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자
김시습 /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나 손은 느리고 생각만 많은 천성을 확인하고는 대학원은 미술이론과로 진학하여 「조선미술전람회의 그림에 나타나는 어린이 이미지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독립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2010년 《옆-사람》(갤러리 175)과 《두고 온 것들》(복도갤러리), 2014년 《청춘과 잉여》(커먼센터)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2016년에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 레지던시 매니저로 일했으며, 현재 동시대 미술 및 시각문화에 관심을 갖고 기획자와 글쟁이로서 활동하고 있다.
○ 참여작가
권세정 /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16년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2017년 《A Research on Feminist Art Now》에 참여했으며, 샌드페이퍼스 멤버로 친구들과 함께 『키티 데카당스』를 출판했다. 눈앞에서 쫓아내고 싶은 것들, 예를 들면, 얼룩덜룩한 것, 표면이 고르지 않은 것, 서로 어긋나는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 그래서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것들을 쫓고 있다.
김웅용 / 영화와 현대미술을 전공했고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실에서 일했다. 기록물을 변형하여 무빙 이미지로 작업하고 있다. 2014년 문래예술공장에서 퍼포먼스 공연 <오호츠크해 고기압: 결정된 우연에 반응하는 에피소드들>과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또 다른 공연 <피부 밑에 숨은 이름들>을 연출했으며, 《젊은 모색》전에 참여했다. 2015년 자체 프로덕션인 프리-포스트 전자기를 통해 개인전 《자동재생: 소프트 카피 드라마》를 개최했다. 같은 해 백남준아트센터의 《랜덤 액세스》전에, 2016년 시청각의 《건설적 대화》전에 참여했다.
임영주 / 영상, 회화, 책 등의 방식으로 미신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언어, 미디어, 과학현실의 여러 징후들과 연결한다. 《돌과 요정》(더 북 소사이어티, 2016), 《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스페이스 오뉴월, 2016) 등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두산아트랩》(두산갤러리, 2017), 《착화점》(인사미술공간, 2017), 《do it 2017, Seoul》(일민미술관, 2017)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최윤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했다. 왜곡된 속도 속에서 양산되어 소비되는 이미지와 집단적 믿음의 상투성에 목소리를 내는 작업을 주로 한다. 최근에는 ‘하나코’라는 익명의 여성에 집중하고 있으며, yunyunchoi.com에 ‘이미지 생산자 윤윤최’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작업의 재료를 올린다. 참여한 전시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북서울 미술관, 2017), 《Shame on You》(두산 갤러리 뉴욕, 2017), 《A Snowflake》(국제 갤러리, 2017) 등이 있다.
○ Curator
Si-seup Kim / Kim majored painting in college, only to find out about his true nature: slow hands and a mind full of thoughts. This realization led him to continue his graduate study in the department of Art Theory where he received an MA where he created his thesis titled, “A Study on Images of Children in the Paintings of the Joseon Art Exhibition.” As an independent curator, Kim has curated many exhibitions namely, Person By Your Side and Things Left Behind in 2010 and The Young and The Restless in 2014. Kim worked as the residency program manager at Yangju City Chang Ucchin Museum of Art in 2016 and is currently working as an independent curator and writer on contemporary art and visual culture.
○ Artists
SeaJung Kwon / Kwon studied painting at Hongik University. Kwon participated in Feminism Media Artivist Biennale 2016. In 2017 Kwon participated in A Research on Feminist Art Now, and published Kitty Decadence as a member of the art collective “Sandpapers.” Kwon is pursuing things to be avoided ― such as speckled things, things with an uneven surface, have conflicting features, and cannot be grasped at once because of their complexities.
WoongYong Kim / Kim studied cinema and contemporary art and worked in the Preservation Department at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Kim works with deformed documentations and often uses moving image as his final form. In 2014, Kim directed the performance titled, Ohotsk High Pressure: Episodes Reacted on Decided Accident, at Seoul Art Space Mullae and, Names Hidden Underneath the Skin, at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He also participated in Young Korean Artists 2014. In 2015, Kim presented his solo show titled, Self-moving reproduction: Soft Copy Drama, featuring a self-produced pre-post electronic machine and participated in Random Access at Nam June Paik Art Center. In 2016, Kim participated in Constructive Dialogue at the Audio Visual Pavilion.
