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조소과 졸업
2005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개인전
2012 시야 밖의 시야 / OCI 미술관
2011 사물의 기원 / K.& 갤러리
2009 Insoul / 덕원갤러리
단체전
2013 Slow art / 리앤박갤러리
2013 중력과 시간_움직이는 조각 / 소마미술관
2012 현대미술과 빛 - 빛나는 미술관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012 빛나는 양평 / 양평군립미술관
2012 형형색색, 오늘을 읽다-CAYAF 2012 / 킨텍스
2012 고양신진작가발굴전 / 어울림누리
2012 1 / 1갤러리
2011 Seven Artists Lighting Spectrum / 아트파크
2011 라이트 아트의 신비로운 세계 / 경남도립미술관
2011 Fly to the Sky / 모란미술관
2011 몰입 / 제주도립미술관
2010 Specter / 아트사이드
2010 특별한 이야기 / 시안미술관
2010 아트위트 / 3.15아트센터, 성남아트센터
2010 The Material Beyond / Kosa space
2010 서교육십2010 : 상상의 아카이브-120개의 시선 / 갤러리 상상마당
2010 INTRO展 / 고양스튜디오
2010 레지던스 퍼레이드 / 인천아트플렛폼
2009 신호탄展 / 국립현대미술관 예정지
2009 서울 빛 축제 / 광화문광장
레지던시
2013 유중아트센터
2011 난지창작스튜디오
2010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고양
신정필의 작업
꿈처럼 아롱거리는, 별처럼 발광하는 사물들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비평)
사물. 모든 존재에는 기원이 있기 마련이다. 우주가 그렇고 자연이 그렇고 생물이 그렇다. 심지어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닌, 인간이 고안해낸 문화에도 기원이 있다. 이처럼 존재의 기원을 밝혀 그 본질을 해명하는 것이 발생론이다. 이렇듯 모든 존재에 기원이 있다면 사물에도 당연히 기원이 있고 발생이 있을 것이다. 사물은 언제 어떻게 왜 기원했는지를 밝히는, 소위 사물발생론을 가정해볼 수가 있다는 말이다.
사물은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고 인간이 만든 것이다. 생각의 부산물이며 공작의 결과물이다. 예술은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라고, 헤겔은 정의했다. 저마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이러저러한 형식을 빌려 드러나게 하는 것, 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형식 곧 사물 속에는 생각이 들어있다. 따라서 그 속에 생각이 들어있지 않은 사물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며, 가능하다 치더라도 그 사물은 의미가 없다(무의미한 사물?). 여기서 비록 예술과 사물이 같은 수는 없지만, 예술작품이 창작주체의 이념을 탑재하고 있듯, 사물 속에는 그 사물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의 생각이며 발상이 탑재돼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그러므로 사물의 기원은 생각이다. 처음에 생각은 잡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구현하고 실현한 사물의 구조며 형태도 잡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점차 생각이 정연해짐에 따라서 사물의 구조며 형태도 덩달아 구체화되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이 완성되고 결과 되어졌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생각의 싸움이다. 하나의 정연한 생각이 잡다한 생각들을 밀어내고 헤게모니를 획득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뚝 선 생각과 그 생각을 실현한 사물에게 기능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정상성이라는 면류관이 씌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면류관의 광휘 뒤쪽으로 잡다한 생각들이며 그 생각들을 실험한 잡다한 사물들이 쓰러지고 묻히고 잊혔을 것이다. 덩달아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비정상성이라는 레테르가 붙여졌을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사물의 구조며 형태를, 그리고 당연히 의미마저도 기능주의와 효율성 제일법칙에 맞춘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사물들의 됨됨이는 그 법칙에 부합하는 것들이고, 자본주의 이념을 구현한 것들이고, 자본주의와는 다른 이념들을 억압하고 살아남은 것임을 침묵으로서 증언해주는 자본주의의 표상이며 증표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히려 자본주의가 억압한 이념들이며, 정연한 생각 뒤편으로 잊힌 잡다한 생각들, 그리고 한갓 가설로만 전해지는 사물의 가능태들에 주목케 한다. 이러한 주목이 분분한 생각들이며, 사물들이 열어 놓는 풍부한 의미를 복원하게 해줄 수가 있을 것이다. 신정필의 작업은 바로 이 주목에서 시작되고, 그렇게 분분한 생각들이며, 사물들이 얼어 놓는 의미를 복원하는 일에 그 초점이 맞춰진다.
