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1931-1993)는 1953년 공주사범대학교 국문과, 1957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68년 오스트리아 슐리어바흐(Schlierbach) 수도원 공방에서 가톨릭 유리화 연수를 받았다. 1970년 오 파베 화랑(Galerie du Haut Pave, 파리, 프랑스), 국립공보관(서울), 1977년 선화랑(서울), 1979년 한국화랑(서울), 1985년 서울미술관(서울), 1987년 샘화랑(서울), 1991년 금호미술관(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2013년 《이남규 20주기전: 빛이 있으라》(대전시립미술관, 대전)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1981년 《한국미술 ’81》(덕수궁미술관, 서울), 1983년 《한불미술전》(동덕미술관, 서울), 1984년 《현대종교미술국제전》(덕수궁미술관, 서울), 1987년 《일본화랑미술제》(호암갤러리, 서울)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2003년 제8회 가톨릭미술상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공주교육대학교 미술과, 원광대학교 미술과, 공주사범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남규는 서정적인 추상화를 통해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작품 세계와의 일치를 보여준 작가이다. 그는 당시 화단의 유행을 따라가기 보다는 작업을 통해 근원적인 질서와 정신성을 추구하며 구도자적인 삶을 살았다. 또한 이남규는 회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통해 종교 미술에서도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한국 유리화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신과의 정신적인 교감을 자발적이고 추상적인 형태 및 색으로 발현”(미술비평가, 김미경)하여 ‘생명의 질서’를 화면에 담고자 노력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추상미술을 시작하였으며, 마치 색유리를 통과한 빛처럼 맑고 밝은 이남규만의 색채 감각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역동적이고 활발한 붓터치가 화면을 전면적으로 덮는 화풍으로 변화하며 ‘생명 그 자체의 노출’을 추구하였다. 1980년대에 이르면 이전의 밝고 행복감이 넘쳤던 화면들이 조금은 우울한 느낌을 주기도 하였는데, 이 시기 건강이 악화되었던 작가의 “정신의 변화, 심경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미술비평가, 정병관), 혹은 “병마의 어둠과 싸우는 투쟁의 과정”(미술비평가, 김미정)으로 해석된다.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앞서 실험했던 조형 언어들이 재등장하여 역동적인 붓터치와 결합하며 원초적인 생명력을 분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