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 (1991)
개인전
2017 《No Shadow Saber》, 합정지구, 서울
주요 단체전
2017 《취미관》, 취미가, 서울
2017 《2X2 parts》, 시청각, 서울
2017 《로터스 랜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6 《디셈버》, 시청각, 서울
Haneyl Choi (1991)
Solo Exhibition
2017 No Shadow Saber, hapjeongjigu, Seoul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17 Tasteview, Tastehouse, Seoul
2017 2X2 parts, Audio Visual Pavilion, Seoul
2017 Lotus land, Asia Culture Center, Gwangju
2016 December, Audio Visual Pavilion, Seoul
최하늘의 개인전을/으로 망상하며
: 정념정형 과정의 레이어와, 그를 통해 확장되는 시선과, 그 시선에 의해 확보되는
조소/조각적 조형 실험의 새로운 오늘/내일에 관해
임근준 AKA 이정우 (미술·디자인 평론가)
_ 정념정형 과정의 레이어
‘합리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과정’이 도출해낸, ‘이상하게 말이 되는 형태’를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고 또 즐겁다. (달리 말하자면, ‘이상하게 말이 되는 형태’를 통해 ‘합리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유추-조망해내는 일은, 언제고 흥미진진한 시뮬레이션 게임이 되는 법이다.) 한데, 자신을 현대예술가로 제시하고자 하는 누군가에 의해 실행되는, 어떤 섬세하고 우아한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균제미를 갖춘 어떤 오브제를 귀결 지을 때면, 해당 작품엔 거의 언제나, 작자의 예술적 의도 이상의 정념, 즉 과거로부터 전승된 정념과 동시대의 정념(넓은 의미에서의 시대정신)이 깃든다.
정념정형(pathosformel)이라는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1866-1929)의 도식적 개념은, 2020년대를 앞둔 오늘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비평적/분석적 활용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보자. 혹자가 포스트-미디엄의 상황에 부합하는 미디엄의 재창안을 통해, 현대조각가로서의 창작 활동 자체를 재귀적으로 재조형해냈을 때, 정념정형의 모델을 적용해 대상(작품과 작업 과정 모두)을 분석하며 바라보면, 퍽 흥미로운 시각장(visual field)이 펼쳐진다. 개별 작업이나 프로젝트에서, 개념적 지지체로서 동원되는 담론이나 관습 등 비가시적 요소와, 종이나 캔버스나 석고나 브론즈나 전기 장치나 뉴미디어 등의 물리적 미디엄/미디어의 복합적 조합(혹은 결합)이, 어떻게 나름의 의사-과학적 법칙을 통해 중층의 정념 구조를 정형해내는가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추창조(nachschaffen)해보라. 그리고, 그에 이어 추창조된 바를, 즉 뇌내 시뮬레이션된 바를 바탕으로 미적 의미화 기능을 에뮬레이팅해보라. 당신이 뇌내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 구조체와 그 작동 방식을 응시할 수만 있다면, 그대 앞에서 현대조각은, 새로운 미래로의 확장성 혹은 의사-성장 가능성을 획득한, 열린 질문(open question; 미결 문제)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것이다.
일례를 들어 보자. 제프 쿤스의 ‘변조된 레디메이드(Altered Readymade)’ 조각 <자유의 종(Liberty Bell)>(2006-2014)은, 기술적으로 원본과 거의 동일하다. 외형만 같은 것이 아니라, 각 부분과 수리를 거친 내외부의 금속 구성까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해당 오브제에서 자유의 종 원본에 정형된 정념을, 그 역사적 층위를 읽어내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제프 쿤스의 <자유의 종>엔 상위 레벨의 정념이 정형돼 있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기념하고, 그 방법론을 1세기 뒤의 시점에서 전유-재맥락화해 업데이트-심화하겠다는 정념 말이다. (비고: ‘변조된 레디메이드’는 뒤샹의 ‘무변조 오브제를 통한 레디메이드[Readymades ― un-altered objects]’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즉, 제프 쿤스의 <자유의 종>은 사실상 원본과 동일한 것이나 다름없는 물리적 오브제임에도, 어떤 담론과 맥락을 개념적 지지체 삼아 제 작업 자체의 주요한 일부로 포섭해냄으로써, 정형되는 정념의 구조에 다중의 레이어를 임베드해낸 셈이다. 이러한 확장 가능성(새로운 미래로의 확장성 혹은 의사-성장 가능성)을 더 살펴보자.
1998-2008년 시기, 관계미술의 관계성(relationality[relationnalite]), 즉 관계적 특정성(relational specificity)은, 대체로 현대예술의 대사회적 접면에 부여됐더랬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관계적 특정성의 원리를 역사적 정념의 차원에까지 적용한다면, 현대미술의 시뮬레이션 게임은 어찌 변조-갱신될까? 답부터 말해버리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정념이 현실의 작품에 깃드는 방식이나, 작품에 동원된 역사적 정념이 오늘의 상황과 마주하게 되는 접면에, 관계적(혹은 위계적) 특정성을 부여하면, 오늘과 근미래를 새로이 변조할 수 있게 되고, 개념적 지지체로 동원되는 담론의 어떤 층위에 관계적(혹은 위계적) 특정성을 부여하면, 작품의 현상학적 현존 그 자체를 변조-갱신해낼 수 있게 된다.
한데, 작품 제작의 여러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에 (그것이 물리적 조건이든, 개념적 조건이든) 관습적인 특정성의 원리를 부여하면, 거의 언제고 예측 가능한 창작 패턴이 나타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최종 작업 결과물로부터, 작업을 기동시킨 원칙들과 작업의 출발점이 된 아이디어와 욕망 등을 유추해내고, 다시 그 과정을 추론과 상상에 의거해 뇌내 시뮬레이션해낼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 패턴이, 제프 쿤스의 ‘변조된 레디메이드’에서처럼, 하나의 (과시적) 장식이 되는 순간이다.
