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 An
Born in 1983 in Seoul, Korea
yurian0824@gmail.com
Education
2014 VAV(Audio-Visual) Department of Gerrit Rietveld Academie, Amsterdam, The Netherlands
2007 Department of Digital Video Design, ChungKang College of Cultural Industries, Icheon, South Korea
Career
2006 - 2010
haja center(Seoul Youth Factory for Alternative Culture) Staff
haja production school Advisor, Video Creator
Solo Exhibition
2015 Sailing Words, Cheongju Art Studio, Cheongju
2015 The Unharvested Sea, Art Space Pool, Seoul
Screening & Exhibition(selected)
2015 Screening & Talk, Body Languages, Script Inventors: World Script Symposia 2015, CineCode Sonje, Seoul
2015 On The Island; Chengju Art Studio Bridge Project, Gallery Burgem, Jeju
2015 The Power of Art, 2F The Tumen River Art Centre, Tumen City Jilin Province, China
2014 [S]elected Show, Castrum Peregrini, Amsterdam
2014 Constant Companion, the Oud Kerk, Amsterdam
2013 Beurs van Kleine Uitgevers 2013, Paradiso, Amsterdam
2013 The Tokyo Art Book Fair 2013, Tokyo
2013 ABOUT BOOKS : INDEPENDENT BOOK MARKET, Organized by KT&G SangsangMadang Gallery, Seoul
2012 Orbit, Orgelpark, Amsterdam
2012 ABOUT BOOKS : INDEPENDENT BOOK MARKET, Organized by KT&G SangsangMadang Gallery, Seoul
2012 Radio Station : FIRE IN CAIRO, Amsterdam
2011 The 3rd Unlimited Edition, Organized by YOUR MIND and PLATOON KUNSTHALLE, Seoul
2011 ABOUT BOOKS : INDEPENDENT BOOK MARKET, Organized by KT&G SangsangMadang Gallery, Seoul
2005 The 3rd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Seoul
Awards and Residency
2015 Emerging Artists, Seoul Museum of Art, Seoul
2015 Artist in Residency, Cheongju Art Studeo, Cheongju
2014 The Nominees in the Category of Thesis of GRA Awards, Gerrit Rietveld Academie, Amsterdam
Other Experiences
2007 Title design, [Nine Stories], Short film, Directed by M.J.One
2007 Guest, [Making Media Workshop for Teen Girls; Cast studies of Reel Grrls and haja center],
Hosted by Women’s Film Festival in Seoul
2006 Article, [Do you like travel?], Published by Another Culture
2005 Editing, [New Town Ghost], Video installation, Directed by Minouk Lim
2004 Participantion, [Four Cut Mobile Contents] project,
Hosted by The Korean Society for journalism & Communication Studies,
Organized by ChungKang College of Cultural Industries
2004 Participantion, [NC soft - haja global project], WAC(Weekend Art College), London, UK
2002 Youth editor, [a series of haja center 2 : Let’s play, do it!]
2001 Publication party planned by Girls in Feminism,
[Letter from The Future : The Goddess-Spell According to Hyun Kyung], Written by Chung Hyun Kyung
안유리
1983년 서울 생
yurian0824@gmail.com
학력
2014 VAV(Audio-Visual), 헤리트 리트벨트 아카데미,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07 디지털 영상 디자인, 청강문화산업대학, 이천, 한국
경력
2006 - 2010
서울시립청º“년직업체험센터 하자, 스테프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영상작업자
개인전
