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컬렉션 개요
김용익 컬렉션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건립 과정 초기에 수집한 컬렉션 중 하나로 1970년대 초 대학 시절부터 2021년에 이르기까지의 김용익 생애 전반에 걸쳐 수집, 생산한 약 1,000여 건의 자료로 구성된 컬렉션이다. 김용익은 1974년 데뷔 후 현재까지 모더니즘 미술에서부터 개념주의 미술, 공공·생태미술을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흔히 계보로 설명되는 미술 운동·사조 중심의 서사에 잘 포착되지 않는 미술 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대학 졸업 후부터 오랜 기간 교육가로 활동했다.1) 따라서 김용익 컬렉션은 시기별로 변화해온 그의 작업 양식과 활동 범주에 따라 구성되어 여러 사조와 운동을 넘나들었던 김용익 작업과 활동을 서술한다.2) 단 하나의 명제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의 저서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의 제목처럼, 김용익의 다양한 작업 경향과 활동 전반에는 왜 미술을 하는지, 왜 미술이 그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아카이브에 더 가까이 다가설 때,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그의 사유, 작업, 실천이 변화되는 과정이 더 뚜렷이 드러난다.
2. 컬렉션 수집 과정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개관 전 1차 수집(2017-2018) 당시 2017년 7월 20일 국제갤러리 아카이브실에서 진행한 김용익 작가와의 자료 분류 모습
김용익 컬렉션의 수집은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2017년 7월 4일의 첫 미팅에서 출발하여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개관 전 1차 수집 사업(2017-2018), 그리고 2021년의 2차 수집 사업으로 완료되었다. 1단계 수집 과정에서는 지역에 들어서는 공공 문화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김용익의 공공적 활동에 대한 자료가 우선적인 수집 대상으로 고려되었다. 김용익의 2000년대의 공공미술, 생태미술 작업 관련 자료와 경원대학교에서의 미술교육 관련 자료, 각종 작가 노트와 일부 작품 관련 전자자료가 2018년 기탁되었다. 2021년 3년간의 기탁이 완료된 시점에서 김용익이 추가적인 자료의 기증 의사를 밝혀옴에 따라 유관 기관의 협조하에 기존의 기탁 자료 및 자택, 작업실, 전속 갤러리 등에서 보관 중인 자료 일체가 2021년 10월 기증되었다.
3. 컬렉션 구성
김용익 컬렉션은 ‘작품 및 전시 관련 자료’, ‘미술제도 관련 활동’, ‘미술교육 자료’ 및 ‘개인 자료’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및 전시 관련 자료’ 시리즈는 작품에서의 주요한 조형적·내용적 변화를 따라 다시 시기별 하위 시리즈로 분류되었다. ‘미술 제도 관련 활동’은 공공미술 작업의 계기가 되었다 할 수 있는 ‘광주비엔날레의 정상화와 관료적 문화행정 철폐를 위한 범미술인위원회’ 및 이어진 일련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의 활동에 대한 자료들로, 비슷한 시기의 ‘작품 및 전시 관련 자료’ 시리즈와 연관하여 읽어볼 수 있다. ‘미술교육 자료’ 시리즈는 1991년부터 재직했던 경원대학교에서의 강의, 졸업 전시 기획 등 교육자로서의 김용익의 활동에 대한 자료가, ‘개인 자료’는 1970년대부터 그가 작성해 온 작가 노트, 스케치, 석사 논문 관련 자료, 각종 기고문 등이 포함되어 생애 전반에 걸친 그의 글쓰기 실천과 사유를 볼 수 있다.
개념적인 것을 시각적인 것으로 연결하기: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작품, 전시 관련 자료’ 시리즈
김용익은 홍익대학교 조소과·회화과 졸업생들의 모임이었던 ‘에스쁘리’의 4회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1974년 데뷔하였다. 1970년대에 걸쳐 1990년대까지 김용익은 〈평면 오브제〉 시리즈를 포함 ‘판지’, ‘빗금’, ‘조각’ 시리즈, 소위 ‘땡땡이’라 불리는 〈가까이...더 가까이... 〉 등 여러 형태의 연작를 제작했다. 스프레이로 주름을 표현한 천을 다시 주름지게 걸어 평면상의 주름 표현과 주름진 오브제를 동시에 보여주는 〈평면 오브제〉 시리즈, 실제 판지와 연필 드로잉을 하나의 평면에 표현한 ‘판지’ 시리즈 등에서 평면 위에 입체 환영을 표현하는 전략을 드러내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서양의 전통적인 회화가 추구했던 입체의 환영을 부정한 서구 모더니즘의 양식 그리고 이를 수용한 한국 모더니즘 양식을 다시 한번 비튼다.
