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2008 영국 글라스고 스쿨 오브 아트, 순수미술 석사졸업
MFA Glasgow School of Art, Glasgow, United Kingdom
2003 호주 맬버른 대학교 빅토리안 컬리지 오브 아트, 시각미술 석사졸업
MVA Victorian College of the Arts, University of Melbourne, Australia
2001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14 We Are The Clay, You Are The Potter, Salon De H, 살롱 드 에이치 서울
2013 Judgment Day & God Who Made Daddy, Pillow, and Blanket, 스페이스 캔,서울
2010 Evolution, Intermedia, Centre for Contemporary Arts(CCA), 글라스고, 영국
2009 Believer & Doubter (Duo show), De Vrije Ruimten Tetem ll, 엔스키데, 네덜란드
2004 Where Saints Live, Alternative Space Loop, 대안공간 루프, 서울
그룹전 및 프로젝트
2013 It supposed to be Black & White, 난지 겔러리, 서울
Open Portfolio, 사비나 미술관, 서울
Can Can China, Space CAN Beijing, 베이징, 중국
2012 Meta Empire, Exco, 대구
Art Omi International Artists Residency Program, 뉴욕, 미국
Up And Comers, 신진기예,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토탈미술관, 서울
2011 Sublimation, 스페이스 캔, 캔파운데이션, 서울
2010 Must I Paint You A Picture?, member show, Transmission Gallery, 글라스고, 영국
2009-10 Supervisons (curated by British Council & Korean Cultural Centre), KCC, 런던, 영국
2009 Kunstruimte Villa De Bank, 3 person show (with Sangwoo Kang and Rachel Peddersen),
엔스키데, 네덜란드
Multi Solo, De Vrije Ruimten Tetem ll, 엔스키데, 네덜란드
Die Die Die, member show, Transmission Gallery, 글라스고, 영국
Flying Cream Carpet, Camden People's Theatre, 런던, 영국
2008 The Golden Fleece, McLellan Galleries, 글라스고, 영국
And So It Goes, Artnews project, 베를린, 독일
MFA Degree Show, Tramway, 글라스고, 영국
Glasgow International Festival Of Visual Art - Open Studios, Glasgow School of Art, Glasgow, 영국
2004 The Project Standing by 000, 겔러리 숲, 서울
2003 Parallel pt.1, West Space, 맬번, 호주
Parallel pt.2, 한전프라자 겔러리, 서울
레지던시
2013 난지 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2 아트 오마이 Art Omi International Artists Residency Program, 뉴욕, 미국
2009 Artist Residency in Enschede, 엔스키데, 네덜란드
2008 Cityscapers, 에딘버러 대학교, 에딘버러, 영국
수상 및 지원
2014 SeMA 신진작가, 서울시립미술관
2012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레지던시 지원금
2010 개인전지원금, 글라스고 문화와 스포츠부, 영국
2009 한국문예진흥원 해외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금
2008 브리티시 카운슬 아트스트 레지던시 지원금, 영국
2002 석사과정전액장학금, Victorian College of the Arts, University of Melbourne, 호주
예술가의 존재적 의미를 찾아서: 믿거나 말거나
글 | 권 진
강상빈 작가의 전시 를 직접 보기 전까지 성경에서 그대로 가져 온 제목 만으로 나는 이 전시에 대한 놀라움과 불편함으로 머릿속이 바빴다. 이 제목이 내게 놀라운 까닭은 현대 미술에서 노골적으로 종교적인 내용을 다루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불편함은 바로 그래서 생겨나는 일종의 선입견과 같다. 대게의 현대 미술 작품들에서 종교적인 내용이 다루어지는 경우, 종교적인 아이콘이나 형상을 말 그대로 은유나 상징으로 '이용'하는 것이지, 작품에서 전하는 메시지나 질문의 내용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종교적인 것을 다루는 경우는 잘 없다. 이런 마음으로 찾아간 전시장에서 직접 강상빈의 작품을 본 후 나의 질문은 '종교' 에서 '예술'로, 혹은 '종교와 예술의 상관성'으로 옮겨갔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믿음'을 근간으로 한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 인지를 묻고 있었다.