물론, 개념을 핑계 삼아, 장식이 되는 과정을 기획하고, 그를 통해 장식이 되는 무언가를 제작해내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전현대적 의미에서의 장식이건, 비기념비적인 맥락에서의 장식이건, 장식적 경향을 통해 정말로 대단한 작업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장식과 장식 문법을 능숙하게 부리며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를 과시하는 단계에 이르기 위해선, 반복을 통해 정교하고 예민한 작업 절차를 아마추어 이상의 수준으로 숙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타임테이블의 양태로 기획된 각 작업 과정들은, 각각 제 위치에 딱 맞는 적합성과 정당성과 멋과 아름다움을, 즉 르네상스적 데코룸(decorum)을 구현하고 있어야 하니, 난도가 보통 높은 게 아니다.
(예를 들어, 피슐리/바이스[Fischli/Weiss] 같은 듀오가 작가들 사이에서 애호됐던 까닭은, 그런 과정과 결과와 작업 노동과 작업 태도 모두를 아우르는, 고차원적 균제미와 그 균제미의 단출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숙련 기술을 요하는 장식으로 작업했다면, 동종의 성취를 거둘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테다.)
정념정형 과정의 중층화를 통해, 오브제로 귀결되는 작업으로부터 새로운 시각장을 창출-확보해내는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현대미술 창작을 견인해낼 것인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과제는 기술 환경의 변화에 의해 2D가 3D로, 3D가 2D로 인지-인식되기 시작하는 오늘의 상황과 맞물리며, 묘한 경향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이에 관한 주요 논점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¹
하나. 현대미술의 현대성은, 순수평면과 순수매스와 순수공간에 대한 메타-인식을 전제로 했(었)다. 15-16세기 이래 유럽에서 현대적 원근법이 형성-발전하는 과정에서, 미술가들은 회화의 접면을 순수평면(pure surface[reinen Flache])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조소/조각의 접면을 순수매스(pure mass[reinen Masse])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나.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olfflin, 1864-1945)이 1915년 출간한 저작 『미술사의 기초 개념: 근세 미술에 있어서의 양식 발전의 문제(Principles of Art History: The Problem of the Development of Style in Early Modern Art[Kunstgeschichtliche Grundbegriffe: Das Problem der Stilentwicklung in der neueren Kunst])』에서 16세기 미술과 17세기 미술 사이에 존재하는 질적 전환의 성격을 규명한 것,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가 1927년에 출간한 저작 『상징 형식으로서의 원근법(Perspective as Symbolic Form[Die Perspektive als "symbolische Form"])』에서 현대적 원근법의 역사적 의의와 작동 방식을 규명해냈던 것, 앨프리드 바 주니어(Alfred H. Barr, Jr., 1902-1981)가 1929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첫 전시로 기획한 《세잔느, 고갱, 쇠라, 반 고흐(Cezanne, Gauguin, Seurat, van Gogh)》에서 화이트큐브의 전시 문법을 제시해 유럽현대미술의 역사를 재고찰해냈던 것, 이 세 가지 모두, 16세기 이래의 현대적 원근법이 형성된 과정과 그 의의를 비평적 시점을 통해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순수평면을 메타 고찰의 공간으로 상정하게 된 귀결에 다름 아니었다. (비고: 앨프리드 바 주니어의 화이트큐브는, 순수평면과 순수매스에 부응하는, 순수공간[pure space]이었던 셈이다.)
하나. 순수평면으로 인식된 창의 메타 채널화와 중첩이 낳은 귀결이 레이어(혹은 순수레이어: pure layer)라면, 순수매스로 인식된 객체의 메타 채널화와 중첩이 낳은 귀결이 렌더레이어(혹은 순수렌더레이어: pure render layer)쯤 된다. 그에 상응하는, 순수공간으로 인식된 시공의 메타 채널화와 중첩이 낳은 귀결은, ‘시공에 임베드된 레이어(layer embedded within space-time)’다. (비고: 소위 ‘증강 현실’이라는 개념은, 리얼리티의 조작에 초점을 잘못 맞춘 어프로치일 수도 있다. 핵심은 임베디드 레이어와 실제 공간의 결합, 그리고 그 결합 방식의 개념화와 가시화에 있기 때문이다.) 오브제와 공간을 다루는 현대미술가, 특히 현대조각가의 입장에서라면, 임베디드 레이어를 읽고/보고, 또 제 작업에 장치하고 변조하는 감각은, 장차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될 테다. (비고: 2017년 7월 현재, 임베디드 레이어를 읽고/보고, 또 제 작업에 장치하고 변조하는 감각의 면에서 가장 진일보한 작업을 선봬온 미술가는, 건축을 전공한 바 있는, 김희천이다.)
_ 최하늘의 조소/조각적 조형 실험
최하늘(1991-)의 작업 세계를 지배하는 망상을 추론해 정리하면, 그 전개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어떤 식으로든 처리(혹은 마무리) 과정을 거친, 특정 대상의 표피나 외피나 인터페이스는 대상의 특성이나 본질을 은폐하거나 왜곡한다. 적어도 보는 이의 인지-인식에 걸림돌이 된다.
2. 따라서, 그 대상을 특정 방식으로 절개하면, 은폐되거나 왜곡됐던 특성이나 본질이, 적어도 그 일부가 드러나고, 보는 이는 인지-인식은 갱신된다.
3. 알레고리적 절개를 통해 오브제를 갱신하고 변조함으로써, 어떤 기성 서사의 특정 차원이나 요소 또는 단계를, 일종의 절개된 상태로서, 비기념비화해낸다.
4. 비기념비적 양태로 응결된 개별 작업은, 일종의 도해-조각-캐릭터로서 현대미술을 연기한다(혹은 현대미술에서 요구되는 어떤 역할을 연기/수행한다).
5. 결과적으로 모종의 메타-서사가 제시된다. (5번의 방향성은 아직 명료화되지 않았다.)
가. <도해조각 연습>의 경우
2015년작 <도해조각 연습>에서 최하늘은 “우연히 알게 된 한문 ‘?’(생선 선)의 뜻 12가지를 도해”하고, “그것을 조각화해 배열했다”고 했다. 네이버 한자사전을 보면, 그 열두 가지 뜻은 다음과 같다.