2015 항해하는 말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5 추수≪“ 수 없는 바다, 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
단체전(selected)
2015 스크리닝: 바디 랭귀지스, 문자발명가들:세계문자심포지아 2015, 씨네코드 선재, 서울
2015 On The Island;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브릿지 프로젝트, 갤러리 버금, 제주
2015 The Power Of Art, 두만강 문화종≪’전시관 2F, 중국 길림성 도문시
2014 [S]elected Show, Castrum Peregrini, 암스테르담
2014 Constant Companion, the Oud Kerk, 암스테르담
2013 Beurs van Kleine Uitgevers 2013, Paradiso, 암스테르담
2013 The Tokyo Art Book Fair 2013, 동경
2013 ABOUT BOOKS : INDEPENDENT BOOK MARKET, KT&G 갤러리 상상마당, 서울
2012 Orbit, Orgelpark, 암스테르담
2012 ABOUT BOOKS : INDEPENDENT BOOK MARKET, KT&G 갤러리 상상마당, 서울
2012 Radio Station : FIRE IN CAIRO, 암스테르담
2011 The 3rd Unlimited Edition, 플래툰 쿤스트≪“레, 서울
2011 ABOUT BOOKS : INDEPENDENT BOOK MARKET, KT&G 갤러리 상상마당, 서울
2005 제3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서울
수상경력 및 레지던시
2015 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지원프로그램 지원작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5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2014 The Nominees in the Category of Thesis of GRA Awards, 헤리트 리트벨트 아카데미, 암스테르담
협업과 참여 프로젝트
2007 단편영화 [아홉개의 이야기], 타이틀 디자인, 감독 문지원 작품
2007 제9회서울국제여성영화제, 패널, 섹션포럼-10대 여성들을 위한 미디어 작업
2006 [여행 좋아하세요?], 아티클 기고, 도서출판 또하나의 문화
2005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뉴타운 고스트], 영상 편집, 작가 ¿”민욱 작품
2004 4컷 모바일 컨텐츠 프로젝트, 제작 및 참가, 주관 한국언론학회
2004 NC soft-하자 글로벌프로젝트, 참가, WAC(Weekend Art College), 런던
2002 [하자총서2], 청º“년 에디터, 도서출판 또하나의 문화
2001 현경 출판기념회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거야], 공동기획
시(詩)가 필요했던 이유
- 안유리 개인전 <추수할 수 없는 바다>에 부쳐
안소현 (독립 큐레이터)
하나, 질문
왜 이미지에 말을 다는가? 소리의 동시성을 확보하기 이전에도 무성영화에는 자막화면이 있었고, 개념이 미술의 주재료가 되기 훨씬 전에도 중세 종교화의 필렉터리(phylactery)나 만화의 말 풍선이 있었으니, 시각 이미지에 말을 덧붙인 형식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안유리의 말들은 이미지와 함께 놓인 말에서 관성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기능, 즉 선명한 소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안유리의 영상 속 목소리는 그 장소가 어디라고, 인물이 누구라고 설명해주는 해설(narration)이 아니며, 때로 무성영화처럼 검은 화면에 글자들만을 늘어놓아 이미지로부터 분리시킨 말들도 대사(dialogue)가 아니다. 그것들은 소통에 있어 불친절한 이미지를 보완해주는 친절한 말들이 아니다. 그녀가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의 말들조차 툭 터놓은 고백이라기 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시어에 다가서려는 노력이며, 심지어 그 말들은 공간 속에 조각조각 빨래처럼 널려있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안유리는 말들의 투명함도 연속성도 포기한다. 이미지보다 훨씬 강한 약속으로 이루어진 말, 이어짐을 통해 선명하게 소통할 수 있는 말의 특권을 포기한 것이다. 대신 그 말들은 시각 이미지와 동등한 위상을 요구하고, 심상 이미지로 넘쳐나는 시가 되려 한다. 안유리는 왜 시가 필요했을까? 그리고 그 시는 영상 이미지와 어떤 관계일까?
그런데 작가 안유리에게 던지는 이 질문은 필자에게 되돌아온다. 언어의 선명함을 버리고 굳이 시를 좇는 작가의 말에 어떤 말을 부쳐야 할까? 말로 환원되지 않는 이미지로 가득찬 말들에 태생적으로 사족이 되곤 하는 비평의 말들을, 그것도 모든 가능성을 향한 개시인 첫 개인전에 얹는 것은 굳이 필요한 일일까?
둘, 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유리의 말들은 풀어낼 것을 종용한다. 시가 되고자 하는 말을 함부로 축내지 않고 풀이할 수 있는 길은 오히려 시와 가장 먼 곳에서 종종 발견된다. 안유리가 좀더 많은 내포를 가진 시어를 원했다면, 나는 큰 외연을 가진 상자 안에 안유리의 말들을 가능한 많이 쓸어담으려 한다. 이런 경우 수(數)와 통사(統辭)라는 큰 상자는 꽤 유용하다.
