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과 미술연구 / SeMA 소장품
태몽 08-3, 2008, 김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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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연도 2008
  • 재료/기법 캔버스에 아크릴릭
  • 작품규격 123×100cm
  • 액자규격 -
  • 관리번호 2020-184
  • 전시상태 비전시
작품설명
김인순은 여성미술을 개척하고 사회 변화를 지향하는 행동주의 미술의 초석을 다진 작가다. 1980년대 초반 실천문학과 리얼리즘 미학에 영향받아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김인순은 ‘여성 해방’과 정치, 사회 변혁 운동을 실현해 나가는 실천적인 여성미술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여성 및 노동 현실에 천착한 작업을 진행하던 중 1990년 제4회 《여성과 현실》의 주제였던 ‘모성’을 탐구하며 ‘엄마 노동자’의 강한 힘을 형상화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모성’ 개념을 자연과 연관시키며 생명을 길러내는 어머니의 강인한 생명력을 그려나갔다. 여성의 모성 능력과 거대한 자궁으로서 ‘어머니 대지’의 원형적인 생명 창조력 사이의 유사성에 이끌린 김인순은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을 더욱 강화하며 본질주의적 여성미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뿌리> 시리즈에 ‘대지’와 ‘나무’ ‘뿌리’에서 발견한 여성의 생명력을 구현했고, 나아가 땅과 함께 숨 쉬는 들풀과 야생화에도 관심을 두며 생명의 질서를 예찬했다. 2008년부터는 여성의 생명력을 우주적 에너지로 확장한 <태몽> 시리즈를 시작했다. 우리 민족 신화와 전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고, 특히 콜롬비아 출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1927-2014)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Cienañosde soledad)』(1967)에서 크게 감명받은 김인순은 민화와 탱화, 오방색 등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 형식을 발견하고 현실과 신화를 결합하며 초월적 생명력을 그려낸다. <태몽> 시리즈는 과거, 현재, 미래가 교차하고 겹치며 공존하는 독특한 시공간 개념을 드러낸다. <태몽> 시리즈의 야생화와 자유롭게 춤추는 무용수는 생동감 넘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민화에서 따온 다양한 도상과 신화적 존재들은 길조와 상서로움을 전한다. 작업 초기부터 민화를 수집하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미 형식을 고민해온 김인순은 <태몽> 시리즈에서 우주 기운과 결합한 생명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민족적 조형언어로 완성했다. <태몽> 시리즈는 김인순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마지막 작품들이다.
 
<태몽 08-3>(2008)은 중국 고대 신화에서 창조신이자 생명의 신인 ‘복희’와 ‘여와’를 중심으로 상서로운 도상을 배치한 작품이다. 탱화의 군도식 구도와 민화의 대칭구도를 결합하여 균형미 있는 화면을 구성한 것이 돋보인다. 화면 중앙에 묘사된, 상반신은 사람 형상이고 하반신은 용 혹은 뱀 형상인 복희와 여와는 중국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인간을 창조한 여신으로 알려진 여와는 전통 모계사회를 대변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본래 두 여신은 구부러진 자와 제도 기구를 손에 든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는 촛불을 손에 들고 있다. 촛불은 두 인물 위쪽에 그려진 여성 생식기관인 나팔관을 닮은 형상에 불을 밝히고 있다. 붉은 자궁 아래는 잉태를 상징하는 나비를 그려 여성의 잉태 능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복희와 여와의 머리는 높은 관직을 의미하는 맨드라미와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꽃으로 장식했고, 주변은 화조도 도상을 활용한 꽃과 새를 그려 넣어 길상적 의미를 전달한다. 분리되지 않고 서로 꼬인 하반신 아래쪽 중앙의 푸른색 구슬은 세상 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생명을 생산하는 여성성을 환상적으로 형상화한다. 복희와 여와를 둘러싼 무수한 별들의 연결망 역시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인순은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해 1962년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미술과를 졸업했다. 1982년 작업을 재개해 1984년 첫 개인전을 열며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1985년 시월모임을 결성했다. 이후 여성미술연구회 대표, 그림패 둥지 대표, 노동미술위원회 위원장,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 민족미술인협회 공동회장을 역임하면서 민중미술 계열의 미술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문화위원,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이사, 여성문화예술기획 이사를 역임하며 여성단체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84년 첫 개인전 《김인순전》(관훈미술관, 서울)을 시작으로 1995년 《여성·인간·예술정신》(복합문화공간 21세기, 서울), 2005년 《느린 걸음으로》(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17년 《김인순 초대전》(지앤갤러리, 울산) 등 7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86년 《40대 22인전》(그림마당 민, 서울), 제2회 시월모임 《반에서 하나로》(그림마당 민, 서울), 1987-1994년 《여성과 현실》 연례전(그림마당 민, 서울), 1989년 《89통일염원미술전》(그림마당 민, 서울), 1991년 《한국의 여성미술: 그 변속의 양상전》(한원갤러리, 서울), 1992년 《이동미술관: 우리들의 만남》(그림마당 민, 서울, 현대자동차 사업장, 울산 등 순회), 1993년 《코리아 통일미술전 コリア統一美術展》(도쿄 센트럴미술관, 오사카 현대미술센터, 일본), 1994년 《민중미술 15년: 1980-199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97년 《97광주통일미술제》(국립5·18민주묘지, 광주), 1999년 제1회 《99여성미술제: 팥쥐들의 행진》(예술의전당, 서울),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광주비엔날레전시관, 광주), 2008년 《언니가 돌아왔다》(경기도미술관, 안산), 2019년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등 12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3년 예술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1997년부터 경기도 양평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