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2014 {blog:surgical diary}, 스페이스22, 서울
2012 CANCER WORK : PARTⅢ RESULTs,갤러리 아트사간,서울
2008 Presence of Trace, 아트비트 갤러리, 서울
그룹전
2014 Life is very Beautiful展, GS칼텍스 예울마루, 여수
PONDY PHOTO 2014, 폰디체리, 인도
2013 생명은 아름답다, 한국과학 기술원, 대전
Delhi Photo Festival 2013, 델리, 인도
2012 대구사진비엔날레, 특별전 1 사진의 과학, 대구
Arles Photography Open Salon 2012, Galerie Huit, 아를, 프랑스
2011 Salatist, Gallery Aura, 서울
New year, Gallery K, 서울
2010 Hereford Photography Festival, Hereford Museum&Art Gallery, 해리퍼드, 영국
Selected Korean Artist, Art&Criticism,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9 Prescription, Gallery AG, 서울
2008 Meta-Text, Meta-Image,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blog : surgical diary
글 | 박 정 현
‘최초진단, 8개월 전, 수술 거부, 암이 진행, 조용히 있다가 편하게 돌아가시는never, 복강내 전이성 종양….’
검은색과 파란색 볼펜으로 빽빽하게 적힌 것은 의사가 암 환자를 진료하면서 상태와 치료방법, 경과 등을 요약해 쓴 친필이다. 의사의 진료 메모쯤 되는 이 낯선 기록은 일반인이 해독하기 어려운 영어와 기호로 구성된 암호문 같지만 의사에게는 환자의 상태와 정보를 자신만의 기준과 방식에 따라 요약, 정리한 것이다. 다음 사진에는 8자리 숫자가 열병한 군인들처럼 정렬해 있다. 병원에서 환자 개개인에게 부여한 등록번호이다. 그리고 앞에 +가 붙은 등록번호는 이미 사망한 환자를 뜻한다.
해독 불가능한 흘림체 필기와 냉정해 보이는 환자의 식별번호는 그 자체로 리얼리티다. 실제 병원에서 통용되는 기호로서 실재하는 혹은 실재했던 암 환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외과의사인 노상익은 자신의 홈페이지의 블로그 ‘surgical diary’(수술 일지) 게시판에 날마다의 진료와 수술 데이터를 올린다. 물론 운영자만 볼 수 있는 ‘surgical diary’에는 냉정한 데이터들이 쌓여간다. 날짜에 따른 환자별 경과와 기록 그리고 취한 조치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 환자의 질병에 대한 연대기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환자의 집을 찾아가 촬영한 사진, 환자의 앨범에서 가져온 옛 사진, 의사로서 자신이 갖는 감정을 드러낸 사진 등까지 망라된다.
예를 들어 “한씨, 1938년생, 전북 정읍 이밤리, 전직 경찰관이었던 한씨는 간경화에 대하여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오다 2008년 간세포암이 발견되었고 이후 동백항암색전술 3회, 수술적 고주파열치료 1회, 넥사바 2사이클 항암치료, AMD 항암치료 등을 받으면서 13개월을 생존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노상익이 간암(C22) 환자 한씨의 집을 찾아갔을 때 찍은 사진이 보인다. 일을 하고 있던 한씨는 ‘저 왔어요’라는 소리에 걸어 나오고 있었고, 노상익은 이 장면을 찍었다. 또 한씨의 앨범에서 젊은 시절 그가 경찰로 근무할 때의 사진을 더했다.
또 다른 위암(C16) 환자 탁씨의 암병동 경파기록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눈을 감으면 죽은 사람들이 보이고 죽은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 들리다가 그 이후로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눈만 감으면 죽은 사람이 보여서 잠을 못 주무신다 합니다. 잘 때 손발을 계속 움직이면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양상 보이고 중얼거린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을 못하십니다….” 탁 씨의 그날그날의 상태를 보고한 기록이다. 주치의로서 오랫동안 탁씨를 대면했던 노상익은 죽은 사람이 보이고 잠을 못 자는 환자의 고통에 점차 감정이입이 되면서 부엉이와 어항 사진을 찍었다.
이처럼 ‘surgical diary’는 이성과 감성의 그 중간에 있다. 그리고 노상익은 블로그 내용을 재구성해 시각 예술작품 ‘blog : surgical diary’로 만들었다. 우선 작가는 최대한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환자와 관련된 텍스트를 중립적으로 제시한다. 암병동의 경과기록지를 그대로 가져오거나 감정적인 수사를 뺀 건조한 사실 위주의 기록들이다. 몇 년생 뒤에 악성종양을 뜻하는 C와 암의 종류를 뜻하는 숫자가 붙고, 어떤 치료를 받았고 언제 죽었다는 것뿐이다. 여기에 이미지는 보다 감성적으로 흐른다. 환자가 살아왔던 여정, 의사로서 괴로웠던 심경 등이 엿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조합은 암을 매개로 만나는 의사와 환자, 주변인들의 고통과 투쟁,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암이라는 질병과 그 주변 사람들을 추측케 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암이란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인 시스템을 엿보게 한다.