1. 곱다
2. 빛나다
3. 선명하다(鮮明--)
4. 깨끗하다
5. 새롭다
6. 싱싱하다
7. 좋다
8. 적다
9. 드물다
10. 생선(生鮮: 가공하지 않은 물에서 잡아낸 그대로의 물고기)
11. 날것(익히지 않은 것)
12. 물고기의 이름
한자의 다의성을 다이어그램 삼아 조각-설치로 전치시킨다는 계획은, 얼핏 들으면 개념미술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하늘의 실제 작업을 보면, 자전에 정리된 한자의 다의적 계열 구조는, ‘현대미술처럼 뵈는 뭔가를 만들기 위한 알리바이’로 기능할 뿐으로, 실제의 조형에는 제한적 영향을 미칠 뿐이다. 따라서, 의사-기호학적 설치 미술을 그럴듯하게 늘어놓은 모습을 보면, 현대미술을 풍자하는 오브제-연극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나. <일필휘지 조각 _ 큰 풍경>과 <일필휘지 조각 _ 작은 풍경>의 경우
역시 2015년작인 <일필휘지 조각 _ 큰 풍경>과 <일필휘지 조각 _ 작은 풍경>에서 작가는, 본격적으로 절개에 의한 새로운 풍경의 산출과, 절개에 의한 도해-조각-캐릭터의 조형을 실험했다.
<일필휘지 조각 _ 큰 풍경>에 관해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평소 재료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것들이 의도치 않게 아름답게 느껴졌고, 그 점이 언제나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를 필두 삼아, 모든 재료를 단번에 잘라내고 하나의 큰 풍경을 만들어봤다.”
특정한 방식으로 잘려져 버려지는 재료들의 아름다움을 포착해내기 위해, 재료를 일필휘지의 정신으로 절개하고, 그를 통해 어떤 풍경을 연출해봤다는 이야기다. 작업의 부산물이 발생되는 방식 그 자체를 활용해 타자적 조각-풍경을 만들고, 그를 일종의 ‘현대미술을 위한 연극적 배열’로 제시한 결과는 꽤 설득력이 높았다. 전후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적 물성 탐구의 맥락에도 부합했고,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Surfaces, 1969-1972)의 메소드에도 화답하는 바가 있었고, 이자 겐츠켄(Isa Genzken, 1948-) 이래의 비기념비적 조각 실험에 대응하는 바도 있었으며, 또한 정서영(1964-)의 유령적 오브제나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 Grosse, 1961-)의 지지체 없는 회화에 대비되는 바도 없지 않았다. 문제는 그 뒤로 이어진 작업, <일필휘지 조각 _ 작은 풍경>이었다.
작가는 <일필휘지 조각 _ 큰 풍경>의 후속 작업인 <일필휘지 조각 _ 작은 풍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큰 풍경의 다음 작업으로 조금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풍경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입체 작업과 평면 작업을 나누어 작업을 진행했다.”
<일필휘지 조각 _ 작은 풍경>은, <일필휘지 조각 _ 큰 풍경>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작한 일종의 굿즈-페어다. (홀로 《굿-즈 2015》에 화답하는 상황을 연출해본 것으로 독해할 수도 있었다.) 작품을 구성하는 개별 작업, 즉 2D 굿즈와 3D 굿즈 들은, 현대미술을 열심히 의태-연기하는 일종의 연극배우인데, 찬찬히 보고 있자면, 어떤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비고: 최하늘의 2D 굿즈는, 실제론 회화 작품임을 주장하는 3D 조각 작품이다.) 실제론 <일필휘지 조각 _ 작은 풍경>을 먼저 구상하고, 그를 강화하는 알리바이 장치로서 <일필휘지 조각 _ 큰 풍경>을 제시했던 것은 아닐까?
다. <무협극 ‘생량(生凉)’>의 경우
마찬가지로 2015년작인 <무협극 ‘생량(生凉)’>에서 작가는, 무협 영화라는 컨벤션을 알리바이 삼아, 자신의 주특기인 '설치미술 비스무레한 것 만들기'를 마음껏 과시했다. 작가의 스테이트먼트는 다음과 같았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 즐겨보던 중국 무협영화를 답습했다. ‘생량’이라고 이름 붙인 영상은, 내가 무협극을 볼 때마다 느끼는 환희, 즉 무협극 내에서 숭고한 자연미가 극도의 인위적인 방식으로 제시될 때 느끼는 환희를, 재현하고자 시도한 결과다. 4분 내외의 짧은 무협극 시퀀스를 촬영하기 위해 나는, 필요한 장면들을 구상한 뒤 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시청각 기능 조각 15개를 제작했다. / 관람객이 드나드는 전시장에는 완성된 편집본 영상을 놓았고, 전시장과 거리가 있는 다른 공간에 내가 만든 기능 조각들을 모아 빽빽하게 배열했다. 편집본 영상모니터 뒤편의 조그만 모니터로는, 기능조각들이 모여 있는 반대편 공간의 실시간 상황을 보여주는 폐쇄회로 영상이 제시된다.”
최종 결과물처럼 뵈는 “완성된 편집본 영상”과 그것을 위해 제작된 프랍으로서의 “시청각 기능 조각 15개”를 이원적으로 존재하도록 연출한 것도, <일필휘지 조각 _ 큰 풍경>과 <일필휘지 조각 _ 작은 풍경>의 경우와 유사한 수미쌍관의 형식으로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완성된 편집본 영상”에서 작가가 정말로 본인이 느꼈던 어떤 환희를 재현 혹은 재연해내려 애썼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핵심은, 그 세계를 도해하는 “시청각 기능 조각 15개”를 만들어 어떤 다이어그램적 배치의 게임을 펼치는 데 있었을 터.
(비고: 중국의 무협 영화에서 관습적 방식으로 재현/재연되는 수행적 스프레차투라와, 그를 뒷받침하는 풍수적 자연관과 기운생동의 미학, 그리고 각 장면에 맞춰 양식화된 표현 방식 등이 창출해내는 인위적 숭고미는, 기실 일개인의 미술로 쉽게 전치되기 어려운 것이다.)
역시 문제는, 이러한 조각-캐릭터로 창출해내는 가치나 서사의 성격이 다소 모호했다는 데 있었다. 프랍으로 해독되기 십상인 ‘기능 조각’들은 정말로 배우처럼 능동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려면, 어떤 방법론적 도약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라. 《디셈버》와 《로터스 랜드》에서
대학 졸업 이후, 시청각에서 열린 기획전 《디셈버》(2016)에 참가했을 때도, 광주 ACC에서 열린 기획전 《로터스 랜드》(2017)에 참가했을 때도, 최하늘은 조각-캐릭터의 실험을 지속했다.