Youngzoo IM / IM works with moving image, painting, and publications to connect religious experiences such as superstition to language, media, and many symptoms of scientific reality. Youngzoo’s solo shows include Rock and Fairy (The Book Society, 2016) and THEWESTERLIESWINDCOMESANDGOES (Space O'NewWall, 2016). Youngzoo has also participated in group exhibitions such as Doosan Art LAB (DOOSAN Gallery, 2017), Ignition Point (Insa Art Space, 2017), and do it 2017, Seoul (Ilmin Museum of Art, 2017).
Yun Choi / Choi graduated from Department of Fine Art at the Korean National University of Arts. Choi’s works comment on the images proliferated and consumed in distorted pace, and the banality of collective belief. Recently, Choi has been concentrating on the anonymous woman “Hanaco,” and steadily uploading the materials for their work on yunyunchoi.com under the username: “image producer yunyunchoi.” Choi has participated in exhibitions including No Longer Objects (Buk Seoul Museum of Art, 2017), Shame on You (DOOSAN Gallery New York, 2017), and A Snowflake (Kukje Gallery, 2017).
추상 抽象 Abstraction
김시습(큐레이터)
이미지가 쏟아진다. 오늘날 이미지와 관련하여 어떤 소외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생산수단의 소유와 연관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소외다. 요즘 사람들은 이미지가 너무 많아서 소외된다. 우리에겐 어떤 대상을 온전하게 보고 경험할 틈이 주어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보기 이전에 그것을 카메라에 담고 SNS에 올려야 한다. 타임라인에 올라온 이 이미지들은 시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이미지가 먼저 있었던 이미지를 뒤로 밀어내면서 거꾸로 넘쳐 흘러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그 자체로 크게 개탄할 만한 일은 아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의사소통 방식이니 말이다. 진짜 문제는 쏟아진 이미지들이 향하는 방향이다. 무질서하게 쏟아지는 것으로만 보였던 이미지들이 실상은 때때로 기존의 질서를 답습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면 어떨까? 이미지를 주워 담는 것은 이제 소수의 권력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흐뭇해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당장에 이 이미지들이 향하는 곳은 ‘댓글지옥’으로 대변되는 혐오의 수렁이다. 무의미한 세계에 의미를 불어넣기 위해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는다는 점에서 이곳은 바닥으로 내려와 표층화된 종교의 세계를 이룬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이처럼 위치만 바꾼 권력의 작용을 환속화(secolarizzazione)라는 비판적인 말로 규정했다. 이곳에서 이미지는 ‘-녀’, ‘-충’ 등의 단어나 여러 종류의 음모론, 또는 ‘기-승-전-메갈’의 서사와 같은 환속적 언어로 수렴된다.
오프라인이라고 해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는 광장의 민주적 이미지가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역설을 보게 된다. “암탉”이나 “미스박”과 같이 촛불시민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환속적 이미지들. 이들이 환속적인 까닭은 탄핵당한 대통령의 실질적 과오 대신에 그의 여성성을 비아냥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탄핵의 성과는 온전히 평가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래서 이들은 더욱 난감하다. 태극기 부대의 시대착오적 이미지는 매우 가까이에서가 아니라면 공포스럽기보다는 희극적으로 느껴진다. 때론 심지어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촛불시민의 시대착오에 대해서는 거리를 만들어내기조차 어렵다.
《추상(抽象, abstraction)》은 이러한 이미지 과잉의 시대 ‘헬조선’에 대한 반응으로서 기획되었다. 환속의 언어를 향해 치닫는 이미지 폭포의 물길을 잠시 막고, 이미지가 이미지 자체로 남을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해보면 어떨까? 한데 모인 이미지들이 우물을 만들면 그것은 그 자체로 풍경이 되는 동시에 그 반대편의 풍경 또한 거울처럼 비추게 되지 않을까?
