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드레스덴 조형예술학교 조형예술 디플롬 졸업
드레스덴 조형예술학교 조형예술, 뉴미디어 마이스터슐러 과정 졸업
개인전
2013 Family+Zoetrope, 갤러리 비원, 서울
2010 이동주 개인전- 김종영미술관 청년작가지원전, 김종영미술관, 서울
2008 What is it like to be a bat, 김진혜 갤러리, 서울
단체전
2013 제 51회 낙우조각회전,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2013 은하철도의 밤, 남포미술관, 고흥
2012 Poly-Politic, 갤러리 쿤스트 독, 서울
2012 낙우 조각회 50주년 기념전, 김종영미술관, 서울
2011 몹쓸 낭만주의, 아르코미술관, 서울
2011 제 49회 낙우조각회전,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2010 SBS 투모로우 페스티벌, 목동SBS 오목공원, 서울
2010 세상을 드로잉하다,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09 야생- 도라산에서 만나다, 도라산평화공원, 도라산역, 파주
2009 꽃순이를 아시나요,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군산
2009 Nanji Relay Exhibition, 난지갤러리, 서울
2009 Green Tale, 문화일보갤러리, 서울
2009 Red Core, 갤러리 LVS, 서울
2008 생의 매력 The Fascination for Life, 갤러리 LVS, 서울
2008 Art Culture in 궁 (Hi Seoul Festival), 덕수궁 돌담 길, 서울
2008 SeMA-미술을 바라보는 네 가지 방식,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7 Le Monde, Beart Center, 평택
2006 BRAND KLASSE MEIER’ Kunstlerhaus Dortmund, Dortmund, 독일
2006 dual, Gebaude 116, Dresden, 독일
2006 Dresden-Korea, Goethe-Institut, Dresden, 독일
2006 im_nu, Gallery Doppel De, Dresden, 독일
2005 daheim, Projektraum Kastanienallee, Berlin, 독일
2005 Schurumfende Stadt (바우하우스 데싸우와 협업), Halle-Neustadt, 독일
2005 rein raus, Industire Gelande, Dresden, 독일
amily+Zoetrope
최흥철 (전시기획자)
민트 맛 아이스크림 색의 철제 원통형 회전 장치와, 수직 왕복장치에 고정되어서 이것을 집요하게 훑고 있는 비디오 카메라가 서로 맞물려서 쉼 없이 돌아가고 있는 는 언뜻 갤러리 비원의 전시장을 공작기계가 들어 선 영등포의 작은 공장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다. 드럼 형태와 수직 기어를 작동시키는 전기식 구동 장치의 퉁퉁거리는 마찰음이 백색 입방체 갤러리 공간 속에서 휴식 없이 노동하는 기계의 공명하는 신음을 규칙적인 일으키며 관객들의 주의를 지속해서 환기시키고 있다.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사물의 시선이라는 바라보기의 확장된 개념으로 또 다른 소통방식을 실험하는 동영상과, 오브제를 결합하는 설치작업을 제시하는 작가 이동주(1971~ )는 이번 전시에서 2009년 선보였던 사진 이미지를 모아 영상으로 만드는 키네틱 조각 <돌아가는 세상-Zoetrope>에 이어 한 가족 모두를 하나의 얼굴로 가산 혼합하는 초상이라는 개념을 사회문화적 영역으로 더 확장시키고, 사진 탄생 이전 시기에 고안된 동영상 재생장치 중 하나인 죠트로프(zoetrope)를 디지털 기기와 결합하는 기계장치로 제작한 신작을 발표하였다.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수집한 한 가족을 단위로 하는 무명인 그룹의 초상들- 물론 그것의 중심에는 작가의 가계보(家系譜)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이 바둑판처럼 표면 전체를 덮고 있는 수직 형태의 실린더는 기름칠한 바퀴가 매끄럽게 구르듯 무한대로 회전 운동하고 있고, 이 부분의 표면을 접사 촬영하는 카메라는 회전하는 초상들을 실시간으로 포착한 후 디지털 신호로 변환시킨 영상 이미지를 유선으로 연결된 비디오 프로젝터로 재송신한다. 원기둥 표면에서 회전하는 얼굴 사진들은 수평으로 흘러가는 영상으로 위상과 매체가 전환되어 맞은 편 벽면 위로 투영되고 있다. 기술의 입장에서 보자면 총체적으로 갤러리의 내부 공간을 일종의 기억 재생 투사 장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단일한 시스템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 작품의 설명에 적용할 수 있다.