MA-06-00002340, 1978년 10월 16일 ギャラリー 手 김용익 개인전 리플릿, 76.5×19cm
MA-03-00002277, 1997년 금호미술관 김용익 개인전 설치전경 등 사진, 디지털 이미지 파일
이는 순수한 무언가로서의 작품, 영구히 보존해야 할 무언가로의 작품이라는 개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그의 견해와 맥을 같이한다. 그의 작품은 오래 보존될 수 있는 재료보다는 광목천, 판지, 종이 등 연약한 재료를, 견고한 형태나 정제된 양식보다는 부드러운 형태나 불균형한 구조, 희미한 드로잉 등의 양식을 보여준다. 또한, 과거의 작품을 그대로 보존하기보다는 1997년 금호미술관의 개인전처럼 과거의 작품을 개작 또는 재제작하거나, 작품을 바깥에 그대로 내어두어 자연과 세월의 흔적을 남기거나, 그것을 다시 포장하거나 위에 덧칠하는 등 후일 자신의 작품을 재방문하여 새로운 작업으로 옮겨가는 방식을 전개하였다.
MA-06-00002341, 1982년 11월 4일부터 10일까지 관훈미술관 김용익 개인전 리플릿, 52×25cm
이렇듯 김용익 컬렉션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작품의 시기별 조형적 변화에 따라 분류가 가능하면서도 이러한 조형적 구분을 가로지르는 일련의 개념의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1982년 관훈미술관에서 열린 김용익의 개인전에 출품된 ‘판지’ 시리즈에 대하여 이일은 “천작업에서의 일류전 효과를 시각적 명증성으로 대치”시킨 작업으로 평하면서 개념적인 요소에 더해 “작품을 시각적 대상으로서 문제 삼고 있는 점”이 김용익 작업의 핵심임을 상기시킨다.3) 즉, 〈평면 오브제〉 시리즈의 개념이 ‘판지’ 시리즈로 옮겨와 다른 시각적 형태로 구현되었음을 가리키며 후일 김용익이 계속해서 천착해 갈 개념들을 예견하고 있다.
MA-03-00002303,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2011) 출판을 위해 2011년 6월 7일 촬영한 <가까이... 더 가까이> 시리즈, <절망의 완수> 시리즈 등의 작품 전체·디테일 사진, 디지털 이미지 파일
1990년대 초 김용익은 오늘날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가까이...더 가까이...〉 시리즈를 발표한다. 일명 ‘땡땡이’ 시리즈라고 불리는 이 일련의 작업은 원 또는 사각형의 패턴이 하얀 평면 위에 배열된 작업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미하게 적은 텍스트, 식물을 짓이겨 희미하게 칠한 붓질이 드러나는 평면 작품이다. 1990년 김용익이 해당 연작을 구상했던 초기에 제작한 〈무제〉(종이 3겹으로 구성된 드로잉, 100×82cm)의 경우도 기하학적 패턴이 겹쳐 있는 화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품이 만들어진 경위, 부질없는 미술에 대한 김용익의 텍스트가 쌍을 이루는 두 개의 작품에 적혀있다.4) 〈가까이...더 가까이... 〉 시리즈는 미니멀한 화면 위 작가의 주저함을 간직한 듯한 표현들을 희미하게 드러내면서 ‘모더니즘 이미지에 흠집내기’의 작업이 된다.