안유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2가 많다. 낮과 밤, 물과 뭍, 떠나온 곳과 떠나간 곳, 할머니와 내가 있다. 그 숫자는 영상에서도 고스란하다. 섬과 뭍을 연결하며 둘로 갈라진 바다, 한껏 깊이 물을 받아들이는 둘로 쪼개진 땅, 심지어는 파도가 밀려왔다 돌아가는 화면은 좌우가 반전되어 두 개가 마주붙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온갖 움직임들이 가득차 있다. 물에서 뭍으로 “숨이 옮아가”고, 낮과 밤이 “손을 맞잡다 놓는다”. 자라고, 옮겨지고, 떠나고 돌아오고, 들이쉬고 내쉬고, 길어올리고 닻을 내린다. 이항(二項)들 사이에는 온통 동사들이 분주하다. 반면 꾸미고, 규정하고, 단정하는 형용사와 부사들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안유리의 이런 어법은 그녀의 카메라의 언어, 즉 카메라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움직임에서 다시 발견된다. 안유리의 카메라는 두 지점 사이의 움직임을 고르게 잡아내는 데 능하도록 뒤로 물러나있지, 가까이 얼굴이나 한 지점을 당겨 특정한 감정이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말로 치자면 꾸며주고 부각시키고, 감정을 드러내는 클로즈업은 형용사와 부사다. 반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멀찌감치 물러나서 두 지점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온전히 담는 시선은 동사에 가깝다. 안유리의 렌즈는 강박 없이 담담히 반복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거나, 한 곳에 집중된 초점 없이 멍하게 떠 있는 풍경을 향한다. 안유리의 영상에는 놀랍도록 줌인이 없다. 이 때문에 이미지로 가득찬 독백에도 불구하고 영상은 건조함을 유지하며 두 공간 사이의 움직임을 충실히 담아낸다.
셋, 추측
안유리는 왜 이토록 둘과 움직임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리고 윤기나는 말과 영상을 왜 그토록 기피하는 것일까? 그녀가 말에 느꼈을 예민함, 시를 필요로 하게 된 계기와 움직임의 관계를 추측해본다. 먼 곳으로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낯섦을 만들고, 말, 특히 파롤의 낯섦은 가장 먼저 다가온다. 이방인들은 부단한 노력으로 랑그를 익혀 명확한 소통에는 성공할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은 말을 실제로 써온 사람들에게 각인된 소리, 기억, 습관 그리고 그것들이 불러내는 정서이다. 설사 이방인들이 마침내 그들과 구분되지 않는 발음과 억양을 가진다 할지라도,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만이 나눠갖는 비밀스럽고 미세한 과거의 감각들은 이방인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비교적 너그러운 랑그와 달리, 파롤은 이방인에게는 기억의 공유를 허락하지 않는 잔인함을 가졌다. 예민하면서도 체념하지 않은 안유리는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는 허락되지 않은 그 감각을 보란듯이 자신이 타고난 말에서 끄집어낸다. 우선 멀고 낯선 두 지점 사이를 이동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보다 더 먼 기억, 할머니의 말, 설화, 신화 등 자신의 생물학적 삶을 넘어선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가장 소통하기 힘든 것, 모국어의 랑그로도 전달할 수 없는 가장 내밀한 감각을 시인의 말들을 빌어 끄집어낸다. 못다한 말들이 노래가 된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익숙한 파롤의 울타리 안에 있는 자들은 (시인은 제외하고, 아니 어쩌면 시인은 이미 그 밖에 있다) 잘 인지하기 힘든 상태이다. 안유리는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정작 노래의 주인들은 돌아오지 못한 몸이거나 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자이기에 노래는 시인의 입술을 찾아 닻을 내린다.” 작가는 가능한 멀리 떠돌다 시어를 통해 가장 깊은 정착을 시도한다. 안유리가 이항들과 그 사이의 움직임에서 시를 찾는 이유는 그렇게 추측된다.
넷, 요청
이제 안유리의 노래로부터 조금 물러나 질문으로 되돌아 가자. 그녀의 시어들을 넉넉한 상자에 담는다 해도 비평은 근본적으로 구심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말들을 덧붙이는 것이 여전히 손쉬운 환원이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다만 이 글이 작가가 엮어내기 시작한 이미지와 말의 힘들을 내려놓거나 그에 만족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이제 성공적으로 서울에 닻을 내린 그녀의 노래들로 하여금 다시 떠날 채비를 하게 할 수 있다면, 이 환원의 말들조차 의미를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몇 가지 요청을 덧붙이려 한다.