작가 주변, 자신이 속한 일상의 영역을 시각적 요소로 분해하여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를 마치 관망자처럼 바라보는 그의 작업은, 의도를 배제한 무심한 시선을 관객에게 던지는 사물로 재창조해 오고 있다. 이와 같은 이동주 작업 방식을 흐름을 재고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지배적으로 구조화된 개념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이미지를 다루는 2가지 방식, 즉 예술적 형식의 통합적 구조 창출과 함께 광학적 미디어의 기술 재조합(도해와 해체, 차용, 그리고 기계적 구조와 생리적 구조를 하나로 합치기 위한)을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증거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과학 수사관의 역할이나 생물학자의 분류와 연결 관계 맺기를 통한 유형학적 작업과 연관이 깊다. 부계, 모계를 망라하여, 가계보에서 확인되는 닮은 얼굴과 종 생식을 통한 유전자 대물림 사이에서 발현되는 유사성에 착안하여 가족의 초상을 추출한다. 결국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집단인 가족 사이의 정체성 확인의 첫 관문은 자손에게 대물림 되는 관상학적 특징을 통해 동류임을 서로 인식하고 결속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이 작품의 핵심으로 언급하고 있는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과정에서 작가는 한 가족의 구성원의 얼굴을 부분적으로 조립하는 몽타주 작성법 대신에 거의 투명한 이미지들이 관객들의 망막에서 동시에 겹쳐지는 듯한 총체적인 광학 합성을 시도한다.
결과적으로 하나로 추출되는 윤곽이 흐릿한 초상 이미지는 누구의 얼굴도 아니지만 모두를 닮은 초상이 된다. 시간의 축, 즉 단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 개입하여 수직적 가계도의 수평적 연결을 시도한 이 새로운 인물의 이미지 투영 장치는 비단 특정 가족의 근친관계 확인을 넘어 사회, 계층, 직업별 집단에도 적용 할 수 있고, 비록 오늘날 후진적인 이데올로기로 치부되는 민족학이라는 거대 개념 단위에도 적용 가능한 다소 우려의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으나 보다 열린 사고와 광대역적 관점에서 시공을 넘고, 다인종간의 차이를 초월하여 서사적인 인류의 초상을 가상적이나마 추출해내는 투영 장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각 인식의 과정을 디지털 기계식으로 도해(圖解)하려는 시도는 감각 기관의 기능 각각을 기계장치로 대치하는 것으로 발견할 수 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동주의 새로운 죠트로프 장치가 원통형 저장장치, 상하 운동하는 바늘, 나팔관 형태의 소리 증폭장치로 구성된 에디슨 등의 초창기 축음기와 기본적인 기능과 형태의 구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정보이론을 정립한 섀넌(Claude Elwood Shannon, 1916~2001)의 표현대로 일종의 비휘발성 데이터 저장장치인 원기둥 형태의 드럼은 회전운동을 반복하며 이미지를 송신하고 있고, 저장장치의 표면을 수직 왕복운동하며 이미지를 수신, 입력, 저장, 전송하는 비디오 카메라, 그리고 증폭장치인 비디오 프로젝터는 전송된 데이터를 변환하여 이미지의 회전 운동을 재송신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우리의 망막은 다시 이미지 데이터를 수신하여 시신경망을 거쳐 축축한 생물학적 메모리에 저장 처리한다.
이동주는 과거 이미지 입력장치로서의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이용하여 촬영한 태양광에 비춰진 일상 이미지들을 종종 역이용하여 영상이미지로 재현하는 실험을 시도해 왔다. 특히 2004년 작 로부터 최근의 죠트로프 장치를 조각적인 구조로 제작한 신작들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오브제들을 이용하여 원형의 사진술 장치에 적용한 광학적 영상 실험을 꾸준하게 진행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여기서 원시적인 카메라 옵스큐라의 구조적 과정을 완전히 반대 순서로 뒤집을 뿐만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오리지널로부터 번역되거나 변형되기 이전의 최초의 이미지로 환원시킨다. 이미 확고한 사물 또는 장치의 구조나 그것의 시스템을 텍스트적으로 개념화 시킨 후, 그것을 분해하여 해체시키고, 새로운 원리에 의해 시각적으로 재구조화한다. 이미 유명한 괴테의 잔상 실험과 함께, 마찬가지로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연광 아래 반복 실험되었던 빛과 이미지의 유물론적 효과는 전기적 광선에 의해 영상으로 망막에 조사(照射)된다. 이러한 아날로그와 디지털 미디어 사이의 반목과 대화의 소통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하게 이어지는 구조를 따라 순환한다. 따라서 이 마법 환등기는 무성 영상 출력 장치임에도 재현과 서사라는 영화적 요소가 배제된 반영화적적 장치이다.