《디셈버》에 출품한 <기설조각>은, 전시가 요구하는 계절과 기후와 풍경이라는 키워드에 부합하는 뜻에서, ‘조각 작업 부산물로서 선택된 스티로폼 가루를 눈처럼 날리는’ 기능을 구현하고 수행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론 <일필휘지 조각 _ 큰 풍경>의 문법을 잇는 작업이었다. 반면, 또 다른 출품작이었던 <일필휘지조각_4(8)폭병풍_<희설(喜雪)>>은, 평면 회화의 형식 가운데 하나인 병풍의 차원을 분해해 입체화하고, 입체가 된 구조에 다시 절개를 적용한 뒤, 그 내부에 ‘일필휘지 조각’의 어법에 맞춰 제작한 설경의 조각을 삽입한 결과물이었다. 따라서 후자는, <일필휘지 조각 _ 작은 풍경>에서 평면 작업과 입체 작업으로 나뉘었던 세계를, 잠시 다시 하나로 변신-합체시켜놓은 꼴이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또한, <기설조각>과 <일필휘지조각_4(8)폭병풍_<희설(喜雪)>>은, (전작들과 유사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상호 화답하는 구조를 이뤘기에, ‘단계와 차원을 달리하는 두 작업의 배치를 통해 메타-서사적 동세를 야기해내는 수미쌍관 구조’가 작가의 작업 세계를 기동시키는 기본 메소드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 보다 명료히 드러났다.
반면, 《로터스 랜드》에 출품한 <제5막 <궁전의 큰 앞뜰>>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파우스트(Faust)』의 해당 장면에서 도출해낸 ‘연기자-조각’들로 구성한 작업이었는데, “대사가 없는 완전한 ‘조각적인 연극’을 구성하고자” 했다는 해설과 달리, 결과물은 ‘조각적인 연극’을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 혹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마케트(maquette)처럼 뵀다.
하면, <제5막 <궁전의 큰 앞뜰>>에서 한 덩어리의 군집을 이룬 각 캐릭터들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정보를 모에(萌え)-현대미술화한 결과였을까? 아니면, 개별 작품은 작가가 창출해낸 일종의 드랙 페르소나였고, 그가 펼치는 상황은 일종의 현대미술품 드랙쇼가 됐던 셈일까? (비고: 후자는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2007년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서 선뵀던 화제작 <드라마 퀸(Drama Queens)>이 그것이다.)
마. 눈앞의 과제: 방법론적 심화를 통한 현존의 변조-갱신
2017년 최하늘은, 2D가 3D로, 3D가 2D로 인지-인식되기 시작하는 오늘의 상황에 대응하는 자신의 작업 메소드를 개발하기 위해, “캡처로서의 섹션 이미지”라는 조작 개념을 제시했다. 대상의 이미지를 통해 구조를 인지하는 일의 불능성을 전제로, 그는 ‘응시’라는 일반적 방식 대신 ‘캡처’라는 전지적-스마트폰 시점적 개념을 통해 시각적 고찰을 재정식화하고, 외피의 캡처를 대치하는 방식으로서 섹션 이미지의 캡처를 주창한 것이다. 다음은 작가의 글이다:
“입체물의 표면이 갖는 형상은 우리에게 단편적인 이미지를 제공하고 나아가 그것을 캡처하도록 유혹한다. 시선이 표피를 뚫고 내부로 꽂히는 것을 미리 방지하고자, 즉 가상의 평면이 두께가 없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과 유사하게, 실제의 입체는 자신에게 두께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가상의 평면은 우리가 ‘캡처의 방식’에 적응하도록 이끌었고, 그 방식은 실제 세계의 입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도 강력한 효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입체는 분명히 두께를 갖는다. 이 명제에 따르면 사진은 입체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없다. 캡처에 익숙한 우리의 시각만이 사진의 매체적 기능을 유지시켜줄 뿐이다. 이제 우리에겐 새로운 보는 방식이 필요하다. 입체에 두께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게 해주는 인식법.
내 앞에 놓여있는 이 컵을 캡처가 아닌 섹션을 통해 파악해보자. 여러 각도의 단면을 상상해보자. 이것은 굉장히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다. 하나의 사물을 두고 모든 면을 캡처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지만 섹션은 익숙하지 않다. 특히 한 번 잘린 면을 반대 축으로 다시 자르는 방식,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될수록 상상하는 이미지에 혼란이 온다. 축이 여러 개가 될수록 사물의 단면은 기괴해진다. 심지어 단면이 곡선이 될 경우 일은 더 복잡해진다. 열선이 스티로폼을 곡선으로 깎아내는 방식. 이 작업이 반복될수록 입방체의 스티로폼은 원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비정형의 형태를 갖게 된다. 새로운 단면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방식. 이것이 내가 제안하는 캡처로서의 섹션 이미지이다.
[...] 이제 눈이 3개라고 가정하자. 겉을 스캔하는 양쪽 눈과 속을 파고드는 눈. 3개의 눈으로 두께를 캡처해내는 방식을 연습하자.
자동차 한 대가 나에게 나가온다. 이것의 모든 면을 스캔하자. 그리고 스킨을 떼어내 버리자. 그 이미지를 떼어내도 아직 몸통은 그대로 돌진하고 있다. 이제부터 불규칙적인 섹션 이미지를 가능한 한 많이 만들자. 두툼한 케이크를 여러 방향으로 자르듯 최대한 많은 축을 설계해서 단면을 만들어내자. 숙달될수록 단면은 더욱더 재조립할 수 없는 비정형의 모양이 된다. 결국, 자동차는 나와 충돌하기 전에 잔해가 된다. 그 누구도 다시 조립할 수 없는 괴기스러운 잔해더미.”
