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1927-2013)는 청전 이상범을 사사하고 1946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부 제1회화과(동양화)에 1회로 입학하여 김용준, 이상범, 노수현, 장우성에게 배웠다.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면서 졸업 작품인 <실내>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1949년 제1회 국전부터 1981년 제30회 마지막 국전까지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출품하여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1955년 제4회 국전에서 작품 <선소운(仙簫韻)>으로 동양화부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로 활동하며 심사위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1956년부터 1962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62년부터 1982년까지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58년 동화화랑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0년 덕수궁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1987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00년 3·1문화상을 받았다. 작가 사후 자택은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했다.
박노수는 동양화의 전통 방식에서 탈피하여 한국화의 현대화에 힘쓴 화가로, 특유의 채색 기법과 남다른 화풍을 바탕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초창기인 1950년대에는 스승 장우성의 영향을 받은 수묵인물화를 제작했으나, 19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특유의 농후한 분위기의 짙은 채색화의 조형 세계를 펼쳐나갔다. 1960년대 작품은 인물뿐만 아니라 동물에까지 소재를 확대했으며 짙은 채색과 수묵담채 기법으로 화면 전체를 구성하여 여백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의 작품에서는 짙은 채색이 서서히 사라지고 소재와 기법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여백이 거의 없는 산수화가 주를 이루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의 말기 작품에서는 다양한 소재의 도입과 함께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무위자연적인 화면이 주를 이루었고 아울러 여백이 다시 복귀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의 주된 특징은 첫째, 남청 색조가 돋보이는 절제된 색면, 둘째 소년, 말, 사슴, 강, 수목 등 소재의 독특함, 셋째 날카로운 필선에 의한 간결한 묘사, 넷째 북화적인 규모와 남화적인 정신세계의 접목, 넷째 리듬감 있는 구도 등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