수집한 파편들을 모아서 재구성한 가상을 실재라 믿게끔 하는 일종의 디지털 판타스마고리아 장치(Phantasmagoria apparatus)가 작동을 시작하는 순간, 스스로 단선적 시간의 흐름을 전복시키거나 재생하고 반복하며 흘러가는 영상 이미지는 생리적 신호처리 장치로서의 감각기관의 한계점에 아슬아슬하게 도전한다. 해독의 물질적, 매개적 조건을 인식해야 한다는 키틀러(Friedrich Kittler, 1943~2011)적인 관점에서 살펴 보면, 그의 죠트로프 장치에서 각각의 이미지는 통상적인 일정한 간격이 없이 서로 붙어있다시피 매우 좁기 때문에, 스톱 모션의 애니메이션이나 틈새가 일정하게 분절된 스트로보스코프(stroboscope) 효과를 이용한 몰핑(morphing)이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의 눈 앞에서 빠르게 흘러가는 개별 인물 초상들이 시냇물 흘러가듯 스쳐갈 뿐이다. 하지만 이 광학적 기계장치에서는 스트로보스코프 효과의 도움 없이 망막 내에서 재구성되고 있다. 즉, 미완의 이미지가 시신경 내에서 재현되고 보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이미지가 재생된다. 또한 광학심리적 이미지의 가상의 정지 상태를 보여주는데, 끝없이 겹쳐지는 비슷한 얼굴 영상 이미지의 흐릿한 효과는 장치의 톱니바퀴의 운동 속도와 방향의 일치성에 의해 샘플링 주파수와 샘플링 대상의 주파수가 간섭해서 엘리어싱 효과(aliasing effect)를 산출한다고 하는 기본적인 정보이론의 원리인 샘플링 이론의 효과와 매우 흡사하다.
저 기술복제시대 이후 근 백년 간, 뉴 미디어 분야의 종사자들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합시키고 기계적 구조와 생리적 구조를 하나로 합치기 위한 노력을 지금 껏 계속해 오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속속들이 들려오는 최신 기술 정보는 당연히 대중적 뉴스로서 집중적인 주목을 받는다. 가령 스마트폰, 구글 안경과 같은 웨어러블 컴퓨팅(wearable computing)을 통한 사이버네틱스를 추구하는 성향이 이와 같은 상황을 증명한다. 그러나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 1714~1762)이 미학(Aesthetics)이라고 명명한 ‘감성적 인식의 학(scientia cognitionis sensitivae)’의 본질인 ‘감각’을 단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로 파악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지각 기관의 물질성에 대해 초점을 동시에 맞추지 못한 체, 예술적 조건들을 감성 쪽에 기울어지는 낭만적 찬미 방식인 멜랑콜리(melancholy)한 입장으로 바라보아서는 곤란하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결국 놓쳐버릴 수 밖에 없는, 기계미학의 감각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물질적, 매체적 요인들을 간과하게 된다. 그러한 예술 비평은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반 쪽짜리 밖에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성적 가치 평가는 이동주에게 결코 마땅하지 않다. 그의 작업은 결국 시적인 결론으로 몰아가거나, 혹은 양자의 사이에서 저울의 추처럼 기울어질 수 있는 가치 판단이나 기술 결정론의 숙명적 다짐과는 다른 덤덤하기까지 한 중립성에 그 의의가 있다.
덧붙이자면, 최근 우리의 문화와 예술 분야에 촉구되는 과학과 예술, 때로는 인문학, 그리고 이 둘의 만남 내지는 융합이라는 것이 실은 애초에 두 가지가 객관적으로 분명히 구분되어 오고 있음을 반증한다. 여전히 중심이 분명한 과학에 대해서 보다는 예술에 대한 이행 요구가 더 강력한 현실이다. 실상 우리는 이러한 과학과 예술이라는 이분법을 경계해야 한다. 가령 음악과 수학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며, 심지어 여기에는 무용이나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이자 않은가? 감히 더 나아가 대담하게 단언하자면, 근 미래에는 기술적 조건과 예술적 조건이 서로 분리된 체로 양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어쩌면 예술가가 당면하게 될 앞으로의 과제는 예술의 양식과 미디어 기술의 표준 사이에서 서로 접근해 가는 긴 여정에 놓여있을 수 있다. 현대 예술이 추구하는 의외성과 무모함에 비추어 볼 때, 치밀하게 돌아가는 구동장치의 마찰음과 드럼 내부의 마찰음의 공명처럼 얄궂게도 우연적 요소 또는 그에 따르는 차이와 생경함이 자아내는 불안이나 우연히 발생하는 요소에서 그 조짐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는 예술과 미디어의 관계를 고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선사하는 전시이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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