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에서 공간으로 8808>(1988)은 섬세한 소묘 효과를 그대로
판화양식에 접목시켜 추상회화와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으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드로잉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점으로 시작해 선으로 이어지며 그것이 다시 하나의 공간으로 형성되는 모습은 작가가 일본에서 교우한 스승
이우환의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동양의 미의식에서 발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반복되는 수많은 점들은 하나의 선이 되어 점차 공간 속으로 확장되어 나가고 비움과 채움의 동양적 미의식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다시 서양의 석판화기법으로 나타나 시공간의 영역을 초월한 균형을 이루어낸다.
이인화(1948-2018)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大阪)예술대학교 미술학과 석사, 일본 다마(多摩)미술대학원 회화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교토시립미술관(교토, 일본), 1992년 히노화랑(도쿄, 일본), 2006년 한가람미술관(서울)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78년 《교토 앙데팡당특별전》(교토시립미술관, 교토, 일본), 1985년 《카뉴국제회화제》(카뉴, 프랑스), 2004년 《서울현대미술 로마전》(로마건축가협회하우스, 로마, 이탈리아)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198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판화부문 우수상, 1996년 《제2회 벨라루스 ’96 국제소형판화비엔날레》(벨라루스)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인화는 우리나라 미술계에 아직 본격적인 판화가 없었던 시기인 작가의 대학시절부터 김구림의 작업실에서 동판화를 보며 판화에 관심을 가졌고, 일본 유학시절에 적극적으로 판화에 대해 배우고 익혔다. 일본에서 이우환을 만나 스승으로 섬기게 되면서 언어로는 전달되지 않는 미의식을 전수받았는데 이러한 영향은 작가의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점, 선, 면 그리고 이것들을 아우르는 예리한 공간감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는 동판뿐만 아니라 다양한 표현기법과 목판, 석판 등의 다채로운 재료를 구현하는 판화 전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목판화 작업에서는 대패질로 나타난 표면의 효과를 회화에서 붓질이 주는 터치처럼 사용하였고, 동판화에서도 섬세한 소묘의 느낌을 살려 작가의 서정적 감정을 이입시키는 등 회화적 요소를 담은 판화를 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