이러한 방법론적 가설을 바탕으로, 최하늘은 개인전 《No Shadow Saber》에서 보다 구체화한 ‘알레고리적 절개’의 방도를 제시한다. 유럽의 군용검 사브르(Sabre)를 다루는 검술에서, 연결 동작으로 구사하는 회전 베기 동작, 물리네(moulinet) 기술을 전유하기로 작정한 작가는, 회전 베기 방식으로 대상을 절개해 대상의 현존을 변조-갱신하기를 희망한다. 다음은 그가 전시에 앞서 작성한 스테이트먼트 일부다:
“전시장에는 발견된 징후들이 놓여있다. 캔버스에 그려진 정물들은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지며 조각들은 스스로 껍질을 벗은 채 속살을 드러내고 눕기 시작한다. 어떤 캔버스는 자신의 몸을 틀어 옆면을 부각하기도 하며 몇몇 조각들은 산발적으로 공격당한 자신의 내부를 여과 없이 노출하고 있다. 이런 징후들은 생각보다 날 것의 형태로 그 자체만으로 모종의 힘을 갖는다.
이후 징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의 프랙티스가 이어진다. 사물을 잘라내 의도적으로 단면을 노출시키는 방식은 정다면체를 이용한 실험으로 연결된다. 계획되지 않은 손길로 해체된 도형은 그것의 원래 속성에서 벗어나며 일종의 예측 불가능성을 획득한다. 이 프랙티스는 두 가지 행위로 구분된다. ‘자르는 것’과 ‘휘둘리는 것’. 프랙티스는 각각의 작동 법칙에 따라 심화되며 결국 하나의 총체적 결과물로 귀결된다. 훈련 가능한 인식 능력은, 예측 불가능성을 탑재한 하나의 조각으로 연결되어 보는 이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결국 두께를 설명하지 못했던 과거의 인식법은 무너지고 훈련 가능한 새로운 인식법이 제시된다. 일련의 결과물을 통해 얻은 새로운 혼란, 예측 불가능성은 또 하나의 징후를 생산한다. 진정한 형체를 예측할 수 없는, 고정되지 않는 채 유동하는 매스, 그것은 조각의 역할을 변화시킨다. 그림과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존재. 그것을 담는 그릇. 그것이 바로 조각에 주어진 역할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념적 베기/자르기/깎기의 물리적 실천을 통해 제시되는, 즉 회전 운동으로서의 절개를 통해 도출되는 시공의 기본형이, 나선 구조라는 점이다. 뉴욕구겐하임미술관이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Monument to the Third International)>의 나선(spiral) 구조, 즉 유물론자들이 역사의 유비적-발전 모델로 삼았던 바로 그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본디 나선 구조는, 상상 속의 바벨탑에 나타나 있듯 불가능성의 상징이기도 하고, 또한 역상으로서의 시공에 적용하면, 안토니오 마네티(Antonio Manetti, 1423-1497)나 산드로 봇디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가 그려냈던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c. 1265-1321)의 “인페르노(Inferno)”, 즉 지옥의 세계가 창출되기도 한다. (바꿔 생각하면, 지옥은 재해석을 통해 가능성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과연 최하늘은 나선형의 절개 운동을 통해 현대미술의 지옥을 펼쳐낼 수 있을까? 그의 도해-조각-캐릭터들이, 단테의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에 부응하는 메타-서사를 창출해낼 수 있을까? (비고: 무시간성[atemporality]에 잠식당한 오늘이 죽어야 내일이 사는 것만은 자명하다.)
최하늘의 개인전 《No Shadow Saber》는, 2017년 7월 7일 개막해 30일 폐막한다. 끝/시작으로 묻는다: 당신은 ‘무영검’의 조각-베기를 통해 어떤 망상을 봤는가/보는가? ///
추신) 절개와 도해를 통해 본질을 드러내고 현존성을 강조하는 일에도 계보가 있다. 루치오 폰타나, 쉬포르/쉬르파스, 고든 마타-클락 등의 역사적 전거와 함께, 동시대인으로 데이비드 얼트메이드(David Altmejd, 1974-) 클레멘스 베어(Clemens Behr, 1985-) 등을 언급할 수 있다.
¹이에 관해선 필자의 논고 「당대성의 종말과 오브제의 재인식; 최대한 쉽게 풀어쓴 현대미술의 ‘오늘’이 깨져버린 이야기」(2016)를 참고하기 바란다. 전시 도록 『2016 서울 포커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구동희 외,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6)의 54-71쪽을 보라.
(번역: 아트앤라이팅)
Fantasizing about Haneyl Choi’s Solo Exhibition:
On the pathosformel process,
the view explored through the process,
and the new present/future of sculptural experiments obtained by that view
Geun-jun Lim AKA Chungwoo Lee (Art and Design Critic)
_ Layer of pathosformel process
It is always interesting and entertaining to see a form that awkwardly makes sense, and that is deduced from a rational yet unnatural process. (In other words, to infer or search based on a rational yet unnatural process through a form that awkwardly makes sense always becomes a fascinating simulation game.) And, when a delicate and elegant process generated by someone who presents himself as a contemporary artist produces in certain objects an abnormal symmetrical beauty, the artwork almost always carries the pathos beyond his artistic intention ― the pathos of which passed down from the past as well as the contemporary pathos (the zeitgeist in a broader sense).
The schematic term pathosformel coined by Aby Warburg (1866-1929) still has critical/analytical significance today ― only a few years before 2020. Here is an example: if someone recursively remodeled the creative activity as a contemporary sculptor through the reinvention of the medium that coincides with the post-medium situation, analyzing the sculptor’s practice (both the artwork and the working process) with the pathosformel model leads one to quite an interesting visual field. Let’s try to analyze and recreate the result: in the individual work or the overall project, how can invisible elements like discourse and custom be used as conceptual supports, and how can the complex mixture (or fusion) of physical media, like paper, canvas, plaster, bronze, electric device, or new media, create many-layered pathosformel structure through its own pseudoscientific rules. Emulate the function of aesthetic signification based on the result of recreation; otherwise the result of the simulation will remain only in the mind. If you can observe the structure and its operational method through the simulation in the mind, then contemporary sculpture will demonstrate itself as an open question with the possibility of expansion in the future, or its ideas will have the potential for pseudo-progression.
