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연결의 공간>
신승오(미술비평)
이명진은 이전의 작업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가족 사진이나 작가가 현재 찍어낸 사진에서 찾아낸 이미지들을 통해 발견되는 빈틈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설치와 평면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었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번의 작업에서도 계속해서 사용되는데 우리는 이러한 공통적으로 나타나면서도 변화된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작가가 평면작업이나 설치작업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들을 살펴보자.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명진이 사용하는 이미지들은 과거의 가족사진이나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의 풍경을 포착한 이미지들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면 작가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어떻게 선택할까? 그 선택의 기준은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진에서의 푼크툼과 비슷하다. 작가가 선택하는 이미지들은 작가가 느끼는 특별한 장면으로 과거의 가족사진이나 자신이 찍은 현재의 우리주변의 풍경을 들여다볼 때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눈에 갑자기 들어오거나 일상적인 풍경들 속에 숨어있는 이미지들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그리고 타인을 통해 느껴지는 경계와 경계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작가는 개별의 이미지들을 콜라주 해나가는 방식으로 하나의 특별한 풍경으로 만들어 OHP필름에 출력해내거나 페인팅으로 그려낸다. 이는 작업 초기에 시리즈로 제작된 나무 퍼즐로 나타나는 작업이나 시리즈의 작업에서 군복에 사용되는 얼룩무늬로 위장된 풍경 속에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번 전시인<밝은 방>에서는 어떻게 사용되었나 살펴보자. 이번 작업에서 이미지들은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로서의 자신의 특별한 감정을 일으키는 외부의 것을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고 다시 이를 밖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 작업들에서의 이명진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관객들이 찾아야 할 숨바꼭질(이는 작가의 작업 제목이기도 하다) 이었다. 다시 말해 작가가 이들의 이미지들을 발견할 때 느꼈을 그 감정을 관객들에게 작가의 의도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이미지들은 숨어 있지 않고 오히려 눈에 띄게 들어나 관객들이 스스로 이를 느낄 수 있도록 담담하게 작업을 풀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작가가 라고 명명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작가는 이 공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사진을 통해 지극히 현실적인 이미지에서 비현실적인 틈을 발견하고 그 틈에서 하나의 빈 공간이 발생하고 그렇게 나타난 공간은 비현실적이고 낯설지만 따뜻하고 안식처가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명진은 두 번째 개인전인 에서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자기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이 공간은 자신만의 안식의 공간으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은 그 뒤의 에서의 위장된 공간으로도 나타난다. 이렇듯 자신의 감성을 외부에 숨기고 안전하게 숨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에서 외부로 표출하고자 하는 이중적인 의지를 담고 있는 공간을 통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의 내면과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것을 시각화 하였다. 이번의 <밝은 방>이라는 공간은 경계와 경계가 만나는 지점, 밝음과 어두움이 겹치는 지점, 나와 외부가 접촉하는 지점, 반대로 외부가 내부로 들어오는 지점의 중간 경계를 균형 있게 보여주고 있다. 유리판에 양면으로 이미지들이 담겨져 있는 속으로 관객은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 는 노출되어 있으며 이중으로 뒤섞인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전의 안식처나 피신처와 같은 뜻과는 다르게 그 존재가 노출된다. 이전에 이명진이 보여주었던 공간은 작가의 주관적인 시선과 관점으로 인해 엄밀하게 따지면 보는 주체로서의 내부 쪽으로 그 추가 기울어져 있어 숨겨져 있고 그것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쯤 열려져 있고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외부와 내부가 만나는 경계의 묘한 균형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감 있는 이중적이면서도 진공적인 중간지역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밝은 방>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의 구성을 살펴보자. 이명진은 방을 열고 들어가는 방문고리를 그린 작품을 시작으로 이러한 작업의 출발점이 되는 어릴 때 작가 자신을 안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찍은 이미지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여러 개의 밝은 방과 그리고 아이를 안고 있는 자신과 종묘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할아버지들을 같이 그려냄으로써 전시장 속의 작품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보여준다. 이러한 전시 작품들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작가는 상반되는 것들의 경계를 발견하면서 느끼는 이 특별한 경험이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통로이며 타자와 소통하는 길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작가가 이야기 하듯이 우리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세상 혹은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풍경을 투명하고 얇은 유리창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 한정된 공간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때 작가가 이야기하는 일상에서 묘한 균열을 발견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현재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작가는 이중적인 인간의 소통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밝은 방이라는 공간에 담아 이 두 가지의 것들이 공존 할 수 있는 장소로서 전시장을 하나의 <밝은 방>으로 만들었다
결국 이명진은 관객들과의 공유하는 지점들을 만들어 내게 됨으로써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밝은 방>은 이전과 같은 나를 안전하게 감추면서 밖을 바라보고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서로를 훤히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면서도 직접적으로 교류할 수 없는 닫힌 이중적인 공간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관객들은 때로는 방 안에서 혹은 방 밖에서 작가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풍경들을 보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입하면서 작품을 볼 수 있다. 결국 이명진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자신이 발견한 풍경들을 관객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작가의 의도대로 끌고 가기 보다는 관객들에게 열린 이야기로 풀어놓아 자유롭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소통할 수 있는 독특한 '방'에 들어오게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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