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연화 (1981)
2006 성신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2003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1 환의 세속도시 (덕원갤러리(서울), 서울시립미술관 SEMA전시지원 프로그램)
2010 만들어진 풍경 (화봉갤러리(서울), 경기문화재단)
2009 제1회 고양문화재단 신진작가 공모선정, 새로움 그 이상의 발견 전
(고양 어울림누리 어울림미술관(고양) / 고양문화재단)
2008 (1.31~3.2) ""예술가의 작업실"" (갤러리 벨벳, 서울)
(2.1~2.28) “예술가의 작업실” (갤러리 H, 서울)
2006 ""예술가의 작업실"" 포트폴리오 리뷰 선정작가 (스페이스 바바, 서울)
2005 ""예술가의 작업실"" 상상력 발전소 선정작가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서울)
단체전
2013 종합극장:Interspace dialogue(서울시립미술관/오프앤프리 국제확장영화예술제)
제 14회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분후보 (전주)
2012 Welcome to ICONIC TURN (메이크샾아트스페이스, 파주)
‘제4회 Art Road 77 아프페어 2012’ (아트팩토리/헤이리)
2011 人spiration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갤러리/서울)
Strange landscape (갤러리 엠/ 서울)
2010 Frame, Frame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서른 세번째 봄 9인전 (갤러리H, 울산)
2009 송은미술대상전 (인사아트센터(서울)/ 송은문화재단)
미술시네마-감각의 몽타주 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서울)/ 서울시)
제10회 쌈지스페이스 오픈스튜디오 (쌈지스페이스, 서울)
일종의 자화상 (스페이스 별, 서울)
예술 통풍 에너지 전 (서교예술실험센터(서울) / 서울시)
예술가의 방 (신세계 갤러리, 인천)
사적계보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서울)
2008 이미지 반란 전 (대구KT&G 별관창고(대구)/ 대구광역시)
쌈지본사 윈도우 갤러리 전 (쌈지본사 윈도우 갤러리, 서울)
사회적응지침서 (갤러리175, 서울)
A Sweet Illusion (갤러리 한길, 헤이리)
NG 아트페어 (상상마당, 서울)
2007 P&P HYBRID (갤러리 잔다리 , 서울)
MiO PHOTO AWARD AWARDEES' EXHIBITION (Mio Gallery , Osaka, Japan)
적절한 여자분 전 (스페이스 바바 , 서울)
수상 & 레지던스
2013 에트로미술대상 은상수상
2013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분 후보
2013 오프앤프리 국제 확장영화제예술제 선정
2011 서울시립미술관 SEMA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
2011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 입주
2010 경기문화재단 <우수예술창작발표활동지원>선정
2009 고양문화재단 신진작가 선정
2009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09마을미술프로젝트>선정
2009 송은문화재단 송은미술대상전 장려상 수상
2008.3~2009.3 쌈지스페이스 레지던스 프로그램 입주
2007 MiO PHOTO AWARD Honorary Award수상 (MiO PHOTO AWARD(일본))
2006 인사미술공간 Artist Upgrade Project 선정작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검은 그림자
환幻의 세속도시
김종길 | 미술평론가
장면에서 환幻으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양연화는 <만들어진 풍경>의 세계를 깊게 사유했다. <만들어진 풍경>은 다섯 개의 연작으로 이뤄진 작품으로, 풍경은 명승 관광지와 같은 어떤 장소들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 그 세계는 사회나 국가처럼 강력한 시스템이 작동했고, 그의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과 변별되었다.
<예술가의 작업실>(2006), <예술가의 방>(2008)을 발표하며 집요하게 예술의 ‘탄생 공간’을 물었던 그는 문득 공간이 아닌 세계를 떠올렸다. 그가 물었던 공간이 생명을 포태하는 자궁으로서 원초적인 잉태의 공간을 상징했다면, 불현듯 출현한 세계풍경은 자궁 밖에서 맞닥뜨린 비루한 현실일 터.
수년 동안 사진과 회화를 섞어서 표현한 그의 ‘작업실/방’은 예술의 시원과 같아서 소생蘇生과 생성生成, 출산出産이 카오스모스chaosmos로 난무했다. 미의 캐논canon으로 각인되었던 미술사 속의 작품들이 혹은 유사 이미지들이 그 안에서 들끓었고, 끓어서 ‘예술’이 되려는 욕망이 생생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런 장면을 연출하거나 스스로 분장했고, 거기에 풍자를 뒤섞었다. 작품은 화려한 듯 그로테스크했다. 원초적이고 관능적인 대상/사물의 표정과 폐쇄적일만큼 자기 유폐적인 작품 속 장면들은 그래서 빛과 그늘이 분리되지 않았다.