비행기. 사람들은 꿈을 꾼다. 이런저런 꿈들을 꾸지만 그 중 최고의 꿈은 하늘을 나는 꿈일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자면서도 나는 꿈을 꾼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정학적 경계를 벗어나게 해주고 의미론적 한계를 초월하게 해준다. 하늘을 날면서 나는 지구 너머로 갈 수가 있고(우주여행) 현실을 벗어날 수도 있다(내세여행). 밀랍으로 만든 이카로스의 날개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나는 기계,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그리고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와 질 들뢰즈의 의식의 유목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한순간도 날고 싶다는 욕망을 멈춘 적이 없다.
그러므로 비행기라는 사물을 만든 것은 날고 싶다는 사람들의 꿈이며 욕망이다. 그 꿈이며 욕망이 비행기의 본질이다. 그런 만큼 비행기에는 당연히 그 꿈이며 욕망이 들어있고 들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알려진 비행기에는 그 꿈이며 욕망이 없다(혹 사물화된 꿈이며 욕망에 대해서, 사실상 기능주의의 사물화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듯 상실된 꿈이며 욕망이 고스란히 복원된, 그렇게 복원돼 눈앞에서 아롱거리는 비행기를 어떻게 되살리고 재현할 수가 있는가.
신정필은 합판을 가녀린 띠 형태로 자르고 붙이고 휘어 고정시키는 과정과 방법을 통해서 비행기의 기체를 만든다. 프로펠러와 엔진, 타이어 바퀴, 날개와 꼬리날개 등 비행기의 몸체를 이루는 부분 기체들을 만드는데, 마치 사물의 골격을 보는 듯 뼈대가 앙상하다. 그리고 그 표면에 반투명한 파라핀 막을 덮씌운다. 그리고 여기에 빛을 도입하는데, 광섬유 다발을 매개로 기체와 조광기가 연결된다. 주지하다시피 광섬유다발은 그 가닥만큼이나 많은 광원을 가지고 있고, 그 광원은 그대로 기체의 표면에 흩어져 심어진다. 그러면 조광기에서 발해진 빛이 광섬유다발을 타고 흐르면서 기체의 표면에서 발광한다.
여기서 조광기는 날고 싶다는 사람들의 꿈이며 욕망에 해당한다. 그 꿈이며 욕망이 마치 신경섬유다발처럼 생긴 광섬유다발을 통과해 전달되면서 마침내 기체에서 폭발한다. 반투명한 파라핀 막이 마치 기체의 피부 같고 그 피부에 점점이 심어진 광원이 꿈처럼 아롱거리는 것. 뼈대와 같은 굴곡이나 피부와 같은 막을 가진 기체, 그리고 여기에 꿈과 욕망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신경섬유다발처럼 생긴 광섬유다발이, 그리고 그 피부에서 작열하는 광원이 한갓 사물을 유기(체)적 사물로, 꿈꾸는 사물로 되살려낸다. 이렇게 작가는 꿈꾸는 비행기, 꿈처럼 발광하는 비행기, 그 자체가 꿈인 비행기를 재현할 수가 있었다.
로켓. 1800년대 후반 로켓에 관한 선구적인 3명의 과학자 컨스턴틴 에드야더비치 츠올코프스키(Konstantin E. Tsiolkovsky), 허만 오버쓰(Hermann Oberth), 로버트 고다드(Robert Huchings Goddard)는 우주로의 여행을 상상하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이론을 정립했다, 는 사실을 작가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알게 된다. 로켓은 고사하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기도 전의 이야기다. 당연히 현실화되지 못한, 가설로만 남아 있는 이 사실에 작가는 흥미를 느꼈고, 그 이론을 조형화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우주선이 수직상승할 수 있기 위해서 중심을 잡아주는 자이로스코프가 있어야 한다. 강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액체연료를 혼합해주는 장치와 원뿔형의 연소실이 있어야 한다. 보조로켓의 추진력으로 모체가 차고 올라가는 단(stage) 개념이 적용되어야 하고, 연소실의 냉각장치가 구비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주공간에서 우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주선의 모양은 이중벽으로 싸여 있어야 한다. 그 밖에도 진공 상태의 우주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공기차폐장치 등등.