MA-03-00002293, 1998년 《도시와 영상 – 의식주》에 설치된 김용익 작품 사진, 디지털 이미지 파일
1990년대 후반 김용익은 캔버스나 종이라는 매체를 벗어나 더 확장된 작업으로 시리즈를 전개한다. 그가 참여한 《’98 도시와 영상전—의식주》, 《동북아와 제3세계 미술》 관련 자료들은 ‘모더니즘적 이미지에 흠집내기’라는 개념을 회화라는 매체를 넘어 전시 공간과 제도라는 영역으로 확장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98 도시와 영상전—의식주》의 김용익 출품작은 명제표 작업, 플래카드 및 배너 작업 및 엽서 작업 등 전시 연출이나 진행을 위해 사용하는 실용적 물건으로 제작, 전시 내·외부 곳곳에 설치 또는 사용되었다. 김용익은 교환가치를 가진 현대미술 작품과 실용가치를 지닌 물건을 동일시하고 전시장 안과 밖을 해체해 전시장 안에 놓이는 감상의 대상으로서 제도화된 미술의 개념을 재고하고자 했다. 또한 플래카드, 배너 등이 전시장 밖에 설치되면서 그의 작업은 공공적 장소라는 새로운 컨텍스트를 발견했고 2000년대 공공미술 작업으로 이어진다.
개념적인 것을 발언적인 것으로 연결하기: ‘2000년대 작품, 전시 관련 자료’ 하위 시리즈와 ‘미술제도 관련 활동’ 시리즈
2000년대에 김용익은 자신의 회화를 다시 꺼내어 그 위를 덧칠하는 〈절망의 완수〉 시리즈 등과 같은 회화 작업도 지속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다양한 공공·생태미술 작업을 많이 제작하였다. 김용익은 1999년 제2회 광주비엔날레 최민 전시 총감독의 해촉에 반발하여 결성된 ‘광주비엔날레의 정상화와 관료적 문화행정 철폐를 위한 범미술인위원회’ 위원장, 1998년의 대안공간 풀 설립, 2003년 미술인회의 창립 등에 참여하면서 그간 이어온 불합리한 미술 제도와 행정을 개선하고 새로운 미술 제도를 제시하는 데에 적극 활동했다. 이러한 활동들에 관한 자료들은 김용익 컬렉션의 ‘미술제도 관련 활동’ 시리즈로 분류되어 당시 미술 현장의 상황과 다양한 단체, 조직들의 성립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2000년 양평으로 이주하기도 한 그는 이러한 활동들을 계기로 작업에 더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공공·생태미술의 작업을 펼쳐 나갔다.
MA-05-00002240, 2000년 7월 양평 프로젝트 관련 홀 내부 바닥 붉은 벽돌 및 풀에 대한 시안 문서, 21×29.7cm
김용익이 처음으로 공공미술을 제작한 것은 〈양평프로젝트/프로젝트〉로, 양평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박물관 유치를 위해 ‘2000, 새로운 예술의 해’ 기획 공모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것이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 양평에서 모은 벽돌을 깔고 그 사이로 식물들을 자라나게 하면서 양평의 농수산물을 파는 등의 이벤트를 펼친 〈양평프로젝트/프로젝트〉가 되었다. 2000년대의 작품 등에 대한 자료로 구성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작품, 전시 관련 자료’ 하위 시리즈는 〈양평프로젝트/프로젝트〉 외에도 〈Eco-anarchism Project—Deserted Park〉, 〈날 그냥 흐르게 좀 내버려둬〉, 〈서경별곡〉 등 공공 프로젝트별 관련 자료와 1990년대 작품을 다시 덧칠하여 지우는 〈절망의 완수〉 시리즈 관련 자료, 개인전 및 단체전 자료 등이 포함되어 있어 사회 문제에 대한 발언과 자연과 생애, 삶과 죽음 등에 대한 고찰을 담은 김용익의 다양한 활동들을 보여준다.
계속되는 사유: ‘개인 자료’ 시리즈
‘개인 자료’ 시리즈에는 김용익의 작가 노트, 메모, 스케치, 기고문, 석사 논문 관련 자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 노트나 메모, 기고문 등 김용익이 썼던 글이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개인 자료’ 시리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김용익은 오랜 기간 글을 써왔는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아이디어를 구체화해가는 구상의 글, 당시의 사건과 세태, 미술 현장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언하는 글, 더 나아가서는 작품 위에 적은 텍스트처럼 미술 하기의 하나의 방식으로써의 글 등 다양한 성격의 글을 생산했다. 이처럼 ‘개인 자료’ 시리즈의 자료들은 작품, 작업 관련 자료에서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사유, 작품이 구상되거나 구체화 되어가는 과정, 작품 외의 활동들을 펼친 계기 등을 담고 있다. 오랜 기간 그가 실천한 글쓰기는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작업으로서의 글쓰기를 일찍이 실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용익에게 글쓰기는 시각적 매체를 벗어나 텍스트로 매개로 하는 삶 속의 예술 실천이었다.