장면에서 풍경으로 전환 된 시점은 2010년이었다. ‘작업실/방’이 자궁 속 탄생 공간의 생성지였다면, 풍경은 그 생성지로부터 출산된 세계였다. 그는 그 세계를 <만들어진 풍경>이라 명명했다. <만들어진 풍경>은 몸으로 그려진 기이하고 낯선 산수다. 흘깃 보면 벌거숭이산으로 송대의 관념 산수를 떠올리게 하고, 토템의 상징을 엿보이는 기암괴석을 닮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세계는 산수도 괴석도 아닌 수천 수억의 사람들이다. 벗은 사람들이 엉겨 붙어서 맹목성의 욕망으로 치솟은 탑이다. 해원도 해망도 해탈도 없는 환幻의 탑신이다.
환幻 세계 : 환과 현실은 둘이면서 하나다.
환의 세계로서 <만들어진 풍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풍경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환의 세계가 무엇인지 엿보아야 한다. 환은 불교에서 현실에 빗대거나 현실의 덧없음을 비유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인데, 서산대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일체의 事象은 인연으로 얽혀 있을 뿐 모두 실체성이 없으며, 오직 幻의 가상으로 출현하므로 ‘幻想’이라고도 하며, 그 존재는 ‘幻有’라고 한다. 모든 존재.현상은 환술사가 요술로 化作해 놓았다고 하여 ‘幻化’라고도 한다.”[청허휴정 지음, 박재양, 배규범 옮김, 『선가귀감』, 예문서원, 2003. 원전은 『大智度論』, 卷6 「初品中十喩擇」임]
서산대사는 세계를 환술사가 화작해 놓은 환으로 보았다. 지금 여기가 환의 세계라면 현실과 환상은 따로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환’과 ‘현실’은 둘이면서 하나다. 왜 둘이면서 하나일까? 불교는 깨달아 이르는 곳이 현실너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너머에 다른 현실이 있다손 치더라도 너머의 현실이 여기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너머에서나 여기에서나 현실은 이어져 있어서 ‘다름’의 실체를 가늠할 수 없고, 오직 환으로 밖에는 출현하지 않는다.
현실과 환을 구분하지 않는 모순의 구조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탐욕이요, 화냄이며 어리석음이다. 이 세 가지 번뇌로 우리는 현실을 현실로 보지 못하고 환을 환으로 보지 못한다. 바꿔 말하면, 현실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또한 환에 빠져 환을 깨우치지 못한다. 양연화의 <만들어진 풍경>은 현실이면서 환이고 환이면서 현실인 부조리의 세계다. 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라. 천둥벌거숭이들의 탐욕과 화냄과 어리석음이 만연하지 않은가. 그의 손으로 화작해 놓은 이 풍경의 세목에는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맹목盲目이 불길처럼 타오른다. 스스로를 완전히 해소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 탐욕의 화신들에서 ‘환상성fantasy’이 엿보이는 것은 낯설지 않다. 그리스어 파이네인phainein(보인다)과 라틴어 판타스마phantasma(환영)를 어원으로 하는 환상성은 “잠재의식의 표현이며, 잠재의식을 개입시켜 외부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비합리적인 연상 작용을 자극하는 낱말, 심상, 운율의 사용, 병치 등”을 범주에 둔다. 흄K.Hume에 따르면 “환상성은 합의된 리얼리티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것으로 놀이, 환영, 결핍된 것에 대한 갈망으로, 주어진 현실을 변화시키고 리얼리티를 바꾸려는 욕망”이다.
<만들어진 풍경>을 대입해 본다면, 풍경은 짓눌린 잠재의식의 분출이며 일탈을 꿈꾸는 것이고, 결핍에 대한 갈망으로 현실의 변화를 추궁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방민호가 지적했듯이, 전경린의 소설에서처럼 여주인공을 제도와 지루한 논쟁을 벌이지 않게 하는 대신,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비루한 현실을 훌쩍 뛰어넘어 몽夢과 환幻의 세계를 노닐어 모험하게 하고, 그 모험의 극단에 이르러 새로운 생 또는 죽음의 방식을 획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방민호, 『문명의 감각』, 향연, 2003, 96쪽] 양연화 또한 그의 주인공들로 하여금 환의 세계를 모험 들게 하고 그 모험의 극단에서 생사의 아수라장을 직조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아수라장의 입체 풍경이 난지에서 제작한 두 개의 애니메이션이다.
난지에 입주한 그가 <만들어진 풍경>의 세계를 깊게 사유한 데에는, 그의 풍경이 회화로서 2차원을 초월하지 못하는 힘듦에 있었다. 그는 그의 환의 세계와 환상성을 좀 더 입체적이면서도 생물적인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탐욕, 화냄, 어리석음의 단일한 장면성에서 현실을 재현하는 서사적 미메시스mimesis를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만들어진 풍경Ⅰ>은 애니메이션의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읽어 보자.
