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과 미술연구 / SeMA 소장품
진화론, 1999, 주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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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연도 1999
  • 재료/기법 벽지에 혼합매체, 수채
  • 작품규격 164×103cm
  • 액자규격 170×109cm
  • 관리번호 2019-221
  • 전시상태 비전시
작품설명
<진화론>(1999)은 주재환의 작품이 갖는 여러 특징을 가장 간략하게 보여주는 예다. 벽지 위에 오려 붙인 인간 형상의 띠지에 갖가지 영장류 일러스트를 스티커처럼 빼곡히 붙여 넣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인간을 비웃는 듯 화면 왼쪽 아래에는 도색 잡지에서 오려낸 컬러 도판 속 여성이 활짝 웃고 있다. 하단 중앙에는 베트남 전쟁의 폭격에 울며 거리로 뛰쳐나온 여자아이 사진이 빨간 테두리가 있는 견출지 위에 붙어 있다. 작가가 볼 때 영장류 가운데 가장 으뜸인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가 되었지만 선한 방향으로 진화되지 못하고 악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작품은 그러한 인간 존재에 대한 작가의 조롱 섞인 표현이며, 그가 자신의 작업을 두고 칭한 ‘천 원짜리 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주재환(1941- )은 1960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1학기를 마치고 중퇴했다. 1979년 결성한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활동했고, 1985년에 창립한 민족미술협의회 창립회원이자 공동대표(1987-88)를 역임했다. 2000-01년 《이 유쾌한 씨를 보라》(아트선재센터, 서울), 2007년 《CCTV 작동 중》(대안공간 사루비아다방, 서울), 2016년 《어둠 속의 변신》(학고재, 서울) 등 개인전을 열었고,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동산방화랑, 서울), 1987년 《반(反) 고문》(그림마당 민, 서울), 1994년 《새야 새야 파랑새야: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16년 《타이틀 매치: 주재환 vs. 김동규(빛나는 폭력, 눈 감는 불빛)》(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18년 《김정헌 주재환 2인전: 유쾌한 뭉툭》(통의동 보안여관, 서울), 2020년 《그림과 말 2020》(학고재, 서울), 2021년 《호민과 재환》(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등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1년 제10회 민족예술인상, 2002년 광주비엔날레 유네스코 프라이즈 특별상을 수상했다. 주재환이 창립 동인으로서 ‘현실과 발언’의 참여를 결심하게 된 것은 세태 풍자와 블랙 유머가 있는 작업의 가능성과 국적 불명의 미술이 아닌 우리의 미술을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영업과 미술 관련 출판 등 작업 외부에서 주로 활동해 왔기에, 작가로서 주재환을 본격적으로 확인하게 된 것은 2000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이후이다. 그는 이 전시에서 지난 20년 동안 제작한 작품 130여 점을 풀어놓으며 진면목을 드러냈다. 대체로 유화와 혼합매체(mixed media)로 이루어진 주재환의 작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푸른 색조가 유난히 많이 쓰인 그의 유화는 언뜻 서정적으로 보이지만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내러티브를 담고 있다. 또한 그는 생활 속 온갖 사물과 그로부터의 부산물, 즉 상품과 포장지, 잡지와 사진, 못 쓰는 장난감과 인형 등, 최민의 표현대로 “이 도시가 매일 배설해내는 소비 사회의 폐품” 속에서 발견한 재료들을 가져다 ‘가난한 미술’을 만든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라기보다 오히려 동서고금의 ‘값비싼 미술’의 지위에 구애받지 않는 사고와 상상력의 자유로움이 바탕을 이루며,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의 적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