《추상》이라는 이 전시의 제목은 이처럼 환속의 흐름으로부터 이미지를 떼어놓는 행위나 작용을 의미한다. 이는 구체화(具體化)나 재현(再現)의 반대말로 쓰이는 이 용어의 일반적인 쓰임을 다소 비튼 것이다. 추상을 뜻하는 한자어의 맨 앞글자인 ‘抽’와 영어의 접두사인 ‘ab-’은 동일하게 추출하거나 떼어낸다는 뜻을 가진다. 고로 추상이란 말에는 특정 이미지로부터 필요한 이미지를 떼어내는 행위나 작용이라는 뜻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질문과 이름 앞으로 권세정, 김웅용, 임영주, 최윤 이렇게 네 명의 작가가 불리었다. 파운드 푸티지와 파운드 오브제를 적극 활용하는 이들의 작업에서 이미지는 종래의 쓰임으로부터 분리되어 이곳 합정지구에 낯설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또 조금은 을씨년스럽게 제시된다. 철모르는 아이들의 놀이인 동시에 절박하게 내미는 중단의 손짓이기도 한 이들의 행위가 낙인과 혐오로 점철된 오늘날 이미지 사용법의 기원과 구조를 어렴풋하게나마 비추기를 기대한다.
기획자와의 대화
김시습 (큐레이터), 박희정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매니저)
박희정| 먼저 제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전시를 본 많은 이들이 ≪추상≫이라는 전시의 제목을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 같다. 회화 전시를 떠오르게 하는 제목이지만, 회화 출품작은 최윤 작가의 작품 단 한 점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순전한 회화라기보다는 설치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전시작은 주로 영상이나 설치 작업이었다. 전시서문에 보면 ≪추상≫이라는 제목에 대해 “환속의 흐름으로부터 이미지를 떼어놓는 행위나 작용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언급했는데, 제목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김시습| 추상이라는 용어를 다소 낯설게 사용하면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이 말의 용법을 의문시해보고 싶었다. 물론 이것이 전시의 주된 목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추상이라고 하면 재현에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달리 말해 이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어떤 대상이나 그러한 대상을 만들어 내는 행위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런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어떤 것을 재현할 때 수많은 추상작용(abstraction)이 이뤄진다. 추상이란 형상(形象)을 추출하거나 끌어낸다는 뜻인데, 사실상 이러한 작용을 포함하지 않는 미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사람들은 아무리 재현적인 그림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외워서” 그림을 그린다. 실제 대상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머릿속에 추출되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그린다는 말이다. 또 아무리 재현적인 그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서 그리고자 하는 형상을 선택한다. 눈앞에 존재하는 수많은 형상 중에 나머지를 배제하고 하나를 추출하는 행위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앞서는 것이다. 추상이라는 말을 이렇게 이해했을 때, 이 말에 입혀져 있는 오랜 신화가 벗겨진다고 생각했다. 미술에 나타나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그것이 특정한 현실을 넘어 승화되고 고양된 대상이라는 신화에 둘러싸여 있지만, 이와 다르게 실제로 이것은 현실의 조각난 한 부분에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파운드 푸티지나 파운드 오브제처럼 기성의 이미지를 대놓고 활용하는 작업의 방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적절하다고 여겼다. 이는 전시에 포함된 네 명의 작가 모두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업의 방법이다.
박희정| 유튜브나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추출한 영상이나 음원, 스크린 세이버 등 우리를 둘러싼 디지털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 외에도 전시된 모든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냉소나 자조적 태도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전시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느꼈다. 액정이 깨진 것처럼 보이는 휴대폰에서 심폐소생술 교육 장면이 반복적으로 재생되던 최윤의 작업이라든지,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엄마와의 대화를 기계 음성 처리해 일종의 거리두기를 시도한 권세정의 작업이 그 예라 하겠다. 또한 마치 최면을 거는 것 같은 임영주의 영상이나 이른바 ‘휴거사태’로 대표되는 세기말 집단적 망상을 다룬 김웅용의 작업은 미래 혹은 진보 따위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시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분위기나 태도는 애초의 기획단계에서 의도된 것인가? 아니면 전시 준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인가?
김시습| 반반이다. 근래에 서울에서 열리는 여러 종류의 전시를 보면서 또래의 젊은 작가들, 주로 80년대 태생 작가들의 작업에 공통되게 흐르는 어떤 정서나 태도 같은 것이 있다고 느꼈다. 자신이 속해 있는 토대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웃어버리는 태도인데, 나는 이것을 비관주의라는 말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상≫을 처음 기획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키워드가 바로 이 비관주의라는 용어였다. 그래서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획안을 작성하고 작가들을 선정했다. 작성한 기획안을 토대로 작가들에게 신작 제작을 의뢰했으니, 어느 정도 이런 의도가 공유된 셈이다. 하지만 개별 작품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와 관련하여 특정한 주제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가능성을 두고 작품의 주제와 형식을 조율했으므로 어느 정도는 작가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관심이나 성향이 자연스럽게 전시에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희정| 비관주의라는 말에 대해서 좀 더 부연 설명을 해 달라. 작업은 작업대로 이와 연관하여 각자의 말들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기획자의 생각도 궁금하다.