이번에 작가는 합판을 잘라 띠를 만들어 고정시키는 대신, 겹겹이 층을 쌓는 방식으로 (외관상 보기에 꽉 막힌) 구조를 만들기로 했다. 그 레이어들이 과학자들의 생각의 지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그 생각의 지층들을 쌓아 나가다보면 그 생각이 향하는 지점(그 생각이 실현되는 지점. 어쩌면 이상?)에 이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가장 먼저 자이로스코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서로 교차하지 않는 면을 가진 뫼비우스 띠를 내장하고, 자이로스코프의 표면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서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실제로 뫼비우스 띠를 볼 수는 없는데, 난독성을 의도한 것으로서 현실화되지 못한 채 가설로만 남은 생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뫼비우스 띠는 영원을 상징한다. 비록 과학자들의 생각이 현실화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이 무의미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며, 적어도 그 생각 자체만큼은 영원하다는(영원히 가치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연이어 원뿔형의 연소실과 액체연료를 혼합하는 장치를 만들고, 그 내부에 자이로스코프를 탑재시켰다. 이번에도 역시 장치의 표면에 난 구멍을 통해서 그 안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심정적으로 추정해볼 수가 있을 뿐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자이로스코프 속에 내장된 뫼비우스 띠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여기서 작가는 난독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빛과 어둠의 원리를 도입한다. 즉 너무 밝은 빛은 사물을 분산시켜 볼 수 없게 만들고, 반대로 지극한 어둠 또한 사물을 집어삼켜 볼 수가 없게 만든다. 생각은 마치 너무 밝은 빛이나 지극한 어둠과 같아서 감각적인(선입견에 길들여진?) 눈에는 보이지가 않음을 은유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육안이 아닌 심안을 통해 보라는 주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단의 개념을 바탕으로 디자인된 보조로켓을 달고 있는 로켓의 형태를 만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 안에 원뿔형의 연소실을 음각으로 파 넣었지만 외부에서는 알 수도 볼 수도 없다. 눈치 챘겠지만, 사물(그 자체 생각을 현실화한)에 사물이 포함되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작품이 구상된다. 더불어 부분들을 통해서 비행기를 암시한 전작에서처럼, 이번 작업에서도 역시 부분들을 통해서 로켓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전작이나 근작에서 이처럼 온전한 전체보다는 파편화된 부분 부분들을 강조한 것은 생각의 조각들을 강조하고 싶고, 생각 자체를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메인 작업으로 로켓엔진을 구상하고, 연소실 내부에 별을 장착해 발광하는 별의 형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알다시피 작가는 지금껏 장치 내부에 장착된 장치를 보여주는 것에 인색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드러내 놓고 보여준다? 바로 작가가 진짜 보여주고 싶은 거다. 과학자들은 다름 아닌 우주를 동경했고 별을 꿈꾸었다. 그들은 로켓을 꿈 꾼 것이 아니었다. 작가가 진짜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비행기가 아닌 날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었고, 로켓이 아닌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의 꿈이며 생각이었던 것이다.
신정필은 사물 자체를 지금의 결정적인 구조며 형태로 보지 않고, 비결정적이고 가능적이고 열린 경우로 본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일어난 일을 역사에, 가능한 일을 시에다 비유한다. 그러므로 사물의 가능태에 주목하는 작가의 태도는 시적이다. 어쩌면 작가의 관심은 사물로부터 시를 캐내는 것에 맞춰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물이 처음 만들어졌을(어쩌면 사물이 미처 만들어지기 이전의) 발상 곧 잡다한 생각들의 씨앗이며 원형에로 작업을 소급시킨다. 그 이면에는 일말의 유사(혹은 의사)과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일면이 있다. 그리고 그 일면이 작가의 작업의 개성을 뚜렷하게 하고 의미 있게 만든다.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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