작가의 개념을 통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발로를 찾는 현대 예술을 '보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며 우리가 접하는 무수한 양의 정보 이전에 존재하는 세상에 대한 준거를 '읽어내기'와 같은 행위다. 마치 종교에서 성서를 읽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술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읽고, 해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작업을 거친다. 이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세계와 접속하고, 머리와 마음, 때로는 온 몸의 감각에 담겨있는 정보나 코드와도 연결되고, 이를 통해 내가 읽어낸 것과의 감흥Common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은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의 인도'와 유사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와 예술에서 이러한 '읽어내기'의 과정을 지속 시키는 기제는 '믿음'이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어서, 우리는 종종 무엇을 믿어야 할 지 혹은 믿지 말아야 할 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일본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사사키 아타루는 그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 모음, 2010)에서 문학의 유효한 혁명성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여기서 그가 의미하는 문학은 종교적인 텍스트, 언어를 바탕으로 한 '문헌'이나 '서지'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고쳐 읽는 것입니다. 즉 고쳐 쓰는 것, 쓰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기묘한 사태가 떠오릅니다. 읽는다는 것에서 '믿는다는 것'이 어디까지고, 읽는다는 것은 용해되어 간다는 것임을 몇 번이나 묘사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쓰는 것'은 지우고 고쳐 쓴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을 지우고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행을 쓸 때 자신은 그것을 정말 믿는 것일까요? 믿지 않는다면 고쳐 쓸 수 없지만,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은 믿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신信과 불신의 이분법은 다 같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p 236) 그렇다. 강상빈이 반복적으로 작품에서 다루는 '믿음'에 대한 질문은, 믿지 않으면 계속해서 작업할 수 없지만, 동시에 같은 질문을 계속한다는 것은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종교와 예술”의 조합이 마냥 낯설지 만은 않은 까닭은, 단순히 '믿음'을 둘러싼 작동 방식 때문 만은 아니다. 우선 서양 미술사는 종교의 재현에 근간을 두고 발전해 왔고,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강상빈이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인용하는 시각적 아이콘 - 해골, 거울의 반사, 에디Eddie(영국 헤비메탈의 대표적인 그룹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의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캐릭터), 인체상 등은 이렇게 발전해 온 서양의 문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미술 언어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한다. 이에 관하여 작가는, “90년대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오히려 이런 서양의 문화가 더 익숙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대중 문화는 물론 주거 패턴까지도 미국의 영향을 받았고, 미국과 유럽 문화의 영향이 우리 사회의 도처에 스며있었으며,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작품에서 사용하는 서구 적인 문화 아이콘들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밖에 없다. 난 '전통'에 대한 강박을 가지는 일부 작가들의 모습이 오히려 우리의 문화 식민주의에 대한 콤플렉스이자 부정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전시장 2층에 놓여져 있는 영문 인사이클로피디아Encyclopedia 책자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다른 작품과의 연결도 잘 안되고, 언뜻 영문으로 쓰인 클래식만 하드 커버 책자를 보자마자 해외 시장을 염두 한 작가의 커리어적 선택인가 하는 의심부터 했다. 알고 보니 작가가 어렸을 적에 책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 때문에 일상에서 늘 보아왔던 오브제이자, 작가에게는 부모님 혹은 가족을 연상시키는 심볼로 작동하는 사실을 알고, 그 아이러니함과 양가적 가치가 오히려 흥미롭게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예술이 종교를 경계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세기 역사에서 예술은 진보적이고, 합리적이고, 급진적인 주체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술에 스며든 사상들은 신학보다는 근대 철학, 진보적인 아이디어, 급진적인 정치, 사회학 혹은 대중문화와 더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쉽게 말해 인문학적 관심이 예술의 중심에 서 있었다. 또한 예술 작품 커미션, 즉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재원이 예전처럼 성당이나 교회가 아닌, 미술관과 갤러리, 정부나 기업이다. 또한 지금 이순간에도 지구 상에는 종교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비상식적이고 폭력적인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전시에서 강상빈이 말하는 '종교'는 우리가 이해하는 종교의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이기 보다는, '내면의 신앙'에 대한 사고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믿음'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예술은 종교와 유사하게 작동한다. 