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컬렉션 개요
김명희 컬렉션은 작가 김명희(1949– )의 예술 활동과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록 자료로 구성된 컬렉션이다. 본 컬렉션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 생산된 메모와 오브제, 작업 도구를 비롯하여 전시 관련 인쇄물과 사진·영상 자료, 작가의 활동과 일상을 기록한 자료 등 총 286건의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김명희의 예술적 탐구와 창작 과정뿐 아니라 작가가 살아온 시간과 환경, 그리고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관계망을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김명희는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해외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문화적 환경을 경험했으며, 이러한 경험은 이후 작가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주와 정체성의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1976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대학원에 진학하며 해외에서의 예술 활동을 시작했고, 약 15년간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한국 작가들과 교류하고 이민자로서의 경험을 작업에 반영하였다. 1990년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에는 강원도 춘천 내평리에 정착하여 폐교를 작업실로 삼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 시기 버려진 칠판을 작업 재료로 활용하면서 시작된 ‘칠판 회화’는 김명희 작업의 중요한 특징을 형성한다.
김명희의 작업은 이주 경험과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개인적 기억과 역사적 사건 사이의 긴장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특히 칠판을 활용한 회화 작업은 과거의 기억과 상실, 일상의 흔적을 환기시키는 매체로 기능하며, 이후에는 영상 매체와 결합한 실험적인 형식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이주와 탈구(dislocation), 혼종성(hybridity)과 같은 개념을 통해 정체성과 역사, 기억의 문제를 탐구하려는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컬렉션에 포함된 다양한 기록 자료들은 작가 김명희의 예술적 관심이 형성되는 과정과 활동의 맥락을 함께 보여준다. 특히 뉴욕 활동 시기 한국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기록한 사진, 영상, 여행지에서의 단상과 작업 노트 등은 이주와 정체성, 혼종성이라는 작가의 핵심 주제가 어떠한 환경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개인적인 일상 기록과 서신 등은 여성 예술가로서 예술 활동을 지속해 온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를 지닌다.
2. 컬렉션 수집 과정
김차섭, 김명희 컬렉션은 2019년부터 작가 면담을 바탕으로 수집 가능성이 논의되었다. 자료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두 작가 모두 공감하며 기증 의사를 밝혔고, 연중 절반가량을 미국에서 체류하는 생활 여건을 고려해 수집 대상의 범위를 조속히 확정하고 단계적으로 수집을 진행하기를 희망했다. 이후 2021년에는 사본수집 형태로 실질적인 수집 절차가 진행되었고, 김차섭 컬렉션 518건, 김명희 컬렉션 278건 총 796건의 자료에 대한 디지털본이 수집되었다.
3. 컬렉션 구성
김명희 컬렉션은 총 278건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 작품 자료(66건), 활동 자료(82건), 개인 자료(130건)의 세 시리즈로 분류되어 있다. 이러한 분류는 자료의 생산 시기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작가의 작업과 일상에 관한 기록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자료의 성격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작품 자료는 다시 작품 제작 이전 단계와 전시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작가의 작업 과정과 발표 과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다.
작품 자료
‘작품 자료’ 시리즈는 작품 제작 이전 단계의 구상 자료와 전시 관련 자료로 이루어져 있다. 구상 자료에는 작품 제작 이전에 작성된 메모와 작업 과정에서 사용된 오브제, 작업 도구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김명희가 작품의 주제와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남긴 사유의 흔적을 보여준다. 특히 여행이나 일상 속에서 기록된 메모들은 작가가 경험한 이주와 정체성, 역사적 기억 등에 대한 고민이 작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MA-02-00011371 김명희 작품 구상 메모
MA-03-00011504 2003년 〈끝 없는 생각(Endless Thought)〉 외 전시작품 모음 사진파일
김명희의 작업은 일상적 풍경과 개인적 기억, 그리고 이주 경험에서 비롯된 정체성의 문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특히 귀국 이후 시작된 칠판 회화는 작가의 작업을 대표하는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우체부〉(1994)는 내평리 마을의 일상적 풍경을 소재로 삼아 지역 공동체의 삶을 담아낸 작품이며, 〈사마르칸트의 황금복숭아〉(1999)는 여행 경험과 역사적 상상을 결합하여 문화적 이동과 기억의 문제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작업이다. 또한 〈퍼즐〉(2000)과 같은 작품에서는 칠판 회화와 영상 매체를 결합하는 매체 실험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시도는 회화와 미디어를 결합하여 기억과 이동, 정체성의 문제를 확장하려는 작가의 관심을 보여준다.
