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2008 MA Fine Art, Nottingham Trent University, Nottingham, UK
2003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학과, 학사졸업
개인전
2013 보이는 것과 말하기의 주문, 예송미술관, 서울
2012 아무것도 없는 전시 3화, 공근혜 갤러리, 서울
2011 아무것도 없는 전시 2화, 스페이스 빔, 인천
2011 아무것도 없는 전시 1화, 케이크 갤러리, 서울
2003 눈으로 두 점을 두 점으로 지각할 수 있는 능력-8.5-8.0, 대안공간 풀, 서울
2인전
2010 Barely Notice: 이봄순&Andrew Pok, RSP Planet Design Studios, 런던, 영국
2002 Aisthesis: 박원경&이봄순, 서라벌 갤러리, 중앙대학교
수상
2012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 서울시립미술관
2012 송파구청 작가지원 프로그램, 서울시 송파구청 문화체육과
2011 제 33회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중앙일보사
2011 스페이스 빔 작가활동지원 프로그램, 인천
2011 케이크 갤러리 기획 전시 공모, 서울
2007 우수국제학생 장학기금, 노팅험 트렌트 대학교, 노팅험, 영국
2007 예술대학 학장기금, 노팅험 트렌트 대학교, 노팅험, 영국
2002 대안공간 풀 신진작가 공모, 개인부문, 서울
전시기획
2012 젊은미술 인천 3040 운영위원, 해시, 인천
2011 Show Room 책임기획,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0 Barely Notice: 이봄순&Andrew Pok 공동기획, RSP Planet Design Studios, 런던, 영국
2008 Snowball: 이봄순&Jess Stevenson 외 공동기획, Surface Gallery, 노팅험, 영국
2002 Aisthesis: 박원경&이봄순 공동기획, 서라벌 갤러리, 안성
그룹전
2012 감각의 위치, 쿤스트독 갤러리, 서울
2012 서울 뉴미디어 페스티발, Lab Dotline TV, 서울
2012 레지던시 결과보고전,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1 Platform Festival,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1 Show Room,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1 제 33회 중앙미술대전 선정 작가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서울
2011 인천상륙作展,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1 The Transnational and Multiethnic: Women's History Month Show, Green Lens Studios, 런던, 영국
2011 4482 Korean Rhizosphere: Directions in Motion, Bargehouse, 런던, 영국
2010 Virion, Kelvin Grove Urban Screen Network, 브리스번, 오스트레일리아
2009 Transit, Free Press Project, 영국
2009 On CDOs and Double Clubs, August Art Gallery, 런던, 영국
2008 Entry Forms: UK Korean Artists, 주영 한국문화원, 런던, 영국
2008 In and Out, Bonington Gallery, Nottingham Trent University, 노팅험, 영국
2008 Show External, The New Art Exchange, 노팅험, 영국
2008 Snowball, Surface Gallery, 노팅험, 영국
2008 Collapse, Surface Gallery, 노팅험, 영국
2008 Arts for purpose, Art Organisation, 노팅험, 영국
2008 Anon 360, Southwell Artspace, 노팅험, 영국
2007 SAG show case, Green’s Wind Mill Gallery, 노팅험, 영국
2007 Nottingham Castle Open Competition, Angel Row Gallery, 노팅험, 영국
2007 07 Frontier, Study Gallery of Modern Art, 풀 도르셋, 영국
2003 2003_2004 Door to Door Alternative Art Space NetworkWorkshop, 쌈지 스페이스, 서울
2002 졸업전, 중앙대학교 아트센터, 서울
2001 조각과 디스플레이, Space 空, 서울
레지던시
2011 인천아트플랫폼 2기, 인천
그는 남몰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도 나를 몰라요.
- 시각예술의 ‘연극성’을 희곡으로 전환하기
: 이봄순의 고백과 비평의 순진한 자기 성찰적 서사
김종길 | 극작가로 변신한 비평가
무대 : 이 비평적 희곡의 무대는 그저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검은 허공이다. 당신은 그 허공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다.
등장인물 : 딱히 특정 인물로 부를 수 있는 등장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이 글을 읽는 순간부터 읽는 당신이 ‘그’이고 실체이며 모두다.
눈을 감으면 텅 빈 허공에 빛 한 줄기가 떨어진다. 빈 무대에 둥근 막대 같은 조명 하나가 뚝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화벨이 몇 차례 울린 뒤 누군가가 받는 소리. 소리만 오갈뿐 무대는 그대로다. 그러나 두 사람 간의 통화에 집중하다보면 무대는 어느새 흩어져 상상력이 움직이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굳이 붙잡아서 무대를 꾸밀 필요는 없다.