의사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를 섬세하게 다방면으로 축적한 결과, 만들어진 탄탄한 데이터 베이스 그리고 감각적인 배열이 빚어낸 결과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쳤더라면 무미건조한 자료의 나열이 되었거나 피가 낭자한 유령의 집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노상익의 작업은 절묘하게 그 중간선상에 위치한다. 자료의 형식을 빌린 작업이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들어온 지 오래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상익의 작업은 이 범주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노상익은 1년에 200건 이상의 암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이다. 우리나라만 한 해에 15만 건의 암 수술이 이뤄진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2008년부터 5년간 전세계 암 발병률은 그 이전의 같은 기간에 비해 11% 증가했고, 암 사망자는 8.4% 늘어난 820만명이라고 한다. 흔한 질병이면서 불멸의 질병이 암인 것이다.
노상익이 2006년 미국에서 돌아온 후 진단과 수술을 집도한 환자들의 리스트만 봐도 꽤 두툼한 양이다. 이 리스트를 시작으로 한번 병원을 찾은 암 환자는 퇴원 후에도 재발 여부나 몸에 다른 이상이 없는지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의사와 계속 만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계속 자료들이 쌓인다. 사실상 환자 한명 한명을 추적해가는 것이다. 그 사이에 모아지는 데이터는 종류도 다양하다. 환자의 개인자료에서 임상차트 기록, 감시장치의 모니터링, 수술사진, 다양한 검사의 결과자료 등등. 여기에 어떤 때는 환자의 초대를 받아 집을 찾기도 했다. 노상익이 근무하는 서울중앙보훈병원은 국가 유공자들이 환자의 절반이어서 환자와 의사가 관계가 더 친밀하고 지속성을 가져 삶의 연대기까지 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모아진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단지 고통 받는 암 환자를 위한 기록물이 아니라 암이라는 불멸의 질병 내면으로 들어가 그 성격을 이해하고, 암이 갖는 의학적, 과학적,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노상익의 연작 ‘Biography of cancer’(암 연대기) 시리즈는 암을 둘러싼 다양한 함의에 대한 시각예술적인 리서치이다. ‘암 연대기’는 평소 노상익이 익숙한 의학 논문의 형식을 차용해 ‘도입’(introduction), ‘재료와 방법’(material and method), ‘결과’(result), ‘결론’(conclusion), ‘토의’(discussion) 다섯 부분으로 나뉘고, 지난 2008년부터 개인전과 대구사진비엔날레 전시 등을 통해 지금까지 세 번째 부분까지 작업이 공개되었다. 그간 노상익의 작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기호와 용어는 굳이 그 내용을 읽고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단지 병원 안에서 오가는 기록들이 일반적인 기록과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병원을 찾은 암 환자들 한명 한명이 어떤 치료를 받고 결과가 어떤지에 따라 당사자와 주변인은 물론 무수한 사회시스템이 얽혀있다. 환자와 가족, 환자와 의사, 의사와 병원 여기에 제약회사와 의료기구상까지 얽힌 여러 관계와 시스템, 이권 사이에서 환자는 때론 희망을 품고 때로는 절망한다. 환자 한명의 치료과정에는 이처럼 사회의 다면적인 관계나 시스템이 숨어있고, 노상익은 이를 작업으로 풀어낸다.
노상익의 작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있다면 환자의 등록번호이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차가운 느낌의 이 숫자배열은 병원에서 환자 한명 한명을 지칭하는 번호이다. 그래서 노상익의 작업에 등장하는 등록번호는 바로 자신이 담당한 실재했던 환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의미한다. 바로 자신의 환자인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그리고 살고자 했는지 곁에서 지켜보았고, 자신도 살리고자 했지만 떠나보내야 했던 많은 이들. 그 앞에 어떤 수사나 감성은 불필요해 보인다. 의사로서 작가로서 최대한 남은 흔적을 모으고 분류하고 구성해 그것을 관객에게 내보일 뿐이다.
2년 만에 노상익의 개인전이 열린다. 서울 강남의 스페이스22의 개관 1주년 기념전으로 준비되는 전시에서는 그동안의 ‘암 연대기’보다 더 시각적이며 작가의 감성이 드러나는 작품 ‘blog : surgical diary’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또 ‘retractors in situ’(장착된 견인기) 시리즈도 일부 함께 전시된다. 수술실에서 배에 꽂거나 무지막지하게 살을 벌리는 견인기의 살풍경은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노상익의 개인전 <{blog: surgical diary}>는 12월 22일부터 오는 1월 22일까지 계속된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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