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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필사 오윤에 대한 김정헌의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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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에 대한 김정헌의 메모

오윤에 대한 김정헌의 메모

오윤이는 ‘갯마을’로 잘 알려진 오영수 선생의 장남이다. 그는 1946년 나와 동갑 나이로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안도 38 따라지인 나보다 더 빨리 부산에서 올라 왔으나 그야말로 부산 갯바닥 출신답게 억샌 경상도 문둥이로 서울에서 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핏줄, 강한 그의 집안 핏줄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한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그 핏줄로 엉켜살다 간 사람이다. 그와 나는 대학교 때 가끔 바둑을 즐긴 일이 있다. 즐겼다기 보다 5, 6급의 치졸한 수로 잡히고 잡아 먹는데 재미를 보던 시절이다. 그런데 수유리의 그의 집에서 바둑을 두다 보면 바둑 급수가 우리보다 좀 못하셨던 오영수 선생이 언제 옆에 나타나셨는지 아들의 옆에 붙으셔서 꼭 나보다는 아들의 편을 들어 주시곤 하셨다. 그때 마다 이 아들놈은 자기 아버지에게 겉부러 역정을 내곤 했지만 아버지는 쫓겨나셨다가는 어느틈엔가 궁금증에 못이겨 또 오시고 또 쫓겨 나시고…. 세상에 이렇게 핏줄이 강한 집안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지금도 그의 일생을 이런 지나간 조그만 일에 비유를 하며 그를 생각한다. 그는 누구보다 더 핏줄로서의 우리 민족을 생각한 화가가 아닌가?

그의 작품들은 어느 한구석도 생득적(生得的)이지 아니한 구석이 없다. 또 그는 누구 보다 서구적이지 않으며 그는 누구보다 서구문명에 오염되지 않았다. 그는 서구식 현대 교육에서는 무식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서울 美大 조소과를 나왔으면서 그 흔하디 흔한 세상인연을 칼날처럼 베어 버릴려고 한 사람이다. 그러나 결국 그도 사람이다. 그도 토끼같은 자식들과 한 마누라의 지애비 였으며 벽돌 공장을 차려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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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MA-02-00004523
    전자여부비전자
    생산자(생산기관)김정헌
    생산일자 미상
  • 형태문서
    수집처김정헌
    분량2
    원본여부원본

c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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