영상 이미지와 언어는 물과 뭍처럼 만나지만, 그만큼 다른 질감을 갖는다. 안유리가 선택한 무성영화 같은 자막 화면이 이어지다 갑작스럽게 이미지가 등장하는 방식은 그 다른 질감을 드러내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텍스트가 이미지를 보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이미지로부터 소심하게 분리시키는 것보다 이미지를 압도하는 텍스트의 힘을 보여주는 것, 그들 사이의 극명한 괴리나 그들 사이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힘싸움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녀가 시를 필요로했던 것만큼, 그 시를 책이 아닌 영상과 설치로 보여주려고 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시를 고파하는 이유만큼 공간을 고파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보길 요청한다. 아마도 거기에는 익숙함 이상의 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말이 길어올리는 정서를 집어낼만큼 충분히 예민한 작가가 한 영상에서는 영어 목소리와 한국어 자막, 다른 영상에서는 한국어 목소리와 영어 자막이라는 단순한 일대일의 소통 방식을 택한 것 역시 지나치게 단순해보인다. 번역된 자막은 말들의 차이를 드러내기보다는 없애는 데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안유리가 타인의 목소리를 단순히 어떤 랑그의 능숙함을 기준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목소리에서도 자신의 언어와 카메라의 어법이 보여준 일정한 거리가 나타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봄직 하다.
간결한 이항들과 끊임없는 움직임들로 가득찬 안유리의 말들은 그것들에 말을 함부로 더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그러나 그 힘이 만일 멀고 긴 여행에 주로 의지한 것이었다면, 그녀의 귀향은 그 힘을 사라지게 할 위험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말에 대한 그녀의 예민함이 모국어를 되찾은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그녀를 익숙한 파롤의 울타리 밖으로 내몰기를 희망한다. 먼 곳을 돌아 시인이 되려하는 그녀에게 남겨도 좋다고 생각되는 말은 사실 하나이다. 머무른다 한들 시인에게 언제 제 집이 있었겠는가.
The reason the artist needed poetry
-Commentary on Yuri An’s solo exhibition, The Unharvested Sea
Sohyun Ahn (independent curator)
One: A Question
Why does one put words to images? As silent films featured subtitle screens even prior to the arrival of sound synchronization, and religious paintings in the Middle Ages had phylacteries and cartoons had speech bubbles long before the “concept” became the central material in artworks, the form of adding words to visual images requires no emphasis here. However, Yuri An’s words do not aim at clear communication, that is, the function that we initially expect from placing words together with images. The voice that emerges within her video work is not a narration that describes the setting or who the speaker is, and the words occasionally arranged on the silent film-like black screen, isolated from the images, do not form a dialogue. These are not helpful words that complement dispassionate images to facilitate communication. Even the words of her written correspondences with a poet are not frank confessions, but instead efforts to draw closer to enigmatic poetic language. The words go as far as to hang suspended like laundry in the exhibition space, such that they are not smoothly connected. Yuri An gives up the transparency and continuity of words. This means that she forfeits the privilege of words that are comprised of promises, words that are much more powerful than images that make vivid communication possible via their connection. Instead, the words demand a status equal to that of visual images and attempt to become poems that overflow with mental images. Why did she need poetry? And what kind of relationship exists between her poetry and her moving images?
Yet the question I had directed toward the artist returns to me, the writer. What kind of words should I add for an artist who has discarded the clarity of language and obstinately chases after poetry? I find myself unsure as to whether I should write critical words that become inherently unnecessary comments towards words full of images that cannot be reduced to words, and especially whether it is truly necessary to add those words to her solo exhibition―the artist’s first step toward all the possibilities that lay ahead.
Two: An Interpretation
Nevertheless, An’s words urge us to explain. Without squandering them, we may uncover a way to interpret the words that strive to become poetry at the place that is furthest from poetry. If An desired to have poetic words with greater connotation, then I would rather sweep as many of her words as possible into a box with great denotation. In this case, a large box of numbers and syntax are particularly useful.
The number two appears frequently in the words that An uses: daytime and nighttime, water and land, the place from which one left and the place to which one went, grandmother and I. This number appears in her video work as well: the sea connecting the island and land, dividing them into two; the land splintered in two, absorbing was much water as it can; even scenes in which the waves that roll in and back out are connected to face one another via a mirror image. And filled in between these are myriad kinds of movement. From water to land, “breath spreads,” and daytime and nighttime “hold hands, then let go.” Growing and relocating, leaving and returning, inhaling and exhaling, raising and lowering the anchor―the verbs are wholly occupied amid these binaries. On the other hand, adjectives and adverbs, which adorn, define, and conclude objects, are extremely limited.
But we can again find An’s type of phraseology in the language of her camera; in other words, the movements by which the camera creates meanings. Her camera hangs back in order to capture the movement between two points evenly, and it does not emphasize a certain affection or importance by drawing a face or a point closer. In the sense of words, the close-up, which adorns objects, highlights them, and exposes their affection, is the adjective and adverb. In contrast, the gaze that maintains a discrete distance and steps back so as to fully embody the events occurring in between two points is closer to a verb. Yuri An’s lens focuses on actions coolly repeated without obsession, or faces toward blank, floating landscapes that lack a focal point. Surprisingly, there is no zooming-in in her videos. As such, they maintain a dryness despite the monologue that is full of images, and they faithfully embody the movement between two spaces.