영국 출신 철학자로 미국의 뉴스쿨New School에서 가르치고 있는 사이먼 크리츨리Simon Critchley는,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것에 대한 실망에서 철학이 시작한다”는 명제를 정치 철학의 근간으로 삼는다. 10대에 히피였던 크리츨리는 70년대 고등학생 시절에 펑크록 광 팬이었고, 이후에는 다양한 사회 정치적 활동에 가담했다. 그는, “내가 신앙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신 같은 어떤 형이상학적 실재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현대미술에 그대로 대입해도 좋을 만큼 적절한 표현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종교적인 신념이라는 것은 지적 한계와 유약함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들린다. 그리고 예술안에서 의미한다는 것은 결국 믿음 안에서 질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니멀리즘 작가 솔르윗Sol Le Witt이 1967년 발표한 <개념 미술에 대한 단상>에서 “개념 미술가들은 합리주의자 이기 보다는 신비주의자다”고 말했다. 마치 종교적 의식이나 의례에서 사물을 사용하고, 성상의 의미를 탐구하듯, 예술은 사물과 이미지에 대한 개념적인 탐색을 한다. 강상빈은 18세기 후반의 궁중화가였던 프란시스 고야Francis Goya의 작품 배경을 모티브로 차용하고, 수도승의 옷과, 관련 오브제들, 십자가 모양으로 배치된 이미지들, 팝아트의 대표적인 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의 작품 형상을 들고 온다. 이 모든 아이콘들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친숙하고, 일종의 혼합된 정보를 전달한다. 그리고 이 모든 상징을 관통하는 '에디'라는 캐릭터는 다른 상징들과 직접적으로 만나거나 대치하지 않지만, 인식의 평행선 상에서 복합적인 의식, 즉 맹목적인 믿음이나 믿음에서 야기되는 진지함을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종교와 연결된 문제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대게의 경우처럼 우리는 강상빈의 작가 노트나 비평문에서 작품에 대한 해석 혹은 미학적 신념에 대한 의견과 정보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마치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에 기대어 신앙을 구하듯, 이 실체가 없는 믿음, 즉 미술의 '윤리', '가치', '매력'이나 이것을 설명하는 미학적 언어들은 엄밀히 말해 과학적인 합리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강상빈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우리의 질문은 과연 예술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냐는 지점까지 이어진다.
2010년 봄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회고전을 열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70년대 초 유럽에서 퍼포먼스를 시작한 아브라모비치는 '퍼포먼스 아트의 대모'로 불리운다. 전시에서 보여준 작품 중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미술관 2층의 거대 아트리움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전시가 열린 3개월 동안 매일 7시간씩 관람객을 상대로 서로의 눈을 응시하는 퍼포먼스 <아티스트는 출석 중The Artist is Present>이었다. 전시는 성공적이었고, 수 천명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으며, 이들 중 많은 수가 바로 이 대면 퍼포먼스에 참여하기 위해 긴 줄을 서서 몇 시간 씩 기다리는 장사진을 이뤘다. 반복해서 참가한 관람객도 다수였다고 한다. 언론에서 보도한 사진에 찍힌 참여자들 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많았고, 이런 장면들은 흡사 극단적인 경험을 감행하는 고행 수도자를 연상하게 했다. 이 퍼포먼스는 엄숙한 규칙을 따르고, 극도로 통제된 형식 안에서, 극단의 진지함을 “보여주었다”. 물론 여기서 작가의 작품은 신체와 퍼포먼스라는 미술사적 이해 안에서 전달된다. 하지만 작가는 물론 참여한 사람들이 보여준 극단의 감정적 표현은 성지 순례지의 성모상 앞에 막 도착한 순례자들의 그것과 다름 없이 보인다.
오스카 와일드Oacar Wilde는 인생의 말년에 남색사건으로 기소되어서 레딩Reading 교도소에서 2년간 복역했고, 마지막 6개월의 형기를 남겨두고 독서와 집필이 허가되어 쓴 글이 <옥중기>라는 수필이다. 물론 그는 감옥 생활을 무척 고통스럽게 보냈다고 한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유럽 각국을 오고 다니며 자만적인 모습으로 강연을 하고, 재치와 입담으로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하던 오스카 와일드는 감옥 생활에서 큰 상처를 입고, 예전의 모습들을 모두 잃어버린다. 수필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진실이 되고자하는 모든 것이 신앙(믿음)이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진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와일드는 과학적 명제에 대한 논리적인 진실이나 자연 과학에서의 실증적인 진실을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말한 '진실'은 오히려 “진실됨Authentic”의 근본적인 마음가짐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예술은 진실이 되고자 하는가? 혹은 진실에 대해 탐구하는가?
어쩌면 예술이든 종교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믿음'을 계속해서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강상빈의 '믿음'에 대한 강박과 이 강박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작품 활동들은 지금 시대에서 예술가의 존재적 의미를 찾기 위한 그만의 의식이자, 의례이자, 때로는 고행으로 볼 수 있겠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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