김시습| 작품들이 말하고 있다면 나의 생각보다는 그 말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짧게만 나의 생각을 보태자면, 나는 트위터 등 SNS상에 만연한 비관주의적인 태도를 매우 좋아한다. 왜냐하면 비관주의는 지금 이곳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어떤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나를 포함한 이 세계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실로 느낄 때가 있는데, 이 느낌을 SNS와 같은 창구를 통해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단순한 푸념이나 자조를 넘어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정동(情動, affect)을 집단적으로 구성할 때에만 현재 이곳을 뿌리부터 흔들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서울의 미술에서 자주 보이는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경향은 이러한 움직임의 일부이거나 최소한 그러한 움직임에 대한 작품을 통한 비평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희정| 비슷한 태도가 전시의 서문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다. 이미지 과잉의 시대인 오늘날 온오프라인상에 나타나는 혐오문화에 대해 비관적으로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점에서 전시 서문이 전시된 작품들과 다소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문에서 주로 언급하는 주제를 개별 작품들이 내용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문 자체가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다른 작품들과 나란히 놓여 있는 느낌이었다.
김시습| 날카로운 지적이다. 이렇게 된 데에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서문이 작품보다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전 작품이 신작으로 구성되는 전시였던 까닭에 작품의 디테일에 있어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앞서 말했듯 서문에 적은 것과 유사한 내용의 큰 아이디어만을 공유한 다음 작가들이 각자의 작업에 착수했다. 기획자인 나는 최초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동시대 이미지 환경과 참여 작품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는 짧은 에세이를 한 편 쓴 셈이다. 그리고 그보다 근본적인 다른 원인은 내용이 중심이 되는 전시를 내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의 온오프라인에서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을 혐오하는 문화가 만연하다고 할 때, 이런 상황을 풀어서 설명하거나 지탄하는 내용을 가진 작품을 줄 세우는 전시를 내가 원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혐오문화 자체가 실상은 이미지를 통해 세계가 구성되는 형식의 일종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벗어나는 것 또한 형식을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이 가능한 것인지 확신은 없으나, 내용적인 측면보다 형식적인 측면에 주목해서 보면 작품과 서문이 어긋나 있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박희정| 프로덕션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있다. 전시 작품을 전부 신작으로 구상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네 명의 작가들로부터 모두 신작을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떤 과정으로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김시습| 실제로 그 부분에서 가장 어려움이 많았다. 최종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를 전시 오픈 직전까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조마조마했다. 상당 부분 작가들을 믿고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작품 제작을 위한 절차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 틀을 만들어 놓고 절차대로 진행했다. 우선 이메일 서신 교환이나 작업실 방문 등을 통해 전시의 큰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단계가 몇 차례 있었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중간 과정을 점검했다. 전시 오픈 한 달 전인 8월 5일에는 퍼폼 플레이스에서 《모니터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규모의 사전 상영회를 개최했다.