Three: An Assumption
Why is An preoccupied with the number two and with movement? And why does she avoid glossy words and video? I surmise that this is attributable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ensitivity that she felt in words, the trigger for her need for poetry, and movement. One’s relocation to a distant place necessarily creates unfamiliarity, and the unfamiliarity of words, especially the unfamiliarity of parole, approaches first. Although strangers could succeed in clear communication with persistent effort by mastering langue, something still remains that they could not possibly obtain no matter hard they try. These are the sounds, memories, and habits ingrained in people who have actually used that language, and the sentiment that they evoke. Even if strangers finally were to achieve a pronunciation and intonation indistinguishable from these people, strangers are never permitted the secret, delicate senses of the past that only people who have spent time together share. Different from the relatively generous langue, parole has a cruel character that does not allow strangers to share memories. Yuri An, who is deeply sensitive but does not give in to resignation, confidently extracts from her native language a sense that an unfamiliar language would not be permitted to grasp in a foreign place. First of all, she moves between two points that are far apart and unfamiliar. Furthermore, she delves into memories that go back even further than her own memory, such as her grandmother’s words, folktales, and myths; in other words, memories that extend beyond her actual life. And, borrowing the poet’s words, she isolates the innermost sense that is the hardest to communicate, one that even the langue of a mother tongue cannot convey. Owing to this, her yet unspoken words become a song. It is a state that those who are within the familiar boundaries of parole (except poets, or perhaps poets already outside of the boundaries) find difficult to recognize. Yuri An expresses this situation as follows. “[I]ts creators have never returned, or have lost their language. So the song searches, and casts its anchor on the poet’s lips.” The artist wanders as far as she can and attempts to create a rootedness of utmost depth through poetic language. I can presume this is the reason she finds poetry in binaries and in between binaries’ movements.
Four: A Request
Now, shifting slightly from her song, I would like to return to the question. Although I attempt to contain her poetic words in a box that is sufficient, criticism does not necessarily escape fully from its centripetal force. So I fear that if I add these words to her works, it may nevertheless remain a simple reduction. However, if this essay can dissuade the artist from becoming satisfied and putting down the power of images and words that she has begun to weave together, if it can serve as a trigger for her songs that effectively dropped anchor in Seoul to depart again, then I expect that even these reductive words can be meaningful, and I would thus like to add some additional comments.
Although moving images and language encounter each other just like water and land, they have different characteristic textures to that extent. However, the way that the silent film-like subtitle screens continue and the images suddenly appear―something that An chose―does not appear to sufficiently reveal these differing textures. If she is unsatisfied with the way that the text complements the images, can she find a way that shows the power of text prevailing against images (rather than separating the text from images in a timid manner), and that gives rise to an extreme estrangement and a fierce clash between them? Moreover, I believe that as much as she has a hunger for poetry, there should be a reason for why she presents poetry in the forms of video and installation, rather than in book form. I suggest that the artist pose the question of why she wants to negotiate a space in the same manner as a poem. I believe that the answer is something that lies beyond familiarity.
Yuri An is a deeply sensitive artist who is able to extract the affections that words evoke in a strange place. But it seems too straightforward for her to chose a simple one-to-one method of communication where one video features a voice in English and Korean subtitles, and the other has a voice in Korean and English subtitles. Translated subtitles effectively eliminate the differences of languages rather than reveal them. Lastly, assuming that An did not simply chose others’ voices under langue’s criteria of proficiency, I would suggest that she direct toward herself the question of whether there is an appropriate distance in their voices, like the distance she presented through her words and her use of the camera.
Full of simple binaries and endless movement, Yuri An’s words have the power to make one hesitate to rashly add commentary or words. However, if this power is generally dependent on a distant and lengthy journey, then the fact that she has returned could be a hazard that makes this power vanish. I hope that her sensitivity toward words ceaselessly drives her to the exterior of parole’s familiar boundaries, even in the circumstances of regaining her mother tongue. To Yuri An, who wants to be a poet after returning from a great distance, I would like to impart a final word: Even if poets stay somewhere for a time, they never have their own homes.
Translated by Sunghee Lee and co-edited by Joseph Fungsang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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