives. Song’s anguish and impulse seem to have crystallized at the point where he approaches the transcendental sense of this gnosis with computer graphic images and experiments how the musical resonance and high-dimensional plays are borne. We should together witness the signs of the inorganic life that this artist leads, through visual medium and like a flash of light, toward far beyond the visual. What he aims at is in a sense the ‘Sublime aesthetic’, the sort of Sublime aesthetic that pokes at the conditions of visual art through novel approaches. Or shall we say, the sort of Sublime aesthetic that knows how to have some fun.
Significance of Overlapping
A robot general appears in some episode of Star Wars. “The future. A future where there are no Jedi!” (General Grievous). This was the general’s response to Obi-Wan Kenobi’s sarcastic remark, “An army with no loyalty, no spirit, just programming. What have you to show for all your power, what have you to gain?” What we saw when this dignified and elegant general took off his cloak to engage in battle were four arms. He fiercely wields four laser swords as he threatens Obi-Wan, and what is amazing is that Obi-Wan, with only one lightsaber, chops off the general’s four arms one by one. If General Grievous is Mozart, Obi-Wan is Stockhausen.
The trajectory of the laser sword(s) that General Grievous wields consists of the leitmotif of classical music. This would be the typical, predictable curve of ‘repetition’ that Song speaks of. In Song’s works, the trajectory (軌跡) of these laser sword(s) seem to correspond to two Chinese characters of the same pronunciation: 1) 掛, which means to hang, and 2) 軌, which means the trace of wheels. This artist puts emphasis on the dot, line, plane, fluid of computer graphics, consciously aware of the concepts of hanging picture (an image in the status of掛) and orbit (the image of軌). Would here be the ‘force’, the purest life energy of the universe. The force, originated from Star Wars, is actually the qi (氣) of East Asia. In terms of this qi, the robot paints an infinite series of the laser sword’s graphic images in the systematic harmony of before Schoenberg, while the Jedi knight scatters the sword’s graphic images as a ‘dislodged orbit’, like an array of atonal notes of after the Schoenberg era. In his Speed of Darkness, is not the artist expressing the visual and musical image of the(se) laser sword(s) ‘overlapping’ in two types. While it dons mechanistic gaiety and liveliness, it also has a certain glow of contingency and wonder that sparkle from adventurous dreaming of subjectivity’s infinite potential. The anamorphic forms, curves, and spots as the division of irrational numbers. I now think it will not be easy to feel the ‘force’, the qi, the sign of life as it is, without thinking of the battle field in the night sky where the laser swords engage in combat or the sort of space that poet William Blake used to sing out of the blue, the public spaces where the kind and the evil collide. But what exactly are the images that are ‘overlapped.’ Song refuses to fully reveal the specific origin of these images and denies any Heideggerian disclosure, but yet at the same time, presents small clues. In this double operation of being visible and invisible, there must be an imperative something that is necessary when computer graphics spill out into the field of visual art from the domain of technology. For instance, the things that have been disclosed through non-disclosing methods, or those that have already been disclosed but somehow not fully disclosed. Or when disclosing also means to hide. In such operations, irony is an innate trait and just as Song regards the work of computer graphics in his art as the task of a ‘nomadic blacksmith’, such work is presented the sharp brilliance of metal through ‘overlapping’.
#3. “Variation between meteorites and indigenous metals; variation between ores and proportions of metal; variation between alloys, natural and artificial; variation between the operations performed upon a metal; variation between the qualities that make a given operation possible, or that result from a given operation” (from the letters of Henri Limet)
Song does not work with metal, but he tempers his computer graphic images. Such blacksmith-technology is possible upon the logic that not only metal, but all objects are full of mineral elements. In particular, his imagism is produced through the metallurgic resonance that pulls and amalgamates the entirety of matter and image. The images before the ‘overlapping’ are, inside the works that express the concept of the “speed of darkness” as a place and territory, reminiscent of 1) the headlights of cars running through darkness, 2) a white bird flying across the night sky, 3) the infinite fractal pattern of a rias coast, 4) sperm in fluid motion, as if the abrupt symbol of life-giving water, 5) turbulence of ascending air, 6) geometric patterns on cave paintings, 7) anamorphosis of time and space, dramatically curved and bent according to the catechism of Einstein, 8) clouds that cannot be illustrated through equations, 9) movie films that embrace broken time, and 10) images of plants and other various natural matter. In his work process, Song breaks free of the natural matter as the origin, as if breaking a mold, ultimately modulating and placing his images as independent and unique beings. Here, the modulation means to break the mold for the sake of serial images. Placement is the task of governing the material flow of image(s) with the law of inner power. If it were the world of specificity, as would be the first association, it would be a ‘system’, the images supported by the mass of evil, like the ‘satellite of evil’. But it seems he wishes for his images of numerous categories and tracks to be read not as specific signs but rather as abstract signs and signs of life. There is also a strong sense of correspondence, as if the patterns of light flashes produced in the empty regions of our nerve system, called the ‘synapses’, are absorbed into the semblance of a grand space. Shall I say, it is a medium that sheds of this specificity and follows an abstract altitude in search of its own dimension. As such visual medium, this matrix panel produces an inorganic life rhythm by mixing its conditions of energy and topology. In this era of artificial intelligence, I propose that we call this the ‘tablet of life’, an alliance between man and machine.