Here is one example: Liberty Bell (2006-2014), the altered readymade sculpture by Jeff Koons, is technically almost the same as the original. It not only has the same exterior, but after the alteration, it also has almost identical parts and metal configuration inside and outside the sculpture. Therefore, it is possible to read the formulating pathos, the historical layer, of the original Liberty Bell in this object. However, Jeff Koons’s Liberty Bell is formulated with the pathos of a higher level. The pathos commemorates Marcel Duchamp’s Readymade, and aims to update and improve the methodology by appropriating and recontextualizing it one century later. (Note: The Altered Readymade is a strategy that responds to Duchamp’s [Readymade ― un-altered objects].) In other words, Jeff Koons’s Liberty Bell, although it is practically the same physical object, it is nonetheless embedded with the multiple layers of the formulated pathos structure in the original sculpture by taking certain discourse and contexts as conceptual supports and including them into important parts of the work itself. Let’s explore more similar cases of the expandability (expandability for the new future or the potentiality of pseudo-progression).
From 1998 to 2008, the relationality of relational art, or relational specificity, was generally situated in the social conditions of contemporary art. If we apply such theory of relational specificity to the dimension of historical pathos, how would the simulation game of contemporary art be changed or renewed? The answer would be this: if relational (or hierarchical) specificity is implicated in the way that historical pathos is manifested in artwork or the artwork’s historic pathos faces today’s situation, it can change and renew our situation today and near future. On the other hand, if relational (or hierarchical) specificity is implicated in certain layers of discourse that are then used as a conceptual support, it may change and renew the phenomenological existence of the artwork itself.
Nevertheless, if we provide the theory of conventional specificity (whether it is the physical or conceptual condition) to one of the many conditions in the artwork’s creation, almost always a predictable creation pattern occurs. Thus, humans may infer that the operative principles, ideas, and desires of the artwork come from the final output, and simulates the process in the mind based on the process of inference and imagination. The problem arises when the pattern becomes a (conspicuous) decoration, as in Jeff Koons’s altered readymade.
Of course, it is not just bad to plan the process, and create something that is decoration under the cloak of artistic concept. However, it is never easy to create very significant artworks through the decorative tendency ― whether it is decoration throughout history, or of the un-monumental context ― because reaching the stage of sprezzatura with skillful decoration and decorative grammar requires one to attain a proficiency in undergoing delicate and elaborate work procedures through repetition that is better than a mere amateur. That level of difficulty is quite high because each work procedure is planned through a timetable that actualizes suitability, legitimacy, style, and beauty, otherwise known as the Renaissance decorum.
(For instance, the duo Fischli and Weiss might have been favored amongst artists because of their works’ higher symmetrical beauty and the convenience of that beauty, which embraces all processes, results, labors, and work attitudes. If they worked with the decorum that required such mastery, would they have achieved the same kind of success? Perhaps, it would not be that easy.)
Because the experiments in creating and attaining a new visual field from working procedures that conclude in an object by layering the pathosformel process just began, it is difficult to foresee how it would lead to the creation of contemporary art. However, interestingly, this task is engaging with the situation, which we are faced with today that 2D images are cognized as 3D forms, and 3D forms as 2D images. Due to changes in the technological environment, it is creating the odd trend. The main issues raised by these points are as follow :
First, the contemporaneity in contemporary art has been premised on the meta-cognition of pure surface and pure space. With the modern invention of perspective and its development from the 15th to 16th century in Europe, artists began to recognize the interface of painting as pure surface (reinen Flache) and the interface of sculpture as pure mass (reinen Masse).
Second, Heinrich Wolfflin (1864-1945) investigat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qualitative changes in art between the 16th and 17th century in his book Principles of Art History: The Problem of the Development of Style in Early Modern Art (1915), Erwin Panofsky (1892-1968) investigate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and operational method of perspective in Perspective as Symbolic Form (1927), and Alfred H. Barr, Jr. (1902-1981) suggested the exhibition rules of the white cube and reexamined the history of modern European art in Cezanne, Gauguin, Seurat, van Gogh, the first exhibition he organized at 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 in 1929. All three examples above led to the result of assuming that pure surface is the space of meta-contemplation in the process of gaining an understanding of the significance of the modern invention of perspective through a critical viewpoint. (Note: The white cube of Alfred H. Barr, Jr. was pure space that satisfied the conditions of pure surface and pure mass.)
Third, if overlapping and meta-channeling of the picture plane is recognized as pure surface and has led to the generation of a layer (or pure layer), then the overlapping and meta-channeling of the object is also recognized as pure mass, which would be a rendered layer (or pure rendered layer). Similarly, the consequence of overlapping and meta-channeling of space-time is also recognized as pure space, which is ‘layer embedded within space-time.’ (Note: with its focus on the control of reality, the concept of so-called augmented reality might be the wrong approach because at its core is the combination of the embedded layers within actual space and the conceptualization and visualization of the combination method.) The position of the contemporary artist who deals with object and space ― especially the contemporary sculptor ― reading and viewing embedded layers, and cultivating the sense of installing and changing the layers in the work would be regarded as essential in the near future. (Note: currently in July 2017, the artist who displays the most progressive works in the perspective of reading and viewing embedded layers, and having a sense of installing and changing the layers in the artworks is Kim Heecheon, who majored in architecture.)
_ Choi Haneyl’s Experiments in Sculptural Form
Inferring from the fantasy that dominates the art practice of Choi Haneyl (1991-), the development structure may be organized like this:
1. The specific object’s outer layer, surface, or interface after the treatment (or completion) process in any form conceals or distorts the object’s quality or nature. At least, it disturbs the viewers’ cognitive understanding.
2. Therefore, cutting the object based on a certain method reveals at least a part of the concealed or distorted quality or nature, and the viewer’s cognitive understanding is renewed.
3. By renewing and changing the object through allegorical modification, specific dimensions, elements, or phases of certain pre-existing narratives become non-monumental, in a kind of modified state.
4. Individual works solidified in a un-monumental state performs as contemporary art, with a sort of diagram-sculpture-character. (Or they perform/play a certain role that is required in contemporary art.)