박희정| 사전 상영회를 개최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모니터 테스트》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김시습| 《모니터 테스트》는 작품이 최종으로 설치되기 전 80% 이상 완성된 영상 작품을 스크린을 통해 점검하는 자리였다. 애초의 취지는 그러했으나 모든 작가가 그만큼의 완성도를 맞추지는 않았다. 어쨌든 당시에는 본격적으로 개관하기 이전이었던 퍼폼 플레이스라는 공간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알고 반나절 정도 빌려서 진행했다. 작가를 비롯하여 합정지구 및 퍼폼 플레이스의 관계자가 참여했으며, 여기에 추가로 SNS를 통해 10명 이내의 신청자를 받아 함께 관람했다. 100%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공개한다는 것이 작가에게나 기획자에게나 매우 부담스러운 일인지라 직전까지 개최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결과적으로는 전시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작가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기획자는 작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박희정|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알려 달라. 독립 기획자로서 이런 식의 기획을 앞으로 더 해볼 생각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혹시 다음 전시의 주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김시습| 유사한 형식의 전시를 다시 할 기회가 생길지 확신은 없으나, 만약 하게 된다면 추상에 대한 전시를 한 번 했으니 이제는 반대로 리얼리즘에 대한 전시를 해보고 싶다. 리얼리즘에 대한 전시나 논의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논점을 벗어나 있는 경우가 다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주로 투박한 형태의 두 의견으로 양분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리얼’, ‘실재’, ‘현실’ 등의 개념에 특권을 부여하여 억지스러울 정도로 너무 많은 곳에 이를 끼워 맞추려는 사람들이 있으며, 다른 한쪽에는 이 개념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현실의 평면성을 설파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힘을 빼는 사람들이 있다. 둘 모두 공허하다. 전자는 주로 내용적인 측면에서 어딘가에 존재하는 ‘리얼’에 관해 이야기한다. 가령 이들은 이 허상으로 가득한 세계와 구별되는 대상으로서 미술 작품을 통해서 재현되는 민중과 민족의 존재에 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오늘날의 민중과 민족이 바로 그 허상으로 가득한 세계의 한가운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공허하다. 그리고 후자의 논의가 공허한 까닭은 이것이 실재가 부재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폭로하는 이상으로 결코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요즘에는 어떤 곳에도 진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실상 어딘가에는 진짜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전자의 논의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이들은 바로 이 허상으로 가득 찬 세계가 도대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이미지가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째서 우리의 눈앞에 있는지를 다양한 맥락 내에서 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시로 풀어내기에 매우 어려운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
(번역: 김효정, 장우진)
Abstraction
Si-seup Kim (Curator)
Images are pouring out of everywhere. If some kind of alienation occurs in relation to images in the present day, it is connected to the ways in which images are consumed rather than who owns the
means of production. Nowadays, people are alienated from the excess of images that surround them. For instance, we are not given the chance to see and experience an object in its entirety. Instead, we are occupied with capturing a moment with our smartphones ― taking pictures and uploading them on social media even before seeing the objects with the naked eye. These images on the feed seem to move forward with time. At the same time, these images seem to overflow, while new images push away preexisting ones on the feed.
Yet this phenomenon is nothing to be deplored since it is how we communicate in the current day. The real issue is where the flooding images are directed. What if the images that seemed to chaotically pour out of everywhere were, in fact, occasionally flowing in a direction that follows the existing order? It is no longer an exclusive, small number of people in power that wield power over images. While those in power might remain complacent about their authority, these images are immediately directed towards the swamp of hatred represented by the ‘comments hell.’ This world of comments resembles the superficial world of secularized religion in that both constantly search for a scapegoat in order to pour meaning into the meaningless world. Giorgio Agamben critically defines such operations of power as ‘secolarizzazione (secularization).’ In the world of comments on the web, images converge into words such as ‘-nyeo (women),’ ‘-choong (worm).’ Additionally, various kinds of conspiracy theories merge into ’secularized’ language that focuses on ‘Megalia’ (t/n: a contentious South Korean feminist website) no matter where the starting point of the discussion is.
The above-mentioned
phenomenon continues offline. Here we witness the paradox where the democratic image of the agora flows in the same direction as in the
swamp of hatred. Secularized images originating from derogatory words such as ‘hen’ and ‘Miss Park’ (t/n: derogatory terms referring to the femininity of the impeached former president of South Korea, Geun-Hye Park) are produced and circulated by the candlelight citizen protesters. Although the democratic mass movement that led to the impeachment should be fully credited, the images produced along the way are incongruent with the noble aspirations the impeachment stands for. The anachronistic images of the ‘Taegeukgi Troop‘ (t/n: South Korean extreme Chauvinist group) look rather ridiculous as opposed to frightening, unless they are seen closely. They even seem pitiful at times. Yet, it is difficult to create such distance when it comes to the anachronism of the candlelight citizen protesters.
The exhibition Abstraction was organized as a reaction to ‘Hell Joseon’ (t/n: a term that refers to the hopeless living conditions in South Korea in the 2010s) " in the age of overflowing images. What would it be like to provide time and space for images to remain themselves ―even for a short while― by blocking the path of the images pouring into secularized language? If the images gather together and make up a well, wouldn’t the well make a scenery by itself while it reflects the scene on the opposite side as if it were a mirror?