제1부 통화 : 달의 달빛과 검은 집(玄宇)
시각예술가 이봄순은 세 번째 개인전의 주제를 그 앞전의 것과 동일한 “아무 것도 없는 전시”로 내세웠다.
그에게 묻는다.
- 실제로 아무 것도 없는 전시입니까?
- 네,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만, 그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며, 설령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을 보고 듣고 만졌던 사람만의 것일 뿐 그것이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아무 것도 없는 전시의 실체인지는 누구도 판단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묻는다.
- 그렇다면, 전시의 실체는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은 어쨌든 지금 아무 것도 없는 전시라는 그 전시를 갤러리에 만들지 않았습니까? 공근혜갤러리는 현실계에 명확히 존재하는 갤러리가 아닙니까?
- 맞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전시는 실제상황입니다. 당신은 그 전시에 참여할 수 있으며 참여하는 순간부터 그 전시의 실체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야말로 그 전시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 실체화 된 순간을 즐기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이것은 수수께끼도 난센스도 아닙니다. 그 이상은 대답해 드릴 수가 없군요.
그러자 그가 작가를 몰아세운다.
- 이봐요! 당신의 그 아무 것도 없는 전시 1화, 2화를 난 다 보았단 말이오! 그런 야리꾸리한 말에 내가 지금 속을 줄 아시오? 이제는 못 믿겠으니 증거를 대봐요! 그가? 아니 내가 그 전시의 실체라는 것은 거 뭐 그러니까, 그가? 아니 내가 그 전시의 관람객이니까 그 관람객인 그가? 아니 내가 그 전시의 주인공이라는 것이고, 그 주인공인 그가? 아니 내가 또 그 전시의 실체라는 것이니까 그가? 아니 내가 그 전시를 즐기면 그가? 아니 내가 나를 즐기는 것으로써 그러니까 그 즐기는 것 그것으로 전시는 완성되는 것이다 뭐 그런 것이라는 것일 텐데, 어쭙잖은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신의 꿍꿍이가 뭔지 증거를 내 놔요!
전화기 뚝 끊기며 삐- 삐- 삐- 소리가 울린다.
- 아니, 이봐요! 이봐요? 이, 이, 이 봐, 이봐 요! 그가? 아니 내가 그러면 그 꿍꿍이라는 것이요? 아니면 내가? 아니 그가 어떻게 즐기면 된다는 것인지, 그러니까 그가? 내가? 아니…
소리가 잦아들며 검은 허공에 거대한 달이 휘영청 떠오른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웅장하게 거대하게 그 숭고한 달의 표면을 드러낸다. 달은 달로서 그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듯 마치 그가 달의 지표면 가까이에 떠서 이 장면을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목도하는.
검은 허공에 타이핑 되듯 하얀 글자 하나하나가 순서대로 찍힌다.
그 는 남 몰 래 그 녀 를 바 라 보 았 다
그 런 데 당 신 은 지 금 도 나 를 몰 라 요
달은 둥근 지평선을 그리며 뜨더니 점점 뒤로 물러나 만월의 큰 보름달이 된다. 그것은 또한 가까워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느낌의 거리다. 달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콕 박혀서 완전히 박제가 된 듯 정위치 된 상태다. 달은 달빛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때때로 우리는 그 달빛이 미끄러지는 순간에 놀란다. 착시였을까?
사이
달의 달빛이 허공의 검은 어둠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허공이 달의 달빛만큼만 금을 그어 놓은 것인지를 의문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조용히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내가 빛에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내가 말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말하지만 아직 말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의 말은 너무나 투명해서, 알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
제2부 선(禪)과 꽃과 달 : 그리고 토끼
그는 전시장 한 복판에 서 있었다. 빈 전시장에 핀 조명 하나가 켜져 있었는데, 그것은 달의 달빛 같기도 했다. 그는 그 달빛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던 것이기도 한 셈이다. 그의 등에 쏟아지는 한 줄기 빛은 그의 그림자를 더 선명하게 했다.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장난질을 하다가 문득 뒤로 돌아섰다. 빛에 눈을 가누지 못했다. 빛이 그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선사가 그에게 말했다.