활동 자료
‘활동 자료’ 시리즈는 총 82건으로, 기사·비평·인터뷰와 같은 텍스트 자료와 예술 활동 사진 및 영상, 약력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뉴욕 시기 한국 작가들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 기록은 1980년대 뉴욕에서 활동한 한국 예술가들의 네트워크와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귀국 이후 강원도 춘천 내평리 작업실에서 이루어진 활동 역시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어 작가의 작업 환경과 예술 활동의 지속성을 살펴볼 수 있다.

MA-03-00011359 내평리 작업실 근처에서 표현그룹 멤버들과 김명희, 김차섭을 촬영한 인화사진
MA-03-00011363 뉴욕 작업실에서 〈남북 UN 동시가입〉 작업 중인 김명희와 지인들을 촬영한 인화사진
MA-02-00011382 「김명희의 예술세계-절제된 세계 속의 복합 이미지」 원고
김명희는 1970년대 결성된 여성 작가 그룹 ‘표현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표현그룹은 1971년 유연희, 박영욱, 윤효준, 김형주, 노정란, 이은산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여성 작가 모임으로, 당시 한국 화단의 남성 중심적 구조 속에서 여성 작가들의 공동 활동과 교류를 모색하였다. 김명희는 1974년 서울 신문회관에서 열린 표현그룹 단체전을 계기로 그룹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표현그룹 전시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였다.
컬렉션에 포함된 사진 자료는 표현그룹 작가들이 김명희와 김차섭의 춘천 내평리 작업실을 방문하여 촬영한 것으로, 1990년대 이후에도 표현그룹 작가들 사이의 교류와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개인 자료
‘개인 자료’ 시리즈는 총 130건으로, 김명희 컬렉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시리즈에는 어린 시절과 일상 생활을 기록한 사진과 영상 자료, 여행 기록, 수집 자료, 서신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1980년대 초반부터 기록된 여행 사진과 영상 자료는 이후 김명희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작가가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경험한 문화적 환경과 풍경은 이후 작품의 주제와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자료들은 김명희의 예술적 관심과 시각적 경험의 배경을 보여주는 기록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MA-05-00011346 김향안이 김명희, 김차섭에게 보낸 서신
MA-03-00011397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멕시코 여행 슬라이드 필름
특히 멕시코 여행과 관련된 자료는 김명희의 예술적 경험이 형성되는 과정과 동시대 미술 담론의 맥락을 함께 보여준다. 컬렉션에는 미술평론가 윤범모가 작성한 「김명희의 예술세계 – 절제된 세계 속의 복합 이미지」 자필 원고가 포함되어 있는데(MA-02-00011382, 「김명희의 예술세계-절제된 세계 속의 복합 이미지」 원고, 김명희 컬렉션, 김명희,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아카이브 소장), 이 글에는 멕시코 벽화운동 현장을 답사하며 얻은 인상과 김명희의 작업 세계에 대한 평론가의 사유가 기록되어 있다. 원고에서 언급되는 멕시코 현장 답사 경험과 여행 기록은 컬렉션에 포함된 멕시코 여행 슬라이드 자료와 함께 읽힐 때, 김명희와 동료 예술가들이 해외 미술 현장을 경험하며 형성한 예술적 관심과 사유의 맥락을 보여주는 자료로 이해될 수 있다.
4. 김명희 컬렉션은…
김명희 컬렉션은 한 작가의 작품 활동을 설명하는 자료를 넘어, 특정 시대를 살아간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적 실천을 함께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이 컬렉션에 포함된 메모와 사진, 영상, 서신 등 다양한 자료들은 김명희의 예술적 탐구가 형성되는 과정뿐 아니라 작가가 경험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함께 드러낸다. 특히 뉴욕에서의 이주 경험과 귀국 이후 내평리 작업실에서의 생활, 그리고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교류는 김명희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을 제공한다.
또한 본 컬렉션은 작가 김명희가 동시대 미술 환경 속에서 작업을 지속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김명희는 동료 화가 김차섭과 예술적 동반자로서 활동하며 뉴욕과 한국을 오가는 삶을 이어갔고, 이러한 삶의 경험은 작품의 주제와 형식에도 깊이 반영되었다. 특히 이주와 정체성, 탈구(dislocation)와 같은 문제의식은 김명희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로, 다양한 메모와 기록 속에서 그 사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점에서 김명희 컬렉션은 한 개인의 작업 기록을 넘어 여성 예술가가 동시대 미술 환경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형성해 온 과정과 실천의 궤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컬렉션은 1980년대 뉴욕에서 활동한 한국 예술가들의 교류와 네트워크, 그리고 귀국 이후 지역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작업 활동을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미술사의 다양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아카이브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글 | 박제언(독립 큐레이터)
교정 교열 | 강유미 Copy Editing: Yumi 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