The title of the exhibition, Abstraction, refers to an act or operation that detaches the image from the secularized flow as described above. This somewhat twists the general use of the word, abstraction, which is the antonym for concretization or representation. The first letter of the Sino-Korean word for abstraction(抽象) ‘抽,’ and the English prefix ‘ab-,’ both mean to extract or detach. Accordingly, inscribed in the word abstraction is the act or operation that detaches a certain image from the image.
With these concerns and concepts, the four artists, SeaJung Kwon, WoongYong Kim, Youngzoo IM and Yun Choi, were selected to present their works. The works of these artists actively make use of found footage and found objects, the images are detached from their conventional use and presented at HAPJUNGJIGU in unfamiliar, humorous, and somewhat bleak ways. Their actions are like child’s play and a desperate gesture for interruption at the same time. These artists shed light on the origin, structure, and treatment of images today, which is immersed with stigma and hatred.
A conversation with the curator
Si-seup Kim (Curator), Heejung Park (Manager, MMCA Residency Changdong)
Park | Let’s start with the title of the exhibition. Many of the visitors commented that they found the title of the exhibition ―Abstraction― interesting. Although the title makes the audience to expect a painting show, Yun Choi’s work is the only painting in the exhibition. Choi’s work is more like an installation than painting, though. Most of the works exhibited are video or installation based. In the exhibition essay, you wrote that the title of the exhibition, Abstraction, refers to “an act or operation that detaches the image from the secularized flow.” Could you speak more about the title?
Kim | I tried to question the general use of the term by using it in an unfamiliar way, although that was not the main goal of the exhibition. Normally, abstraction is considered to be the opposite of representation. In other words, the term is considered to refer to an object that is different from a visible and concrete entity, or actions that makes such objects. However, contrary to this conventional understanding, abstraction is involved in numerous cases of representation. Abstraction means to extract or pull out the form. I would say all art involves this process. Let’s take the process of painting for example. However figurative a painting is, the painter depends on her/his memory to a certain degree. This means that the painter portrays what has already been extracted instead of conveying the real object on the canvas. Moreover, however figurative a painting is, we choose what form to paint before the actual painting process. The act of painting is preceded by the act of extracting a form out of numerous forms. I thought this way of understanding of the term abstraction would demystify it. Abstract images in the art are mystified to be as something sublimated and elevated as beyond a specific reality. However, abstract images are rather a fragmented part of the reality. Accordingly, I thought it would be appropriate to posit the term to refer to the method of art making using preexisting images such as found footage and found objects. This explains the method of art making frequently used by all four artists in this exhibition.
Park | All the works in the exhibition are closely related to the digital environment that surrounds us such as YouTube, videos from digital archives, and screen savers. Not only that, one of the prominent features of the exhibition is that the works commonly express cynicism or a self-mocking attitude. Yun Choi and SeaJung Kwon’s works are the examples that manifest that point. In Choi’s work, a CPR instruction scene is played repeatedly on the cellphone with the seemingly broken screen. Kwon’s work attempts to generate a distancing effect by manipulating the voice in conversation with Kwon and her mother who blatantly exposes stereotypical prejudice in the society. Also, the hypnotic video by Youngzoo IM or WoongYong Kim’s work that deals with apocalyptic collective delusion represented by so-called ‘Rapture happening,’ seems to suggest that there is no such thing as future or progress. Were these atmospheres and attitudes considered in the curatorial plan or were they revealed naturally in the process of installing the exhibition?
Kim | Half and half. In the works recently presented in the exhibitions held in Seoul, I found a common sentiment or attitude in the works by emerging artists who were mostly born in the 80s. They show the attitude that either denies or laughs at the ground they stand on and I think those attitudes could be defined as ‘pessimism.’ This term was the first word that came up when I started to organize Abstraction. Accordingly, the term was the focus when writing the exhibition proposal and selecting the artists. Such intentions are shared because the new works are commissioned based on that proposal. However, the specific subject matter was not suggested for individual works. Since we were open to quite a broad range of possibility when adjusting the subject matter and the formal aspects of the works, the artists’ own interests and stances might have been reflected in the exhibition.
Park | Could you elaborate more on the ‘pessimism’? It seems that the works in this exhibition relate to that issue in their own ways, but I would like to hear more from the curator’s perspective.