- 너는 너라는 그 ‘너’가 아니요, 나는 나라는 그 ‘나’가 아니라, 나와 너 둘이 없는 그곳에, 즉시 본래의 너와 나로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를 ‘나’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생각의 언어를 기록했다. 생각은 이어지기도 했고 끊어지기도 했다. 생각들은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솟았다가 흩어졌다. 그는 그렇게 솟았다 흩어지는 말들을 붙잡아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전시에 들려거든, 나는 선사의 말을 따르거나 깨달아야 한다. 무엇이든 있는 전시는 쉽게 너와 내가 볼 수 있으나 아무것도 없는 전시는 역설적으로 너와 나를 ‘아님’의 상태로 돌려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와 나를 지워야만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무엇이든 있는 것으로 변화한다. 보거나 들으려고 하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그렇다고 보는 것과 듣는 것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거부’는 마음이 부정적으로 동요된 상태이니 시야를 흐릴 뿐이다. 오히려 나는 내가 있는 그곳에서 ‘없는 그곳’으로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선(禪)의 사유는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하나 더하기 둘은 하나일 수 있는 것! 하나 더하기 둘이 셋이라는 결론은 비행기가 달에 가거나 슈퍼에서 물건을 계산할 때 필요한 것일 뿐 그것이 모든 것의 진리일 순 없는 것!”
“벽돌을 만 개나 쌓았더니 집이 되더라, 열개 골짜기의 물이 하나 저수지의 물이 되더라, 몸통은 하나인데 가지는 수 천 개더라, 개구리가 울더니 비가 오더라.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을 더하고 빼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사유에는 내 관념이 형성해 놓은 진리를 뒤집어 까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나는 진리와 사실에 대해 의심해야만 한다.”
“『화엄경』에서는 ‘크게 의심이 있고서야 큰 깨달음이 있다.’고 했다. 땅에서 싹이 돋아 큰 나무가 된다. 나무가 자라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한다. 부지불식간에 나무는 성장한다. 마치 한 아이가 늘 똑 같아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어른이 된다. 어떻게 어른이 되었을까? 어제와 오늘의 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와 오늘의 몸은 사실상 거의 똑 같다. 그런데 그 어제와 오늘이 쌓여 변화한다. 하루하루는 큰 것이 없는데 10년이 지난 뒤의 생각은 크다. 그 생각의 크기가 성장이다.”
“선(禪)은 나의 실재를 바로 보라고 한다. 실재를 거짓 없이 보라고 한다. 꽃 피는 것을 보지 못하지만 꽃은 거기에 피었다. 달을 만질 수는 없으나 달은 늘 거기에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 생각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 그 사이를 보아야 한다. 그 사이를 직접 가리키며 의심 없이 말해야 한다. 겸손과 아첨, 철학과 미학, 사유와 지식 따위가 파고들 수 없는 그 찰나적 발언을 통해 진리에 접근해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선(禪)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무것도 없는 전시의 데페이즈망이기도 할 것이다.”
제3부 묻다 : 눈앞에 있는 것들
그는 공간을 음미하듯 천정과 모서리, 방금 내려온 몇 개의 계단을 훑어보았다. 빛의 바깥에서조차 이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낮게 흐르는 소리도 귀에 와 박혔다. 말의 한마디 한마디가 몸에 새겨지듯 또렷했다. 그렇다고 몸에 새겨진 그것들이 공간에 새겨지지는 않았다.
낮게 흐르는 소리
단어들을 가로질러서 당신에게로 갑니다.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이 지나가도록 내버려둡니다.
그것들은 밖에서는 빛나고, 안에서는 꺼져가는 어떤 진심을 드러냅니다.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실수를 했다고 느낍니다.
목소리는 갤러리 전시공간을 떠돌았으나 낮게 가라앉아서 소진되었다. 말의 진동과 의미를 가늠할 수 없는 그의 말이 흐르는 곳을 찾을 수는 없었다. 무엇이 밖에서 빛나고 안에서 꺼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소리는 ‘어떤 진심’이라고 했으나 그 진심이 어떻게 마음을 다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진심의 어떤 것이 실수였다면 그 소리는 진심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말의 꼬리를 따라가다 결국 머리를 뒤흔들며 멈춰 섰다. 그가 멈추자 소리도 멈췄다.
사이
그는 검은 허공에 뜬 달의 표면에 선사와 둘이 서 있었다. 그곳이 달빛의 가장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그 풍경이 다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곳에서 지구는 달과 다르지 않았고 태양은 태양이었다. 비온 후의 풍경처럼 달에서 본 풍경은 맑은 우주였다.