특히 김용익의 ‘개인 자료’ 시리즈에는 ‘작가 노트, 메모, 일기’ 파일로 분류된 자료들이 있는데, 70년대에서 80년대에 당시에는 구하기 어려웠던 외국 문헌 자료들을 번역하여 필사하거나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의 타이틀 아래 관련 문헌들의 부분들을 발췌하여 적은 노트들이 다수 있다. 중간중간에 해당 사안, 이슈, 명제 등에 대하여 그의 생각을 적은 메모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료들은 70년대부터 80년대 사이,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해외 잡지 기사 등을 구해보며 자신들의 작업과 활동을 논리적으로 또는 학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당시 미술 학생들 사이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처럼 개인 자료에는 김용익의 작품이나 활동 자체를 설명할 수 있는 정보 이외에도 당시 무엇이 중요한 관심사였는지, 무엇이 주요하게 논의되었는지, 어떤 교류들이 있었는지 당시의 현장의 맥락 역시 담겨있다.
MA-02-00001996, 1961년 『20세기미술』 및 『구상의 혁명(アラン·ジュフロワ)』 필사 원고, 26×17.7 cm
4. 김용익 컬렉션은...
김용익 컬렉션은 그의 다양한 활동과 작업의 반경을 비춘다. 이러한 김용익 작업 세계의 유동성은 그의 작업을 현실주의 계열의 작업으로도, 모더니즘 계열의 작업으로도 분리할 수 없는 주요한 이유로 보인다. 그의 작품 활동, 미술제도 관련 활동, 개인 자료들은 그가 현실주의적 표현 방식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사회에 대한 미술의 역할에 대한 고민, 관점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특히 70년대에서 80년대의 작품은 표현의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개념미술과 교차되는 지점이 있으며, 그의 초기 기고문 등은 표현양식에 관계없이 미술의 전위적 성격에 대한 그의 신념을 보여준다. 미술의 전위적 성격이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 자료들 곳곳에서 발견된다. 김용익의 아카이브를 미술 현장의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면, 김용익의 작업과 아카이브의 넘나듦은 양분화된 한국현대미술 서사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용익 컬렉션은 현대미술의 또 다른 지도들을 가리키며 한국현대미술의 다른 기록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제시하고 있다.
글 | 유예동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학예연구사)
교정 교열 | 강유미 Copy Editing: Yumi Kang
1) 이솔, 「김용익: 단절된 미술사의 교차점에서」, 『김용익—가까이... 더 가까이...』(서울: 일민미술관, 2016), 196-197, 214-220. 이솔은 작가의 전기적 정보, 교육, 사사 등의 요소로 예술적 성장을 서술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김용익의 다른 작가, 비평가 등과의 만남에 관심을 두고 그 에피소드들이 이야기하는 인지의 지점들을 파악하려 했다. 그 에피소드 중 하나는 광복 60주년 특집으로 『월간미술』에 실린 미술협회·운동들의 형식적, 제도적 관계에 대한 지도, ‘한국현대미술사연표 1945-2005’에서 김용익이 제외된 것을 인지한 에피소드를 서술한다. 커다란 2개의 축이 만들어내는 이 연표의 서사에서 가로축으로 가로지르는 김용익이 설 자리는 없었다고 평가한다.
2) 함영준, 「가까이...더 가까이...: 김용익의 반성적 실천」, 『김용익—가까이... 더 가까이...』(서울: 일민미술관, 2016), 6. 2016년 일민미술관의 김용익 개인전 《김용익—가까이... 더 가까이...》 전시 서문에서 함영준은 김용익의 작업 전반의 변화를 서술하면서 김용익이 추구한 길은 민중미술과 모더니즘 미술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 두 종류의 미술이 화해될 수 있는 새로운 미술언어를 고민한 초극적 미술이라 정의한다; 석지훈, 「김용익의 개념주의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2021. 석지훈은 1974년부터 2021년까지 제작된 김용익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작품의 조형성이 개념을 중심으로 변화됨을 추적하며, 한국의 ‘개념주의’ 미술의 흐름을 재정의하고자 한다.