Kim | If you feel that the works speak for themselves, their utterance would matter more than my thoughts on them. To add a few of my thoughts, I strongly like the prevalent pessimism on social media platforms such as Twitter because that pessimism could function as a driving force to imagine a totally different world than here and now. Anyone can feel that the world they are in is falling to the ground, and the utterance of the feeling through the social media could be more than mere venting or self-mocking. Only when the affect is collectively constituted in this way, can groundbreaking change happen. The pessimistic and self-mocking trend commonly found in art in Seoul these days could be part of that possibility or critique of that possibility made through the artworks.
Park | A similar attitude can be found in the exhibition essay. In it, the culture of hatred on/offline in today’s world of overflowing images is examined with a pessimistic attitude. But then, I found the exhibition essay is in a somewhat incongruent relationship with the exhibited works. Since individual work does not really speak to the issues mentioned in the exhibition essay, the essay seems as if it is a part of the exhibited works.
Kim | That is a good point. There could be two reasons. The first reason would be that the essay was completed before the works were completed. Since all the works in the exhibition were new works, there were some details of works that I could not control. As I said before, I only shared the big question outlined in the exhibition essay and the artists began working on their own. As a curator, I developed the initial idea and wrote an essay that connects the contemporary image environment to the participating works. One more fundamental reason that the essay and the works look incongruent with each other is that I did not want the exhibition to be content-heavy. In other words, I did not want the exhibition to display the list of artworks that illustrate or criticize the prevalent culture of hatred toward minorities on/offline in current Korean society. I considered the culture of hatred in a kind of world-making form through images and the restructuring of the form can be a way to move away from it. I am being cautious in formulating this idea, but I think it could be circulatory when it comes to the content, whereas it couldn’t be so when examined on formal aspects.
Park | I want to hear more about the production process as well. It was impressive to see that all the exhibited works are newly produced. I assume that it might not have been easy to ask for artists to produce new works and I would like to hear more about the process.
Kim | That is, in fact, the hardest part. I was nervous that I could not know how the works will turn out to be until right before the opening. All I could do was nothing but believe in the artists. Of course, we had set certain frameworks and protocols to follow. In the beginning, we shared the big picture of the exhibition in email exchanges and studio visits. Then I would follow up in the meantime with each artist individually. A month before the opening day, we held a pre-exhibition screening event titled Monitor Test.
Park | It is interesting that you held a screening event prior to the exhibition. Could you explain Monitor Test a bit more?
Kim |Monitor Test was held to check the 80% completed video works before they were installed. That was just the original intention, but not all artists completed that much. It was held for half of the day at an art space called Perform Place―it was before it was officially open to the public―because the space had a screen. Participating artists, the staff from HAPJUNGJIGU, and Perform Place, and ten people who registered through social media also attended. I was reluctant if I should cancel it until the last-minute because the idea of presenting works that are not 100% finished put much pressure on artists as well as myself. In the end, I think it helped a lot for the exhibition. The pre-exhibition screening motivated the artists to improve the final quality of the works, as well as provide the curator an opportunity to overview the works.
Park | Could you share what your upcoming plans are? Are you up for curating more shows like this as an independent curator? If so, what are the possible themes for the next exhibitions?
Kim | I am not sure if I will curate an exhibition in a similar format, but if I do, I would curate an exhibition on realism, as opposed to the abstraction that I worked on this time. Although exhibitions and discussion on realism have been around for long, I think most of them did not get the point. They tend to be based on a rough dichotomy. On the one side, there are the critics and artists who put too much privilege on notions of ‘real’ or ‘reality,’ applying it to understand anything. On the other side, there are the ones who put too much energy on exposing the meaninglessness of such notions and insisting the flatness of reality. Both are meaningless. The former is concerned with the content of the works and discussing the ‘real’ that may exist somewhere else. They repeatedly talk about the presence of minjung [the people] and minjok [ethnic group] in artworks, contrary to the world that is full of false images. However, this logic is meaningless in that it ignores the fact that today’s minjung and minjok are situated in the middle of a world that is full of false images. The latter are meaningless because they never advance further than exposing the reality of the present moment where the real is absent. The argument that says the ‘real’ does not exist anywhere today is not much different from the argument that the ‘real’ exists somewhere: they both do not say anything about how this world full of false images is composed. What is needed at the present moment is not a discussion about whether the images that we are facing are real or fake. Instead, we need to talk about why the images are presented to us in diverse context. It might be a hard subject to talk about in the form of an exhibition, but I would like to try one day.
(translated by HyoJung Kim, Woojin 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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