그는 그것이 갤러리에서 느끼는 환영의 한 순간이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입구 칸막이를 젖히면서 계단을 내려 올 때 계단 밑에 고인 푸른 물밑을 보면서 그곳이 현실과 비현실/초현실을 잇는 우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실제로 물비늘 위에 아른 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시간은 느낄 수 없고 공간은 무한의 영역이었다. 그는 그가 그곳에 있는지 없는지도 헷갈렸다. 그는 어떤 순간이나 찰나의 빈틈에 서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들이 들고나자 환영의 풍경은 더 뚜렷해졌다.
그가 선사에게 물었다.
-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 눈앞에 있지.
- 그렇다면 저는 왜 못 봅니까?
- 너는 ‘내’가 있기 때문에 못 보는 거야.
- 저는 ‘내’가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지만, 스님은 보십니까?
-‘네’가 있고 ‘내’가 있으면 더더욱 못 보지.
-‘내’가 없고 ‘네’가 없으면 볼 수 있습니까?
-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면 누가 보겠느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에게 보였다. 선사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법당이 서고 다른 선사가 앉았다. 선사는 조용히 앉아서 시를 읊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선사의 시는 낮아서 기울었으나 달의 표면을 조금씩 밀고 가는 힘이 있었다.
나는 나의 말이 완성될 때까지 그 내용을 알 수 없었어요.
내가 말한 것을 당신이 말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말 가운데 나의 말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이미 너무 오래된 말들이었어요.
당신은 나의 말을 믿을 것이라 약속했지만, 충분히 믿고 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서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급하게 나를 알아보려고 한 것입니다.
사이
그가 선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 어떤 것이 본래의 마음입니까?
- 이 사람아!
- 네?
- 차 한 잔 갖다 줄래?
사이
- 저는 이제 막 선문에 들어왔습니다. 선문에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 저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느냐?
- 예, 들립니다.
- 그 소리 따라 가거라.
사이
- 스님은 어디서 왔습니까?
- 정자사에서 왔다.
-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는 어디서 왔습니까?
- 오늘 아침은 4월 초 이틀이지.
그가 다시 물었다.
- 어디서 왔습니까?
- 동국에서 왔다.
- 수로로 왔습니까, 육로로 왔습니까?
- 두 가지 길을 모두 밟지 않고 왔다.
- 두 가지 길을 밟지 않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습니까?
- 해와 달이 동서로 다니는 데 무슨 거리낌이 있는가!
- 그건 그렇고 스님, 어떻게 해야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 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지. 그저 더럽히지만 말고 있다는 생각, 본다는 생각을 하지 말게나. 평상심, 즉 일상의 마음이 있는 게야.
그 때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소리는 너무도 또렷해서 그 소리가 가 닿는 공간의 면면들과 굴곡들을 다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제야 전시공간의 공간성이 느껴졌다. 생각이 가 닿고 몸이 가 닿으니 그가 곧 전시공간이었다. 그는 그렇게 느꼈다. 그는 그 공간의 전체였고 부분이었으며 낱낱이었다. 다른 관람객이 입구의 칸막이를 열고 들어 왔을 때에도 그는 거기에 있었으나 관람객은 오직 텅 빈 전시공간을 볼 뿐이었다. 그리고 낮게 소리가 흘렀다.
당신은 오늘 떠났습니다.
놀란 마음으로 이별의 순간을 기다리다가 복도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내가 당신을 안아주니, 당신은 나의 엉덩이를 찾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나를 잊을 거냐고 물으니, 당신은 그럴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다른 여자를 기억하게 될 때 그럴 거라고 합니다.
제4부 묻지 않고 볼 수 있는 것
달에 토끼가 산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 전설은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이후 사라졌다. 전설이 사라진 후 달은 그저 달에 불과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달의 신화가 산산이 부서진 이후에도 다시 달의 신화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상상력의 신화를 탄생시켰으나 볼 수 있게 되자 신화는 지워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상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봄순은 묻지 않고 볼 수 있는 것을 보라고 속삭인다. 그는 여전히 볼 수 없는 것들의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의 ‘있음’을 찾으라고 말한다. 미(美)란 어쩌면 상상력의 신화인지 모른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의 가장자리에 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어떤 것들에 미의 실체가 있을 테니까. 달은 여전히 밤하늘에 있고 우리는 그 달을 본다. 달은 고백한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도 나를 몰라요.”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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