5. As a result, a certain meta-narrative is suggested. (The direction of #5 is not yet clarified.)
A. Case Study: Exercise on Diagramming Sculpture
In Exercise on Diagraming Sculpture (2015), Choi Haneyl diagramed the 12 meanings of the Chinese character ‘?’ (xi?n: fish) “I [he] accidently came across” and “tried to interpret it as a sculpture.” Referring to the Chinese dictionary of NAVER, the 12 meanings are as follow:
1. Beautiful
2. To shine
3. Clear
4. Clean
5. New
6. Fresh
7. Good
8. Few
9. Rare
10. Fish (unprocessed, just caught, raw fish)
11. Raw (not cooked)
12. Name of fish
Diagramming the polysemy of the Chinese character, and transposing them as sculptural installation might seem like conceptual art at a glance. However, when looking at the actual work of Choi Haneyl, the polysemantic structure of the Chinese character only functions as an excuse to create something that looks like contemporary art, and exerts only a limited influence on the actual sculpture. Therefore, how he successfully revealed the pseudo-semiotic installation art even made me doubt if he is presenting the object-theater that simply satirizes contemporary art.
B. Case Study: Single-stroke Writing _Large Landscape and Single-stroke Writing_Small Landscape
In Single-stroke Writing_Large Landscape and Single-stroke Writing_Small Landscape, which were also made in 2015, the artist rigorously experimented with the creation of new a landscape and form of diagram-sculpture-character by cutting.
In Single-stroke Writing_Large Landscape, the artist said “I always felt sad when the discarded parts of the materials used in artworks by chance looked beautiful. I made that the starting point for cutting all the materials at once and tried to make a big landscape.”
He cut the materials in the spirit of writing with a single stroke and created a certain landscape in order to capture the beauty of the materials that are cut and discarded in specific ways. How he created the sculptural landscape of the otherness, by utilizing the way that by-products of artworks are produced, and how he suggested it as a theatrical arrangement for contemporary art were both quite persuasive. The work corresponded to the context of formalist investigation of material in high modernism, responded to the method of Supports/Surfaces (1969-1972), responded to un-monumental sculptural experiments that began with Isa Genzken (1948-), and also showed contrast to the ghost objects of Chung Seoyoung (1964-) or the painting without support works by Katharina Grosse (1961-). The problem was with the following work: Single-stroke Writing_Small Landscape.
The artist said about Single-stroke Writing_Small Landscape, the sequel to Single-stroke Writing_Large Landscape: “After completing the big landscape, I tried to make another landscape in a fine and detailed finish. I made it in 2-dimensional and 3-dimensional forms.”
Single-stroke Writing_Small Landscape is a sort of art fair selling goods created based on the artist’s experience of making Single-stroke Writing_Large Landscape. (It also could be read as creating the situation responding to Goods 2015 made by the artist himself.) The individual works that constitute the artwork, the 2D and 3D goods, are kind of stage actors who diligently imitate and act as contemporary art, but suspicion arises upon closer inspection. (Note: Choi Haneyl’s 2D goods are, actually, the 3D sculptures that he claimed to be paintings.) In fact, he might have designed Single-stroke Writing_Small Landscape first and framed Single-stroke Writing_Large Landscape as an excuse to strengthen the former work.
C. Case <Saengryang 무협극 ‘생량(生凉)’>
In Saengryang (2015), Choi takes the convention of martial arts movies as an excuse and shows off his specialty, making something that looks like installation art. In a statement, Choi wrote: “Influenced by my parents, I enjoy watching Chinese martial arts movies. My video work Saengryang is an attempt to represent the sublime natural beauty within Chinese martial arts movies in an extremely artificial way. In order to shoot a short martial arts sequence that is under 4 minutes, I carefully planned the required scenes and created 15 sculptures that had audio-visual auditory functions. / In the exhibition area, where the viewers walk in, I placed the edited version of the video. In another space, which is far from the exhibition area, I closely arranged the functional sculptures. In the back part of the monitor that is playing the edited version of the video, I installed a closed circuit television so that viewers can see the live feed of the space where the functional sculptures are arranged.”
Choi made dual arrangements of the “edited version of the video” that seemed like the final output, and used “15 sculptures that had audio-visual functions” as props, which is the same head and tail format, or a similar case to Single-stroke Writing_Small Landscape and Single-stroke Writing_Large Landscape. Thus, I do not believe that he really attempted to represent or revive the delight he felt in the “edited version of video.” Rather, the point is playing the game of diagramming the arrangement with “15 sculptures that had audio-visual functions,” which also diagrams that world.
(Note: Performative sprezzatura that is conventionally represented/reenacted in Chinese martial arts movies, the Feng-shui view of nature, the aesthetics of the life energy (chi) and its vitality, and the artificial sublime beauty created by the conventional expression stylized for each scene are all in fact hard to regard as one individual’s art.)
The problem is that the nature of value or narrative created by this kind of sculpture-character is quite ambiguous. Can functional sculptures, which can be easily interpreted as props, play an active role the way real actors do? For that, wouldn’t it need some methodological leap?
D. In December and Lotus Land
After graduating college, Choi Haneyl continued the experiments with sculpture-character in December (2016) at the Audio Visual Pavilion and Lotus Land (2017) at the Asia Culture Center in Gwangju.
In order to respond to the exhibition key concepts ― seasons, climate, and landscape, his work Existing Sculpture (기설조각) in the exhibition December actualized and performed the functions of releasing styrofoam grains like snow, the chosen by-product of the sculpture, but basically applied the rule of Single-stroke Writing_Large Landscape. On the other hand, created based on the language of Single-stroke Writing, the other entry Single-stroke Writing_Folding Screen of 48-width <Joyful Snow> ruptured the pictorial plane of the screen, one form of 2D painting, and made it into a 3D form by cutting on the 3D structure again, and inserting a sculpture of a snowy landscape inside. Therefore, the latter might be a temporary transformation and union of the world that is divided into 2D and 3D forms in Single-stroke Writing_Small Landscape. Also, Existing Sculpture 기설조각 and Single-stroke Writing_Folding Screen of 48-width <Joyful Snow> had mutually responding structures (similar to previous works but manifested in a different way), thus it showed more clearly that the same head and tail format that caused meta-narrative motion through the arrangement of two works with different phases and dimensions is one of the fundamental methods operating in the artist’s artworks.
