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예전 TV에서 방영되던 음악방송에서는 가수들의 타이틀 소개와 함께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가 수집해둔 정정엽컬렉션 중 도록 맨 뒷 페이지에서 발견한 작가의 이메일의 아이디가 '입파리’였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름을 스스로 붙인 미술가는, 과연 어떻게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페미니스트 활동, 육아, 작업실 이사, 동료와의 연대, 그리고 개인전을 모두 해낼 수 있었을까요? 누구도 증명해 주지 않던 시절, 그는 어떻게 스스로를 증명하며 자신의 역사를 구축해왔을까요? 정정엽 작가가 직접 남긴 개인전 자료, 작가노트, 그리고 활동 기록을 통해, 시대의 한 구석을 굳건히 살아낸 한 여성 예술가의 발자취를 되짚어봅니다. 1. 현장을 바라보는 시선과 연대의 시작 첫 개인전 《생명을 아우르는 살림》(1995) 도록 및 작품 이미지 정정엽의 첫 개인전 《생명을 아우르는 살림》(1995)에서 그는 노동 현장의 여성들을 그립니다. 그동안 미술사에서 신비화되거나 대상화되어 온 여성의 모습이 아닌, 실제 땅에 발을 딛고 삶을 일궈내는 진짜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낸 것입니다. 여성의 삶과 노동을 예술의 중심부로 끌어올린 이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장과 동료를 향한 연대로 확장됩니다. 2000년 '입김'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 보도기사와 기사에 대한 댓글 프린트 이어지는 자료는 2000년 여성미술작가회 '입김'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 관련 보도기사와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담긴 댓글 프린트입니다. 가부장적 유교 문화의 상징인 종묘를 정면으로 비판하려는 예술적 시도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적 시선 사이의 격렬한 대립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합니다. 만약 현재 작가가 동일한 작업을 던진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2000년대 초반과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지워지다' 시리즈 작품 촬영필름 투쟁과 소란의 한복판을 지나, 작가의 시선은 사라지고 지워져가는 소수자들에게 다가갑니다. 2005년과 2006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지워지다' 시리즈 필름 속에는 멸종 위기의 동식물과 여성들이 붉은 잉크 면에 눌린 듯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워지는 존재들에 대한 어렴풋하고 우울한 감정, 그러나 작가는 이 소멸의 기록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2009년 「작가노트: 나의 얼굴」 작가는 반쯤 기계로 변한 자신의 얼굴을 온화한 표정으로 그려냅니다. 글 속에서 그는 “삶의 알리바이를 그만두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고백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설득해야 했던 고군분투의 시간을 지나, 예술가로서 자기 존재를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선언이 아닐까요? 여성으로서 시대를 살아내며 겪었던 깊은 고통 끝에 마침내 다다른 단단한 내면의 결단입니다. 1990년 2016년까지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진 〈나의 작업실 변천사_1990〉 드로잉 이 모든 거친 여정을 지속하게 해준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1990년부터 2016년까지 길게 이어진 〈나의 작업실 변천사〉 드로잉에서 무언가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일상, 작업실을 거쳐가는 과정, 지역 미술그룹 동료들과 창작의 즐거움을 나누는 순간들이 한 장의 간결한 드로잉 속에 담겨 있습니다. 거창한 선언이 아닌, 일상의 노동과 지역 연대, 그리고 그 안에서 누리는 소소한 창작의 기쁨이야말로 정정엽이 스러지지 않고 작업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진짜 동력이었다고 감히 추측합니다. 정정엽 작가의 아카이브는 한 여성 예술가가 시대를 정면으로 통과하며 만들어낸 ‘지속 가능한 삶의 지형도’가 아닐까요? 누구도 길을 내어주지 않을 때 스스로 단단한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온 그의 기록은, 오늘을 살아가는 다음 세대 여성 예술가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강하고 아름답게 되어보자고.</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