3) 이일, 「개념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 《金容翼展》 전시 리플릿(서울: 관훈미술관, 1982).
4) 김용익,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서울: 현실문화연구·포럼에이, 2011), 48-51.
쉬운 글 해설
김용익 컬렉션*은 김용익이 만들거나 모은 자료 약 1,000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용익은 1974년부터 현재까지 모더니즘 미술, 개념주의 미술, 공공·생태미술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만큼 김용익의 작품은 어떤 장르, 어떤 계보를 잇는 미술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습니다. 작가가 쓴 책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의 제목처럼 김용익은 왜 미술을 하는지, 왜 미술이 어떠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작가의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된 작가의 생각, 행동, 작업이 김용익 컬렉션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용익 컬렉션은 크게 4가지 시리즈**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 시리즈인 '작품 및 전시 관련 자료'에는 연대별로 구분된 5개의 하위 시리즈가 있습니다. 김용익은 〈평면 오브제〉 시리즈를 포함 ‘판지’, ‘빗금’, ‘합판’ 시리즈, 〈가까이… 더 가까이…〉 시리즈 등 연작으로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와 관련한 자료가 있습니다.
김용익은 작품을 순수한 무언가, 영원히 보존해야 할 무언가라는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오래 보존될 수 있는 재료가 아닌 종이, 판지 등 연약한 재료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더불어 김용익의 작품은 단단하고 깔끔한 형태보다는 부드럽고 불균형한 형태, 희미한 드로잉 등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작품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지 않고, 고쳐서 새로운 작품으로 발표하거나 작품을 바깥에 꺼내두어 자연과 세월의 흔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김용익은 종이, 캔버스 같은 작은 매체에서 벗어나 전시 공간, 제도의 영역으로 작품 활동을 확장해 나갑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하위 시리즈인 '2000년대 작품, 전시 관련 자료', '2010년대 작품, 전시 관련 자료’에서 이러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김용익은 전시에 사용되는 엽서, 배너, 플래카드 등 실용적인 물건을 제작해 작품으로서 전시장 안팎에서 배치했습니다. 전시장 안팎의 경계를 해체하면서 전시장 밖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발견한 김용익은 2000년대 공공미술 작업으로까지 나아갑니다.
두 번째 시리즈인 ‘미술제도 관련 활동’은 첫 번째 시리즈 ‘작품 및 전시 관련 자료’의 네 번째 하위 시리즈인 ‘2000년대 작품, 전시 관련 자료’와 연결 지어서 볼 수 있습니다. 1999년에 열린 제2회 광주비엔날레의 제도적 한계에 큰 문제 의식을 가진 김용익은 미술 제도와 행정의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2000년 양평으로 이주한 김용익은 양평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세우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공공미술에 몸을 담습니다. 이때 김용익은 주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공공·생태미술 작품을 선보입니다. 기존 미술 제도와 행정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김용익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직접적으로 변해 갑니다.
‘미술교육 자료’ 시리즈에는 김용익이 1991년부터 일하기 시작한 경원대학교에서의 강의, 졸업 전시 기획 등 교육자로서의 활동에 관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 자료’에는 1970년대부터 김용익이 작성해 온 메모, 작가 노트, 석사 논문 관련 자료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1970~1980년대에 구하기 어려웠던 해외 자료를 번역하여 필사한 흔적도 보입니다. 이러한 ‘개인 자료’를 통해 작품에 미처 드러나지 않은 작가의 생각, 작품이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개인 자료’에는 당시 김용익의 주요 관심사, 미술계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던 내용, 함께 이야기 나누며 교류하던 사람들에 관한 정보도 담겨 있습니다.
쉬운 글 해설 | 반재윤 (소소한소통)
*컬렉션: 예술자료의 가장 큰 단위.
**시리즈: 예술자료의 한 단위로서 컬렉션 바로 밑에 있는 단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