장면1) : 만들어진 풍경Ⅰ
<만들어진 풍경Ⅰ>은 압정의 뒤를 풍경의 전경으로 형식화 한 대규모 군상작품이다. 세로 직사각형의 하얀 종이 화면에 연필로 드로잉한 이 작품은, 화면의 중앙부를 반원으로 돌리고 반원의 중심에서 상단 끝까지 치고 올라간 바늘기둥을 형상구조로 한다. 그러나 실상 그 구조는 바늘도 아니고 압정의 머리판도 아니다. 돋보기를 들고 판의 세계로 들어가면,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검은 얼룩무늬 그림자는 모두 깨알만한 사람들이다. 벌거숭이 사람 떼다. 사람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난무를 형성하고 아수라를 만들고 있다. 한쪽이 보병행렬로 뭉쳐서 시커멓고, 다른 쪽은 포병으로 날 뛰어서 떼 바람이다. 중세와 근세와 근대의 잔혹한 전쟁의 불길이 시공을 태우고 뭉친듯하고, 자본과 독재와 산업과 억압과 민주와 규율과 종교가 맨 몸으로 터진 듯하다. 긍정도 부정도 없이 뭉친 힘으로, 부풀어 터지듯 솟구친 것이 바늘기둥일 터이다. 너 죽이고 나만 살리는, 맹신과 맹목의 번뇌로 기어오르는 벌거숭이 기둥.
장면2) : cycle과 highs and lows
그는 <만들어진 풍경Ⅰ>의 서사를 뚝 떼어서 과 를 제작했다.
은 바늘기둥에서 추락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떼거지로 추락하는 사람들과 떼거지로 쌓여서 아우성대는 사람들이 참혹하다. 그 중 한 사람, 출구를 향해 걷다가 포클레인 삽날에 떠밀려 다시 추락한다. 그 추락의 하방세계도 아우성이다. 엉기고 섞여서 외침조차 되지 못하는 절규의 난망한 풍경이 원경으로 밀려나자 하방세계의 구조가 컵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컵에 검은 물이 차고, 가득찬 물에서 웬 물고기 한 마리가 뛰노는 순간, 컵을 손에 쥔 뚱뚱한 민둥머리가 꿀꺽 먹어 치운다. 그리고 다시 포클레인이 민둥머리를 튕겨서 화면에 터트린다. 암전.
는 벽을 기어오르는 사람 떼다. 한 사람, 다섯 사람, 수백 수천의 사람 떼가 벽을 기어오른다.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람, 밟고 오르는 사람,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사람, 다시 오르는 사람들로 절벽은 만원이다. 그 순간 파도가 밀려와 무리를 휩쓸어 버린다. 그러기를 두어 차례. 밀물과 썰물에 쓸린 사람들이 쌓여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사이, 한 사람이 오른다. 오르며 돌아본다. 끝없이 추락을 반복했던 순간들을 생각한다. 오직 그 만이 오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깨닫는다. 경쟁이 상실된 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그는 문득 ‘만들어진 풍경Ⅰ’의 바늘기둥에서 숱하게 추락했던 옛 기억을 떠올린다. 화염과 한탄과 시기와 배신의 순간들. 그는 추락하는 이의 눈물에서 자신을 본 후 꼭 쥐었던 손을 놓는다.
통역) : 환을 벗어 던져도 ‘나’로서 남는다
양연화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자들의 실체에 주목했다. 그런데 그 실체라는 것이 과연 지금 여기의 진리인가의 문제는 화두일 수밖에 없다. 매트릭스의 가상현실과 매트릭스 밖의 현실처럼 우리의 삶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지 않은가. 장자의 호접몽도 꿈에선 꿈인 줄 모르고 깨고 나서야 꿈인 줄 알듯이.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의 물음은 여전히 남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기억의 지배에 저항하지만, 장자는 피아彼我의 구별을 초월함으로써 환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를 번역했던 지산이 지난 해 입적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삶은 꿈이다”로 시작되는데, 뒤이어 그는 “중생들의 삶이란 탐, 진, 치가 빚어내는 꿈이요 환”이라고 썼다. 마하리쉬의 어록에 만약 ‘나’ 또한 하나의 환이라면 그 환을 벗어던지는 것은 누구인지를 묻는 장면이 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가 ‘나’라는 환을 벗어던지지만 그러면서도 ‘나’로서 남아있다. 이런 것이 참 나에 대한 깨달음의 역설이다.
지금 당신은 환의 세계에 있는가, 현실에 있는가. 당신의 꿈은 장자인가 나비인가. 당신은 한 마리의 물고기인가 민둥성이인가. 맹목으로 기어오르는 당신은 당신인가 아닌가. 양연화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경쟁이 상실된 길’에서 환을 벗어 던지라고 외친다. 현실을 벗어 던지라고 소리친다. 벗은 뒤에도 남는 것은 ‘나’이니 그 이후의 나를 찾아야 할 터!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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