Open Source as Participatory Art
According to Song, ever since the first film of Star Wars came out in 1977, the otakus of the series have engaged in a certain communication with George Lucas, participating in a consequent trial-and-error process of sharing and adjusting. The lightsaber, the largest ‘moe’ element of the series, is indeed the highlight. This lightsaber serves the role of the ‘inorganic being borne’ as the nucleus, and as the story develops, the young knight enters a cave during his pilgrimage of training and produces the lightsaber through peculiar processes of compositions. In sum, the Jedi’s identity as a shaman and blacksmith is made clear. Surprisingly enough, this subtext was a production of fans that Lucas willingly adopted.
The technical basis upon which Song creates his phenomenon of overlapping can also exist upon the status as ‘nomadic blacksmith’. The graphic images he employs are not ‘bitmaps’, but ‘vectors’. Unlike bitmaps, vectors do not present any distortion or refraction of silhouette when enlarged or reduced. Each image element is composed of mathematical equations, and thus independent. The product of such piling up of equations is the vector-style image.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as is demonstrated in Michelangelo Antonioni’s film Blow-up, the bitmaps attest to the limitations of computer graphic images as the periphery of the images are broken into a series of brick patterns. In other words, bitmaps embrace the finite margin where Leibniz’s integration is at play. On the other hand, vectors embrace the infinite margin as mathematical equations intervene in each of the images. It is worthwhile to appreciate how Song acutely recognizes the difference between bitmaps and vectors, and perceives computer graphics as the material of image and painterly image. He treats his images in a manner similar to the way the Damascus sword rings on its own and produces geometric patterned signs of life. Even if the technology of metallurgy is admirable, it is different from the case of Japanese swords. If Japanese swords are the image of physical gaps, Damascus swords are the image of mental density. As such, Song treats his images as metal capacity and the flow that corresponds to that capacity. Just as Nam June Paik had modulated the circuits inside early televisions as if starting a fire. Just as he had designed the currents of scanlines in wavering types as if fire-like plasma. In other words, modulation here means to change the mold so that images can be constantly transformed into variations, no, so that they can break free of repetitive circulation. For instance, it means to change the television into the fire of bellows, and computer graphics into a smithy. Song refers to this act of transformation in the language of the most instinctive desire, “I wanted to stop repeating and start singing.” He explains that he seeks to follow the law of impromptu impulse so that the visual medium on this flat plane can creatively betray itself. He leaves the improvisation of jazz to the unconscious flow of his hands, and expresses great skepticism toward his days as a ‘parano’ when he followed the Pythagorean order of integers. As a ‘schizo’, he now seeks musical clues and breakthroughs in the freely and unpredictably overlapped graphic images.
His recent work under the title Speed of Darkness is the crystallization of the artist’s anguish and passion. Composed as a matrix of 12 pieces wide and 3 pieces tall, this work seems to break free of the given repetition and trajectory of completion as if “a line is murdering a circle” (poet Yi Sang), and commit self-conquest and the innate self-contradiction of “putting not the computer but the Sahara desert in the brain” (Deleuze). As if the computer, an ‘innately digital’ being, is blessed by fire, a plasma being, to conceive and give birth to the geometric pattern of metal. The ‘nomadic blacksmith’ is a ‘schizo’ in front of a roaring fire, and is the sort of being that does not follow the orders of the software and instead becomes a metal through the energy of the fire that he absorbed. This is the reason I have addressed the being of artist Song Mingyu throughout this text, and this is also an expression of my respect toward the artist that fiercely seeks the Sublime aesthetic as a nomadic metallurgy. What is revolutionary is the certain something that sparkles among the sharp brilliance of metal. It is the constant change of the artist’s fundamental stance itself, and at last, the art of experience provided by his schizophrenic impulses and the “conceptual brain art” (Nam June Paik) itself.
#4. How can maple grow inside a room?/
Lakes and mountains rise from clouds and fog.
: Ryu Tan
(translated by Eunah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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