However, Act 5 <The Large Outer Courtyard> 제5막 <궁전의 큰 앞뜰> in Lotus Land was composed of sculpture-actors based a scene in Faust by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Unlike Choi’s stated explanation that he “intended to design a complete sculptural theater without lines,” the outcome seemed more like a sort of showcase for sculptural theater, or maquette.
Then, what was the true nature of the characters in the massive crowd in Act 5 <The Large Outer Courtyard>? Was it the result of having enthusiasm ― Moe (萌え) ―towards certain information and making it into contemporary art? Or, was the individual artwork a sort of drag persona by the artist, while the situation designed by him was a drag show of contemporary artworks? (Note: The latter was attempted by Elmgreen and Dragset in 2007 at the Skulptur Projekte in Munster ― the famous Drama Queens, which also failed.)
E. The immediate task: Change and renew existence through methodological improvements
In 2017, responding to today’s situation that the 2D plane is recognized and understood as 3D forms and vice versa, Choi Haneyl suggested a manipulation in his concept: “cross section image as capturing” in order to develop his work method. Premised on human’s incapacity to recognize a structure through an object’s image, Choi reformulated the visual framework through capturing, using a perspective and concept based on the omniscient device of the smartphone. Instead of the ordinary way of looking, and the new perspective and concept substituted the capturing of the outer layer in order to advocate the capturing of a cross section of an image. The following is Choi’s statement:
“The form of a 3D object’s surface provides us with fragmentary images and even lures us to capture them. In order to prevent the gaze that pierces through the skin and reach the interior, like how virtual planes conceal things that don’t have depth, the actual 3D object hides within its depth. The virtual plane forces us to adapt to the method of capturing, and it has had strong effects on the process of recognition of 3D forms in the real world. However, a 3D object must have thickness. According to this proposition, photography cannot be the medium to properly capture a 3D object. Only our visual perspective is being used for the capturing, which upholds photography’s function as a medium. Now we need a new way of looking. The recognition method that realizes a 3D object has thickness.
Let’s try to understand this cup before me through sectioning, not capturing. Let’s imagine its cross section from different angles. This is a very unconventional method. It is easy to capture every side of one object, but sectioning the object from different angles is unusual. Especially when modifying an already cut side by the opposite axis, it brings confusion to the imagined image as it repeats itself over and over. The cross section grows more bizarre as it has more axes. When the cross section is curved, it becomes more complicated. When a hot-wire cuts styrofoam in curves, as the action is repeated, the appearance of the cubic styrofoam becomes more atypical looking, and its original form no longer be imagined. Making new cross sections over and over again: that is the method of sectioning an image in capturing as I have suggested.
“[...] Now let’s suppose that we have 3 eyes. Two eyes to scan the exterior and one eye to penetrate into the interior. Let’s practice capturing the thickness with 3 eyes.
Let’s say there is a car approaching me. First, scan all sides of it, then separate its skin. After separating that image, its body is still rushing. From now on, we should create irregular sectioned images, as many as we can. As if cutting a thick cake in many directions, design as many axes as we can to create the cross sections. The more skillful you are, the more atypical the cross section would be, to the point that it can no longer be reassembled. At last, the car is a wreck. A grotesque wreck that no one can ever reassemble.”
Based on this methodological hypothesis, Choi Haneyl proposes more actualized ways of allegorical cutting in his solo exhibition No Shadow Saber. The artist decided to master the skill of moulinet, a circular cut for connecting motion in fencing with a European military sword ― the Sabre. Choi wanted to cut an object with the circular cut to change and renew the ontological status of the object. This is taken from his statement released before the exhibition:
“In the exhibition space, discovered symptoms are placed. The still objects drawn on the canvases slowly fall to the ground, and the sculptures strip their skin, expose their inner side, and lie down. Some canvases twist their bodies to emphasize their sides while other sculptures expose their interior as if they were sporadically under attack. These signs unexpectedly gain some power, as they exist in a raw state.
Then it leads to my practice of actively utilizing symptoms. The method of cutting an object and intentionally exposing its cross sections connects to the experiment with regular solids. The figure is disassembled with random moves that deviates from its original nature, and gains a sense of unpredictability. This practice can be divided into 2 actions: cutting and being under control. The practice develops alongside each operational rule, and results in one general outcome. Trainable recognition capability is linked to one sculpture that is equipped with the sense of unpredictability, which intensifies the viewer’s confusion.
At last, past recognition method breakdown and a new trainable method is provided. The new confusion and sense of unpredictability resulting from a series of outcomes produce another sign. The unfixed floating mass of which the true form becomes is unpredictable and transforms the role of sculpture. Capturing the existence that cannot be captured with drawing and photography: that is the role given to sculpture.”
The problem is the fact that the basic form of time-space created through the physical practice of conceptual cutting ― a circular movement― is a spiraling structure. It is no different than the spiral structure in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in New York, or the Monument to the Third International ― what the materialists took as the analogical development model of history.
Originally, the spiraling structure symbolized the impossible as imagined in the Tower of Babel, or when applied to the time-space of reversed images, which led to Inferno by Dante Alighieri (1265-1321), or the world of hell, which was drawn by Antonio Manetti (1423-1497) and Sandro Botticelli (1445-1510). (On the other hand, hell may be the symbol of possibility through reinterpretation.)
Can Choi Haneyl reveal the inferno of contemporary art through the spiral cutting movement? Can his sculpture-diagram-character create meta-narratives that correspond to Dante’s La Divina Commedia? (Note: It is clear that today ― as encroached by atemporality ― must die for tomorrow to live.)
Choi Haneyl’s solo exhibition No Shadow Saber runs from July 7 to 30, 2017. At last or to begin, I would like to ask: through sculptural cutting of no shadow saber, what illusions did/do you see?
P.S. There is a genealogy of exposing the essence of an object through cutting and diagraming, and highlighting contemporaneity ― alongside historical references of Lucio Fontana, Supports/Surfaces, and Gordon Matta Clark, the contemporary artists David Altmejd (1974-) and Clemens Behr (1985-) may also be mentioned.
(translated by Art & Writing)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 SeMA)은 2008년부터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장 대관료, 홍보 및 인쇄비, 작품 재료비, 전시컨설팅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의 폭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신진미술인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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